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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떼죽음 몽골 대참사, 이유는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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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떼죽음 몽골 대참사, 이유는 IMF?

[프레시안 books] 에릭 라이너트의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부자 나라 되세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하는 이 시대에 '부자 나라 되세요'라는 내용의 책이 나왔다. 에릭 라이너트의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김병화 옮김, 부키 펴냄)이다. 책 제목이 이렇게 길어서야 장사가 잘되겠나 싶은데, 아무튼 이 책의 영어 원제목 자체가 그렇게 길다.

그런데 그 기다란 제목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바로 '국부론(國富論)'이다. 애덤 스미스가 쓴 바로 그 <국부론> 말이다. 그런데 라이너트의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미스의 <국부론>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정말로 부자 나라가 되고 싶다면 스미스의 말과는 거꾸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과 인문학의 결합

▲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 부키 펴냄). ⓒ부키
이 책은 재밌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다. 경제 분야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지 않은 사람도 술술 읽을 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예컨대 경제에 관한 책에서 니체와 베이컨, 볼테르와 보댕을 이렇게 자주 접하게 될 줄이야! 그 뿐만이 아니다.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와 식물학자 린네까지 나온다.

게다가 그냥 라이너트가 자신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자랑하려는 자만심에서 니체와 린네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 니체와 식물학자 린네의 사상이 어떻게 19세기와 20세기의 경제 사상에 연결되는지를 그는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이야기한다.

장하준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경제학 분야에 인간 문화재 제도가 있다면 에릭 라이너트 교수는 그 1호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썼다. 충분히 그럴 만한 인물이다. 라이너트는 그야말로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경제학에서 시작하여 20세기의 개발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이 의도적으로 역사에서 지워 버린 경제학의 '다른 전통(Other Canon)'에 대해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너트가 이렇듯 경제사와 경제학설사에 대해 백과사전적 지식을 축적하게 된 출발은 그가 고등학생이던 1967년 가난한 페루에서 목격한 충격적인 현실 때문이었다. 페루의 버스 운전사, 호텔 직원, 이발사, 상점 점원 등은 그의 조국 노르웨이와 같은 일을 하며 노동 생산성도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데 그들의 급여는 턱없이 낮고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흔해 빠진 이런 현실을 라이너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노동 생산성은 같은데 왜 나라마다 이렇게 실질 임금이 차이나는 것일까? 장하준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에서 독자들에게 던진 질문과 같다. 라이너트는 이후 40여 년을 그 답을 찾는 데 보낸다. 그리고 이 책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는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져 버린 흔적을 찾아가는 저자의 지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그 과정에서 라이너트는 엄청난 양의 자료를 모았다. 주류 경제학의 학설사에서 사라진 흔적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뒤졌고 아무도 관심이 없고 때론 버려진 자료들도 모았다. 한 예로 1970년대 뉴욕의 공립 도서관은 무수한 자료를 마이크로필름화한다는 명목으로 재활용 폐지로 내다버렸다.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경제학 자료들이 사라졌으며, 르네상스 시기 이후 경제 발전을 논한 책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라이너트는 주류 경제학과는–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도 다른-'다른 전통'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14세기 르네상스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처음으로 부를 쌓은 곳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 이들의 발전 전략을 고스란히 따라한 곳이 바로 15세기 이후 영국의 튜더 왕조, 17세기 프랑스 중상주의를 이끌었던 장 바티스트 콜베르 재정총감, 18세기 '미국 제조업에 대한 보고서'를 내면서 산업 발전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 19세기 유치 산업 보호론을 내세워 자유 무역은 모든 나라가 산업화된 뒤에나 해야 한다고 주장한 프리드리히 리스트로 이어진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1960년대 이후 한국과 타이완의 고도성장도 이 전통을 이은 것이다. 즉 '서구 열강'의 탄생과 '동아시아의 기적'은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드는 완전 균형의 경제학과 경제 정책의 덕택 때문이 아니라 수확 체증의 법칙과 시너지 효과의 경제학, 모방과 혁신 전략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그리고 일반적인 경제학설사 책에서는 듣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경제학자들과 철학자들이 본문에 수없이 등장한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즉 선진국이 되려면 ('선진화'를 이루려면)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식민지 조선의 경제는 왜 퇴보했는가?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는 오늘날 점점 커지고 있다. 250여 년 전인 1700년대 중반에는 나라별 생활수준 차이라고 해야 두 배 정도밖에 안됐다. 말하자면 18세기만 해도 아프리카의 피그미족과 영국인 사이의 소득 격차는 불과 두 배 정도에 불과했다. 19세기 초반의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생활수준 격차 역시 미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아프리카와 조선을 비롯한 제3세계의 식민지화가 진행된 이래 아프리카인과 유럽인,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소득 격차와 생활수준 격차는 수십, 수백 배로 벌어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경제 발전을 한갓 효율적인 자원 배분과 자본 축적, 국내 총생산(GDP) 성장으로 환원시키는 자유주의자들은, 그리고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아프리카와 식민지 조선이 가난한 이유로 사유 재산권의 결여와 자유 무역·자유 시장의 결여 등 시장 자유주의의 결핍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라이너트는 에스토니아에 있는 탈린 공과 대학의 교수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소비에트 연방에서 탈퇴하여 독립한 이후 서방 세계에 합류한 에스토니아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온 유능한 경제학자로부터 들은 첫 번째 경제 정책 권고가 "에스토니아는 앞으로 대학을 줄이고 제조업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앞으로 에스토니아는 서방 세계와 경쟁할 만한 국제 경쟁력이 있는 제조업이 없으니 그나마 비교 우위가 있는 저임금·저부가 가치 산업에 온 나라가 전념해야 하며, 따라서 쓸데없는 고학력·고임금의 노동력일랑 잊어버리고 저학력·저임금의 노동력이나 육성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그 권고를 충실히 따랐고, 20년이 지난 오늘날 저임금·저부가 가치 산업으로 특화되어 온 나라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방의 경제적 (신)식민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중반이나 21세기의 오늘날이나, 부유한 서방이 가난한 제3세계 나라들에 말하는 논리는 똑같다. 즉, 수확 체증의 법칙과 시너지 효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수반하며 따라서 고임금·고학력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특정 산업 특히 제조업의 발전을 가난한 나라들에 대해 금지 또는 억제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부자 나라는 수확 체감의 법칙과 '기술 발전의 한계에 도달한' 산업과 업종들, 따라서 저임금·저부가 가치의 산업만을 가난한 나라에 권고 또는 육성한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커피 농장이나 구리 광산 같은 원자재 산업들이 대표적이다. 제조업 발전과 조선인 과학기술자의 양성이 가로막히기는 식민지 조선 역시 다를 것이 없었다.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얼어 죽은 몽골, 왜?

2년 전 4월의 일이다. 몽고의 대초원에 불어 닥친 때 아닌 눈보라와 강추위에 얼어 죽은 수백만 마리의 양과 말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당시 매스컴은 북극권에서 발생하는 한랭 기류가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난조를 보이면서 그런 생태적 대참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런 자연과학적 설명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라이너트의 이 책을 읽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라이너트는 그 대참사의 원인으로 몽골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등 '워싱턴 기관'들의 가르침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모범생처럼 따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 가르침은 경제를 개방하고 국가 역할을 최소화하며 시장 주도형 경제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 결과 몽골은 국제적 비교 우위가 있는 목축 경제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제조업은 폐허가 되었고 국민 경제 전체가 공업 시대에서 목축 시대로 되돌아갔다.

몽골은 1991년의 시장 개혁 전까지만 해도 제조업을 포함한 다양한 산업을 느리지만 성공적으로 일으켰다.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40년대 60퍼센트에서 1980년대 중반 16퍼센트로 떨어졌다. 그런데 1991년 경제를 개방하고 시장 개혁이 진행되면서 4년 만에 공업 생산량이 90퍼센트나 감소했다.

실질 임금은 절반으로 떨어지고 실업자가 폭증했다. 그러자 실업자들은 고향인 대초원으로 되돌아가서 목축에 전념했다. 그리하여 1990년 양과 소, 염소와 낙타 등 2100만 마리였던 가축은 10년 뒤인 2000년에는 3300만 마리로 늘어났다. 따라서 과거에는 목축을 꺼려했던 추운 한계지 초원에서도 가축을 키우는 사태가 나타났다. 그 결과는 뻔했다. 한계지 초원에서 가축들이 얼어 죽는 사태가 빈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몽골의 사례는 데이비드 리카도의 무역 이론에 바탕을 둔 현대 경제학의 '비교 우위' 전략이 적용된 것이다. 모든 나라는 상대적으로 효율성이 가장 높은 분야에 경제 활동을 특화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라이너트는 이런 저런 사례들을 풍부하게 분석하면서 리카도의 후예인 신고전파 현대 경제학의 비현실성을 야유하고 조롱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레나토 루지에로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국가와 지역 간의 관계를 균등하게 해주는 국경 없는 경제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어떤가?

세계 인구의 절반은 하루 2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연명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부분은 그 25년 사이에 더 가난해졌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수조 달러어치의 개발 원조가 개발도상국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상당수는 실질 임금이 1970년대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수확 체증을 낳는 특정 산업의 육성이 중요하다

리카도는 그의 비교 우위론에서 제조업(공업)에 전념하는 나라와 포도주 생산(농업)에 전념하는 두 나라를 사례로 든다. 그리고 두 나라가 그러한 각자의 비교 우위를 바탕으로 자유 무역을 실시하게 되면 골고루 부유해진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땠을까? 19세기 당시 공업에 주력한 영국은 부유해진데 반해 포도주 생산에 주력한 포르투갈은 가난해졌다. 포르투갈의 가난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라이너트는 몽골에 목축을, 아프리카에 커피 농업을 권하면서 그래야만 그들 나라도 부유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주류 경제학자에게 "그렇다면 당신 자식에게도 스탠포드 대학에 들어가지 말고 목동이 되라, 커피 농장 경영자가 되라고 권고할 거냐"고 질문한다. 그러면서 마치 스미스와 리카도의 '자유 시장' 원리에 따르는 시장 개혁과 시장 개방 원칙만 도입하게 되면 미국의 실리콘벨리와 몽골의 대초원이 모두 동일하게 부유해질 것처럼 말하는 리카도 경제학의 후예들을 통쾌하게 조롱한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이 잘살려면 변호사나 의사, 엔지니어 같은 특정한 고수익·고학력 직종을 택하듯이, 한 나라도 고수익과 고부가 가치를 낳을 수 있는 특정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수확 체감의 법칙이 작동하는 농업이나 원자재 생산이 아니라 수확 체증의 법칙이 작동하는 제조업과 고부가 가치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너트는 그 좋은 사례로 야구공과 골프공의 생산 과정을 비교한다. 야구공 제작은 아직도 수작업에 의존하는데, 기계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야구공의 주요 생산지는 아이티와 코스타리카 같이 저임금·저생산성의 나라들이다. 그에 반해 골프공의 제작은 기계화된 지 오래이고 인건비 비중은 낮다. 이런 골프공의 제조는 아이티가 아니라 고임금·고생산성의 미국 내에서 이루어진다.

골프공 공장 노동자의 소득은 야구공 공장 노동자 소득의 30배가 넘는다. 이런 사례를 보면 왜 아이티는 여전히 가난한데, 미국은 부유한지 저절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도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은 이런 명백한 현실마저 부인하면서 자유 시장 원칙과 비교 우위 원칙이 실현되는 세계에서는 "세계가 평평해진다"(토마스 프리드먼)느니, "세계인 모두가 골고루 잘살게 된다"느니 하며 억지를 부린다.

리카도의 악덕, 크루그먼의 악덕

라이너트에 따르면 유럽은 15세기 르네상스 시절 이전부터 이미 경제 발전의 비결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도시에서 다양한 직종 간에 이루어지는 시너지, 기술 변화, 천연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수확 체증의 법칙 등이었다. 따라서 스미스와 리카도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 각국의 기본 성장 전략은 비교 우위 전략이 아니라 모방 전략이었다.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골고루 부유해질 수 있었던 기본 전략 역시 모방 전략 덕택이었다. 라이너트에 따르면 스미스조차도 영국이 제조업 경쟁력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시기에 대해서는 자유 무역이 아니라 보호 무역(중상주의) 정책을 옹호했다고 지적한다. 보호 무역주의의 대표자인 독일의 리스트 역시 독일이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한 이후에는 영국에 대해 자유 무역을 허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 모두 일종의 모방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을 때, 미국이 만약 모방 전략이 아니라 비교 우위 전략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은 우주 항공 산업에서는 비교 우위가 없으니 소련에게 양보하고 소련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은 농업에 전념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 미국은 비교 우위 전략이 아니라 소련을 모방하고 추격하는 대대적인 우주 항공 산업 육성 전략에 착수하여 그 이후 소련을 능가했다. 이렇듯 이 책은 유럽과 미국의 성공이 결코 리카도의 허구적인 비교 우위론과 자유 무역론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라이너트의 리카도 경제학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 자유 시장 근본주의에 훈수를 놓는 경제학자로 알려진 폴 크루그먼에게도 예외가 없다. 그는 크루그먼이 '신무역 이론'이라는 형태로, 일반적인 국제 무역 이론보다 경제 현실을 더 잘 설명하는 좋은 이론을 개발해놓고도 실제 경제 정책에서 활용하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

라이너트는 아예 '리카도의 악덕'(Ricardian Vice)에 빗대 '크루그먼의 악덕'(Krugman Vice)이라고까지 비판한다. 리카도야 몰라서 그랬다 쳐도, 비교 우위론의 한계를 뻔히 밝혀내고서도 그것을 경제 정책에서 실행하지 않는 크루그먼이야말로 더 나쁜 게 아니냐는 얘기다.

또 라이너트는 수확 체증의 법칙을 먼저 발견했다고 다투는 폴 로머 등을 비꼬면서 그 법칙은 오늘날 발견된 것이 아니라 '재'발견되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르네상스 시기 때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온 또 다른 경제학의 전통에 이미 수없이 수확 체증 법칙의 중요성이 언급되어 있는데, 로머 등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리카도가 아닌 좀바르트와 슘페터

라이너트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후계자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고 오늘날 잊혀진 경제학자인 리스트와 베르너 좀바르트, 조지프 슘페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리스트와 좀바르트는 일찍이 국가 주도 산업화와 보호 무역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슘페터는 경제 성장의 동력이 균형을 깨는 발명과 혁신에 있다고 봤다.

그리고 이러한 라이너트의 견해는 이미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2003년)와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년)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다. 장하준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의 신조를 깨기 위해 18세기 이래 역사 속의 반대 증거를 들이댄다. 라이너트는 아예 15세기부터 시작하는 비주류 경제학과 경제의 실제 역사의 복원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리하여 실제로는 오늘날의 비주류 경제학이 19세기까지만 해도 각국의 경제 정책을 현실적으로 지배해왔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날에도 역시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실제 경제 정책과 대외 무역 정책에 있어서 주류 경제학과는 다른 사고방식으로–즉 비주류 경제학이 권고하는 방식으로–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상주의 체제를 폐기하자?

그렇다면, 라이너트의 책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가? 한국은 이미 부자 나라가 되었으니 그의 여러 주장들은 가난한 개발도상국에나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1인당 국민소득 2만4000달러에 불과한 중진국이고, 부유한 선진국(일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에 달하는)을 추격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스미스와 리카도의 후예들이 판친다. 보수 쪽에서는 미국과 유럽 등 우리보다 훨씬 부유하고 생산성이 높은 나라와 자유무역 협정(FTA)을 맺어도 한국 경제가 비교우위론에 따라 더 빨리 부유해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

진보 쪽에서는 우리나라는 이제 '추격(catch-up)' 단계는 끝났으며, 따라서 추격 단계에나 필요했던 필요악인 각종의 중상주의적 경제 정책들 즉 (흔히 '박정희식 관치 경제'로 지칭되는) 산업 정책과 정책 금융은 필요 없으며, 역시 추격 단계에나 중요했던 대기업 그룹 체제 (즉 재벌 체제) 역시 이제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른바 '합리적 자유 시장'의 필요성을 말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시장 개혁론자들은 '중상주의를 폐해를 극복하는 합리적 자유 시장의 원칙'의 유용성을 말한다.

그런데 라이너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과 노르웨이, 일본 등의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미국이 시행한 마샬 플랜이말로 현대판 중상주의 정책이었다고, 그리고 그 덕택에 서유럽과 일본은 다시 부유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늘날 소련 붕괴 이후의 동유럽과 남미 등에서도 그 경제가 다시 부유해지고 선진국을 추격하려면 르네상스 시대 이래의 중상주의 정책을 재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여전히 추격 단계를 끝내지 못했으며, 우리가 선진국만큼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십 년간 중상주의 정책과 제도들이 중요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함께 온 노동 시장 유연화와 극심한 빈부 격차, 삶의 불안정이 경제 성장에 방해가 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두 축으로 하는 강력한 복지 국가 전략 역시 그러한 '추격' 전략 정책 패키지의 일부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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