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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중국 없는 한국,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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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중국 없는 한국, 행복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를 묻다·19] 동아시아, 자기비판과 자기 전환의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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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편지군요. 이병한 님이 짚어주었듯이 편지를 주고받는 수개월 동안에도 정말 여러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아시아를 묻는다는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 속에 자신을 두고 지식의 감도를 시험해야 하는 과정이겠죠. 아울러 이병한 님이 강조했듯이 장기적인 국면의 변화를 통찰해내는 사유의 긴 호흡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잠시 우리의 대화를 되돌아보겠습니다. 오간 편지들에서 동아시아는 단순한 '지역 범주'만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동아시아는 탈냉전을 거쳐 복원된 '지역 지평'이자,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들의 지역 전략이 관통하는 '지역 질서'였습니다. 아울러 이 지역 내에서 식민주의와 근대주의를 극복하고 평화 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지역 연대'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지역 지평, 지역 질서, 지역 연대라는 세 차원은 동아시아라는 담론 공간을 입체화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도 동아시아는 맥락에 따라 다른 함의를 띠고 등장했습니다.

동아시아는 분명 모호한 개념입니다. 그것은 명백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종족적·종교적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단위로 표상되며 당면한 문제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움직입니다. 저는 현재 각국이 동아시아를 지역 수준에서 자국을 확대 재생산하는 논리로 활용하는 까닭에 동아시아 상에는 균열이 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이병한 님은 지금의 동아시아가 발 딛고 있는 복잡한 역사 지층을 주시했죠. 이처럼 우리의 대화를 통해 동아시아가 지니는 복잡한 내연과 외포는 얼마간 드러났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꺼내놓은 문제들을 갈무리하기에는 제 능력이 모자랍니다. 대화를 마무리할 시간에 이르렀으니 저는 제가 바라는 동아시아 상을 밝히는 것으로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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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님도 지적했듯이 역내에서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감각은 나라마다 몹시 불균형하며, 대국과 소국 사이에는 감각의 차이도 가로놓여 있습니다. (물론 지난 편지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취사하는 것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역내 국가들은 함께 동아시아 공동체를 입에 담지만 '동아시아 공동의 번영'이라는 수사로는 감출 수 없는 적대 관계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분단, 과거사 문제, 양안 문제, 영토 분쟁, 경제 패권 등의 문제가 상존하여 한국과 북한, 중국과 타이완,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북한과 일본 사이에는 어지러운 갈등이 잠재해 있습니다. 긴장 관계가 어려 있는 각국 간 역사 인식의 충돌, 현실적 규모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지역 인식과 세계 인식의 간극은 동아시아의 문제 상황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내 국가들은 직접적인 횡적 연결망을 구축하지 못한 채 미국과의 양자 관계에 치우쳐있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위계 질서가 동아시아 지역 질서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역내 국가들 사이의 갈등이 고조될수록 미국이 동아시아에 내재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됩니다.

이처럼 동아시아 협력은 요원합니다. 그러나 바로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요청되는 것이 지금의 형국입니다. 그리하여 긴장 관계로 맺어진 이곳에서 연대를 일궈내려면 동아시아론은 직관적 협력의 바람보다 아득하니 복잡한 성찰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편지에서 저는 미진하게나마 그 대목에 힘을 들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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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 까닭은 동아시아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아시아를 하나의 통일된 단위로 상정하려는 시도들은 있습니다. 먼저 동아시아를 비서양과 구분되는 문화권으로 설정하려는 동아시아 연구가 존재합니다. 즉, 한자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삼고 유교 전통에 기반을 둔 국가주의, 관료제, 가족 제도, 부계율, 혈연 조직을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상정하는 것입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동아시아는 서구의 이성 중심주의, 주객 이분법, 인간과 자연의 대립, 개인주의를 극복하는 문명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교와 같은 지역 인자를 찾아 동아시아를 문화권으로 설정하려는 시도는 무망합니다. 유교만으로는 중국의 문화적 구성조차 설명해내지 못합니다. 더욱이 서구 근대의 이원론적 세계관과 차별화된 일원론적 세계관, 자연합일의 사상이라면 동아시아만이 아니라 유럽의 사상 전통 안에서도 존재했으며 인도나 아프리카와 같은 타 지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발상이 지닌 추상성은 현실 앞에서 노출된 지 오래입니다.

보다 강조되어야 할 사실은 문화를 단위로 동아시아의 통일성과 특수성을 도출해내려는 것은 서양을 거울로 삼아 반사된 논리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동아시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내세우려는 시도는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도전처럼 보이지만 유럽 중심적 보편주의와 동아시아적 특수주의의 공범 관계를 재생산하고 맙니다.

차라리 현실감을 갖는 것은 동아시아를 이미 존재하는 문화권이 아닌 앞으로 구축해야 할 경제 권역으로 접근하려는 연구일 것입니다. 이런 발상은 오늘날의 블록화 경향 속에서 현실감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화론 판형의 동아시아론으로서 여전히 서양에 대한 '지체와 만회'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현실성을 띠는 것은 중국이 급부상했기 때문일 텐데, 역설적으로 중국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편지에서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대국과 소국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둘러싼 상상은 편차가 커서, 동아시아 공동체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지, 동아시아 공동체의 제도적 성격을 어느 단계까지로 올려 잡을 것인지에 관한 이해가 다릅니다. 이 균열에도 각국의 비대칭적 차이가 가로지르고 있죠.

다섯 번째 편지에서 '근대란 무엇인가'를 정리하며 말씀드렸듯이 동양의 통일성을 보장하는 내적 원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양이 대상화하고 종속시킨 지역이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동양은 공통성을 갖지 않습니다. 동아시아를 두고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이어주는 내적 원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대립하면서 도리어 대립하기에 하나를 이루는 것이 동아시아의 현주소이며, 따라서 저는 공동성을 갖지 않는다는 공동성, 적대와 경쟁 의식이 낳는 연대성, 오해와 균열에서 출발하는 이해, 바로 이 역설에서 출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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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말했듯이 동아시아 연구는 흔히 서양/비서양, 유럽/(동)아시아라는 대립 구도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 대립 구도는 전통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토착적인 것과 이식된 것, 낡은 것과 새것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됩니다. 동아시아의 문명적·인종적 정체성도 그 대립 구도로부터 직조됩니다.

따라서 동아시아론은 이러한 자기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적출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적 문명이 서구적 근대에 맞설 수 있느냐는 동아시아론이 당장 해명해야 할 과제가 아닐 것입니다. 서구적 근대 극복의 가능성을 동아시아적 문명 속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노스탤지어적 인식으로 빠질 공산이 큽니다.

차라리 관건은 동아시아를 사유공간으로 삼아 우리 안에 새겨진 근대적 지(知)의 체계를 해부하고 우리 안의 문제를 사상적으로 가다듬어내는 일일 것입니다. 즉, 동아시아론은 유럽 중심주의와 관련된 문제일 뿐 아니라 이 지역 내부의 패권 관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서양에 의해 인식되고 서양을 향해 인정 투쟁을 한다는 오리엔탈리즘의 계기만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문제군이 이 지역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서구와의 비대칭 관계와 역내의 복잡한 패권관계는 긴밀히 얽혀있으며, 그것이 이 지역의 진정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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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동아시아를 사유 공간을 삼고자 다케우치 요시미의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를 잠시 참고하겠습니다. 글의 말미에는 다음의 구절이 나오죠.

"서구의 우수한 문화 가치를 보다 큰 규모에서 실현하려면 서양을 다시 한 번 동양으로 싸안아서 거꾸로 서양 자신을 이쪽에서 변혁시킨다는, 이 문화적인 되감기 혹은 가치상의 되감기를 통해 보편성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서양이 낳은 보편적인 가치를 보다 고양시키기 위해 동양의 힘으로 서양을 변혁한다. 이것이 동과 서의 오늘날 문제입니다."

다케우치는 피부색이나 얼굴은 다를지언정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고 강조하고, 그런 평등의 가치는 서구적 근대의 소산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서양은 그러한 문화 가치를 보편화시키지 못했으며, 오히려 서구적 가치의 보편화가 비서구에 대한 식민지 침략의 논리로 전도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착취를 절감한 곳, 서구적 근대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상흔들을 마주하는 곳이 동양이니만큼 동양은 "문화적인 되감기 혹은 가치상의 되감기"를 통해 그 문화 가치를 보편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 되감기를 할 때에 자기 안에 독자적인 것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아마도 실체로는 존재하지 않겠죠. 하지만 방법으로는, 즉 주체 형성의 과정으로는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까닭에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제목을 달아보았지만, 그것은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은 저에게도 벅차군요."

다케우치는 분명히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러나 아시아를 실체가 아닌 방법으로 내놓은 것은 후세대 논자들이 (동)아시아 문제를 사고할 때 귀중한 영감이 되었습니다. 다만 섣불리 마지막 구절을 취해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의 결론으로 삼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렇다면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는 그저 사용하기 유용한 수사가 되어버릴지 모릅니다. 실제로 그렇게 차용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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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저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에 나오는 다른 구절을 주목해 봅니다. 다케우치는 이 글에서 1945년의 패전 이후에 일본의 근대 과정이 어디서부터 뒤틀렸는지를 파고들겠다고 마음먹고는 그 작업을 위해 일본과 중국의 근대를 비교하기로 나섰다고 밝힙니다.

"후진국의 근대화 과정에는 둘 이상의 형태가 있지 않을까. (…) 일본의 근대화는 하나의 형태가 될 수는 있어도 동양의 여러 나라 혹은 후진국이 근대화하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길은 아니며, 그 밖에도 다양한 가능성과 길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케우치는 일본의 근대를 해명하려면 '서양 대 일본'이라는 기존의 이항 대립이 아니라 중국을 참조하여 새로운 분석틀을 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근대화의 두 가지 형태를 생각할 때 이제껏 그래왔듯 일본의 근대화를 서구 선진국하고만 비교할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학자만이 아니라 보통의 국민들도 그랬습니다. 정치가도 경제계 인사도 모두 그런 식이어서, 정치 제도는 영국이 어떻고 예술은 프랑스가 어떻고 하며 곧잘 비교하곤 했지요. 그런 단순한 비교로는 안 됩니다. 자기 위치를 확실히 파악하려면 충분치 않습니다. 적어도 중국이나 인도처럼 일본과 다른 길을 간 유형을 끌어다가 세 개의 좌표축을 세워야겠구나, 그 당시부터 생각했습니다."

'서양 대 일본'이라는 이항 대립은 오늘날 여러 동아시아 연구의 틀에서 익숙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서양을 중심으로 방사형의 좌표평면이 만들어져 기타 지역들은 서양을 준거 삼아 자기를 인식합니다. 그러나 다케우치는 말합니다.

"단순한 이원대립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한 틀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당시 생각했습니다."

즉, 보편과 특수를 서양과 비서양에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특수의 관계를 근저에서 묻고자 서양과의 관계에서라면 또 하나의 특수에 놓일 중국을 참조축으로 도입한 것입니다. 중국을 끌어들인다면 일본의 근대는 달리 표상될 수 있으며, 일종의 전위(轉位)가능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후의 진술은 전에 정리해두었던 '근대란 무엇인가'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공적이라 여겼던 일본의 근대화는 실상 서양의 것을 빌려오고 흉내낸 것에 불과하지만, 중국은 서양을 따라가기를 거부해 뒤처졌으나 보다 튼실하게 자신의 근대를 일궈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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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비단 일본의 근대화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동아시아'는 주도권을 둘러싼 경합 가운데 배제적 범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정 기준에 따라 실체화되는 동아시아는 권력화될 것입니다. 그런데 다케우치가 아시아를 방법으로 삼았을 때 그것은 '서양 대 동양'이라는 구도가 함유하는 독소를 직시하기 위해 성찰적 지평을 마련하고, 서양을 척도 삼아 경주해온 근대화의 노정을 되묻고, 이곳의 역사 속에서 서양의 근대마저도 역사화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저는 그러한 다케우치의 발상과 방법을 차용하고 싶습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아시아를 동아시아로 옮겨오려는 것입니다. 다케우치는 아시아를 지리적 실체도, 문화권도, 권력의 쟁탈장도 아닌 자기비판의 방법이자 자타 관계의 새로운 타개책으로 내놓았습니다. 저는 다케우치의 아시아를 지금의 동아시아로 번역해내려 합니다. 즉, 동아시아라는 사유 공간을 각 사회가 서로를 마주보고 참조하며 자기 인식의 변화를 꾀하고 서로의 변환지점을 표시해주는 지평으로 상정해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편지가 오가는 동안 반복해서 드러났듯이 동아시아는 서로가 서로에게 문제의 항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저는 더 나아가 동아시아를, 서로를 참조 축으로 삼아 입체화되는 사상의 공간으로 빚어보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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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우치의 아시아를 동아시아로 옮겨내는 이런 번역 작업을 위해서는 먼저 동아시아가 풍기는 지리적 실체감에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시아는 지리적 윤곽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시아는 서양(the West)이 아닌 기타(the Rest)에 속하는 서양의 잔여 범주입니다. 그리고 패배하고 뒤처진 이름입니다. 다케우치는 실체화하기 어렵다는 아시아의 모호성을 탈근대=탈식민을 모색하는 사고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동아시아의 '동' 역시 어느 나라가 거기에 속하느냐는 배제적 논리로 기능해서는 안 됩니다. "동아시아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나라 이름을 나열하여 답한다면, 그것은 결국 패권을 둘러싼 경합의 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동'은 지리적 한정이 아니라 문제의식의 초점과 긴박성을 담기 위한 말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결국 "동아시아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리를 유동적인 상황으로 이끌어가는 매개입니다. 궁극적으로 답에 이르지 못할 물음이나, 답이 이르지 못한다는 자각을 지닌 채로 그 물음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 물음은 우리를 기존의 학문적 감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장으로 견인해갈 것입니다. 동아시아는 각 사회가 서로를 마주보고 참조하며 서로의 변환지점을 표시해주는 지평입니다. 서로 다른 의미와 의지가 오가고 충돌하는 장이며, 이질성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다케우치에게는 중국이 바로 그런 아시아였습니다. 일본은 누구에게 추궁 받아야 자기 인식과 타자 인식을 쇄신할 수 있는가. 그 실감의 상대가 중국이었습니다. 일본은 패전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으며, 중국을 향한 멸시감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다케우치는 일본의 주체성을 부단히 공박할 매개체로서 소위 문명국이나 서구의 승전국이 아닌 중국을 끌어왔습니다. 그때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기 이전에 다케우치가 사상적으로 형상화해낸 루쉰적, 저항적 중국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의 상황에 근거해 다케우치가 해석한 (꼭 중국이 아니더라도) '중국과의 관계'를 발견해내야 합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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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동아시아론으로 초점을 옮겨 가겠습니다. 한국의 동아시아론의 조건은 동아시아를 아우를 만한 실체가 한국에 없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한국에는 일본과 같은 제국의 역사적 경험이나 경제적, 외교적 능력도, 중국과 같은 거대한 지리적 규모도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은 자신의 의지와 통제 범위를 초과하는 외부와의 관계 속에 놓여 있으며, 그 비대칭성에 내재함으로써 자신의 원리성을 발굴해내야 하는 조건에 처해있습니다. 그 원리성이란 동아시아를 아우를 만한 실체적 요소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만큼 현실적 조건과 변수들에 따라 탄력적일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원리성을 담지할 때 한국의 동아시아론은 다른 주변 지역으로 번역될 만한 가능성을 내장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조건에 처해 있기에 한국의 사상계는 동아시아를 지리적 실체 이상으로 가변화하고 여러 양상의 '로서의 동아시아'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지정학적 주변성을 역전시켜 한국의 역할론을 도출해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첫 번째 편지에서 지적했듯이 자신의 조건을 특권화시킨 동아시아론은 역사성과 현실성과 보편성을 잃고 자기 확장하다가 버블기로 접어드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품이 꺼지기를 기다릴 때가 아니라 거품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사상적 함량을 지니는 동아시아론을 선별해내야 할 시기입니다.

여기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저는 동아시아론의 재역사화에 나서고자 합니다. 한국의 동아시아론은 복잡한 역사적 맥락에서 분출했지만, 다양한 수요를 받아들이며 그 내실이 모호해져 현실적 대응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아시아론을 다시 역사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작업은 만연한 동아시아론 가운데서 내재적으로 동아시아를 필요로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상사적 함량을 갖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가려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동아시아론은 서구의 경험에서 추출해 일반화한 이론을 응용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과 그로부터 산출된 사상적 자원을 보편(번역가능성)의 층위로 끌어올려 대안적 이론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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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편지가 정말로 마지막에 이르렀군요. 다케우치를 경유해온 저는 끝으로 동아시아 속의 한국, 중국,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의 동아시아를 묻고자 합니다. 이때 '의'는 소유격도 동격도 아닙니다. 그때 동아시아는 자기 사유의 한계와 만나는 곳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동아시아는 일본의 동아시아, 중국의 동아시아와 다릅니다.

동아시아가 자기비판의 지평이라면, 일본에게는 외면했던 아시아와 마주보고 멸시했던 인국에 대한 시선을 바로 잡는 일이 자기비판의 방식이 되겠지만,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재생산해온 동아시아 인식을 극복하는 일이 관건이 될 것입니다. 중국에게는 국력과 지리상 육중함으로 말미암아 주변의 관점을 어떻게 체득할 수 있는지가 문제로 부상하겠지만, 한국은 국가로서의 주변성이라는 조건에서 중심 국가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 양상의 주변성으로 이해를 심화해갈 수 있는가를 과제로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가 갖는 '사상 과제로서의 동아시아'는 다르며, 서로의 변환 지점을 표시하는 장으로서도 동아시아는 존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모두를 구태여 동아시아라고 명명하고자 할까요. 본래의 정의(定義)로부터 한정 없이 멀어졌는데도 왜 다른 말로 대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이 지역의 각 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문제의 항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는 서로를 참조항으로 삼아 입체화되는 사상의 공간입니다. 참조 과정에서 자신을 기준으로 타자를 평가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되 자기 내부의 차이도 드러나 자신을 분절화하는 계기입니다. 그렇게 임계점에 이르러 자기 동일성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 그것이 다케우치 요시미가 아시아를 '방법'이라고 불렀던 의미입니다. 역사적인 착종 관계와 현실의 적대성, 상호이해의 낙차를 품고 있는 각 사회는 서로를 매개해야 자기 사고의 한계와 대면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내부의 시선만으로는 열리지 않습니다. 서로 간의 시선들이 교차할 때야 비로소 열리는 공간입니다.

둘째, 사상적 연대를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아시아의 연대는 '동아시아 공동의 인식'을 모색한다는 섣부른 기대로 성사될 일이 아닙니다. 지리적·역사적·정치적 규모와 사회 체계의 차이로 말미암아 각 사회의 표상은 그대로는 교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사고의 한계와 대면하기 위해 각 사회가 출발하는 곳도 도착할 곳도 다릅니다.

더욱이 무거운 역사 기억, 영토 문제, 근대화를 향한 각축 가운데 각 사회 사이에는 적대성이 어지러이 깔려 있습니다. 이 조건 속에서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대립하면서도 대립하기에 도리어 하나를 이루는 이곳에서 연대를 이뤄내려면 '동아시아 공동체'와 같은 섣부른 협력의 요구가 아니라 아득하니 어려운 사상적 실천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화해가 아닌 긴장 관계를 연대의 한 가지 모습으로 읽어내는 사상의 감도가 필요할는지 모릅니다.

이렇듯 각 사회가 처한 현실이 다르다면 기도할 수 있는 연대는 '조건의 연대'가 아닌 '고민의 연대'일 것입니다. 즉 같은 조건을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연대가 아니라 조건은 다르지만 서로의 고투의 농도 그리고 심도가 닿는 연대입니다. 그리하여 중요한 과제는 공동의 조건을 확인하거나 이념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고투를 나눠 갖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대 그 고투의 내실을 그대로 나눠 갖는 일은 비대칭성, 적대성, 몇 겹의 분단선으로 인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서로의 고투는 서로에게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런 번역이 가능하려면 자기전환을 겪어야 합니다. 저는 그 번역의 장을 동아시아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달리 부를 방법이 없습니다.
이병한 UCLA 한국학 센터 연구원의 답변이 9일(목)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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