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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독설 "'목마와 숙녀' 박인환은 양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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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독설 "'목마와 숙녀' 박인환은 양아치!"

[親Book] 김수영과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 '목마와 숙녀' 中)

한 잔의 술을 마시는 새벽이면 나는 종종 박인환을 이야기한다. 그의 생애가 아니다. 목마도 옷자락도 아니다. 홀로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부를 뿐이다. 무슨 '센티멘털 저니' 같은 감상에 젖어서가 아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 부르며 소원이라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또한. 다만 그의 이름이 입안에서 만들어내는 리듬을 즐길 뿐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의 화자가 '롤리타'의 이름을 음미하듯이.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 (<롤리타>(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민음사 펴냄), 15쪽)

그의 이름을 부를 때는 반드시 끝에 '-이'를 붙여야 한다. 박인환이, 라고. 굳이 말하자면 [바:기놔니] 정도 될까? 아무튼 그런 새벽이다. 잠깐 웃고, 잔을 비운다. 그리고 생각한다. 한국 문학사에서 박인환만큼 '-이'가 어울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그럴 리가. 아마 세계 문학사를 뒤져본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명동 백작>(이봉구 지음, 이제하 그림, 일빛 펴냄). ⓒ일빛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교육방송(EBS) 드라마 <명동 백작>(원작 : <명동 백작>(이봉구 지음, 일빛 펴냄)에서다. 어느 골목의 포장마차, 아니, 포장은 없으니 노상주점이라 해두자. 술값을 위해 어머니의 장롱에서 금비녀를 훔쳐 나온 '명동 백작' 이봉구가 김수영과 함께 잔을 기울이는 장면이다. 남로당 활동을 하며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린 오장환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는 이봉구에게 술 취한 수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이 선배,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경멸하는 놈이 누군지 아십니까? 박인환이에요. 작가라는 놈이 멋이나 부리고, 고급 양복이나 입고 여자나 유혹하고. 그런데 오장환은 박인환이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나쁜 놈입니다."
"자넨?"
"난? 여성을 노리개로 생각한 적 없습니다."
"인환이도 그렇지. 아, 박인환이만 한 페미니스트가 어디 있겠어?"
"후, 머리는 텅텅 빈 게 멋은 젠장"
"그러면서도 죽고 못 사는 게 자네와 박인환이 관계 아냐?"
"……" (말없이 한 잔 들이킨다)
"아니야?"
"인환이 이 자식, 지금도 여자나 후리고 신나게 살고 있겠지……. 근데 이 선배, 왜 박인환이가 이렇게 보고 싶은 겁니까?" (젖은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본다)

"아, 박인환이만 한 페미니스트가 어디 있겠어?"라는 이봉구의 말은 물론 "근데 이 선배, 왜 박인환이가 이렇게 보고 싶은 겁니까?"라는 김수영의 말까지. 대수롭지 않은, 차라리 통속적인 문장이다. 하지만 '박인환이'가 들어가는 순간 사정은 달라진다. 재료도 변변찮은데 간까지 밍밍한 국에 약간의 미원을 넣는 일과 비슷하다고 할까. 말맛이 살아나는 것이다.

박인환이가 정말 페미니스트였는지는 알 바 아니다. 화학 조미료가 얼마나 몸에 나쁜지도 알고 싶지 않다. 인문 정신이 대체 무엇인지, 김수영에게 그런 것이 있었는지 또한 관심 없다. 궁금한 건 따로 있다. 말하자면 오장환을 욕하는 자리에서 굳이 인환의 이름을 들먹여야 했던 수영의 마음, 같은 것.

내게 김수영은 성(姓)을 빼고 부르기 좋은 시인이다. 수영을 평생의 라이벌로 생각했던 김춘수의 이름을 불러보면 알 수 있다. 춘수, 라니. 너무 '춘수럽지' 않은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한 김춘수지만, 적어도 '성 없이 부르기 좋은 이름' 부문에 있어서만큼은 완패라 해야겠다.

세계로 눈을 돌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들을 존이나 윌리엄이라고, 샤를이나 아르튀르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 우리에겐 (정)지용도 있는데? 당신은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우리가 그를 지용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면 다음 세대가 그를 '지드래곤'이라고 부르는 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소녀시대에는 수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멤버가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적어도 그들은 시인을 존중할 줄 안다고. 언젠가 그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난 그대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행운의 여시인- / 소원을 말해 봐 / (I'm genie for your dream)"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의 이름에 어울리는 각각의 잉여와 결락은 그들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작가라는 놈이 멋이나 부리고"라는 수영의 말에서 드러나듯, 낭만적인 성향의 박인환이는 화려한 치장과 과장을 좋아했고(팽창), 내향적인 수영은 거추장스러운 장식과 허식을 경멸했던 것이다(수축). 물론 엉터리 성명학이고 조야한 단순화다. 그러니 말장난은 이쯤에서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

아무튼. 적지 않은 미덕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명동 백작>은 우리의 문화사 전체를 낭만적 기조로 개관하려는 과욕 탓인지 캐릭터들의 내면 파악에 간혹 가다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는데, 내 눈에 그것은 김수영과 박인환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제일 유치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명동 백작>은 마치 김수영이 박인환을 애증 내지는 연민한 것처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정이 병이라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름이다. 과연 이봉구스러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이응준, '김수영의 박인환 증오'(☞바로 가기 : 이인성 홈페이지))

소설가 이응준의 말이다. 드라마 <명동 백작>은 그가 지적하듯 이봉구의 감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일 뿐이다. 수영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면 수영을 읽어야 한다(그것은 루소가 자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쓴 <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대화>(진인혜 옮김, 책세상 펴냄)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마침 우리에게는 두 개의 텍스트가 있다. 그 중 '박인환'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수영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인환', <김수영 전집 2 : 산문>(민음사 펴냄),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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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전집 2 : 산문>(김수영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이보다 직접적인 서두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이어지는 내용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박인환이 죽은 후 부러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는 수영은, "인환이가 죽은 뒤에 그를 무슨 천재의 요절처럼 생각하고 떠들어대던 사람 중"에 인환과 같이 경박한 사람 뿐 아니라 "유정(柳呈, 함경북도 출신의 현대 시인) 같은, 시의 소양이 있는 사람"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세상의 이런 인환관과 나의 생각과의 너무나도 동떨어진 격차를 조정해 보려고" "시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새삼스럽게 생각"하며, 인환의 "<선시집>의 후기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밤의 미매장'이란 시를 읽어보고, 그래도 미흡해서 '센티멘털 저니'라는 시를 또 한 번" 읽는다. 그리고 쓴다.

인환! 너는 왜 이런, 신문 기사만큼도 못한 것을 시라고 쓰고 갔다지? 이 유치한, 말발도 서지 않는 후기. 어떤 사람들은 너의 '목마와 숙녀'를 너의 가장 근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 눈에는 '목마'도 '숙녀'도 낡은 말이다. 네가 이것을 쓰기 20년 전에 벌써 무수히 써먹은 낡은 말들이다. '원정(園丁)'이 다 뭐냐? '배코니아'가 다 뭣이며 '아포롱'이 다 뭐냐?

"신문 기사만큼도 못한" 인환의 시에 대해서라면 '마리서사'에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이 있다. "(마리서사에 드나들며 외국의) 이상한 시에 접하게 되었고, 그보다도 더 이상한, 그가 보여주는 그의 자작시를 의무적으로 읽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는 일본말이 무척 서툴렀고 조선말도 제대로 아는 편이 못 되었지만, 그 대신 그의 시에는 내가 모르는 멋진 식물, 동물, 기계, 정치, 경제, 수학, 철학, 천문학, 종교의 요란스러운 현대용어들이 마구 나열되어 있었다." 조선말이 서툰 인환의 시를 수영은 일종의 스노브로 파악한 모양이다. 수영은 이렇게 덧붙인다.

인환의 최면술의 스승은 따로 있었다. 박일영이라는 화명을 가진 초현실주의 화가였다. 그때 우리들은 그를 '복쌍'이라는 일제 시대의 호칭을 그대로 부르고 있었다. 복쌍은 사인보드나 포스터를 그려주는 것이 본업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인환이하고 알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쓰메에리를 입은 인환을 브로드웨이의 신사로 만들어준 것도, 콕토와 자코브와 도고 세이지의 '가스파돌의 입술'과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과 트리스탄차라를 교수하면서 그를 전위 시인으로 꾸며낸 것도, 마리서사의 '마리'를 시집 <군함 마리>에서 따준 것도 이 복쌍이었다. 파운드도 엘리엇을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복쌍을 알고 나서부터는 인환에 대한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흥미가 전부 깨어지고 말았다. 복쌍은 그를 나쁘게 말하자면 곡마단의 원숭이를 부리듯이 재주도 가르쳐주면서 완상도 하고 또 월사금도 받고 있었다(월사금이라야 점심이나 저녁을 얻어먹을 정도이었지만). 그는 셰익스피어가 이아고나 맥베스를 다루듯이 여유 있는 솜씨로 인환을 다루고 있었지만, 셰익스피어가 그의 비극적 인물의 파탄에 책임을 질 수 없었던 것처럼 그를 끝끝내 통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럴 때면 나한테만은 농담처럼 불평을 하기도 했다. "인환이놈은 너무 기계적이야" 하고. ('마리서사', <김수영 전집 2 : 산문>, 106쪽)

하지만 나쁘게 말하고 있는 수영의 자세와는 달리, 그들의 관계가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김수영과 박인환은 다시 예전처럼 대폿잔을 기울이다 논쟁을 벌이고, 결국은 멱살을 잡고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그것도 시라고 썼느냐고 욕설을 퍼붓다가 더는 잃어버릴 것 없는 세상을 서러워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것이 분명합니다"라는 드라마 <명동백작>의 내레이션을 참고할 것도 없다.

수영은 마리서사에 드나들며 인환과 친분을 쌓았고, 함께 '후반기' 동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밤늦도록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셨고, "이러한 교우 관계가 그들의 모친 간 관계로 발전하여 박인환과 김수영, 그리고 그들의 모친들 사이에까지 문화적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한 긴밀한 연분이 형성"(한기, '박인환과 김수영, 혹은 문학사적 짝패의 초기 동행여정', <살아있는 김수영>(김명인·임홍배 엮음, 창비 펴냄), 271쪽)되기도 했단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조금도 낯선 것이 아니었다. 김규동은 이렇게 회상한다.

"아까는 작곡하는 평안도내기 김동진이 지나갔고 이봉구, 조경희, 전숙희 등 문인이 지나간 거리를 지금 수영과 인환이 걷고 있다. 그들은 걸으며 시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환이 연해 한손을 올렸다 내렸다하는 것이 무슨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라도 있는 모양이다. (…)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의 키는 훤칠하게 크다. 하지만 비쩍 마른 둘의 모습은 선병질 체질이다. 공복에 강술만 먹고 다니니 몸에 살이 붙을 리 있겠는가. 영양실조다. 그들은 지금 명동 안쪽에 있는 '동방살롱'으로 가는 중이다." (김규동, '소설 김수영', <살아있는 김수영>,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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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김수영>(김명인·임홍배 엮음, 창비 펴냄). ⓒ창비
물론 우정도 언젠가는 빛이 바래는 법이다. 더욱이 "여름은 통속이고 거지야. 겨울이 와야 두툼한 홈스펀 양복도 입고 바바리도 걸치고 머플러도 날리고 모자도 쓸 게 아니야?"라고 말하던 당대 최고의 '댄디보이' 인환과 "틀림없는 농부 같은 옷차림을 하고 한쪽 손에는 묵직한 방한모를 개켜"(김규동) 쥐고 있던 수영은 애당초 결이 다른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파국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전집에 따르면 수영이 '마리서사'와 '박인환'을 쓴 것은 모두 1966년의 일이다. 인환이 세상을 떠난 게 1956년이니, 꼭 10년 만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어떤 충동이 수영에게 문우의 사후 10주년을 맞아 이런 글을 쓰게 했을까? 나중에 쓴 '박인환'에서는 '마리서사'를 언급하며 "인환에 대해서 쓴 나의 유일한 글에 그런 욕을 쓴 것이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고백하면서도,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그의 문학을 조롱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쉬이 짐작할 수 없는 마음이다. 이응준은 이렇게 말한다.

<김수영 전집 2>(산문)를 100번 이상 읽은 나는 이제 이렇게 본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김수영은 박인환을 문학의 공적(公敵)으로 결론 내렸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박인환은 가짜 시인이었고, 태작기계였으며, 제 멋에 취해 예술을 오도하는 문화양아치였다. 고로, 김수영은 자신의 산문들 중에서 가장 공적(公的)인 태도를 견지하고서 문학의 섬세한 질서를 위해 '박인환'과 '마리서사'를 썼던 것이다. 김수영의 박인환에 대한 감정은 연민이라든가 애증 따위가 아니라 완벽한 역겨움이자 순수한 증오였으며 그것은 사사로운 분노가 아니라 공분(公憤)이었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김수영은 '박인환'과 '마리서사'를 쓴지 2년 뒤에 죽었다. 그는 추호도 후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응준은 전적으로 수영의 시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반면 수영과 인환을 "서로 욕망하면서 경쟁하고, 경쟁하면서 욕망하는 쌍둥이와 같은 관계"인 '짝패'로 파악하는 평론가 한기의 시각은 반대다. 그는 인환 쪽에 서서 수영을 바라본다.

조금 과장하여 말한다면, 박인환 생시에는 거의 숨도 쉬지 못하였던 김수영이 박인환의 타계와 함께 일어서서, 마침내 시사에 미친 박인환의 영향을 걷어내기 위해 절치부심했다는 것은 역사의 숙명이자, 의식 변증법, 문화 변증법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짝패'는 서로 닮는다 했던가. 욕망하면서 증오하고, 증오하면서 선망하는 이러한 짝패 관계의 의식적 선망원리로 볼 때, 박인환을 시사의 희생양으로 내세운 김수영의 태도란 어떤 점에서 박인환에게서 전수된 것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박인환은 김수영의 스승이자, 동지이며 동시에 적수였다. (한기, '박인환과 김수영, 혹은 문학사적 짝패의 초기 동행여정', <살아있는 김수영>, 305쪽)

그렇다면 중간은 없을까? 물론 있다. 둘을 '짝패'로 바라보는 건 같지만 좀 더 온전하고 둘 모두에게 공정한 시선은 황현산의 것이다.

그러나 이 추억담을 쓸 때 김수영에게는 박인환을 폄훼하려는 의도 외에 시인으로서의 자기 발전의 한 계기를 기념하려는 뜻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산문과 시를 함께 살피다보면, 그가 박인환과의 관계에서 '젊은 날의 덫'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박인환의 약점은 바로 그 자신의 약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이 관계에 냉정한 선을 그어둠으로써 "프로이트를 읽어보지도 않고 모더니스트들을 추종하기에 바빴던" 자신의 치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동무'에게 못지않게 자기 자신에게도 가혹했다. (황현산, '시의 몫, 몸의 몫', <살아있는 김수영>,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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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환 전집 :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박인환 지음, 문승묵 엮음, 예옥 펴냄). ⓒ예옥
한편, 그의 분석은 내게 여러모로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를 떠올리게 한다.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에 자신의 인생을 내맡겼지만 글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끝내 극복할 수는 없었던 헤밍웨이와, 빛나는 재능을 가졌지만 스스로 초래한 파국을 피하지 못한 채 펜을 놓아버린 피츠제럴드의 관계를. 헤밍웨이에게 피츠제럴드는 가장 커다란 "두려움과 절망이 겉으로 드러난" 또 다른 자신이었고, 헤밍웨이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쓰기 위해, 차라리 살아남기 위해 피츠제럴드를 공격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피츠제럴드가 세상을 떠난 후로도 그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을 향해 엽총의 방아쇠를 당겨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그것이 다분히 '이봉구스러운 시각' 나의 편견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나는 수영의 글에서 서로 다른 감정과 감정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애틋함을, 어떤 '비애'를 본다. 기어이 보고야 마는 것이다. 100번의 10분의 1도 읽지 못했지만 그렇다. 절절한 그리움 따위가 아니라 일정 이상 거리를 둔 그리움이다. 애써 떼려한 적 없고, 끌어안은 적도 없지만 그 자리에 있어 녹지 않는 만년설 같은 그리움이다. 그렇다면 수영은 왜 그렇게 모진 말을 해야만 했을까?

그건 아마도 사사로운 정에 현혹될 수 없었던 수영 자신의 '시의 소양' 때문이 아니었을까. 수영의 말대로 자신의 눈에는 '이상한 시'였던 인환의 시가 많은 사랑을 받고 그의 죽음이 '천재의 요절'로 오독되던 시절이 벌써 10년이 흐른 것이다. 어떤 유행이 인환의 시를 하늘 높이 치켜세웠지만, 그것이 더 이상은 지속될 수 없음은 수영은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이의 시신을 거두어 자신의 두 손으로 그의 눈을 감기듯, 스스로 그것을 선언해버린 것이다. 세간이 친우의 이름을 더럽히기 전에, 그의 이름이 어떤 추문으로 전락하기 전에. 그것은 이응준의 지적대로 지극히 공적인 '사망 선고'라 해야겠지만, 내겐 삶의 한때를 함께 헤쳐 왔던 인간 '박인환이'를 위한 불가피한 결심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 네가 죽기 얼마 전까지도 나는 너의 이런 종류의 수많은 식언의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너를 증오했다"고 수영은 고백한다. 이 문장은 '전까지도 ~했다'는 구조를 가진 명백한 과거형이다. 또한 "식언의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너를 증오했다"는 것은 이미 애증의 언술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식언에 피해 입지 않으며, 단지 식언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증오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응준의 마지막 말에는 나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수영이 인환에게 "그처럼 너는, 지금 내가 이런 글을 너에 대해서 쓴다고 해서 네가 무덤 속으로 안고 간 너의 <선시집>을 교정해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교정해 가지고 나올 수 있다 해도 교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도 해본 일이 없다고 도리어 나를 핀잔을 줄 것이다. "야야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서 부지런히 성공해라!" 하고 빙긋 웃으면서, 그 기다란 상아 파이프를 커크 더글러스처럼 피워 물 것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언젠가 수영은 이렇게 썼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 '절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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