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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가 지배하는 세상, 행복하십니까?

[프레시안 books] 프레데릭 마르텔의 <메인스트림>

20세기 이후의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가장 강력한 틀은 비판 이론에서 나온다. 나치 치하의 독일을 떠나 '현대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으로 망명했던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만든 '문화 산업(culture industry)'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문화 산업이란 말 그대로 '산업이 된(되어버린) 문화'이다.

여기서 '산업'은 제도화된 자본주의의 상품 생산 방식을 의미한다. '문화'가 '물질, 지성, 정신에 걸친 전반적 생활 방식'이라면, '문화 산업'은 이러한 생활 방식 전체가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 방식에 포섭된 상황을 일컫는다. 공장에서 표준화된 자동차가 조립되어 나오는 것처럼, 음악과 영화와 소설과 드라마 같은 문화 역시 규격화된 방식으로 찍혀 나와 선전되고 배포되고 소비된다는 것이다.

파시즘과 학살과 전쟁으로 아비규환이 된 유럽을 떠나온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눈에 비친 미국은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땅이 아니라, 자본의 메커니즘에 의해 파편화된 주체들과 정확히 그 파편화를 유지하기 위해 제공되는 값싼 문화들로 넘치는 또 다른 아비규환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대중이 듣기 좋은 하이라이트로만 편집된 것이고, 극장에 걸린 영화들은 가족의 가치와 영원한 사랑 같은 틀에 박힌 주제들의 반복이었으며, 텔레비전의 드라마들이나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소설책들은 가장 이해하기 쉽고, 가장 자극적인, 그러나 절대 급진적인 변화는 얘기하지 않는, 오직 광고와 이윤을 위해 만들어진 지루하고 단순한 서사들이었다. 이러한 문화 산업의 생산물이란 가장 진보적인 기술과 가장 도구적인 이성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공산품에 불과하고, 사람들은 노동과 노동 사이의 틈에서 이러한 문화적 공산품들을 즐기며 체제의 논리를 내면화한다.

규격화되고 표준화된 문화 산업의 산물들 대신, 이들이 옹호한 것은 어떤 종류의 질서와 규범에도 저항하는, 긍정하지 않는, 전체를 거스르는 문화, 이를테면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 같은, 파울 첼란이나 카프카나, 베케트 같은, 칸딘스키나 피카소 같은, 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외침 같은 문화다. 당연히 이러한 '문화 산업' 이론은 그 이론의 정당성과는 무관하게 엘리트주의의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고, 대중에게서 환영받을 리는 더더욱 없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프레데릭 마르텔이 쓴 <메인스트림>(권오룡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은 정확히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화 산업'론의 반대편에 서 있다. 책 제목으로 마르텔이 고른 '메인스트림(mainstream)', 곧 '많은 대중을 가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지배적인' 등의 뜻을 가진 이 단어는 그의 입장을 분명히 보여준다. '문화 산업'이 옹호하는 비주류적이고, 개인적이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는 메인스트림 문화와 완벽히 배치되는 것이다.

▲ <메인스트림>(프레데릭 마르텔 지음, 권오룡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그렇다면, 마르텔은 메인스트림 문화가 '문화 산업'이라는 용어에 반해 긍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그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21세기의 '새로운' 문화 지정학을 그려내기 위해 "오늘날 이미 낡고 뻔하고 불완전하게 된 '문화 산업'이라는 용어"보다는 "'창작 산업' 혹은 '콘텐츠 산업'"(10쪽)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한다고 밝히는 일, 그리고 "위계나 차별성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는" 창작 산업의 분석을 위해서라면 "이제까지 해왔던 것과는 달리 덜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석해보아야 한다"(556쪽)고 선언하는 일이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위계적인 것과 평등한 것, 이데올로기적인 것과 덜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을 내세우면서, 마르텔은 '문화 산업'론이나 '문화'라는 용어를 단칼에 쳐버린 후 곧장 '메인스트림'과 '콘텐츠'라는 익숙한 영어 단어 속으로 들어간다.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의 대결을 완전히 무시하는 대신, 마르텔은 과거의 비판 이론으로는 불가능한 가장 최신의 문화적 주제들, 즉 "새로운 문화 자본주의, 콘텐츠를 위한 세계 대전, 소프트 파워를 장악하기 위한 주역들의 역할, 남반구 미디어의 도약, 그리고 인터넷과 더불어 우리가 겪고 있는 점진적인 혁명"(12쪽)에 대한 탐구로 승부수를 띄운다. 메인스트림 문화를 생산하는 제도를 의미하는 '콘텐츠 산업'의 경향 분석은 이 탐구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산업'의 '경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 책이나 읽고 있어서는 안 될 터(그는 드라마라곤 본 적도 없을 것 같은 늙은 엘리트, 새뮤얼 헌팅턴을 만난 일로 서문을 시작한다. 몇 마디 뻔한 말을 힘없이 늘어놓던 헌팅턴은 그 후 몇 달만에 타계했다는 말과 함께). 이 부지런한 사회학자는 5년에 걸쳐 "지구를 누비며", 30개 국 이상에서 1250명이 넘는 창작 산업의 주역들과 만난다. 그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 방대하고 생생한 자료들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어떤 '주류적'이고 지배적인 경향성―이것이 이 책의 처음과 끝이다.

마르텔이 말하는 메인스트림 문화는 한국인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은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stream) 메인스트림 '콘텐츠'들과 더불어 사는 중이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와 슈퍼주니어와 아이유의 음악, <대장금>과 <겨울동화>와 수많은 복제품들, <아저씨>와 <댄싱퀸> 같은 기획 영화, <해피투게더>나 <놀러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 CGV나 메가박스 같은 멀티플렉스 등. 이 모든 '콘텐츠'들은 소위 '기획사'와 '제작사'라는 시스템을 통해 거대한 돈을 들여 제작되고, 거대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어, 대중에게 공급되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전 지구적으로 볼 때, 메인스트림 콘텐츠 산업의 핵심 거점은 미국(할리우드의 영화 산업, 로스엔젤래스(LA)의 음반 산업, 수많은 '미드' 제작사들, 거대 베스트셀러 출판사, 거대한 산학 협력 대학)을 중심으로 일본, 중국, 인도, 두바이와 이집트, 브라질 등지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더불어 콘텐츠 제작과 수출의 강국으로 꼽힌다. 책의 1부에서 미국을, 2부에서 아시아권, 라틴아메리카권, 이슬람권을 다루면서, 마르텔은 콘텐츠 산업이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만들고, 어떻게 제작하고, 어떻게 돈을 대고, 어떻게 유통시키는지 각 과정들을 자세하게 그려낸다. 우리에게 익숙한 SM의 이수만 회장, <꽃보다 남자>를 만든 송병준 PD, <대장금>을 제작한 문화방송(MBC) 임원 등과의 인터뷰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엄청난 자료를 통해 마르텔이 들려주는 메인스트림의 '전략'들은 가령 이런 것이다. 할리우드의 대형 제작사들은 돈을 대는 '은행' 역할을 하고, 실제 콘텐츠의 제작은 여러 주제별로 나뉜 그 아래의 소규모 계열사에서 자율적으로 담당하며, 모든 영화는 "그 구상 단계에서부터 (…)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97쪽) 만든다는 것. 디즈니는 철저한 계열화 작업을 통해 애니메이션 영화 한 편을 만들고, 이 영화를 뮤지컬로 변환하고, 영화의 주인공들을 디즈니랜드의 쇼에 적용하고, 맥도날드의 어린이용 인형으로 공급하는 등 하나의 콘텐츠로 여러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

모타운 레코드의 노래는 스타일보다 정서를, 음악적 창조성보다 노래의 구조를 강조하고, 그루브와 후크를 반드시 집어넣으며, 귀를 사로잡는 단순한 라이트 모티브를 사용해서 3분 이내에 위대한 사랑이나 가족의 행복을 얘기하도록 구성된다는 것(147쪽). 한류 드라마는 다른 언어권으로 판매하기 위해 완성된 제품보다 콘셉트를 상업화해서 그 포맷을 파는 데 역점을 둔다는 것. 한국 드라마는 "가정주부나 젊은 여성들이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된 시청자"이기에 특히 젊은 남자 배우들의 잘생긴 얼굴에 신경을 쓴다는 것(340쪽). SM의 케이팝 전략은 "언어를 중심으로 짜여 있"어서 캐스팅부터 각각 다른 외국어를 쓸 수 있는 이들을 한 곳에 모아 분할 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철저한 '현지화'로 판촉, 제작, 방송 모든 것을 현지 실정에 맞게 개편한다는 것. 그리고 역시 외모. "잘생긴 외모야말로 한 미디어에서 다른 미디어로, 아시아의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가장 잘 옮겨갈 수 있는 값진 자질 중 하나죠"(331쪽).

요컨대, 미국을 비롯한 전 지구적 콘텐츠 산업은 조금씩 다르되 공히 퓨전, 크로스오버, 통합 등을 주된 전략으로 택하고 있다. 왜?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왜 최근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홍콩, 인도, 유럽, 러시아, 중동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이 반드시 등장하는지, 왜 팝 음악은 길어도 4분을 넘지 않고, 왜 아이돌 음악에는 반복적인 멜로디가 들어가는지, 왜 아이돌 밴드에 교포와 외국인들이 꼭 들어가는지, 왜 디즈니 뮤지컬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끄는지 등등을 알 수 있다. 글로벌한 콘텐츠 산업은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각자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점점 다른 문화에 개방적이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중심적 문화가 요구하는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등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들은 조금씩의 차이는 있어도 대개 세계 전역의 콘텐츠 산업의 보편적 전략들이다. 30개 나라의 1250여명의 인터뷰에서 뽑고 뽑았을 이 콘텐츠 산업 리더들의 '목소리'는 그래서인지 매우 닮아있다. 천편일률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LA에서부터 뭄바이까지 모두가 세계화, 자율화, 판매 전략, 통합, 창조, 보편성, 마케팅을 말한다. 콘텐츠 산업의 '지정학'은 다를지 몰라도 이들이 기반을 두는 '경영학 법칙'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다르지 않다. 정확히 같은 정도로, 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리더들은 대개 '영어'를 유창히 말한다. 마르텔 역시 곳곳에서 이 중국의 PD가 영어를 얼마나 유창히 하는지, 이 뭄바이의 사장이 미국의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등을 열심히 전하고 있다. 마르텔이 묘사하는 이 전 지구적 문화전쟁의 전사들은 실로 유사한 하나의 계급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글로벌 문화 자본가 계급이라는 말은 어떨까?). 결국 이 비슷비슷한 메인스트림 문화의 리더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문화적 다양성'이 비슷비슷한 경영학 법칙을 거치며 과연 얼마나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남는다. 가령,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와 슈퍼주니어는 음악을 더 다양화했을까, 더 획일화했을까? 한류 드라마들은 서사의 영역을 더 확장시켰을까, 더 축소시켰을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영화를 더 차별화시켰을까, 자신들끼리 더 비슷해졌을까? "전 세계 어느 누구라도 좋아할 수 있는 포맷의 '일반적인' 제품을 만드는 방식"(538쪽)에 근거한 이 메인스트림 문화는 시간이 흐르고 경쟁이 강화될수록 어딘가로 수렴되는 경향을 갖지 않을까? 저자는 말하지 않으니,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맨 처음에 문화를 보는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그리고는 문화를 비교하고 평가하는 '위계'를 제거하고, 마침내 문화 텍스트의 '내용'에 대한 분석마저도 제거하면서, 저자가 쓰는 '문화의 지정학'은 결국 '제품'으로 호명되는 문화들의 마케팅 보고서 비슷한 것이 되어버린다. 거기에다 이 보고서는 전혀 비판적인 시각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의미의 '세계화' 개념을 채택하고 사용함으로써,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그로 인한 문화의 자유로운 교류가 정말 가능한 것처럼 그려놓고 있다. 마르텔은 "문화의 세계 대전"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계화 속의 '경쟁'일 뿐, 그보다 더 깊은 의미는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거의 600쪽에 이르는 이 엄청나게 방대한 메인스트림 콘텐츠 산업의 보고서는 흥미진진하게 시작하지만, 갈수록 비슷한 인터뷰가 반복되면서 지리멸렬해진다. 오히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은 중심 논의에서 벗어난 곳들, 가령 멀티플렉스와 팝콘과 외곽 도시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내용이나 엘리트 문화에 맞서 메인스트림 문화를 논리적으로 옹호하는 역할을 했던 '폴린, 티나, 오프라'를 다룬 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경향이 아닌 역사가 들어간 곳, 콘텐츠 산업의 표면을 훑는 게 아니라 문화적 헤게모니 변동의 과정을 드러내는 장소들이다. 달리 말해, "덜 이데올로기적"이려는 노력을 조금만 덜 했더라면, 이 훌륭한 문화연구 자료집에는 좀 더 다양한 재미와 생산적 논점들이 담길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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