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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랜드에 '창조론 상설관'! 다음은 서울대?

[이명현의 '사이홀릭'] 리처드 도킨스의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리처드 도킨스가 글을 쓰고 데이브 매킨이 그림을 그린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김명남 옮김, 김영사 펴냄)은 아름다운 책이다. 나는 우리말로 번역된 책을 보기 전에 아이패드에서 전자책(eBook)으로 를 먼저 만났었다. 언뜻 보기에도 그동안 나온 전자책과는 확연히 다른 격조를 갖추고 있었다.

글의 내용이야 도킨스의 콘텐츠와 그만의 탄탄한 스토리텔링의 내공이 있으니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이 책 속의 그림과 다른 장치들이었다. 그림은 명확하고 아름다웠다. 내용을 보완하고 설명하는 애니메이션과 직접 간단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도 적절한 위치에 적절하게 그 만큼만 있었다.

"이 책은 장 제목들이 대부분 질문이다. 내 의도는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적어도 가장 그럴듯한 대답, 과학적인 대답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신화적인 대답을 먼저 제시할 것이다. 다채롭고 흥미로우며, 한때 현실에서 사람들이 믿었던 이야기들이다. 심지어는 요즘에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종이책으로 나온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도 글과 그림이 잘 어울려서 좋았다. 도킨스는 먼저 누구나 한번쯤은 스스로 던져봤을 것 같은 질문으로 이 책의 각 장의 소제목을 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현실은 무엇인가? 마법은 무엇인가?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
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종류의 동물이 있을까?
사물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왜 밤과 낮이, 겨울과 여름이 있을까?
태양이란 무엇일까?
무지개란 무엇일까?
세상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주에는 우리뿐일까?
지진이란 무엇일까?
왜 나쁜 일이 벌어질까?
기적이란 무엇일까?


▲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도킨스는 제2장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에서도 무릎이 없고 꼬리가 달린 최초의 인간에 대한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부족의 신화 이야기를 먼저 꺼내들었다. 이어서 후에 기독교의 설화가 되는 히브리 부족의 신화인 아담 이야기도 이어갔다. 현재 우리가 우주와 세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보다 훨씬 못 미치는 정보를 갖고 있었던 옛날 사람들의 당시 생각이 화석처럼 각인되어 있는 창조 신화나 종교 설화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도킨스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진정한 대답, 즉 과학적인 대답을 통해서 '정말로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킨스의 안내를 따라서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우리들의 4,000세대 전(약 10만 년 전)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현재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달라서 조금은 낯설지만 도마뱀을 닮은 170,000,000세대 전 (약 3억1000만 년 전) 우리들 할머니의 위풍당당한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속에 살고 있었던 185,000,000세대 전(약 4억 1700만 년 전) 물고기 할아버지의 무심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느리고 점진적으로 진화해 왔던 것이다.

어떤 장은 신화 이야기로 시작하지 못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사물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에 대한 신화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도킨스는 고백하고 있다. 사실 신화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발명될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시공간을 압축한 스토리 속에 투영한 것이니 그야말로 그 시대의 이야기만 담겨 있을 것이다.

"다른 장들과 달리 이 장은 신화로 시작하지 않았다. 이 주제에 대한 신화를 하나라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령 아주 작은 것들의 환상적인 세계는 원시인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던 모양이다. 사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들은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 턱이 없었으니, 당연히 그것을 설명하는 신화를 발명하지 못했을밖에!"

마지막 장인 '기적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신화와 종교가 어떻게 '기적'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식견이 소위 기적에 대한 과학적인 안목인지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유명한 기적 이야기를 살펴보자. 예수라는 유대 설교자가 물을 포도주로 바꿨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도 세 가지 가장 가능성 있는 설명을 적어 볼 수 있다.

(1) 정말로 벌어졌던 일이다. 물이 정말 포도주로 변했다.
(2) 교묘한 마술적 속임수였다.
(3) 그런 일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다. 혹은 실제 사건은 그보다 훨씬 놀랍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부풀렸다.

누구나 별다른 의문 없이 가능성 높은 순서대로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1)이 옳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는 기본 과학 법칙들의 일부를 위반하는 일이다. 그 이유는 1장에서 호박과 마차, 개구리 왕자에 대해 이야기한 것과 같다. 순수한 물 분자들이 알코올, 타닌, 다양한 당, 그 밖의 여러 물질로 구성된 복잡한 혼합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들을 제쳐두고 이 설명을 선호하려면, 대안들이 정말이지 굉장히 가능성 낮은 사건들이어야만 한다.

(2)의 속임수 마술도 가능한 설명이지만(무대나 텔레비전에서 흔히 선보이는 마술보다 훨씬 교묘해야 할 것이다), (3)보다는 덜 그럴듯하다. 사실 이것이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는 증거가 없는 마당이니, 구태여 속임수 마술을 제안할 이유조차 없다. (3)이라는 훨씬 그럴싸한 해설이 있으니까.

누군가 이야기를 지어냈다. 사람들은 늘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것이 픽션이다. 이 이야기가 픽션이라는 설명은 무척 그럴싸하므로, 우리는 구태여 속임수 마술을 떠올릴 필요가 없거니와 하물며 과학 법칙을 위반하고 우주의 작동 방식에 대한 모든 지식과 이해를 전복하는 진정한 기적을 떠올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과학은 기적을 확률과 우연으로 설명한다. 그 결과는 우리 눈앞에 실현된 현실이고 그 자체가 마법이다. 도킨스는 말한다.

"기적, 마법, 신화,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 책에서도 그 재미를 한껏 누렸다. 이 책의 장들은 대부분 신화로 시작했는데, 그런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즐거웠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각 장에서 신화 다음에 온 과학적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더 즐거웠기를 바란다. 진실에는 고유의 마법이 있다는 생각에 여러분이 동의하기를 바란다. 진실은 어떤 신화보다, 허구의 미스터리보다, 기적보다 더 마법적이다. 마법이라는 단어가 지닐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흥미로운 의미에서 그렇다. 과학에는 고유의 마법이 있다. 현실의 마법."

도킨스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신화의 벽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려를 섞어서 한마디 덧붙였다.

"호박이 마차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웃어넘기는 사람들이, 실크손수건이 정말 토끼로 변한 것은 아니라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예언자가 물을 포도주로 바꿨다거나, 또 다른 종교의 신자들 말마따나 예언자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기꺼이 믿는다."

이런 우려가 오늘 이 땅에서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엔 어느 대형 교회 목사가 신문 광고 시리즈를 통해서 자연과학의 원리와 진화론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한 아집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우울한 사건이 있었다. 그 목사를 옹호하고 추앙하기까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이어지기도 했다. 서울랜드에 창조과학 상설관이 들어선다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이곳 한국이다.

최근에는 과학 교과서에서 생명의 역사와 진화를 가르치는 것을 막으려는 반동적인 시도가 시작되었다. 아마 먼저 전략적으로 교과서에 실린 낙후된 진화론 관련 내용을 문제 삼아서 하나씩 하나씩 밀어내고 궁극적으로는 진화론을 과학 교과서에서 빼려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고 로드맵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이 활개를 칠 수 있는 분위기가 이번 정부 들어서 조성되고 만연되었다는 것이다. 그 틈을 노려서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작업이 시작된 모양이고 실제로 과학 교과서에서 일부 내용이 빠지게 될 모양이다.

이런 사태에 대해서 페이스북에 어느 중학교 과학 선생님이 글을 하나 올렸다. 중학교 교과서에선 이미 큰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대로 옮겨 적는다.

"교과 과정에선 생명의 역사도, 유전과 진화도 빠져 있습니다. 그렇게 바뀐 과정도 석연치 않았어요. 내년부터 새로 적용되는 과정엔 다시 들어간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정통' 과학계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과학 이전에 먼저 상식과 이성의 회복이 시급한 시절이다. 자기 자신도 파괴할 수 있는 것만이 진짜 진실을 담고 있는 실체일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진리일 것이다.

도킨스는 결국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현실 세계에서도 마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현실이기에 더 마법적이고, 우리가 그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에 더 마법적이다. 현실이야말로 가슴 뛰는 마법이다"라는 말을 길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도킨스의 말처럼 이렇게, 또 옮긴이의 말처럼 아이와 같이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을 마음껏 유쾌하게 읽고 싶다.

이 책에 실린 과학의 최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과학 교과서에 실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울한 생각을 떠올려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같은 책은 정말이지 가슴 뛰는 열정으로 이런 우울한 소리 안하고 그냥 아름답게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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