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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 공장 아가씨…' '야한' 노래에 눈물이 '펑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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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 공장 아가씨…' '야한' 노래에 눈물이 '펑펑'!

[어린이책은 눈물이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성냥팔이 소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플랜더스의 개>, 그리고 영화 <미션>, <쿵푸 팬더>, <천녀유혼>(물론 오리지널 1편). 이들의 공통점은? 답은 누구누구에게는 눈물을 부르는 동화나 영화라는 것이다. 그곳도 펑펑 쏟아내는 눈물.

며칠 전, 페이스북에 어린이날 특집 '프레시안 books'에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서평을 쓰려고 한다는 글과 함께 나는 <성냥팔이 소녀>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는 글을 남겼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는데, 그들도 눈물을 부르는 추억 속의 동화나 영화를 하나씩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터이고 추억과 애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언제부터 그리고 왜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면서 눈이 부어터지도록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어느 장면은 내 머릿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학교가 끝나고 학교 도서실에 모여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마 일종의 독서 클럽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 한 분과 친구들 열 명 남짓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날은 <이솝우화>를 읽는 날이었나 보다. 그런데 나는 <이솝우화> 속의 이야기들이 사실 좀 따분하고 가슴에 와 닿지도 않고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솝우화>를 덮어두고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안데르센 동화집> 한 권을 꺼내들었다. 유명한 작가의 이야기책이니 그 전에도 아마 읽어봤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다가 결국은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이솝우화>를 읽다가 우는 아이는 처음 본다고 하시면서 정말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하니 나중에 동화 작가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여전히 <성냥팔이 소녀>가 펼쳐져 있는 <안데르센 동화>를 들고 있었다. 그 당시의 감정선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면 최소한 눈물이라도 맺혔다. 보통은 엉엉 울었다.

중고등학교를 유신 독재 시대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로 참 괴로웠다. 머리를 빡빡 깎고 엄격하게 규정된 교복을 입고 다녀야 한다는 것도 참기 힘든 괴로움 중 하나였다.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의도적으로 머리를 길렀다. 많이 길었을 때는 어깨를 덮기도 했다. 수염도 좀 과하게 길러봤다. 지저분한 긴 머리에 수염으로 얼굴을 온통 덮어버린 몰골로 대학교 1학년 가을까지 버텼다. 그래도 옷은 자유롭지만 깔끔하게 입으려고 노력했다. 나름대로의 타협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친구들과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러 단골 술집을 찾았다. 당시 술이 거나하게 오르면 모두 함께 부르던 저질스러운 노래가 여럿 있었다. 보통 익숙한 멜로디에 질펀한 성적인 내용이나 남녀의 성기를 문자 그대로 까발려서 발음해볼 수 있도록 가사를 붙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개중에는 교묘하게 이런 내용과 군부 독재 타도 같은 구호나 내용을 섞어서 가시를 만들어서 부르기도 했다. 억압 속에서 평소에 입 밖에 잘 내보내지 못하던 단어들을 술 취했다는 핑계와 저질스러운 B급도 아닌 C급 가사를 핑계로 배설하는 작업이었다. 우리는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이런 저런 노래를 불렀다.

당시 유행하던 C급 노래 중에 '인천의 성냥 공장 성냥 공장 아가씨…'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다. 그 다음 가사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런데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다가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하필이면 '성냥'에서 섹시하고 질퍽한 '인천의 성냥 공장 아가씨' 대신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려버린 것이었다. 술도 한참 오른 김에 나는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 속으로 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히피 같은 헝클어진 긴 머리에 산적 같은 수염을 얼굴에 온통 달고 있는 키 큰 사내가 엉엉 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그날 울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웃다가 '성냥 공장 아가씨' 생각에 침을 꼴깍 삼키다가 '성냥팔이 소녀' 생각에 꺼이꺼이 울다가 하는 짓을 반복하면서 그야말로 내 인생 최대의 쇼를 했다.

▲ <안데르센 동화집>(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이옥용 옮김, 네버엔딩스토리 펴냄). ⓒ네버엔딩스토리
오랜만에 <안데르센 동화집>(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옥영 옮김, 네버엔딩 스토리 펴냄)을 읽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올라와 있는 수많은 <안데르센 동화집> 중에서 최근에 나왔고 새롭게 번역되었다는 이 책을 골라서 사서 읽었다.

"살을 에는 듯이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어요. 눈이 내리고, 날도 점점 어두워지면서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그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저녁이었지요. 엄청난 추위와 어둠속에서 한 작고 가난한 여자아이가 모자도 없이 맨발로 타박타박 길을 걷고 있었어요."

벌써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지만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눈물들이 나갈 순번을 기다리면서 서로 밀치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에 왜 하필이면 눈이 내려, 하면서 투덜거렸다. 벌써 밤인데, 하면서 마음이 안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추위도 '엄청난' 추위야,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작고 가난한' 그것도 '여자' 아이잖아 너무해, 그러면서 한숨을 쉬었다. '모자'도 없어… 거기다가 심지어는 '맨발'이야…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소녀는 마냥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었다. 왜 '타박타박' 걸어가느냐고 발 시리지 않게 얼른 뛰어 가야지, 하다가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늘 이런 식이었다. 첫 문단을 넘기지 못하고 눈물이 나는 날이면 <성냥팔이 소녀>의 앞부분을 맴돌다가 끝나기가 일쑤였다. 어떨 때는 내가 울고 싶을 때 이 이야기를 핑계 삼아 의도적으로 우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작은 여자아이는 너덜너덜 해진 앞치마에 성냥을 잔뜩 싸쥐고, 손에도 한 묶음 들고 있었어요. 하지만 하루가 다 지나가도록 성냥을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동전 한 닢을 준 사람도 없었고요. 그 작은 여자아이는 온몸이 꽁꽁 얼고 배가 고팠지만 계속 걸어갔어요.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요. 불쌍한 꼬마!"

늘 내가 그 여자아이가 되는 환상에 빠졌었다. 때로는 큰 소리로 때로는 가슴 속으로 속으로 움츠려 들면서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를 외쳤다. 이 책 <안데르센 동화집>에 실린 <성냥팔이 소녀>에는 여자아이가 사람들을 향해서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하고 외치는 장면이 없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늘 서럽게 울부짖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아마 만화책에서 봤거나 다시 각색해서 쓴 <성냥팔이 소녀>에 그런 장면이 삽입되었던 모양이다. 완역을 했다는 이 책에서 이 장면이 없는 것을 보니 좀 허무하기도 하다. 내게 가장 인상 깊고 슬픈 장면 중 하나로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가 남아 있으니 말이다.

"그 작은 여자아이는 성냥불을 또다시 켰어요. 그러자 멋들어진 크리스마스트리가 나타났어요. 그리고 그 작은 여자아이는 그 아래에 앉아 있었지요. 그건 크리스마스 때 돈 많은 가게 주인의 집 유리문을 통해 들여다본 것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었어요. 푸르른 나뭇가지에는 수없이 많은 양초가 밝게 타오르고 있었고, 가게 진열장을 장식할 때 쓰는, 알록달록 색색의 그림들이 그 작은 여자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그 작은 여자아이는 두 손을 높이 뻗었어요. 그 때 또 성냥불이 휙 꺼졌어요."

그래도 소녀가 성냥 하나를 켜서 환상 한 가지를 보여줄 때는 방긋 웃을 수 있었다. 이내 휙 꺼져버리는 성냥불에 좌절했지만 소녀와 함께 또 다른 성냥에 불을 붙이는 재미에 추위도 두려움도 함께 잊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추운 이튿날 이른 아침, 길가 집 한 모퉁이에 작은 여자아이는 앉아 있었어요. 얼굴은 새빨갛고, 입가엔 생긋 웃음을 짓고 있었어요. 죽은 거예요. 섣달 그믐날 밤에 꽁꽁 얼어 죽은 것이지요. 새해 아침이 그 작은 시체 위에서 막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죽은 아이는 성냥을 갖고 있었어요. 거의 한 묶음이 타버렸지요."

어릴 때 소녀가 얼어 죽은 장면을 생각하다가 엄마한테 불쑥 '엄마, 나 정말 죽기 싫어!' 그렇게 외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죽으면 더 좋은 곳에 가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난 믿지 않았다.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던 엄마의 슬픈 눈동자가 지금도 서글프다. 가끔씩 딸아이가 문득 문득 내뱉듯이 '아빠, 나 죽기 싫어!' 그런 소리를 한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아빠도 죽기 싫어!' 그렇게 딸아이를 쳐다보면서 말해주곤 한다. 철렁하는 가슴을 품은 그 때 엄마의 그 눈동자 그 표정으로.

나는 아직도 왜 내가 그토록 <성냥팔이 소녀>에 매달리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냥팔이 소녀>는 아직도 나를 울리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또 분명한 것은 이옥영이 옮긴 <안데르센 동화집>에는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이렇게 소녀가 외치는 장면이 없다는 사실에 내가 또 슬퍼졌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게 제일 슬픈 구절 중 하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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