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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조 원 내놓고 '찍' 소리도 못하는 바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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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조 원 내놓고 '찍' 소리도 못하는 바보는?

[프레시안 books] 시민과학센터의 <시민의 과학>

주말 밤에 TV 채널을 돌리다 눈살을 찌푸렸다.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을 조합한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한국 드라마인데, 설정이 난감했다. 그 슈퍼 히어로가 활약하는 무대가 여론 때문에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나서 전력난 탓에 국가 부도가 난 가까운 미래 대한민국의 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치부를 폭로하는 '사회파' 드라마로 포장을 해놓고서 이런 설정이라니! '핵발전소 폐쇄→전력난→국가 부도'로 이어지는 단순한 사고라니!

더구나 이런 식의 접근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틀렸다. 지난 4·11 총선에서 핵발전소 폐쇄를 가장 목소리 높여서 주장했던 녹색당,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탈핵(脫核)' 시점도 2030년이다. 수십 년의 시간을 두고서 핵발전소 의존을 차근차근 줄여보자는 주장에 웬 전력난 타령인가? 지난 9·15 정전의 원인 중 하나가 대형 화력 발전소나 핵발전소에만 의존해온 현재의 전력 체계라는 사정은 또 어떻고?

더욱더 답답했던 것은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드라마조차도 '핵 없는 세상'을 디스토피아로밖에 그리지 못하는 상상력의 빈곤이었다. 그 즈음에 마침 <시민의 과학>(사이언스북스 펴냄)을 펼쳤다.

과학기술 민주화, 그 15년의 기록

▲ <시민의 과학>(시민과학센터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시민의 과학>은 '시민 참여를 통한 과학기술 민주화'를 내세우며 1997년에 활동을 시작한 시민과학센터가 15년에 걸친 지금까지의 고민을 정리한 것이다. 1999년에 펴낸 <진보의 패러독스>(당대 펴냄)에서는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과학기술 민주화'를 소개하는 데에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그것이 지향하는 실천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는 게 가능해진 이유는 지난 15년간 시민과학센터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벌여온 여러 가지 활동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시민과학센터는 1997년부터 지속적으로 과학기술 정책에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를 탐구해왔고, 그 한 본보기로 1998년(유전자 변형체(GMO)), 1999년(생명 복제 기술), 2004년(핵 발전) 세 차례에 걸쳐서 합의회의를 개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민과학센터는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당시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던 생명공학을 감시하는 역할을 자처했고, 이런 활동은 2005년 황우석의 논문 조작으로 촉발된 이른바 '황우석 사태'가 혼란 속에서도 제대로 해결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오죽하면,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황우석의 논문 조작 폭로의 '배후'에 시민과학센터가 있으리라고 믿는 이들이 있겠는가?

시민과학센터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고민해왔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과학기술의 민주화'가 지향해야 할 '대안 과학기술'의 모습이었다. 시민과 과학기술자가 직접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연구를 기획하고 수행하는 '과학 상점'과 같은 실험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것이나, 이번 책에서 '공익 과학'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과학기술 앞에만 서면 왜 초라해지는가?

하지만 이렇게 시민과학센터가 걸어온 길을 염두에 두면서 <시민의 과학>을 읽다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왜냐하면, 시민과학센터가 내세웠던 '시민 참여를 통한 과학기술의 민주화'는 지난 15년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과학기술이 삶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더 커진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다.

2008년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놓고 여름 내내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또 2011년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핵발전소의 위험에 대한 대중의 걱정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입장을 되뇌었던 상당수 전문가와 그들의 확성기 역할을 한 언론의 모습은 어땠는가? 외국산 먹을거리의 안전을 걱정하는 시민은 '과학의 이름'으로 모욕당했다.

그런데 이렇게 매번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고, 질타당하면서도 정작 대다수 시민은 여전히 과학기술 앞에만 서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침묵한다. 올해에도 자신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 예산 중 약 16조 원이 연구개발 비용으로 쓰이는 상황인데도 이렇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중의 힘이 칭송을 받는 시대에 과학기술은 왜 계속해서 예외 분야인가?

그렇다고, 틈만 나면 "대중은 과학을 모른다"며 되뇌는 과학기술자들이 기를 펴고 사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정부, 기업의 눈치만 보는 부속품으로 전락해,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더구나 "과학을 아는" 그들 역시 과학기술이 사회 문제로 주목을 받을 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쟁에 대다수 과학자들이 입을 꾹 다무는 상황을 보라!)

시민의 과학, 싸움은 지금부터!

<시민의 과학> 역시 이런 답답한 현실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시민과학센터가 15년 전에 내세웠던 '과학기술 민주화'의 이상은 이대로 좌초하는 것일까?

책 마지막에 붙은 브라이언 마틴의 글은 위안을 준다. 마틴은 "대안 과학의 전망을 발전시키려면 먼저 대안 사회의 전망을 가져야 한다"고 단언한다. 이런 주장을 염두에 두면, 지금 과학기술 민주화 운동이 제자리걸음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난 20년간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대안 사회'에 대한 전망을 잃은 채 자유 시장 자본주의만을 좇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 이 정도만큼이라도 고민하고 실천하며 '과학기술 민주화'라는 새로운 진보의 무기를 벼려온 것이야말로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실제로 시민과학센터의 활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과학기술 시민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시야를 넓혀도 예외적인 모습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과학>은 한 시민단체의 때늦은 회고담이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싸움을 준비하는 무기고로 간주되어야 한다.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 그리고 마땅한 동지를 찾지 못해서 늘 불안한 과학기술자가 이 책을 당장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글머리에서 언급한 슈퍼 히어로 드라마의 작가, PD부터 일독을 권한다. 단순히 '유행'을 좇는 게 아니라면 진짜 '사회파'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영감을 이 책 곳곳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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