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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상하이 대홍수, LA 대가뭄…서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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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상하이 대홍수, LA 대가뭄…서울은?

[프레시안 books] 로렌스 스미스의 <2050 미래 쇼크>

대학 안팎에서 공부를 하는 이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눠 보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언론의 입맛에 맞는 칼럼이나 써주며 매명하는 이들이나 혹은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어쩔 줄 모르는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 진지한 학자들이 미래 예측에 난색을 표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사회과학자는 미래 예측은 지식인의 역할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한국에서 적지 않은 팬을 거느린 이매뉴얼 월러스틴 같은 학자가 예외에 속하는데, 진지한 학자들 일부는 노골적으로 그와 ('세계 체제'를 주장하는 이들을) '종말 서사'에 경도된 미래학자 수준으로 폄훼한다. 지식인의 역할이 '전망과 예측'보다는 '해석과 반성'에 머물러야 한다는 이런 주장에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대중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이런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고서 꾸준히 미래 예측을 시도하는 이들이 있다. 앨빈 토플러, 자크 아탈리, 레이 커즈와일 같은 이들이 그렇다. 정치적 성향부터 교양의 취향까지 천차만별인 이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는데, 이들의 미래 예측이 현실의 여러 가지 조건에 대한 엄밀한 이해를 바탕에 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바람 혹은 몽상이라는 사실이다.

▲ <2050 미래 쇼크>(로렌스 스미스 지음, 장호연 옮김, 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이런 사정 탓에 나는 미래를 예측하는 책을 일단은 한 쪽으로 제쳐두는 편이다.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책임을 밝힌 <2050 미래 쇼크(The World in 2050)>를 보면서 시큰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틀에 걸쳐서 완독을 하고, 서평까지 쓰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저자인 로렌스 스미스 때문이다. 평소에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지 모르는 기후 변화 뉴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던 터라서, 스미스가 그 분야의 진지한 학자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해당 분야의 속사정에 정통한 그가 전망하는 2050년의 모습을 들여다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로렌스 스미스가 한국어 판 책날개에 "지구 온난화는 사기다"라고 주장하는 프레드릭 싱어의 책이 홍보된 사실을 알면 아마도 화들짝 놀랄 것이다. 스미스가 책에도 수십 번은 강조하듯이 '지구 온난화' 자체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충격 중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조건이다. 이메일로 스미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려다 참았다.)

책을 빨리 손에 잡은 또 다른 이유는 지난주 한 신문에 실린 조잡한 서평 혹은 소개 기사 때문이다. 그 기사를 쓴 이는 호기롭게 "생태주의 신앙을 가진 이"나 "환경 단체"는 "이 신간을 외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장담과는 달리, 생태주의자와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나는 아주 흥미롭게 이 책을 읽었다.

늘어나는 인구, 고갈되는 자원…

앞에서 언급했듯이 <2050 미래 쇼크>(장호연 옮김, 동아시아 펴냄)는 2050년 미래 인류의 삶을 규정할 네 가지 조건을 강조하면서 시작한다. 늘어나는 인구, 고갈되는 자원, 세계화 그리고 기후 변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로렌스 스미스는 이 네 가지 조건을 압도할 만한 충격, 예를 들어 전쟁, 전염병,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 혁명 등은 없을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니 이 책의 설득력은 바로 스미스 시뮬레이션의 기초가 되는 이 네 가지 전제 조건에 달렸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늘어나는 인구. 스미스는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가 92억 명에 이르고, 그 이후로도 계속 조금씩 늘어나리라고 전망한다. 물론 한국을 비롯한 상당수 나라는 인구가 오히려 줄 것이고, 대개는 노인들 세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한 이런 나라가 활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미스는 인구가 넘쳐서 고민인 나라들(남아시아, 아프리카 등)로부터 이주해온 노동자들을 얼마나 사회에 잘 통합시킬지가 한 나라의 활력과 직결되리라고 본다. 수긍할 수밖에 없는 통찰이다. 70대, 80대가 된 우리가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으려면 이주 노동자에 대한 지금의 차별을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

다음은 고갈되는 자원. 스미스 역시 이견이 없다. 2050년이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석유, 천연가스, 석탄 그리고 우라늄을 이용한 핵 발전에 의존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풍부한 자원은 없다. 국가, 기업은 혈안이 되어서 석유, 천연가스, 석탄과 같은 자원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며, 바닥을 드러내는 우라늄에 노심초사해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스미스는 인류가 바닥을 드러낸 석유 대신 천연가스에 앞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의존하리라고 강조한다. 독특한 주장은 아니다. 그동안 국내외 많은 전문가는 석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바꿀 것을 주장해 왔다. 거기서 대안으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이 바로 천연가스다.

바람, 햇빛 에너지는 어떨까? 스미스는 풍력 발전, 태양광 발전(책에서는 몽땅 "태양열"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태양광'이라고 써야 옳다)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이 2050년에 주류가 될 가능성은 적게 본다. 공감한다. 다만 2050년이 아니라 2100년 그리고 더 미래의 인류 생존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더욱더 커져야 마땅하다.

핵 발전에 대한 스미스의 입장 역시 평범하다. 징검다리 에너지! 더 나은 대안이 나올 때까지 핵 발전에 대한 의존은 불가피하리라는 국내외 에너지 전문가의 의견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스미스의 접근은 그보다는 훨씬 더 균형 감각이 있다. 그는 핵 발전을 옹호하는 이들이 침묵하는 우라늄의 고갈에 주목하고, 또 핵폐기물의 재처리로 발생한 플루토늄이 핵무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언급한다.

2011년 3월 11일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후에 스미스의 생각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확신하건대, 회의적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래에 관한 '매력적인' 초상화라니!

이제 로렌스 스미스가 언급한 또 다른 전제들을 검토할 차례다. 여기서부터는 책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먼저 세계화! 스미스는 세계화가 '진화'와 같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인식을 부정한다. 즉, 지금의 세계화는 영국, 미국과 같은 특정 국가와 (그것의 수혜를 입는) 특정 세력이 인위적으로 만든 과정이다. 이런 스미스의 관점대로라면, 세계화는 언제든지 역전될 수도 있다.

스미스는 전쟁, 세계화에서 지역화로의 변화, 자원 고갈 등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여긴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춘다. 왜냐하면, 세계화의 역전은 전형적인 미국 시민인 스미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는 책 전체에 걸쳐서 두 분야의 주식 구매를 권하는데 하나는 햇빛 에너지, 다른 하나는…. 책을 읽어보시라!)

"정치적 재앙은 예측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내가 상상하는 2050년의 세상은 세계화가 지금보다 더 진전되어 한층 통합된 세상이다. 그러나 세계화 동향이 앞으로 40년 동안 가속화될지 늦춰질지 아니면 역행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네 가지 지구적 힘 가운데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세계화다." (348쪽)

이제 스미스의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인 기후 변화를 점검할 차례다. 사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바로 현장 과학자가 들려주는 기후 변화 전망이 여러 가지 정보와 생각할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태주의자 혹은 환경 단체가 이 책을 멀리해야 한다는 앞에서 언급한 기사의 호언은 완전히 틀렸다.)

스미스는 기후 변화가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우리 앞에 펼쳐보이리라고 전망한다. 그 미래는 뉴욕, 마이애미, 상하이, 도쿄, 오사카 등이 잠기고, 캘리포니아가 만성적인 가뭄에 시달리는 그런 세상이다. 그리고 (스미스의 시뮬레이션 속에서) 특히 기후 변화에 취약한 저위도 국가는 더 끔찍한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끔찍한 스미스의 예측을 놓고서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지구의 미래에 관한 너무나 매력적인 초상화"라고 얘기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후 변화의 효과마저도 지역적으로 '불평등하게' 나타나리라는 스미스의 전망 때문이다. 저위도 국가와는 다르게 고위도 국가는 지구 온난화가 초래하는 기후 변화가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북위 45도 이상에 위치한 캐나다, 핀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 그리고 알래스카(미국)는 얼음이 녹아서 개발이 용이해진 북극의 자원, 따뜻해진 기후 덕분에 늘어나는 작물 생산 등으로 오히려 더워진 지구에서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책의 언론 기사 제목에 "뉴 G8" 등이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가? 솔직히 저위도 국가와 그 쪽 사람들이 고통을 겪든 말든 스미스의 예측이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 2050년에 위도 45도 이상의 G8이 뜨면 그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한반도에도 떡고물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그래서 나도 눈 딱 감고 다이아몬드처럼 "미래에 관한 매력적인 초상화"라고 찬사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선 스미스의 시나리오대로 기후 변화의 결과가 불평등하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곧바로 정치의 문제로 이어진다. 자신이 초래하지도 않은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재앙을 맞은 저위도 국가 혹은 공동체들이 마냥 꾹 참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도대체 뭔가? (그래서 책 말미에 언급한 <펜타곤 보고서>가 엉뚱하지 않다.)

더 큰 심각한 문제는 스미스 자신도 머뭇대듯이 이 책의 기후 변화 시나리오가 포착하지 못하는 새로운 변수의 등장이다. 만약 북극권의 개발로 영구 동토층에 갇혀 있던 메탄과 같은 온실 기체가 대량으로 유출될 경우에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스미스가 솔직하게 토로했듯이 "이 재앙이 계속 잠잠한 채로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까?"

기후 변화 시나리오와 관련해서 이 책에서 침묵하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바로 연구의 편중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듯이 20세기 내내 북극이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지구 온난화 연구는 대부분 북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스미스 자신이 북극에서 지구 온난화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현재의 기후 변화 시나리오는 이런 연구에 기반을 둔 것이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북극만큼이나 기후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역으로 남극이나 혹은 히말라야 같은 적도 부근을 주목한다. 그러나 (스미스도 서남극 빙상 붕괴의 재앙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토로하듯이) 이 지역의 기후 변화 연구는 걸음마 수준이다. 심지어 히말라야 지역의 연구는 중국, 인도 등의 비협조로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이렇게 우리는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기후 변화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정말로(!) 많다. (앞으로 20년 혹은 30년은 더 연구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가득하다. )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기후 변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북극권을 '기회의 땅'이라고 예언(!)하는 것은 얼마나 순진한 또 위험한 일인가? 정말로 스미스의 답변을 듣고 싶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이 책은 현재까지의 기후 변화 연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유용한 지식과 균형 감각에 기반을 둔 지적인 통찰이 빛을 발하는 책이다. 이틀간 저자와 가상 토론을 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당분간, 여러 지인에게 읽어보라고 권할 책이 생겼다.

글머리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사실은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강조하는 일이라고 지적했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세상의 공명을 받으면 정말로 미래가 그렇게 펼쳐질 수도 있다. 저자 스미스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책의 끝머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와 생각은 다르지만, 전적으로 공감한다.

컴퓨터 모양의 추산은 절대적인 규율이 아니며 사회적 선택에 따라 바뀔 수 있다. (…) 네 가지 지구적 힘도 결국은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렸다. 그리고 개인의 선택을 통해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 따라서 내게 더 중요한 질문은 용량이 아니라 욕망의 문제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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