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레 3월 11일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딱 1년이 됩니다. 선생님께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리고자 1인 시위를 비롯한 온갖 퍼포먼스를 한 지도 1년이 됩니다. 저번에 잠시 만났을 때, 얼굴이 까칠해서 마음이 아팠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자 회견을 했던 지난 2월 22일, 선생님은 짧은 편지로 울분을 표시하였습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노무현 정부 총리 때 했던 말("원자력 5대 강국으로 진입하자!")을 언급하면서, 핵 발전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강 기자, 요즘도 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올라오던 그 뉴스를 꿈에서 보곤 합니다. 그 후쿠시마의 비극이 부산에서, 울산에서, 영광에서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저 무심한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대통령의 그런 얘기에 분노하지 않는 시민들은 또 어떻고요? 이런 상황이 절망스럽습니다."
선생님의 절망이 배어 있는 편지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를 보고 나서도 사람들은 왜 변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저 역시 지난 1년간 계속해서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충격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요?
ⓒ프레시안 |
후쿠시마, '무지'와 '무심' 사이에서
1년 전 한국 언론은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일본 현지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연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뉴스를 도배했습니다. 몇몇 언론은 취재 준비도 제대로 못한 기자를 후쿠시마 현지로 급하게 보냈다가 새로운 뉴스메이커가 되기도 했고요. 현장에 파견된 기자들이 방사성 물질에 피폭되었으니까요.
L 선생님께서도 언급하셨던,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원자로를 담아 두던 격납고가 폭발하던 모습은 특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절대로 핵발전소가 핵폭탄처럼 '펑' 하고 터질 리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저조차도 그 뉴스를 보고서는 영문을 모른 채 불안에 떨었으니까요. (핵연료 안에는 방사성 우라늄이 아주 적은 농도만 포함돼 있어서 폭탄과는 다릅니다.)
물론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었던 한국 언론 중에서 지속적으로 후쿠시마 사고를 보도한 곳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핵 발전의 위험에 무지한 이유 중 하나를 언론의 소극적인 보도 태도 탓이라고 질타했습니다. 한국 언론의 한심한 행태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국 언론이 후쿠시마 사고를 지속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으나, 초기의 보도만 놓고 보면 그 양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대다수 국민은 그 보도만으로도 핵발전소가 사고가 났을 때 얼마나 위험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지 생생히 체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 충격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것일까요?
최근에 닐 포스트먼이 1985년에 펴낸 <죽도록 즐기기>(홍윤선 옮김, 굿인포메이션 펴냄)를 정독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먼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 세계 곳곳의 온갖 전쟁, 범죄, 사고, 홍수와 같은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된 현실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도처에 흘러넘치는 정보는 이를 접하는 사람과는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다. 즉,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된 사회적, 지적 상황과는 무관한 정보라는 뜻이다. (…) 아침에 TV 뉴스나 라디오 또는 신문을 통해 접한 정보로 하루의 계획을 바꾸거나, 아니면 하지 않았을 일을 저질렀다거나, 무엇인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은 적이 얼마나 자주 있는가?
(…) 일상적인 뉴스는 대부분 그저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쓸모없는 정보의 집합체일 뿐 의미 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 삶과 무관한 정보가 도처에 흘러 넘쳐 '정보 대비 행동 비율'이 극적으로 낮아져버렸다. (…) 온 세계가 뉴스를 위한 배경으로 전락하자 사람들은 일말의 통제 감각마저 상실해 버렸다. (<죽도록 즐기기>, 114, 117쪽)
포스트먼의 이런 지적은 지금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뉴스가 유통되는 방식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충격적인 사실(fact)이 24시간 동안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전달이 되더라도 대다수 사람에게 그런 정보는 자신의 삶과 무관한 것일 뿐입니다. 보통의 생활인에게는 후쿠시마 사고보다는 일기예보가 좀 더 삶에 밀착된 뉴스일 테니까요.
더구나 그렇게 인터넷, TV 등을 통해서 제공되는 뉴스는 대개는 파편적인 정보입니다. 기사가 조금만 길어도 "길어서 못 읽겠다!" "<나는 꼼수다>처럼 한마디로 정리해!" 등의 댓글이 붙는 요즘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더 심화되었고요. 그러니 독자가 뉴스를 통합하고 해석하려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뉴스는 30초짜리 광고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1년 내내 전달한다고 한들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너무 적은 보도는 대중의 무지함을 낳는다면, 이런 식의 너무 많은 보도는 대중의 무심함을 낳습니다. 무지와 무심, 둘 중에 뭐가 더 무서운가요? 무지한 사람은 가르칠 수라도 있지만, 무심한 사람은 도리가 없습니다.
'위험'과 '안전'의 악순환
L 선생님,
지금부터 불편한 얘기를 털어놓겠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한국의 환경 단체를 비롯한 반핵 세력은 핵발전소의 '위험'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지겹도록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도 꿈쩍도 안 하는 정부, 여론이 야속한 나머지 사석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 이런 얘기도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사고가 한 번 나야해!"
반핵 세력이 위험을 강조하니, 찬핵 세력도 도리가 없습니다. 지난 1년간 찬핵 세력은 '안전'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지진 심지어 미사일 공격에도 안전한 한국 핵발전소의 신화가 대중에게 유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핵발전소가 위험해서 걱정이지? 더 안전한 핵발전소를 만들면 되잖아!"
무슨 얘기냐고요?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의가 '위험하다-안전하다' 이런 이항 대립 구도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전혀 엉뚱한 곳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논리대로라면, 반핵 세력이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하는 한 대중의 각성과 변화를 이끌어낼 가장 큰 기회는 더 큰 사고입니다. 안타까운 상황입니다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보가 무너지는 것이고, 지구 온난화가 초래하는 문제를 확인하려면 심각한 기후 재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찬핵 세력의 상황은 더 아이러니합니다. 반핵 세력이 위험을 강조할수록 이들은 더 안전한 핵발전소 개발과 건설을 향해서 일로매진합니다. 안전한 원자로를 개발하고자 더 많은 연구 자금과 연구 인력이 필요합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핵발전소 안전장치의 성능이 향상된 것도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핵에너지 의존을 탈피하는 에너지 전환을 바라는 L 선생님과 같은 분에게는 이중의 악재입니다. (저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정말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로 무장한 위험성이 대폭 감소된 핵발전소가 등장한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온 처지라면,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환경 운동가 일부가 핵발전소에 대한 태도를 바꾼 데도 이런 사정이 작용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평소 핵발전소의 위험을 강조해온 그들은 지구 온난화라는 더 큰 위험이 나타나자,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핵발전소의 위험에는 눈을 감아 버린 것입니다. '위험하다-안전하다' 이항 대립 구도가 낳은 또 다른 부작용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핵발전소를 용인할 리 없습니다. 반핵 세력은 좀 더 안전해진 핵발전소의 또 다른 위험, 시스템의 불확실성 등과 같은 것을 강조할 테지요. 그렇다면 찬핵 세력은 어떻게 나올까요? 당연히 그런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연구 자금과 연구 인력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핵 발전은 계속됩니다. 우라늄이 고갈될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는 또 핵폐기물을 재처리해서 활용하자고 하겠군요.
'안전'에서 '윤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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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력의 거짓말>(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프레시안 |
고이데는 도호쿠 대학 원자력공학과 재학 시절에 센다이 근처에서 벌어진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어떤 주민 집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생을 반핵 운동에 바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반핵 운동을 결심하면서도 전공을 바꾸지 않은 것은 반핵 운동의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서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후 고이데는 연구자로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일생 동안 외로운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고이데의 반핵 메시지 중에 들어있는 독특하게 윤리적인 시각이다. 그는 자신이 반핵 운동을 계속해온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핵의 안전 문제가 아니라 핵을 둘러싼 차별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자력의 거짓말>, 13~14쪽)
마침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도 고이데의 책에서 "윤리적인 시각"을 포착해 강조하고 있어서 소개합니다. 고이데의 책에 묶인 글들에 녹아 있는 윤리적인 시각은 김종철 발행인의 말대로 "핵을 둘러싼 차별 구조"입니다. 도대체 핵을 둘러싼 무슨 차별 구조가 있다는 것일까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핵발전소 노동자.
최근에 가톨릭대학교 이영희 교수를 통해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소개받았습니다. 일본의 도모히코 스즈키가 쓴 <야쿠자와 핵발전소(ヤクザと原発)>. 이 책은 이번에 후쿠시마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을 비롯한 일본의 핵발전소와 범죄 조직 야쿠자 간의 연계를 주장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선생님, 야쿠자와 핵발전소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의 핵발전소는 1990년대부터 야쿠자 조직원을 고용해 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일본의 핵발전소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최악의 직장이기 때문입니다. 야쿠자는 바로 이런 핵발전소에 노동자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온 것이지요.
도모히코는 그 자신이 2011년 여름 수개월간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위장 취업을 한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사고를 수습하던 노동자는 제대로 맞지 않는 방사성 물질 필터가 부착된 마스크를 쓰고, 작업장에서 쫓겨나 삯을 제대로 못 받을 게 두려워 개인별 방사능 측정 배지를 양말 안에 넣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규직 노동자보다 못한 보호 장구를 지급 받으며 험한 일을 하는 이들은 대개가 노숙인, 실업자, 야쿠자에게 빚 독촉을 받는 사람 등이었습니다. 최근에 일본의 미야베 미유키가 쓴 소설 <화차>(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가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지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며 만신창이가 된 여주인공의 안타까운 사연이 바로 지금 후쿠시마를 비롯한 핵발전소에서 진행 중인 거예요.
일본의 원자력자료정보실 통계를 보면, 피폭 노동자의 수는 지난 30년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대부분은 도쿄전력과 같은 전력회사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을 통해서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들의 희생을 통해서 핵발전소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아쉽게도, 핵발전소 노동자의 피폭 방사선량이 다른 산업에 비해서 많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국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심지어 안전하다고 확신하면서) 수만 명이 핵발전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핵발전소는 그들의 희생 없이는 한 순간도 가동할 수 없습니다.
둘째, 지역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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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김원식·고노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녹색평론사 |
"이번에 지진이 난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는 전력 회사 '도호쿠전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곳은 '도쿄전력'이잖아요. 혹시 이상하다 생각해 본적은 없으세요?"
이런 질문을 받고서야 사람들은 '아!' 하고 탄식을 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후쿠시마를 비롯한 도호쿠 지방이 아니라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도쿄로 공급이 됩니다. 그러니 후쿠시마 핵발전소도 도호쿠전력이 아닌 도쿄전력이 관리하는 것이지요.
후쿠시마 핵발전소 단지가 만들어지던 1950~60년대만 하더라도 도호쿠 지방은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도호쿠 지방이 얼마나 차별을 받는 낙후된 곳이었는지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일본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올림픽의 몸값>(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펴냄)을 보면 생생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강원도 삼척, 경상북도 울진, 영덕을 새로운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했습니다. 삼척, 울진, 영덕이 어떤 곳인가요? 변변찮은 공장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낙후된 그곳 주민에게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질 전기가 필요할 리 없습니다. 지금 삼척, 울진, 영덕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위해서 또 한 차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치우 어르신은 어떻고요? 고압 송전탑 탓에 평생 농사를 짓던 땅을 빼앗긴 70대 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 외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하소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고압 송전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바로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서울, 대전, 대구 등으로 옮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울 한강에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선언을 하지 않는 한, 이런 식의 희생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지역의 희생을 전제한 핵발전소를 유지하는 게 과연 윤리적인가요? 서울에 사는 이들은 일본에서 날아온 방사성 물질이 섞인 비를 걱정하기 전에, 자신의 안락한 일상생활이 누구의 희생 덕분인지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미래 세대.
흥미로운 일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핵폐기물의 위험에 대해서 대다수 시민이 여전히 무지하다는 사실입니다. 적지 않은 언론에서 고준위 핵폐기물은 수만 년, 수십만 년 이상 자연과 격리가 필요한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렸는데도 대다수 시민은 금방 망각합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익숙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이 반감기는 방사성 물질의 방사능이 원래 값의 절반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확률적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3·11 사고 이후에 아이 분유를 비롯한 각종 먹을거리에서 발견되는 방사성 물질 '세슘 137'의 반감기는 약 30년입니다.
'반감기 30년'은 30년이 지나야 방사성 세슘의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0년이 지나도 세슘은 안전하지 않아요. 나머지 절반의 세슘은 여전히 방사선을 내뿜을 테니까요. 보통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를 서른 번 정도 지나야 완전히 방사능을 잃습니다. 그러니 세슘이 안전해지려면 900년(30년×30)이나 걸리는 셈입니다.
(다행히 사람은 몸속의 위험한 물질을 끊임없이 밖으로 배출하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몸속으로 들어온 방사성 세슘은 원래의 반감기와는 상관없이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보통 세슘의 절반 정도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10일 정도입니다. 물론 그 동안 세슘의 방사선은 알게 모르게 몸속 곳곳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핵폐기물 안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방사성 물질 '플루토늄 239'는 반감기가 2만4000년입니다. 반감기가 2만4000년이니, 플루토늄이 방사능을 잃는데 걸리는 시간은 실제로는 수십 만 년(!)이 걸릴 것입니다. 실제로 핀란드는 핵폐기물을 10만 년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처리장을 짓는 '온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0만 년이라니요! 지구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게 바로 약 13만 년 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수천 년, 수만 년 후의 미래 세대에게 핵폐기물의 위험을 어떻게 경고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선사 시대 동굴에 쓰인 기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나요? 국어 시간에 200년 전에 한글로 쓰인 소설도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해독할 수 없었잖아요.
그래서 유일한 해결책은 말 그대로 '원자력 족(族)'을 만드는 방법뿐이라는 암울한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핵폐기물 처리장을 지키는 종교 조직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들이 '금기'를 이어가게 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특정한 장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기' 말입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클로드 카리에르와의 대담을 실은 <책의 미래>(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서 핵폐기물을 둘러싼 이런 사정을 언급하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그냥 나 혼자만 해본 생각입니다. 핵폐기물을 묻되, 매우 희석된 상태, 즉 방사능이 아주 약한 상태의 폐기물을 맨 위층에 두고, 점차로 방사능이 강한 층들을 깔아 나가는 겁니다. 만일 외계인(혹은 미래 세대-인용자)의 실수로 그 폐기물이 손이나 혹은 손처럼 사용하는 다른 기관이 닿는다 하더라도, 그는 단지 손가락 한 마디를 잃게 될 뿐입니다.
만일 더 해본다면 손가락 하나를 잃게 되겠죠. 하지만 그가 더 이상 파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책의 미래>, 198~199쪽)
핵 발전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세계 어느 나라도 만들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불가능성 때문입니다. 핵발전소는 이미 대기 중에 배출된 방사성 물질뿐만 아니라 에코와 같은 걱정을 해야 할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쓰레기의 처리를 미래 세대에게 떠넘깁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요?
'후쿠시마 국민' 아닌 '밀양 국민'!
L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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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당 선언>(녹색당 기획, 이매진 펴냄). ⓒ이매진 |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면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입니다. 한국에서 녹색당을 준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은 <녹색당 선언>(녹색당 기획, 이매진 펴냄)을 보면, 영덕의 박혜령 씨가 등장합니다. '돈의 노예'로 살았던 도시 생활에 지쳐 9년 전 영덕 시골 마을로 들어갔던 박 씨는 핵발전소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총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밀양의 이치우 어르신은 어떻습니까? 핵발전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송전탑이 앗아간 그의 넋을 위로하고자 17일 밀양으로 가는 '탈핵 희망 버스'가 기획되고 있습니다. 다수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그의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조명될 때, 정의롭지 못한 에너지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받는 전국 곳곳의 제2, 제3의 희생자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핵발전소에서 피폭을 당하며 노동에 종사하는 이름 없는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떻습니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우리가 시급히 했어야 할 일이 바로 핵발전소의 고용 관행, 작업 실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아니었을까요?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는지 알려야 합니다.
이런 '작은 것들의 정치'가 모여서 거대한 대항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에서도 핵 발전이 아닌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가장 먼저 '탈핵'을 선언한 독일의 힘도 수십 년간 축적해온 이런 대항 네트워크(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의 노동자, 녹색당 정치인 등)가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이 마땅히 3·11을 앞두고 자신을 '후쿠시마 국민'이라고 규정해야 하듯이, 지금 우리는 자신을 '밀양 국민', '영덕 국민', '삼척 국민'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3·11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의 '삶과 무관한' 재난 영화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삶에 뿌리내린 문명사적 전환의 순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L 선생님의 건투를 빕니다.
2011년 3월 9일
강양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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