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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죽이는 진짜 '어둠의 세력'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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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죽이는 진짜 '어둠의 세력'을 고발한다!

[탈북, 그 불편한 진실] 윤정은의 <오래된 약속>

윤정은의 <오래된 약속>(양철북 펴냄)은 탈북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시간적 무대인 1997년은 소위 북한에서 대량 기아 사태가 벌어진 '고난의 행군'이 끝나갈 무렵이다. 우리나라의 통계청이 2010년 11월에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1995~1997년 사이의 그 기간 동안, 약 61만 명의 북한 주민이 아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북한에서 남한으로 망명한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은 생전에 '아사자 300만 명'설을 주장 했다.

이 작품은 굶주림을 면하고자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들이 중국을 횡단하여,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제3국으로 밀입국하는 과정을 그린 듯이 묘사한다. 생명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던 탈북민들이 주중 한국 대사관의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제3국의 국경을 찾아 나선 이유는 복잡하다.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자기 땅이 탈북민의 망명 경로로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또 한국 정부는 한국 정부대로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탈북자들이 주중 대사관이 아닌 제3국으로 밀입국한 다음, 그곳의 한국 대사관에서 망명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보통 7000킬로미터씩이나 걸리는 힘든 여로 끝에 도착했던 제3국에서도 탈북자들은 희망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제3국은 밀입국한 탈북자를 자신들의 법 논리에 따라 중국으로 추방하기 일쑤였다. 제3국으로부터 밀입국자를 넘겨받은 중국의 입장은 난처했다. 법대로라면 북·중 외교 관계에 따라 이들을 북한에 송환해야 맞지만, 그렇게 하면 난민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우라는 국제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애초부터 중국에 입국했다는 법적 증명을 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인수를 거부하고, 제3국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런 와중에서 탈북자들이 느꼈을 불안과 공포는 우리들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다.

▲ <오래된 약속>(윤정은 지음, 양철북 펴냄). ⓒ양철북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숱하게 죽어가고, 또 수천 명에서 수만 명으로 추산되는 탈북자들이 중국 대륙을 전전하고 있었지만, 한국 정부는 두 가지 사항 모두에 뾰족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안으로는 보수·우익의 눈치를 보아야 했고, 밖으로는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북한의 기아 사태와 탈북자에 도움을 주고자 발 벗고 나선 이들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김아영은 한국의 한 민간단체가 베이징에 보호하고 있는 열세 명의 탈북자를 베트남 국경으로 인도하는 데 필요한 추가 인력으로, 서울에서 베이징으로 파견된 자원자다. 갓 대학을 졸업한 스물네 살의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민간 보고서를 통해, 북한 기아의 참혹상과 탈북자들의 간난을 알게 된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이 직접 목격한 것부터 식량을 구하러 나온 북한 사람들의 증언까지, 가히 충격적이었다. 먹을 게 없어서 손자를 가마솥에 넣고 삶아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전부 믿기는 힘들었지만, 그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얘기였다. 죽음에 이르는 굶주림이라는 것도 상상하기 힘든데, 굶주림에서 끝나지 않았다. 기아로 야기된 전염병과 질병, 강도와 약탈, 가족 해체, 여성들에 대한 인신 매매 등 입에 담기 힘든 내용이었다.

보고서를 읽고 난 후부터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침, 점심, 저녁에 뭘 먹을까 고민하는 내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다. 지독한 배고픔이라는 것, 상상하기도 힘들었지만 상상하는 것도 힘에 겨웠다. 보고서를 읽은 내가 그러할진대 직접 작성했던 이들은 어땠을까. (211~212쪽)


그녀가 읽었던 민간 보고서는, 김일영이라는 또 다른 민간 활동가가 작성한 것이다. 그녀가 평범했듯이, 최초의 민간 보고서를 쓴 그 역시 1년 전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에 불과했다. 중국에 출장을 갔다가 조선족을 통해 북한의 식량난을 알게 된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선족을 따라 조·중 국경까지 가서 소문으로 들은 사실을 확인했다. "국경 근처에 시체가 즐비"한 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은 그는 "거의 반은 미친" 상태로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고, "만사를 다 제치고 친구들이 더 건너"(211쪽)가서 만들어진 것이 이 작품에 나오는 북한 기아와 탈북민을 돕는 순수 민간인들의 비상 조직이다.

이들은 자신의 활동비는 물론이고, 탈북 희망자를 중국 땅으로 인도하는 중국과 북한의 조직책(탈북 브로커)에게 주어야 하는 '몸값', 그리고 탈북자의 생활비와 이동비를 마련하고자 신혼집의 전세금을 빼거나 맞벌이 부부가 애써 벌어 놓은 저축을 털었다. 비유하자면, 이 모임은 마치 질 나쁜 '다단계 판매' 조직 같아서, 여기에 한번 빠져들면 자신의 모든 돈을 강탈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명마저 위태로웠다. 국내의 국가보안법은 임의로 북한 사람들을 접촉하거나 만나는 행위 자체를 금지했으니 현행법에 저촉됐고, 중국 공안에 발각되면 감옥에 갈 각오마저 해야 했다.

이를테면, 김아영 역시 위험한 다단계 판매 조직에 포섭되듯이 북한 기아와 탈북민을 돕는 민간인 조직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데, 그녀가 탈북자를 제3국 국경으로 인도하는 데 필요한 추가 인력이 되기로 자원한 진정한 이유는, 워낙 소박한 것이었다. 그녀를 들뜨게 한 것은, "무엇보다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사람으로 금기시되었던 북한 동포를 만난다"(213쪽)는 호기심이었다.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는 북한 동포에 대한 김아영의 호기심은 단 "일주일"(222쪽) 사이에 채워졌다. 제3국으로 이동하기 전에 집단으로 머물렀던 베이징 아파트에서, 여덟 명의 북한 탈북자들이 지지고 볶는 이야기는 남한 사람들이 벌이는 일상사와 다른 게 하나도 없다(다섯 명은 다른 안가에 있었다). 편 가르기, 이기심, 의심, 음모, 따돌림…. 거기엔 선인과 악인, 집단주의자와 개인주의가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말한다.

남한 사회에서는 북한 사람을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북한 인민들은 단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북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구별해서 보기 시작했다. 나에게 더 이상 북한 사람들은 하나의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았다. (238쪽)

인용된 대목은, 이 작품에 돌연, 광채를 부여한다. 대개의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내면이나 욕망이 깨끗이 소거된 것으로 여긴다. 그러고 나면, 북한 주민 전체를 '김일성 어버이'니 '주체사상'이니 '민족의 원수 미제'니 하는 선동과 혼연일체가 된 '단 하나 모습'으로 상상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비로소 발견한 것은, 불법 체류자라는 불안한 신분인 채 생일 특식을 요구하고, 보위부의 끄나풀이었던 북한에서의 지위를 자랑하고, 쌍꺼풀 수술을 하고, 성욕을 발동하는 인간의 심부 깊숙이에 자리 잡은 또 다른 동일성이다. 앞서의 '단 하나의 모습'이 남한 사람에 의한 북한 사람에 대한 인식적 굴레 씌우기와 구별 짓기라면, 뒤에 깨닫게 된 동일성은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하등 다르지 않다는 의미에서, 새로 얻게 된 또 다른 '단 하나 모습'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오래된 약속>은 남한의 극우 반공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1990년 초부터 시작된 탈북자들의 탈북 동기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극우 반공주의자들은 탈북자들의 탈북 동기를 반체제나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라고 분석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 작품은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배고픔 때문에 체제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북한 주민들"(150쪽)이라고 탈북 동기를 명확히 밝힌다. 그것은 나도 짐작할 수 없는 지은이의 이념적 좌표 때문이 아니라, 대량 아사가 원인이 되었던 당시의 탈북 사태에 근거한 진실이다. 하지만 어언 10여년도 더 지난 지금, 변화의 조짐도 있다.

김정일 사후의 '북한 특수'를 기대하고 서둘러 번역된 브라이언 마이어스의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고명희·권오열 옮김, 시그마북스 펴냄)는 북쪽 국경이 허술해졌는데도 북한 주민들이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에서만 탈북을 감행"할 뿐, 북한 체제에 대한 "믿음과 사랑만큼은 저버리지 않는"(14쪽)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반면, 히라이 히사시의 <김정은 체제>(백계문·이용빈 옮김, 한울 펴냄)는 이 작품의 시간적 무대가 되었던 당시와 현재는 사정이 많이 다르고, 따라서 탈북자의 탈북 동기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재의 탈북 동기는 북한 사회의 다종다양한 모순에서 비롯하며, 결정적인 원인으로 "2002년 경제 개혁 이래의 부분적인 시장 경제적인 시스템의 침투가 북한 주민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있는"(418쪽) 중이라는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뒤늦은 부연이지만, 윤정은의 이 작품은 1997년 12월, '핑퐁 난민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뉴스 매체를 도배했던 사건에서 취재한 작품이다. 일곱 가족으로 이루어진 13명의 탈북자들이 7000킬로미터의 '죽음의 엑소더스' 끝에 베트남에 당도하는 데 성공했지만, 밀입국자라는 불안한 지위는 베트남 정부의 국경 추방과 중국 정부의 북한 송환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신병 처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의 신문 기사 일부를 인용한다.

이들의 망명 신청은 그동안 연변 등지에서 북한 식량 난민 돕기에 앞장섰던 한 단체의 도움 아래 이루어 졌다. 그러나 한국 대사관 쪽은 20일 남짓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가 11월 9일 베트남 당국에 이들의 신병을 인도했으며, 베트남 당국은 그 다음날 이들을 중국 쪽으로 추방했다. 그 뒤 중국 당국은 이들을 체포해 다시 하루 만에 베트남 쪽으로 내몰고, 베트남 당국은 또다시 이들을 중국 쪽으로 내쫒는 등 이들을 두고 두 나라 사이에 '핑퐁 게임'이 계속됐다. 결국 이 과정에서 북한 주민 아홉 명은 양국 경비병의 총격에 의한 살상과 북한에 송환될 것을 우려해 두 나라 국경 지대 지뢰밭으로 잠적해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 1997년 12월 4일자)

이들이 핑퐁 난민이 된 사연은 앞서 설명된 그대로다. 이 사건은 북한의 참혹한 기아 사태와 중국 대륙을 떠돌고 있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탈북자의 실상을 널리 환기시킨 동시에, 당시의 탈북자들이 '조국을 배신'한 이유를 명확히 들려준다. 다시 신문 기사의 일부다.

탈북자 열세 명과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 관계자들은 오후 4시께 한국 대사관에 들어갔다. 대사관의 한 직원은 "어디서 왔느냐, 누구냐"고 물었다. 그들은 "북한에서 온 식량 난민들"이라고 대답했다. (<한겨레> 1997년 12월 5일자)

또 핑퐁 난민 사건은 북한의 대량 기아 사태와 숱한 탈북자의 실상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력 부재와 현지 외교관들의 무사안일을 아울러 드러냈다. 이런 취약성은 올해 초부터 재개된 탈북자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공연한 강제 송환(북송)으로 불거졌다. 중국 측의 처사는 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법 위반이 분명하지만, 탈북자 문제와 관련하여 여태껏 안정된 처리 방안을 완비해 놓지 못한 한국 정부의 책임도 크다.

여기에 덧붙일 사항은, 탈북자의 강제 송환이라는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보수 언론과 단체들의 이념 공세다. 이들은 '인권, 인권하던 좌파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제법 살천스럽게 짖어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가 우스운 이유는 왜 일까?

먼저 보수 언론과 단체들은 유독 탈북자 송환 문제가 나올 때만 '인권'을 부르짖기 때문이며, 다음으로는 북한에 대한 그 어떤 인도적 지원도 북한 정권을 연장 시키는 것이라며 반대해 온 그들 또한 탈북자 송환 사태를 만든 책임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를 이야기 할 때는 '낙숫물 효과(trickle down)'를 그렇게도 좋아하던 치들이, 북한에 쌀을 보내면 고급 간부와 군인들이 다 먹어치우고 굶주린 북한 주민에게는 한 톨도 돌아가지 않는다고 부르댄다니!

그러나 저런 희극마저 희극으로 끝나지 않고 비극이 되고 마는 것은, 그간의 보수 언론과 단체들이 북한과의 대결을 통한 '북한 정권 붕괴'라는 방법 이외의 그 어떤 통일 정책이나 통일 운동도 원천 봉쇄해 왔던 전력이다. 현재 이들은 인권을 정치 전술 삼아, 좌파를 향해 오로지 자신들의 통일 방안만을 수긍하라고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민간의 모든 통일 운동과 인도적 사업을 핍박하거나 방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 기지로 건설되고 있는 게 뻔한 강정 해군 기지의 예에서 보듯이, 중국과의 신뢰 관계 구축에 실패한 한국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탈북자 문제를 양해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같다. 이 문제에 관해 아무런 대책이 없는 정부는 내심, '남-남' 갈등이 더욱 불붙기를 바라며, 그 뒤에 숨어 자신의 무능을 은폐하고자 할 것이다. 지배자들은 늘 그래왔지만, 이번 정권은 이 방법을 너무 좋아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오래된 약속>을 일관되게 '작품'이라고 일컬었다. 이유는 창작보다 더 생생한 현실이 소설을 조롱할 때, 반대로 현실의 한 자락을 통째 부정하고 싶을 때, '소설 쓰고 있네'라는 부정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이 갖고 있는 그 부정적인 용례로부터, 이 작품을 온전히 지켜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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