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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날, 시체를 보았다!"

[구원은 없다] 돈 윈슬로의 <개의 힘>

1975년의 그 날, 개가 울었다!

5월 5일 어린이날, 시체를 보았다. 멕시코 국경 도시 누에보라레도의 고가 다리에 매달린 9명의 시체. <뉴시스> 기사에서 그 사진을 본 순간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도시 곳곳에 흩어진 14구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되었으며, 이들이 참수당한 것이라 했다. "14명의 머리는 시청의 내부 냉각기 안에서, 몸통은 검은 비닐봉투에 담긴 채 버려진 자동차 안에서 발견됐다."

기사는 멕시코의 거대 마약 카르텔 '제타'와 '걸프'가 미국으로 들어가는 마약 반입 루트를 놓고 충돌한 사건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조금 더 검색해 보았다. 비슷한 시기, 멕시코에선 마약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살해된 뉴스가 있었다. 며칠 지나서는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 주에서 15개의 머리를 발견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이들 역시 마약 조직 간 세력 다툼의 희생자들로 추정되는 토막 시체라고 했다. 뉴스를 읽다가 생각했다. '개의 힘'이구나. 돈 윈슬로의 <개의 힘>(김경숙 옮김, 황금가지 펴냄)을 바로 그 직전에 읽었더랬다. 1975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대에서 벌어지는 마약 전쟁에 관한 이야기.

▲ <개의 힘>(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주인공은 여섯 명으로 압축된다. '국경의 왕'이라 불리는 미국 마약단속국(DEA) 아트 켈러, 멕시코를 쥐락펴락했던 마약 왕 미겔 앙헬 바레라(일명 '티오'. 삼촌이라는 뜻이다), 티오의 친조카이자 '하늘의 제왕'이라 불리는 또 다른 마약 왕 아단 바레라, 뛰어난 미모와 두뇌로 남자들을 무릎 꿇리는 고급 매춘부 노라 헤이든, 뉴욕 헬스키친에서 최고의 킬러로 성장하는 션 칼란, 썩어빠진 권력자의 경쟁에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죽어나가는 이들 때문에 가슴아파하는 후안 파라다 신부.

이들의 악연은 1975년 멕시코 시날로아 주, 바디라과토 지역에서 시작된다. 그해에 일명 '콘도르 작전', 즉 아편의 주된 재배지였던 시날로아 산간 지방을 초토화시키는 작전이 진행되었다. 헬리콥터에 제초제를 가득 싣고 산간 지방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와중에 시날로아의 마약 왕 돈 페드로 아빌레스를 체포하는 게 작전의 내용이었다. 마약단속국의 신예 아트 켈러는 당시 시날로아 주지사의 특별 보좌관(이자 비공식적으로는 또 다른 마약 밀매인인) 티오 바레라의 도움으로 작전을 무사히 끝냈다.

티오의 속셈은 다른 데 있었다. 그는 아빌레스를 포함한 늙은이들을 몰아낸 다음 새로운 '연합'의 제왕이 되고자 했다. 그는 멕시코와 미국을 잇는 길목인 접경 지역 소노라, 걸프, 바하, 과달라하라를 '연합' 차원에서 배분했다.

"(미국인은) 땅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흩어버리려 했소. (…) 그들이 우리를 흩어 놓고 싶어 한다면, 그대로 놔두라고 말하겠소. 좋소. 우리는 어떤 흙에서도 자라고 번식하는 철쭉나무 씨앗처럼 흩어질 것이오. 우리는 손에서 뻗어나간 손가락들처럼 퍼져 나갈 것이오. 만약 시날로아를 차지하려는 우리의 거사에 그들이 거치적거린다면, 우리는 국가 전체를 차지해버릴 것이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아편은 잊어버리시오. 마리화나도 잊어. 그건 푼돈이야. 신사 여러분, 미래를 소개하겠소."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건너온 코카인의 신세계가 열린다.

파국의 고리

찬찬히 파고들면 콘도르 작전은 첫 번째 교차로에 불과했다. 1976년 시날로아 지역에서 주인공들이 만날 수밖에 없었고, 이들 중 누군가 먼저 죽기 전까진 끝나지 않을 복수의 회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들 속에 배태되어 있었다. 어떤 맥락에서 "냉전주의자는 냉전이 있는 곳에 가는 법이지"라는 말처럼, 결핍되고 상처받았지만 절대로 세상에 지지 않겠다는 야망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 건 당연한 결과다.

이를테면 미국인 백인 아버지와 멕시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트 켈러는 인정욕구 때문에 CIA의 스카우트에 응한다.

"그들은 나 같은 사람들을 용케 찾아내. 방황하는 사람, 외로운 사람. 두 문화 속에서 자라 양쪽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어느 쪽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부적응자."

그의 첫 임무는 베트남 전쟁이었다. 아트 켈러는 사무실에 앉아 정보를 수집하고 '대상자'의 명단을 작성하는 일을 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내내 괴로웠고, 미국으로 돌아온 다음 새로 생긴 마약단속국으로 달아났다. 그는 자신이 성장한 바리오 지역(미국 내 스페인어 통용 지역)에서 마약이 이웃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를 생생히 목격했고, 마약과의 전쟁이야말로 "아마 싸울 가치가 있는 전쟁일 거야.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이길 수 있는 전쟁인지도 모르고"라고 믿는다. 멕시코에서 티오 바레라와 그의 조카 아단과 라울을 만났을 때, 아트는 그들에게 일종의 호감을 품었다.

콘도르 작전이 끝난 다음 몇 년이 흐르면서 아트는 깨달았다.

"콘도르 작전은 멕시코로부터 시날로아라는 악성 종양을 잘라낼 목적이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게 그 암세포를 온몸에 번지게 한 격이 되었다."

이제 아단 바레라가 물려받은 '연합'은 마약을 직접 사고파는 게 아니라 마약의 운송 사업에 뛰어들었고, 그들의 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증가했다. 그와 '연합'은 스페인어로 '인토카블레', 즉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땅을 불태우고 농작물을 독극물로 오염시키고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킬 수는 있었지만, 국경은 달랐다. 국경은 어디 가지 않는다. 자국 내에서는 운송 1인치 당 몇 푼의 운송비밖에 받지 못하는 상품을 국경 너머로 1인치 운반하는 데에는 수천 달러를 받을 수 있다."

아트 켈러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을 바로잡을 방법을 찾아다녔다.

"그건 정확히 티오가 의도하고 계획하고 착수한 일이었다. 티오는 나를 '이용'했어. 나를 개처럼 부추겨 자신의 적을 덮치게 했고, 난 그 일을 했어. 그리고 나는 그 일에 대해 계속 침묵해 왔어.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나를 영웅으로 떠받들고 등을 토닥여주며 마침내 팀원으로 대우해 주었지. 난 형편없는 개자식이야. 안 그래? 결국 그 소속감을 얻으려고 그렇게 필사적이었던 거야. 그리고 그 대가로 난 영혼을 팔았어. 이제 그 영혼을 되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트 켈러는 티오와 아단 바레라를 알게 된 1975년의 그 시절을 저주했다.

"아트가 아단에게서 발견한 것은…. 젠장, 아트는 후에 수년 동안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저 아단 바레라가 '좋은 녀석'이었다는 사실뿐이다. 아단은 정말 좋은 녀석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 속에 무엇이 잠재되어 있었든….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세월이 흐른 뒤 아트는 가끔 생각했다. 확실히 아트의 내면에도 잠재되어 있었다. 개의 힘."

아트 켈러는 점점 피폐해진다. 그는 마약 전쟁에서 절친한 동료가 납치되어 끔찍한 고문 끝에 시체로 돌아온 걸 마주한다. 그는 티오와 아단 바레라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혐오하던 그들과 점점 닮아간다.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명백한 악당에게 마땅한 벌을 내릴 수 있는 인과 법칙의 세계를 꿈꿨던 사내는 그 이상이 산산조각나자, (공적인 가면을 뒤집어쓴) 사적 복수를 통해서라도 그 세계를 재건하려 한다.

국회에서 거짓 증언을 하고, 부정 앞에 침묵하고, 대신 몇 년 뒤 바레라 일가를 잡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걸 조건으로 내건다. 아트 켈러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는, 당신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곳"이라는 걸 안다. 대부분의 경우 취약점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다. 아트 켈러의 취약점은 가족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취약점을 떨쳐버렸다.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 대개 등장하는 '외로운 안티 히어로'의 전형은, <개의 힘>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설명되고 타당하게 입증된다.

"손을 뻗거나 장벽을 통과하여 그들을 만져볼 수도 없었다. 그들 또한 아트를 건드릴 수 없었다. 그 대신 아트는 물속으로 더욱 깊이 잠수했다. 침묵 속으로 후퇴해버리면서 결혼 생활을 천천히 독살했다."

복수를 맹세하고 난 뒤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복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그 대상에 중독되어야 한다. 다른 정서적인 부분은 모두 제거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아트뿐 아니라 티오와 아단, 노라, 칼란, 후안 신부 모두 자신들의 가장 약한 부분 때문에 파멸하거나 살해당하거나 혹은 떠나보냄으로써 스스로도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서서히 1999년의 대파국을 향해 돌진한다.

무력한 개인, 완고한 구조

멕시코 판 <피와 뼈>. 좋은 범죄 소설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물들의 끊이지 않는 폭력의 역사를 긴장감 있게 끌고 가면서도, 모든 아수라장을 가능케 하는 주변 콘텍스트에 대한 냉정한 시선과 조망을 놓치지 않는 것. 뻔한 말 같지만, 이것을 설득력 있게 해내는 소설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개의 힘>은 그런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2년 현재까지도 지치지 않고 지속되는 마약 전쟁의 개 같은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아야 한다. <개의 힘>에는 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 두 가지 수수께끼 같은 단어가 등장한다. '케르베로스', '레드 미스트'.

이 두 가지는 리처드 닉슨과 로널드 레이건 등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연루된 CIA의 작전명이자(소설에서는 역사적 사건에 적절한 가명들이 삽입된 채 제시된다) 미국이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를 대하는 입장, 공산주의를 대하는 입장, 궁극적으로 미국이 세계를 대하는 입장을 압축하는 문구다.

먼저 케르베로스 작전은 베트남 전쟁에서 교훈을 얻은 미국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시작한 위기 극복 작전이다. 소설 속 CIA 남아메리카 국장 존 홉스는 베트남에서 미국을 쫓아낸 공산주의자들이 캄보디아를 점령하고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을 시뻘겋게 해치웠다고 설명한다.

그들이 남아메리카로 온다면 어떻게 될까? 당시 니카라과는 사회주의 성향의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이 권력을 잡았던 국가였고, 미국은 니카라과의 반정부 세력 콘트라 반군을 남몰래 후원했다. 홉스는 목소리를 높인다.

"중앙아메리카의 심장부에 소련의 꼭두각시가 남아있도록 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보고 있을 사람은 바보나 연방의회뿐일 걸세. 어리석음이 설명을 소용없게 만드네. 우리는 뭔가를 해야 하네."

미국은 그리하여 남아메리카 지역의 코카인 판매를 대충 눈감아주었고, 그 판매 대금으로 콘트라에 자금, 장비, 훈련을 제공하며 더 이상 좌익 정권이 들어서지 않도록 막는 작전을 수행했다. 다시 말해 코카인이 콜롬비아에서 출발하여 멕시코로, 미국으로 뻗어가면서 돈을 긁어모으는 동안, 마약 거래인은 그 대금의 일부를 케르베로스 작전에 갖다 바친 것이다.

이는 이후 레드 미스트 작전으로 이어지며 범위가 확대된다. "라틴아메리카를 가로질러 일어나고 있는 좌파 운동을 '중화'시킬 목적으로 20개의 작전을 통합하는 조치"였다. 레드 미스트 작전 하에, 그 단어 자체처럼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보수파 민병대와 마약 거래자, 장교, 군대, 정보 에이전시, 경찰, 교회를 안개처럼 감싸 안으며 포섭했다.

교회마저? 교회마저! 멕시코 내의 가톨릭 집단 중 반 공산주의 조직 '몰타의 기사'와 '오푸스데이'에 포함된 주교와 신부들은 보수파 민병대와 군대와 마약 카르텔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성찬식의 포도주처럼 피가 흘렀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콜롬비아, 멕시코에서는 가장 아래쪽 하층민부터 대통령 후보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무수히 암살당했고, 꼭 필요할 경우 대통령 선거도 신속하게 조작되었다. 그러면 미국과 교황청은 그 나라에 구호 자금을 건네거나 우호 조약을 맺었다.

특히 멕시코의 경우 1985년 대지진으로 큰 고통을 겪을 당시 국가 재건에 필요한 돈이 나올 수 있는 곳은 바티칸과 마약상(과 미국)이었다. <개의 힘>에서 바레라가 이끄는 '연합'은 그 돈줄을 쥔 채 대통령을 협박하여 국채를 매수하고, 화폐를 평가 절하하고, 미국으로부터 차관을 받도록 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마약을 팔아치우듯 나라를 팔아치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껏 토지와 돈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방해하는 좌파들이 사라져줘야 했고, 대통령은 마약의 '호의적인 무역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으며, 미국과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발표됨으로써 국경의 경비 또한 느슨해져야 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며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넘어가는 멕시코의 마약 산업은 멕시코를 지옥으로 몰아갔다.

"NAFTA. 북미자유(마약)무역협정이다. 신이 자유무역을 베풀었다. (…) 얘야, 날 수 있는데 왜 뛰고만 있니?" (신자유주의가 아무리 '공정' 내지는 '소비자의 권리' 같은 달콤한 단어를 떠들어대며 구현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피라미드 아래쪽을 떠받치는 '소비자'를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주인공들은 깨닫는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제시할 수 없다. 가족, 일, 친구, 희망, 믿음, 고국에 대한 신뢰, 그 모두를 잃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제시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있었다. (…) 케르베로스는 파수꾼이 아니라 안내자였다. 헐떡이고, 이를 드러내고, 혀를 늘어뜨린 채 당신을 악의 세계로 초대하려고 안달을 내고 있는 안내자. 그리고 당신은 결코 저항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적당히 하고 빠진다'라는 생각은 결코 통용될 수 없다. 악은 '물리학의 법칙'이다.

"잠들어 있는 몸은 계속 잠들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고 있는 몸은 계속 움직이려고 했다. 뭔가가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악과 결탁하기를 멀리하는 일이며 지속하다가 멈추는 일(이다)."

이 안에서 개인의 선의와 개인의 노력과 개인의 행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선택지는 점점 좁아지고 강박관념은 전염된다. "당신들을 용서하겠소. 하느님은 당신들을 용서할 것이오"라는 신부의 말 앞에 눈물을 쏟을 순 있지만, 그 다음부터 모든 죄과를 극복해가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인데, 시스템의 저 완강한 몇 십 년간의 구조를 과연 개인이 극복하는 게 가능하긴 한가? 적어도 절망적인 결과 앞에서 개인적인 선택이 그 원인이라 호명하는 것이 온당하긴 한가?

벗어나지 못하는 '개의 힘'

돈 윈슬로가 <개의 힘>에서 힘주어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마약이 분쟁을 불러온 게 아니라,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분쟁을 불러온 거라고. 마약에 대한 미국 측의 결벽증적인 태도는 마약 값을 끌어올릴 뿐이다. 미국의 경계 강화 때문에, '연합' 없이는 그 누구도 마약을 운송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인은 말 그대로 나무에서 자라는 생산물을 따서 값비싼 원자재로 탈바꿈시켰다. 그들이 없으면 코카인과 마리화나는 밀수입으로 수억 달러를 버는 대신 어느 캘리포니아 들판에서 허리 굽혀 일하는 노동자들을 등쳐먹으며 푼돈을 버는 오렌지 같은 작물이 되었을 것이다."

국제 정치·경제 전문 잡지 <포린 폴리시> 2007년 10월호에 실린 에단 나델만의 기사 '마약과의 전쟁'이 대담하게 주장했다시피,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미국 측의 되풀이되는 주장은 비관적인 전망으로 귀결된다. 강압적인 금지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이 무색할 정도로, 2008년에 이르기까지 마약류의 세계 생산과 소비는 10년 전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전체적으로는 그저 생산지가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옮겨간 데 불과하다. 아편 생산은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겨갔으며, 코카나무는 페루에서 콜롬비아로, 마리화나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옮겨갔지만 생산량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늘었다."

티오와 아단 바레라가 자신들의 야망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나라 자체를 태연하게 주물렀다면, 아트 켈러가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동료를 잃고 가족을 잃고 조국에 대한 신뢰까지 잃게 되었다면, 그들 모두가 죽음을 맞는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인물이 그 자리를 재빠르게 메울 것이다.

악순환은 추진력을 잃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해결책은 결국 악이라 불리는 것, 개의 힘이라 불리는 것, 마약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강압적인 신자유주의와 분노하는 좌파에게 그 어느 쪽에도 힘의 추가 쏠리지 않도록 위태로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방법 말이다.

당장 전 지구적인 현실이 그러하듯, <개의 힘>에서도 그런 균형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샌디에이고의 다리 위에서 벌어지는 결말은 거의 지옥도에 가깝다.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고 상처받는다. <개의 힘> 마지막 쪽에 언급되는 문장, "마약은 멕시코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단의 몰락 후 15분 동안은."

케르베로스는 결코 죽지 않고, 그 등 위에 올라탄 사람의 얼굴만 바뀔 뿐이다. 이 책의 제목을 따온 구약 성경 시편 22장 20절,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영문판에서는 이 문구가 'my precious life'라고 번역되어있다)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라는 부르짖음은 더할 나위 없이 애처롭고 고통스럽다. 하느님이, 아니면 좀 더 가까운 권력자들이 그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프레시안(손문상)

기억하자, 돈 윈슬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돈 윈슬로의 유일한 책 <지하실에 부는 서늘한 바람>을 읽었다면, 닉 캐리라는 독특한 주인공의 설정과 함께 작가의 매끄러운 페이스 조절과 필력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면 서둘러 <개의 힘>을 읽기를 권해드린다.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윈슬로는 어떤 책을 쓰더라도 <개의 힘>과 계속 비교당해야 하는 기분 좋은 비판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이 주제에 관심 있는 분들은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고모라>(이탈리아 지하 경제의 제왕 '카모라' 집단에 관한 보고서, 박중서 옮김, 문학동네 펴냄)도 함께 읽어보면 어떤 대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CIA의 어리석고 무참한 역사를 기술한 매우 두꺼운 책, 팀 와이너의 <잿더미의 유산>(이경식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을 참고한다면 <개의 힘>의 콘텍스트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

"라틴아메리카의 군사 정권이 미국에 유리하다는 태도를 확고하게 가졌다. 이 군사 정권들은 해당 국가의 정치적인 위기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법과 질서가 민주주의를 얻으려고 하는 무질서한 투쟁보다 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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