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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철학의 동력은 동성애! 그 원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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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철학의 동력은 동성애! 그 원천은…

[이권우의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디디에 에리봉의 <미셀 푸코>

푸코. 그 이름 참 오랫동안 내 삶에 따라 붙어 다닌다. 얼치기로 대학 다니며 유사 마르크스 책 읽고 사회에 밀려나온 나에게 푸코는 너무 낯선 이름이었다. 한동안 너도나도 푸코를 떠들고 다니는데 나는 직장 생활에 치이고 술독에 빠져 있어 한동안 거들떠도 안 보았다. 그러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그의 책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읽은 적이 있었다. <감시와 처벌>. 무슨 말 인지 모르겠더라. 어려운 말은 아닌데, 즐겨 읽던 책들과 어법이나 용어가 달랐다. 이거 뭔 개코 또는 말코 같은 책이 있나 싶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었다.

<광기의 역사>는 마침 푸코가 번역 과정에 깊이 참여한 영역본을 우리말로 옮긴 책을 보았다. 옮기면서 줄여 분량도 만만했다(이런 책이 많이 나오길!). 좀 알겠더라. 이른바 구조주의적 사유가 무엇인지 짐작도 했다. 이래 봐도 대학생 시절, 레비스트로스의 <구조 인류학>을 읽은 사람이다. 당시 종로서적 출판부가 낸 책이었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의 저자가 쓴 책이라 '열라' 읽었다. 그때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만 하여튼 구조주의의 진수를 제대로 맛본 사람이다. 내 주변에 그런 책 읽는 이들 없어 혼자 가슴 뿌듯해 했다. 스스로 루시앙 골드만을 잘 이해한 것이 다 그런 내공이 있어서라 뽐냈다. 그런데 술의 독성은 너무 강했던 모양이다. <감시와 처벌>로는 채 이해하지 못하고 고생 끝에 <광기의 역사>에 와서야 비로소 푸코를 이해했으니 말이다.

여세를 몰아 붙여 <성의 역사>에 도전했다. 아마도 "성과 권력"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사에서 박정자 번역으로 옛날에 나왔던 적이 있었던 책이었다. 학생 시절, 돈은 없어도 줄곧 서점에 가서 논지라 서지 사항에 좀 밝은 편이었다. 한번 나왔던 책인데, 무에 어렵겠나 싶어 도전했다 '어마 뜨거라' 얼른 책을 덮었다. 나 같은 무지렁이가 읽을 책이 아니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한동안 푸코를 멀리했다.

그런데, 어라, 갑자기 들뢰즈라는 '듣보잡'이 나와 설레발을 쳤다. 이건 또 뭐야? 한 사람도 제대로 이해 못했는데 머리 좋은 인간들이 벌써 진도 나가버렸다. 에잇 모르겠다. 잘난 너희들이야 또 누구를 불러올 줄 모르니 나는 내 하던 거나 하겠다 싶어 <담론의 질서>도 읽고 <푸코의 마르크스>도 읽었다. 그나마 알아먹겠더라. 그러다 프랑스에서는 100만 부나 팔렸다는 <말과 사물>을 보려 했더니 절판이었다. 그놈의 출판사, 참 야속했다.

하여튼 푸코는 이해할 수 있었다. <성의 역사>는 빼놓고. 그러면 들뢰즈는? 너나 잘 알아라, 하는 심정이 들었다. 아이고 꼭 그리 말해야 하는지 참 잘난 녀석이네. 근데 그거 알아먹고 씨부렁거리는 놈들은 떠 뭔고. 하는 괜한 자격지심만 들었다. 그래서 중심을 울리지 않고 변죽만 울렸다. 남들이 잘 해설한 책만 읽었다. 그러나 의심하지는 마라. 아는 척했다고. 그냥 잘 듣고 잘 새겼다. 잘난 무리에 들고 싶은 욕심은 없었으니.

▲ <미셀 푸코, 1926-1984>(디디에 에리봉 지음, 박정자 옮김, 그린비 펴냄). ⓒ그린비
근데 푸코 책 이것저것 읽다가 놓친 게 있었다. 역시 박정자 번역의 푸코 평전. <미셀 푸코>라는 제목으로 시각과언어사에서 두 권짜리로 나왔다. 서점 갈 적마다 사서 보겠다고 침 흘리다 어쩐 일인지 못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책이 <미셀 푸코, 1926-1984>라는 제목으로 그린비에서 다시 나왔다(섭섭한 것은 이 책이 이미 나온 바 있다는 서지 사항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 번째 판본을 우리말로 옮겼다는데, 원저자는 확 내용을 바꿔버리려다 따지고 보면 크게 바꿀 것 없어 앞 판본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여튼 본문만 578쪽에 이르는 대작을 읽으면서 내내 투덜거렸다. 명색이 저널리스트가 썼으면 더 쉽고 재미있어야지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원저를 장황하게 인용하고, 뭐 이래라며 말이다. 좀 자근자근 씹어서 부드럽게 만들어 뱉어주면 얼마나 좋아. 더욱이 지은이는 푸코의 삶과 사상에서 동성애가 차지하는 부분을 너무 확대 해석하고 있다. 거기다 웬만하면 동성애 깔때기다. 그런데도 손은 계속 책장을 넘기고 있으니, 푸코의 삶이 그만큼 드라마틱하다는 말이기도 하고, 지은이가 이리저리 푸코의 삶을 잘 요리하고 있다 할 수도 있을 터다.

푸코 철학도 겨우 따라온 주제에 그의 삶을 요령껏 정리하기란 내 깜냥에 맞지 않다. 단지 읽으면서 내가 주목한 두 가지 점을 중심으로 그의 삶을 '폭력적으로' 요약해 보려 한다.

먼저, 나는 그의 스승이 누구인지 주목했다. 캉길렘은 누구나 알 터(귀동냥으로 듣건대, 캉길렘이 자기 교수 자리를 푸코에게 넘겨주었다 했는데, 낭설이었던 모양이다. 책에 그런 내용 없다). 그런데 두 명이 더 있었다. 프랑스에 헤겔 철학을 널리 퍼뜨린 철학자로 유명한 이폴리트가 있었고, 나로서는 뜻밖이었는데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뒤메질이 있었다. 뒤메질은 문화인류학자에다 신화학자라 알고 있었던지라 푸코가 학문적 성공을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한 후견인이었다는 사실은 약간 충격이기도 했다.

먼저 이폴리트. 지은이는 그의 영향에 대해 "이때까지 역사에만 관심이 있던 그는 난생 처음으로 철학의 유혹을 받았다. 선생은 그에게 역사를 서술하는 철학을 설명했고, 이성의 자기 실현을 향한 꾸준한 역정을 이야기해주었다. 거기에는 모든 역사가 포함되었다"라고 정리했다. 푸코는 이폴리트를 고등사범학교에서 스승으로 만났고, 나중에는 그의 뒤를 이어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었다.

캉길렘. 이 책을 보며 그가 이른바 주체의 죽음을 이끈 배후 핵심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는 사르트르나 메를로-퐁티와 다른 노선을 걸은 철학자였다. 바슐라르 계통의 적자였는데,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의 관계, 학문적 발견의 과정, 그리고 '진실' 추구에서의 오류의 역할 등에 관심"을 보였다. 실존주의 철학이 득세하던 시절, 이미 그것을 전복할 이론적 무기를 벼리던 그에 대해 지은이는 다음처럼 평가했다.

"캉길렘은 5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에 철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등등의 이론적 담론을 쇄신하려 했던 모든 사람들, 다시 말해서 이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발로 다져왔던 주체의 철학이라는 낡은 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이며 슬로건이고 전투적 구호가 되었다. 캉길렘은 구조주의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다. 또는 최소한 구조적 과학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그들을 나중에 구조주의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푸코는 뒤메질을 1955년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에서 만났다. 뒤메질은 프랑스어 강사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지인을 통해 푸코를 소개받았고, 결국 그를 적극 추천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실로 질겼다. 30년 동안 변함없이 서로에게 강렬한 지적 영향을 받았고 변치 않는 우정을 나누었다. 특히 푸코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뒤메질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가 된 것은 전적으로 뒤메질 덕이다. 푸코의 인간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고 그만큼 결별한 사람도 많은데, 뒤메질과는 흔들림이 없었다. 뒤메질에게 받은 영향을 푸코의 입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뒤메질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직 글쓰기를 단순한 즐거움으로 생각하던 시절에 내게 어려운 작업을 하도록 고무해준 것이 바로 그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도 또한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 그는 내게 언어 형식주의의 방법이나 전통적 해석 방법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담론의 내적 경제를 분석하도록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또 모든 담론들을 비교하면서 그 기능적인 상관관계의 체계를 점검하도록 가르쳐주었습니다. 한 담론이 어떤 변화를 겪고 또 제도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묘사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었습니다."

스승의 면모를 보면 제자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는 법이다. 푸코라는 대하는, 이렇듯 세 줄기의 물결이 만나 이루어졌던 것. 싹수 알아보고 키워주고 밀어준 스승도 대단하고, 기대보다 훨씬 뛰어난 지적 성과를 거둔 푸코가 대견하다. 더욱이 푸코의 정치 행보가 영 마뜩찮았을 텐데도 푸코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은 뒤메질이 인상 깊었다. 그러다 아차, 그 양반 책 이것저것 사놓고 제대로 안 읽었는데, 이제라도 제대로 훑어봐야겠다 마음먹었다. 이런, 캉길렘 책도 안 봤고, 대학생 때 사놓은 이폴리트 책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련하면 부지런하기라도 해야 하거늘!

모든 평전 작가는 자전적 요소와 작품과의 상관성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정신세계가 내놓은 분비물인 만큼 뚜렷한 관련을 맺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동성애는 푸코의 삶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젊은 날 공산당에 가입했다 탈당한 것도 동성애와 관련 있고 그가 미국 생활을 즐거워했던 것도 그 때문이며 그의 생명이 좀 먹힌 것도 같은 이유다. 더욱이 푸코는 다음 같은 말을 한지라 지은이가 동성애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론 작업을 시도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내 주변에서 전개되는 과정과 관련하여 내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하는 사건들 속에, 내가 관여하는 제도들 속에,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 균열. 미세한 진동. 기능 장애를 발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작업을 수행했다. 다시 말하면 내 자서전의 한조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철학적 사유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푸코의 저서를 읽는 것 자체가 하나의 분투였다. 분명히 다 이해했거나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한테서 근대성의 문제의식을 전수받았고, 구조나 체계가 우선한다는 사고를 물려받았고, 철학은 현실을 변혁하는 연장통이어야 한다는 잠언을 들었다. 더불어 그 덕분에 니체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론의 고고학이나 계보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어느 철학자에게 이토록 많은 배움을 얻겠는가. 책의 부록으로 저서 목록과 번역본 목록이 나왔다. 감회가 새로웠다. 이 나라의 지성은 얼마나 부박한지 벌써 푸코를 상갓집 개 취급하는 듯싶다. 쏠렸다 들끓었다 금세 식어버린다. 다시, 차분하게 푸코를 읽어보는 것도 좋은 독서 계획일 듯싶다.

자신의 사망 부고는 푸코가 써줄 거라 호언장담했던 뒤메질이 푸코의 조사를 쓰고 말았다.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그래서 고통스럽게 했던 푸코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 인용한다.

"푸코의 지성은 글자 그대로 한계가 없다. 너무 기발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는 육체와 정신, 본능과 이념 등의 전통적인 구분이 무의미하게 보이는 살아있는 존재의 영역에 관찰대를 설치했다. 광기, 성, 범죄가 바로 그것이다. 거기서 그의 시선은 마치 등대처럼, 아무리 불확실한 것이라도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채, 그리고 정통이라는 교조에 머무르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는 채, 역사에서 현재로 서서히 빛을 비추었다. 수많은 중심점을 갖춘 지성,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거울이 달린 그의 지성 안에서 생겨나는 판단들은 그 반대 이론에 부딪혀도 파괴되거나 물러남 없이 오히려 더욱 두터워졌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이 모든 것은 극도의 호의와 선량함의 기초 위에 놓여져 있었다. (…) 우리는 단숨에 의기투합하여 친구가 되었다. 이제 미셀 푸코가 슬쩍 빠지고 나니 나는 인생의 부속적 장식물이 아니라 인생의 실체 그 자체를 박탈당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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