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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대와 통(通)하였느냐?

[프레시안 books] 임헌영의 <불확실 시대의 문학 : 문학의 길을 다시 생각한다>

문·사·철의 예봉

임헌영의 <불확실 시대의 문학>(한길사 펴냄)을 다 읽고 나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문학이 시대와 치열하게 소통하기를 주저하고 비평이 문학 이론의 전문 용어로 무장한 채 애매한 지점에서 현실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시절에, 그의 평론은 서슴없이 우리의 삶과 역사로 육박해 들어간다.

더군다나 진보의 가치와 내용에 대한 혼란, 그리고 민족 문제와 분단 체제의 현실에 대해 진보 진영 일부의 담론 해체 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임헌영의 논지는 우리 시대가 자꾸 망각해가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들을 일깨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학이 인문학적 논쟁의 불을 지르기보다는, 베스트셀러 마케팅의 상품으로 안주하려고 하는 현실에 대해 그의 평론은 문(文)·사(史)·철(哲)의 예봉을 휘두른다.

▲ <불확실 시대의 문학>(임헌영 지음, 한길사 펴냄). ⓒ한길사
임헌영은 이 책의 제목을 <불확실 시대의 문학>이라고 한 까닭을 놓고서 "시대의 진로를 가늠하게 하는 지침의 부족이 아니라 도리어 과잉된 상황에서 우리의 시선이 교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위가 판별되지 않은 채 서로 별이라고 내세우는 현실을 바로 보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역량은 "총체적인 전방위적 지식인으로서의 기능"이다. 그는 "문학은 분업화된 지식 체계에서 다른 분야의 경계선을 가장 자유롭게 넘나드는 학문의 하나"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임헌영의 책에는 우리의 지난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변모, 문단의 역사, 비평과 논쟁의 역사가 종횡무진으로 전개되어 있다. 이러한 무대 위에서 그는 이미 낡았다고 여기고 버린 시대의 이념과 문제의식을 구출해낸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마치 유행을 쫓듯이 하나의 사조에 몰두하다가 상황이 바뀌면 이내 다른 사조를 뒤따르는 경박성에 대한 경고로 읽히게 된다.

민족 문제에 대한 그의 일침

특히 그는 민족주의 또는 민족문제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버리자고 하는 일부 진보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그는 "문화적인 전지구화 현상에 현혹되어 민족주의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 그대로 있지 않는다. 사실, 유럽의 민족주의가 국가주의와 결합해 파시즘의 대중 운동적 근간이 되었다면, 식민 지배를 받았던 곳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자기정립의 역사적 기초라는 점에서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일부 진보 지식인들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 또는 파시즘적 집단주의로 매도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연장선에 서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민족의식을 해체시키는 것을 전략의 하나로 삼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자세는 그 공동체의 국제적 정체성과 주도권을 스스로 해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오늘날 "종북주의"의 광풍이 불게 된 토양에는 이 민족 담론의 해체가 만들어낸 공간 역시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남과 북 사이의 분단 체제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는 민족 단위의 상호이해와 결합이 필연적인데 이를 마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거나 또는 폐기해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은 분단 체제의 군사적 관리에 동조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임헌영은 백낙청과 조정래의 민족 문제와 세계적 구조의 연관성에 대한 인식을 주목한다.

"민족 현실에의 올바른 문학적 대응이 문학과 역사 현실에 사이의 잊어서는 안 될 관련을 상기시키고 한반도라는 국가적 현실을 전 지구적 관점으로 인식하는 하나의 모형을 제시하기조차 한다면, 이는 세계 문학 이념의 수호와 새로운 세계 문학운동의 출현을 위해 긴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백낙청)

"인류 보편성이라는 것도 모든 민족들의 존재가 공평해질 때 비로소 빛나는 보석으로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세계화의 바람에 휩쓸려 민족주의를 더욱 매도하고 나섰던 이 땅의 지식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정래)

1980년대는 이미 지나버린 시대일까?

이런 인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는 반외세 항쟁 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남북한 만남의 문학사라든가, 동아시아 전체의 맥락 속에서 그간 소홀히 다루어져왔던 항일 혁명 문학의 재조명을 비롯해서 이 시대가 이미 종료되었다고 여기는 역사적 성과와 문제제기를 되돌아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것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문학사의 재평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980년대 무크 운동은 민중 문학론의 치열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결말없이 사그라진다. 그 뜨거웠던 논자들이 1990년대를 전후하여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논지를 너무 쉽게 바꿔버렸거나 아예 비평 현직에서 명퇴해버린 사실은 진정한 민족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슬픈 추억이었다. 그리고 이 뜨거웠던 투쟁이 한낱 '후일담'으로 남게 만든 것 역시 너무 빨리 포기한 게 아니냐는 자책으로 남는다. 여전히 우리는 1980년대가 지녔던 과제를 거의 그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끌어안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근현대 문학사를 다시 읽도록 촉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재발견하게 되는 작품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하고 있다. 임헌영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그의 작품 선택과 해석은 당대의 현실과 마주해서 고뇌했던 작가들의 내면 세계를 진지하게 탐구하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 해석과 비평은 근대 부르주아의 문제, 식민지 시대의 해독(解讀), 레드 콤플렉스의 극복, 통일 문학에 대한 전망을 비롯해서 매우 다채로운 주제와 영역을 섭렵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낙동강 문학 기행"이라는 글 꼭지는 지역사와 문단사가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되는 흥미로움과 독특함을 충분히 맛보게 해준다.

문단의 이면사를 읽는 재미

임헌영의 <불확실 시대의 문학>을 읽는 재미는 단지 이러한 역사적 거대 담론으로 그치지 않는다. 파인 김동환과 최정희의 염문, 이광수를 연모했던 모윤숙, 그리고 좌익 지식인 김광진을 사랑했던 노천명 등 세 여인의 이야기는 그 글 꼭지의 제목대로 "한국 문단의 이면사"이고 당대 문학인들의 교류와 의식을 이해하는데 매우 소중한 장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김사량, 임화, 지하련, 김남천, 박태원을 비롯해서, 카프의 역사와 관련해서 펼쳐지는 문학인들의 운동과 전향, 연애사 등은 모두 이 나라 근현대 정신사의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

그는 이들의 편지도 소개하면서 해설하고 있는데 이러한 접근의 의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문학사는 어떤 면에서는 문학인의 모습은 숨겨두고 작품만 나열하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문학사란 작가의 생애와 행위와 작품, 여기에다가 문단사적인 배경까지 함께 다루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사적인 편지의 공개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문단사와 작가의 전기적 연구에 이 자료들은 빼놓은 수 없는 귀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 세월이 지난 오늘날 그걸 읽는 이에게는 재미있는 추억담이지만 이 글들이 씌어졌을 현장은 얼마나 팍팍한 삶의 고뇌들이 스며 있었던가를 밝혀내는 작업은 문학사가들의 몫일 것이다. 모쪼록 이를 계기로 편지가 사유물이 아닌 공유하는 지적 재산으로 속속 공개되기를 바란다."

미시적 일상과 사연, 그리고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하나로 묶어 연결시키는 임헌영의 솜씨는 탄복할 만하다. 딱딱한 이론적 평론이 아니라, 생생한 삶이 녹아있고 역사의 동력이 느껴지는 글이라는 점에서 그의 <불확실 시대의 문학>은 문학이 시대적 소임에 대해 방황하고 있는 이때에, 그 경륜이 무르익은 노 비평가의 성찰을 우리의 자양분이 되게 한다.

상품 권력에 매몰되어가고 있는 문학은 실로 지금, 자신의 시대적 좌표를 재정비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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