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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지독한 요구 "사랑한다면 바퀴벌레를 먹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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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지독한 요구 "사랑한다면 바퀴벌레를 먹어봐!"

[박수현의 '연애 상담소'] 마르케스의 <사랑과 다른 악마들> ②

지난 회에서 독자 연이 오열한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예고대로 그 이유를 밝히기 전에 소설의 줄거리 순서에 따라 한 가지 이야기만 더 해본다. 줄거리 순서를 존중하는 것은 연애 과정에 따르는 일반적인 심리 추이를 짚어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연의 사연이 궁금하신 분들은 지난 회를 보시길.) (☞관련 기사 : 사랑에 빠진 남자의 절규 "나는 악마를 보았다!")

말(語), 사랑의 장기판에서 빠트릴 수 없는 말

우여곡절 끝에 소녀가 신부의 마음을 알아주자, 신부의 공포는 조바심으로 바뀐다. 그는 소녀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 "평온함을 잃고, 건성으로 일을 하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했다." (160쪽)

연인이 눈앞에 없을 때 달려드는 현기증 나는 조바심. 이는 연애의 핵심적 현상 중 하나일 터이다. 그래서 젊은 연인들은 간혹 서로를 지나치게 구속하고 이 때문에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그러나 열정이 순수하고 깊을수록 조바심 또한 왕성하게 날뛰게 마련이니, 그들을 손쉽게 비난할 수도 없다. 황홀한 사랑놀이 끝에 신부와 소녀는 "오직 함께 있을 때만 평온함을 느꼈다." (162쪽)

▲ <사랑과 다른 악마들>(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우석균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이제 그들은 "싫증도 내지 않고 내내 사랑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162쪽)한다. 말(語)은 사랑의 장기판에서 빠트릴 수 없는 '말'이다.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면, 홀로 떠도는 말이 넘쳐난다. 사랑에 빠진 자는 넘쳐나는 말을 나누어야만 평온해지기에, 역설적으로 말에 굶주린 하이에나가 된다.

그토록 많은 사랑이 연애편지들을 도구로 사용해 왔으며, 시작하는 연인들은 초기에 감정을 나누는 대화만으로도 긴긴 시간을 보낸다. 사랑에 빠진 자의 감수성은 폭발하며, 이렇게 폭발하는 감수성은 말을 홍수지게 한다.

홍수가 되어 흐르는 말을 감당하기 어려운, 동시에 말에 굶주린 그는 쓰지 않던 일기를 쓰고 말을 들어 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 된 신부도 그저 소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해서 아브레눈시우를 찾았던 것이다.

"사실 내가 왜 왔는지 그것조차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내 믿음을 시험하려고 성령이 그 소녀를 내게 보내 주신 것이 아니라면."
그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 가슴에 맺힌 멍울에서 해방되었다. 아브레눈시우는 신부의 눈을 응시하며 영혼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았다. 신부가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연히 자학하지 마시오."
의사는 진정시키려는 어조로 말했다.
"아마 당신은 그저 소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해서 왔지 싶은데요."
(…) "당신하고라면 다음 세기까지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 (147쪽)

사랑의 대화가 넘쳐흘렀다. 이는 흔하게 듣는 말이지만, 상투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중요한 것은 '넘쳐흐름'이다. 사랑만큼 과잉 혹은 잉여로 치닫기 쉬운 감정이 또 있을까. 사랑의 정열도 고통도 허기도 바닥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쾌락과 연관되기 때문일 것이다.

쾌락은 중용의 지혜를 거부한다. 감당하기 어렵게 넘쳐나는 정열에 대한 최고의 진정제가 말이기에, 말도 넘쳐흐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랑의 대화가 상대에 대한 찬미로 사탕발림 된 달콤한 것이기만 한가. 그보다는 서로의 고통과 불안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긴긴 밤을 고통스럽게 수놓았던, 긴 밤보다 더 길었던 고통의 대화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런 사정은 정신 분석의 원리와도 비슷하다. 알다시피 정신 분석은 말을 매개로 행해진다. 무의식 속 상처를 들추어내기 위해 말이 필요한 것이다. 말은 상처를 명명백백하게 만듦으로써, 그 본색을 밝히고 그것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연인들 사이 넘치는 대화는 사랑을 혼자만 간직해야 했을 때 감당하기 힘들었던 감정적 혼란, 그리고 사랑을 나누게 되었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운 감정적 혼란을 치유하기 위한 약인지도 모른다.

말이 있어 우리는 폭발하는 감수성에 질서를 주어서 광기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한다. 그런데 감정이 말로 정리되는 순간, 말은 다른 감정을 부추기며, 그렇게 증폭된 감정은 다시 말을 필요로 한다. 말과 감정은 짝을 이뤄서 서로를 선동하며 부풀리고, 그러다가 넘쳐흐른다.

나를 사랑한다면 하늘의 별도 달도 따다 줘

드디어 연의 사연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연은 소설의 어떤 대목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갑자기 많은 깨달음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지칠 줄 모르고 고통을 이야기하며 사랑의 유희를 즐기던 소녀와 신부는 다음 단계로 간다. 다음 단계는 시험이다.

욕정이 가라앉을 때면 둘은 서로를 지나친 시험에 들게 했다. 그는 소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에르바 마리아는 어린애다운 잔인함으로 자신을 위해 바퀴벌레를 먹으라고 요구했다. 그는 소녀가 저지하기 전에 바퀴벌레를 잡아 산 채로 먹었다. 미치광이 짓 같은 다른 시험에서 그가 시에르바 마리아에게 자신을 위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는지 묻자, 소녀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소녀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러려면 자신과 결혼하여 신에게 드린 맹세를 이행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부엌칼을 감방으로 가져가 말했다.
"어디 정말인지 보자."
소녀는 그가 머리카락을 송두리째 자를 수 있도록 등을 돌렸다. "어디 해 봐요."하고 소녀가 부추겼다. 그는 진짜 그러지는 못했다.

며칠 후 소녀는 그의 목을 새끼 산양 목 자르듯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꿋꿋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소녀는 칼을 꺼내 검증할 채비를 했다. 그는 머리끝이 곤두설 만큼 겁이 나 펄쩍 뛰었다.
"안 돼, 안 돼."
소녀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그가 진실을 말했다.
"너는 진짜 자를 거니까." (162~163쪽)

이들은 사랑을 시험하고픈 정열에 빠져든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그 정열이 '지나치게' 나갔다는 점이다. 바퀴벌레를 먹이거나 목을 내어놓을 정도로. 역시나 사랑만큼 과잉이나 잉여로 치닫기 쉬운 정열도 없다. 사랑을 시험하는 행위는 연인들의 평범한 놀이이기도 하지만, 때로 이것은 잔인한 경지로까지 치닫는다.

나를 사랑한다면 하늘의 별도 달도 따다 달라거나, 너를 사랑하기에 네가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들. 이것은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닳아빠진 말들이 아니다.

이들은 잔인한 연애 심리를 반영하는 무서운 말들이다. 즉, 사랑하는 상대를 바닥끝까지, 그러니까 통과 불가능할 지경까지 가혹하게 시험하고픈 난감한 심리 말이다. 이 심리는 그 밑바닥에 상대가 시험을 통과하기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기에, 한층 더 난감하다.

연은 깨달았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지만 단지 시험하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이제야 그녀는 자신의 간절하고도 끈질긴 소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이렇게 너를 괴롭혀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 줘.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 역시 부모님처럼 자신을 버릴까봐 그녀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의 사랑을 믿는 즉시 배신당할까봐 두려워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를 시험하면서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진정으로, 남자 친구가 시험을 통과해서 자신에게 안심과 믿음을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도 안심과 믿음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불안과 불신은 어지간해서는 쉴 곳을 찾지 못한다. 고집스럽게 자기의 고통 속에 머무르려 한다. 상대가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그녀는 안심과 믿음을 느꼈으나, 나중에는 안도하기 위해서 더 강도 높은 시험을 준비해야했다.

연은 자신이 처음부터 그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랬기에 오장이 끊어지도록 오열했다. 그를 믿지 못해서 귀하디귀한 사랑을 잃었다는 진실은 다만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울고 있는 연을 홀로 울도록 남겨 두고 우리는 다시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쩌면 저 사랑의 시험관의 영혼 깊은 곳에, 쾌락을 '끝없이' 갈구하는 마음이 웅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가 시험을 통과했을 때 느끼는 안심은 희열 혹은 쾌락과도 통하고, 그 쾌락은 점점 더 큰 쾌락을 꿈꾼다.

잉여적 쾌락을 구하는 마음은 만족을 모른다. 사랑을 시험하는 자는 거듭 더 강도 높은 쾌락을 찾다 보니 더욱 난해한 시험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시험관은 상대가 한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만족하면서 짜릿한 희열을 느끼지만 곧이어 더 가혹한 시험을 구상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상대가 그 시험까지 가뿐히 통과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 소망한다.

이 과정에서 진짜 바라는 것이 안심인지 믿음인지 쾌락인지, 당시에 시험관은 자기도 모르는 채로 위험한 시험의 정열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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