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박빙'이 아니라 '초박빙'의 승부처. 11일은 고양시 덕양(갑),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와 통합진보당 심상정 후보의 정치적 생사가 갈리는 날이다. 하지만 투표소 분위기는 한산했다.
"아직까지는 어르신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아무래도 젊은이는 점심 때 이후에나 투표하러 오지 않겠어요?"
어렵게 말문을 연 투표소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다른 선거와 비교했을 때, 다르다고 할 만한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며 "두고 봐야겠지만 야권에서 기대하는 대로 55퍼센트 이상의 높은 투표율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점심 때 이후에 젊은이의 참여가 투표율뿐만 아니라 당선의 윤곽도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 조사를 위해서 아침부터 투표소 앞에서 대기 중이던 이들도 공감을 표시했다.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젊은이보다 어르신이 많다"며 "오후에는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분위기만 봐서는 20~30대의 투표 열기가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0~30대의 지지를 기대하는 심상정 후보에게 낮은 투표율은 악재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심 후보는 오차 범위 내에서 손범규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북 편이나 드는 주제에…" vs "사찰 정부와 짝짜꿍하던 정당이…"
세대에 따라 갈리는 지지율은 투표소를 찾은 시민의 반응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났다.
연령대가 높은 시민은 손범규 후보의 "지역 일꾼" 주장에 혹한 반면, 연령대가 낮은 이들은 심상정 후보의 "큰 정치인" 주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손자의 손을 잡고 투표하러 온 손영길(69) 씨는 손범규 후보 지지를 당당히 밝혔다. 손 씨는 "국회의원 선거가 무슨 대통령 선거"냐며 "지역에서 일 잘할 사람을 뽑아야지 중앙 정치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왜 국회의원에 나서는지 모르겠다"고 심상정 후보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는 "이북 편이나 드는 정당 아니냐"며 통합진보당에 대한 불쾌감도 감추지 않았다.
반면에 투표하고 나서 학교 도서관에 갈 예정이라는 김아영(23) 씨는 "심상정 같은 정치인이 한국에 몇이나 되느냐"며 "심상정 같은 사람을 국회에 보내지 않는 건 시민으로서의 직무 유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사찰 정부와 짝짜꿍을 맞추던 새누리당이 또 표를 달라고 우기는 것 자체가 역겹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김 씨가 목소리를 높인 대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심판'을 둘러싼 표심도 갈렸다.
황길웅(55) 씨는 "사찰 자체야 잘못이지만 이명박 정부만 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황 씨는 "사실 이명박 정부가 잘못했다고 우기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도 해군 기지 다 노무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인데, 왜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냐"고 반문했다.
김상국(35) 씨의 반응은 정반대다. 김 씨는 "자꾸 노무현 정부도 사찰했다 이러는데 그렇게 사찰이 나쁜 짓인 줄 알면서 뻔뻔하게 사찰을 한 게 제일 악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꼭 야당이 국회 과반수를 얻어서 또 12월에 정권도 바꿔서 청와대에 계신 분 포함해서 이명박 정부 핵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표소 앞에서 이른바 '인증 샷'을 찍은 함영준(30) 씨도 "젊은이들이 투표소를 찾는 건 이명박 정부 심판이 이유"라며 "나 역시도 그런 마음으로 왔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데 20대들이 눈에 잘 안 띈다"며 "재작년 지방 선거 때처럼 오후 네 시 이후에 몰아서 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화정2동 제1투표소가 마련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백양초등학교에서는 투표를 마친 시민 여럿이 '인증 샷'을 찍었다. ⓒ프레시안 |
"<무한도전> 팬인데…" vs "진보신당 2%가 관심사…"
손범규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당락이 덕양(갑)의 최대 관심사지만, 투표소를 찾는 이들의 마음은 각양각색이었다.
아이 손을 잡고 남편과 투표소를 찾은 황인영(34) 씨는 "<무한도전> 팬인데 거의 몇 주째 결방이라서 금단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며 "야권이 승리해야 방송국 파업이 해결되어서 <무한도전>도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웃으며 말했다. 황 씨는 "하지만 정당 투표는 미래를 위해서 녹색당에 찍었다"고 덧붙였다.
진보신당 지지자라고 밝힌 투표소 앞에서 만난 또 다른 시민은 "사실 심상정 후보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며 "진보신당 지지자 입장에서는 '배신자'"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래도 새누리당 후보를 찍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불편한 마음이지만 심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 중요한 관심사는 진보신당이 2퍼센트 이상 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표소를 들어가던 김영훈(41) 씨는 "그래도 덕양(갑)은 야권 단일화가 비교적 일찌감치 되었고, 진보신당, 녹색당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아서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돼 마음이 편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씨는 "그래도 정당 투표를 진보신당으로 할지 녹색당으로 할지는 여전히 갈등 중"이라고 말했다.
열두 시간 후에 웃을 사람은…
한편, 지금 가장 피가 마를 손범규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일찌감치 투표를 마쳤다. 손 후보는 관산동 제6투표소에서 오전 8시 부인 김선경 씨와 투표를 마쳤고, 심 후보는 오전 7시 덕양구 성사2동 제3투표소에서 남편 이승배 씨와 한 표를 행사했다.
손범규 후보는 이날 트위터에 "아침 8시에 집사람과 함께 내유초등학교에 가서 투표를 하고 왔다"며 "투표소에서 뵌 유권자 여러분들의 격려의 말씀이 힘이 많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심상정 후보도 트위터에 "저는 7시에 투표하고 원당에서 올갱이해장국 한 그릇 하고 있다"라며 "대한민국을 희망으로 바꾸는 한 표 기쁘게 참여하세요"라고 말했다.
손범규 후보와 심상정 후보, 12시간 뒤면 운명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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