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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의 수난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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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의 수난에 바친다

[박동천 칼럼] 1년 징역형을 선고한 2심 판결에 부쳐

서울시교육감 곽노현이 후보 매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따라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식으로 반응했었다.

내가 이 일의 진상이 보도되는 바와는 다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그 후의 보도를 아무리 따라가도 곽노현이나 박명기 측의 해명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나는 두 편의 칼럼을 썼다. (☞관련 기사 : 가식의 바람몰이가 또 시작하는가, 곽노현을 업고 사법 개혁으로 가자!)

그 때만 해도 나는 그가 무죄라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단, 진상이 확인되기도 전에 검찰발 '빨대'식 보도만 보고 그의 사퇴를 압박하는 사람들, 특히 소위 "진보 지식인"을 자처하는 인사들을 겨냥한 글이었다. 그 뒤로 1심 재판이 있었다. 재판을 맡은 판사 김형두의 진지한 노력 덕택에 여러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내가 이해한 진상을 이렇다.

첫째, 양재원, 이보훈, 최갑수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 소위 "합의"라는 것은 합의의 명색만 갖추고자 했던 양재원의 시나리오에 이보훈과 최갑수가 별 생각 없이, 따라서 막연할 뿐만 아니라 서로 부정합적인 단어들을 무의미하게 연결한 데 불과하다. 둘째, 이런 무의미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사실조차 곽노현은 몇 달 후에 자체 조사를 통해서나 알게 되었다.

셋째, 한편 박명기는 양재원으로부터 "합의"가 있었다고 전해 들었고, 그래서 합의 이행을 요구했다. 넷째, 진상을 파악하고 나서 곽노현은 강경선에게 부탁해서 박명기의 오해를 풀었다. 다섯째, 이 와중에 강경선은 박명기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어 곽노현에게 부조를 조언했고, 곽노현은 강경선의 신앙심에 감화되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음을 무릅쓰고 2억 원 가량을 건넸다.

ⓒ뉴시스

이와 같은 사실을 파악한 이후 나는 곽노현의 무죄를 확신하게 되었고, 지금도 확신한다. 그러므로 나는 실체적 진실을 이렇게 밝혀낸 1심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리라고 기대했고,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나와야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세속의 법정이 항상 진실에만 충실하지는 않는다는 점, 나아가 특히 현재 한국의 사법부는 진실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모를 만큼 현실과 이상을 혼동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늘 항소심의 1년 징역형 선고에도, 영혼이 휘청거릴 만큼 충격은 받지만 놀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1심 재판부가 유죄 판결을 내렸을 때에는 상당히 놀랐었다. 판사 김형두가 도합 200시간에 달하는 법정 심리를 통해 진상의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뒤져보고도, 그래서 위에 내가 요약한 진상을 샅샅이 밝혀내고도, 여전히 사후 매수라고 하는 뒤틀린 관념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한국 사회 법조계와 정치계의 환경 그리고 일반적인 공론의 상태를 감안하면 그러한 판결도 있을 수 있겠다고 이해했다. 개인의 세밀한 진상을 조직의 목적이나 권력의 성향 그리고 중론의 풍향에 따라서 묵살해 버리는 풍조는 한 사람의 법관더러 막아내라고 요구하기가 비인간적일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심 재판부는 적어도 유죄 판결을 내리기까지 깊은 고뇌를 거쳤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게 대단히 중요한 도덕적 자산이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무고한 피고인의 변호에 실패한 애티커스가 실망한 딸에게 하는 말, "그래도 이번에는 몇 시간이나 걸렸잖니. 이런 재판은 보통 몇 분 안에 결론이 났던 거야"에 비견할 만하다.

내가 몇 주 전에 다시 쓴 글에서도 말했듯이(☞관련 기사 : 천안함과 곽노현을 다시 생각한다), 곽노현 재판은 한국 사회가 도덕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그가 지금 당하고 있는 수난에 동참할 것이며, 그가 견지하는 진실과 신앙에 내 영혼의 순수가 허락하는 한 모든 응원을 보낸다.

진영으로 진보에 속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진영 논리에는 신물이 나지만 한국 사회가 좀 더 선량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진상을 파고들지도 않고 통념에 의존하는 사회는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다. 곽노현이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고 말하지 말라. 진실을 무시하는 현실에 저항해야 하는 까닭은 현실이 녹록해서가 아니다.

곽노현을 개인적으로 믿지만 법은 전문가의 영역이니 어쩔 수 없다고도 말하지 말라. 진실을 덮어 버리고서야 어떤 법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위에 요약한 진실 가운데 어떤 내용도 검찰은 부인하지 못했다. 단지 "돈이 오갔으니 후보 직위를 매수한 것"이라는 억견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법과 정의와 진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질서다. 죄 없는 사람을 분위기에 따라 처벌하는 사회는 곧 죄 있는 사람이라도 그에게 돈과 권력만 있다면 처벌하지 못하는 사회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온 세상이 깡패 판이었다고 해서, 그러니까 앞으로도 깡패 판이 계속되리라는 결론은 논리적으로 부당하다. 이런 식의 통념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로 무슨 진보와 개선을 떠들든지 역사의 선한 발전을 미리 포기한 사람이다.

권력의 핍박 때문에 일상적으로 괴로움을 받아야 하는 이 나라의 모든 양심에게 호소한다. 곽노현의 진실을 여러분이 알아주고 응원해준다고 해서 각자의 어려운 처지가 당장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곽노현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사법 제도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다. 이 사건에서처럼 검찰이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도처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처럼 법원이 검찰의 비논리적인 압박에 양보하기 때문에 이 사회의 법과 정의와 진실이 묵살당하는 것이다.

모든 진실은 개인의 진실이고, 모든 개인은 사회에 비해 미약할 만큼 작다. 이에 비해 권력은 언제나 거창해 보이고, 이에 덧붙여 숭고하고 장엄하다는 포장까지 칠해져 있다. 개인들의 작은 진실과 양심이 연대하지 못하면 권력이 개인을 말살하는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권력을 차지한 악당들이 나머지 선량한 다수 시민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상태이다.

다수 시민이 법의 조문과 적용에 대해 주권을 행사하기로 결단해야 한다. 사법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법이 시민을 때려잡는 도구에서 벗어나 권력을 통제하는 공동체의 자산으로서 제자리를 찾는다. 이래야 국가 권력이 정상화되며, 그래야 의회의 입법을 통한 경제 민주화도 가능해진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 목표를 가시화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140석의 민주 진보 의석은 종전 90여 석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강된 것이다. 이제 8개월 후, 다시 한 번 역사 발전의 계기가 예정되어 있다. 사법 개혁을 통한 권력의 정상화로 의제를 모아야 한다.

현재 대법원의 상태를 볼 때, 곽노현은 아마도 실형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 선거 운동 보전금 35억 원을 물어내고 나면 빚더미에 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법 민주화를 통한 대한민국 국가의 정상화라고 하는 중차대한 역사적 계기가 조성되는 데 하나의 밀알이 될 수 있다면, 그의 수난은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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