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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과학자, 딸과 공유한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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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과학자, 딸과 공유한 비밀은?

[이명현의 '사이홀릭'] 데이바 소벨의 <갈릴레오의 딸>

사연이 묻어 있거나 추억이 녹아 있는 책들이 있다. 그립지만 마음 한편으로 비껴져 있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은 결국 언제 건 다시 불쑥 나를 찾아오고야 만다. 데이바 소벨의 <갈릴레오의 딸>(홍현숙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이 바로 그런 책이다. 그 책이 다시 불쑥 내게로 왔다.

10년 전쯤의 일이다.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가는 길에 뉴욕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당시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던 네덜란드 출신 천문학자의 집에서 며칠 신세를 지게 되었다. 독신인 그녀의 집에는 작은 손님방이 있었는데 지인들에게 그 방을 흔쾌히 내어주곤 했었다. 여독 때문에 늦잠을 자고 깨어나 보니 벌써 정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점심때까지는 돌아오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나가고 없었다.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그녀의 서재에 눈길이 닿았다. 내 시선이 책 한두 권을 지나서 에 멈춰 섰다. 갈릴레오에게 딸이 있었나, 이렇게 되물으면서 낯선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다른 책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갈릴레오의 딸? 윌리엄 허셸의 여동생처럼 아버지 갈릴레오를 도왔던 숨은 여성 천문학자였나,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면서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이 책에 눈길이 갔고 나는 어느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소파에 드러누워서 를 읽고 있었는데 그녀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주로 아버지로서의 갈릴레오와 딸로서의 첼레스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당시 나이 든 어머니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1년에 몇 달은 네덜란드 라이덴에 있는 천문학 연구소에서 일했던 그녀에게 부녀 사이의 이야기가 살뜰하게 다가왔을 것도 같다. 당시 나도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두 분의 자식이었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특별히 기억할 만한 별다른 일이나 생각이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Dava Sobel 지음, Penguin Group USA 펴냄). ⓒPenguin Group USA
그녀의 집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 틈틈이 를 읽었다. 한국 식당에서 돌솥비빔밥을 먹고 센트럴 파크 잔디밭에 드러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도 난다. 멀리서 울려 퍼지는 어느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역시 이야기가 대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다. 미처 다 읽지 못한 부분은 책을 사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면서 다 읽었다.

를 읽으면서 우선 내가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문학을 공부했으니 이래저래 그의 이름과 관련된 원리들 그리고 그와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전해들을 기회가 있었겠지만, 이 책에 실린 많은 내용들이 생소했고 새로웠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위인전 읽기를 싫어해서 갈릴레오의 전기나 위인전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갈릴레오는 종교를 전면적으로 거부한 혁명 투사가 아니라는 지은이의 생각에 동의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던 것 같다. 크게 보면 갈릴레오는 늘 주류에 편입되어 있었다. 그를 비호하는 귀족 세력이 늘 존재했다. 메디치가는 그의 비호 세력을 넘어서서 그와 공동 운명체 같은 위치에 있었다.

그는 그런 위치를 즐겼고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책을 낼 때마다 자신을 유리한 미래로 이끌어줄 권력자에게 바쳤다. 물론 이런 헌정은 당시의 출판 문화의 관행이었지만 그는 남들보다 더 영리하고 더 적극적이었다.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한쪽에서는 비난 받고 모함 받았지만 여전히 다른 쪽에서는 추앙 받고 보호를 받았다.

늘 안전하게 기존 정치 종교 체제 내에서 영광을 얻고자 노력했다. 적절하게 대외적으로 수사적으로 자신이 발견한 객관적 사실을 부인하거나 신념과 동떨어진 고백을 하는 굴욕도 달게 받았다. 갈릴레오는 체제 속에서 어떻게든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책을 지식인들만의 공용어인 라틴어 대신 대중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쓰는 전복을 기하기도 했지만 자신은 아마 그것을 전복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 같다. 더 많은 사람이 읽기를 바라는 단순한 감각이 발동했을지도 모른다.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 군사용 컴퍼스 같은 과학 장비를 상업적으로 개발해서 팔기도 하는 실용주의자였다.

를 다 읽고 나서, 그를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상징하는 혁명가로 보기 보다는 체제 속에서 자신의 진리를 추구해나간 합리주의자로 보는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그가 받은 핍박과 고통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큰 것이었지만 그는 늘 외톨이가 아니었으므로 그를 열사에 비교할 바는 못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면서 갈릴레오의 딸은 천문학자가 아니라 수녀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베네치아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 마리나 감바와의 오랜 동거 관계에서 태어난 갈릴레오의 큰 딸은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해의 무더운 여름날인 1600년 8월 13일에 태어났다."

"갈릴레오는 '소중한 여동생'을 기리고자 딸에게 비르지니아라는 세례명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정식 혼인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딸 또한 결혼하기 힘들 거리고 생각했다. 딸아이가 열세 번째 생일을 맞은 직후에 갈릴레오는 그녀를 아르체트리에 있는 산마테오 수녀원에 넣었고, 그녀는 이곳에서 평생 가난과 은둔의 삶을 살았다."

"비르지니아는 수녀가 될 때, 아버지가 별에 매혹되었음을 알고 마리아 첼레스테(celeste는 이탈리아어로 '하늘의'라는 뜻이다)라는 수도명을 택했다."

갈릴레오의 딸 첼레스테 수녀는 신분의 장벽 때문에 결혼하지 못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이 책의 첫 문장이기도 한 '존경하는 아버지께'로 모든 편지를 시작하는 첼레스테는 아버지를 빼닮은 딸이었던 것으로 이 책에 묘사되어 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헌신으로 겹겹이 쌓인 그녀의 삶의 궤적이 이 책 곳곳에 묻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를 다 읽고 나서도 제목을 왜 구태여 그렇게 지어야 했을까 의아했다. 물론 딸의 편지를 통해서 갈릴레오의 사생활과 그의 나이브한 생각들이 드러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은 그에 관한 책이지 그의 딸에 대한 책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제목은 그저 눈길을 끌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시대적인 벽뿐만 아니라 아버지라는 벽 때문에 고단한 인생을 살았을 기특하지만 가여운 갈릴레오의 딸에게 마음속으로 헌화를 하는 것으로 나의 읽기는 마무리 지어졌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나는 작년부터 매달 발행되는 한 웹진에서 두 사람이 정해진 다른 두 권의 과학책에 대한 서평을 각각 쓰고 또 대중 앞에서 이들 책을 소재로 대담을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두어 달 전에는 내가 석사 학위 논문을 지도했던 옛 제자를 필자로 대담자로 모셨다. 그녀는 앞서 말했던 네덜란드 출신 천문학자의 논문 지도를 받아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귀국해서 교수가 되었다. 오랜만에 그녀도 보고 싶었고 특히 그 때 다루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해서 그녀가 각별한 추억이 있을 것 같아서 그녀를 모셨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불쑥 이 프로그램에서 <갈릴레오의 딸>을 다루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순간 한참동안 잊고 지내던 친구 이름을 들은 것 같은 설렘이 일었다. 그녀가 이어서 자신이 곧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 우습게도 과 겹쳐진 뉴욕의 독신 천문학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좋은 예감이 떠올랐다. 그녀도 아마 자신의 지도 교수를 통해서 를 만났겠지, 그런 생각도 함께 몰려왔다.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이젠 할머니의 모습도 언뜻언뜻 보이는 뉴욕의 그 천문학자가 서울에 왔다. 결혼식에 참여할 겸 국내의 천문학자도 만날 겸 처음으로 한국 나들이를 한 것이었다. 바쁜 일정을 치르고 있던 그녀를 어느 오후에 만났다. 우리는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추억이 4~5년 전 쯤에 멈춰 서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느라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도 그녀를 만나면 내가 늘어놓으려던 긴 목차에 있었지만 수다가 수다에 꼬리를 물다보니 정작 그 책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렇게 이 불쑥 다시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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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레오의 딸>(데이바 소벨 지음, 홍현숙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생각의나무
이번에는 <갈릴레오의 딸>을 번역본으로 읽었다. 그런데 번역본은 이미 절판되어 있어서 인터넷 중고 서점을 뒤져서 구입을 해야만 했다. 는 그 사이 내 손을 떠나서 다른 사람의 손에 갔다가 어디론지 또 옮겨갔다. 그 책을 갖고 간 그녀가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졌지만 또 누구에게 를 넘겨주었는지도 궁금했지만 이젠 물어볼 수가 없게 되었다.

다시 읽은 <갈릴레오의 딸>에 대한 나의 감상평은 와 큰 맥락에서는 비슷했지만 눈길이 가는 곳은 조금 달라졌다. 언어의 차이와 세월의 차이가 반영된 탓일 것이다. 그 사이 나도 나이가 들었고 내 부모는 더 늙었고 아이들은 이제 부모를 배려하고 때로는 타박할 만큼 성장했다. 그 세월과 변화만큼 내 책 읽는 감상도 변했다.

"그러나 마리아 첼레스테의 편지로 미루어볼 때 갈릴레오는 생전에 그 같은 분열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기도의 힘을 믿었으며 자신의 숙명인 과학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변함없이 훌륭한 가톨릭 신자였다."

를 읽었을 때는 이런 구절을 보면서 위에 써놓은 식으로 이해하고 느꼈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생각이 치고 들어왔다.

갈릴레오는 몰상식의 세상에서 상식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외톨이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기존의 질서 속에 편입되려고 부단히도 힘썼던 또 다른 의미에서의 외톨이였다. 평생을 투병을 하면서 지냈던 외톨이였다. 많은 시간을 감금당한 채 고립되었던 외톨이였다. 신분상의 문제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아내로 맞아들이지 못했던 외톨이였다. 사랑하는 딸을 옆에 두지 못하고 수녀원에 보내야했던 외톨이였다.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받아들였지만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외톨이였다.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관찰과 관측 결과를 통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시대는 여전히 중세 기독교의 먹구름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그 자체가 모순인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변함없는 훌륭한 가톨릭 신자'임을 다짐하면 할수록 그를 둘러싼 태생적인 '분열'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기존 체제에 대한 미련을 고수하면 할수록 그의 고통은 더 커졌을 것이고 더 분열되었을 것이고 더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갈릴레오는 역시 어쩔 수 없는 혁명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주어진 체제 속에서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자신이 내포한 분열은 이미 그를 혁명가로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기존 정치 종교 체제 속에서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남으려고 하면서 변절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그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그가 종교를 부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미 과학과 종교의 싸움에서 상식의 편에 섰고 그 자체로서 그는 종교에 침을 뱉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불붙은 세상은 그와는 별개로 더 멀리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는 외톨이였고 여전히 반종교 혁명가였다.

"밤에 잠을 잘 방이 없던 터에 디아만타가 고맙게도 친동생 대신 저를 자신의 방에서 재워주었답니다. 그런데 그 방은 지금 끔찍할 만큼 추워서 머리가 멍할 지경이니 아버지가 여행을 떠나 계시는 동안은 쓸모가 없을, 아버지의 흰 침대보 하나 빌려주시지 않으면 그곳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 몹시 궁금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부탁드릴 일은, 최근에 출판된 아버지의 책을 부디 한 권 보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궁금해서 어서 읽고 싶거든요."

갈릴레오의 딸 첼레스테도 외톨이였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교통했고 수녀원에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처세를 했지만 평생을 수녀원에 고립되어 살았다. 고립된 아버지 갈릴레오와 고립된 딸 첼레스테의 관계는 이번에는 딸의 맹목적인 존경과 일방적인 헌신을 바탕으로 한 주종 관계가 아니었던 것으로 읽혔다. 두 외톨이는 첼리스테의 편지를 통해서 드러난 것처럼 서로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공유하는 일상의 동반자였다. 첼레스테는 단지 딸이 아니라 아버지의 책을 읽고 아버지의 편지를 대필하기도 하는 동료로서의 면모를 그녀의 편지를 통해서 잘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딸은 끝없이 아버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건강을 걱정하는 애틋한 모습을, 아버지는 딸의 요구를 무조건 다 들어주는 딸바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다정한 부녀이기도 했고 서로를 아끼는 연인이기도 했던 것 같다.

<갈릴레오의 딸>이라는 제목이 이제는 어색하지도 않고 이 책이야말로 갈릴레오의 딸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갈릴레오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다만 그를 향한 내 시선이 좀 더 풍요로워진 것은 느낀다.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그가 중세 어느 고립된 섬에서 외롭게 외치는 갈릴레오가 아니라 현대로 나를 불쑥 찾아 온 오래된 손님 같이 느껴졌다. 그를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첼레스테에게도 당연히 초대장을 같이 보내야겠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그곳에 있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녀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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