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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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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親Book]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 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 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커트 보네거트, '문예 창작을 위한 충고', <나라 없는 사람>, 31쪽)

먼저 내가 커트 보네거트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혀야겠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소설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고, 그 중 몇 권은 절판된 지 오래이며, 설사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 그룹의 어떤 멤버가 그 절판본을 눈이 빠지게 찾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조공'하지 않을 생각이다. 농담이 아니다. 나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녀가 연락을 해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정도다. 그러니 내가 그의 글이라면 무조건 찾아 읽고 고개를 끄덕인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실제로 그것은 세상의 모든 좋은 노래들을 두고 온종일 아이돌 그룹의 노래만 듣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쉽고 또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당신이 보네거트의 충고를 따라 인생을 설계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니까 오직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겠다는 일념으로, 그러나 차마 내 (현재의, 혹은 '네가 있던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어떤 이성) 애인에게도 그렇게 할 배짱은 없는 관계로 예술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치잔 말이다. 좋다. 축하할 일이다. 특히 당신의 영혼에게는. 하지만 당신의 위장(胃臟)에게는 어떨까? 당신의 친구들은? 애인은? 당신이 커피숍에서도, 극장에서도, 식당에서도, 술집에서도 계산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당신이 CD와 콘서트 티켓과 '빌어먹을 티셔츠'를 사주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돌 그룹의 조카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하자면 보네거트의 말에는 어떤 결락이 있다. 그의 논리를 보자.

1.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싶다면 예술을 하라.
2. 예술은 생계 수단이 아니다.
3. 예술은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들고,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인간적인 방법이다.
3-1.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3-2.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고
3-3. 이야기를 들려주고
3-4. 친구에게 시를 쓰는 것이다.
4. 결과물이 한심해도 괜찮다.
5.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보상이다.


▲ <나라 없는 사람>(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1과 2에서 드러나듯, 예술이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는 그것이 생계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이다. 부모님들이 평소에는 그렇게도 신봉하시던 옛 어른들의 말씀도(이를테면 "산 입에 거미줄 치랴") 통하지 않는다. 친구의 자식들은 '사'자 직업을 갖고, '철밥통' 공무원이 되고, 전도유망한 '청년 사업가'가 되었다는데, 그들보다 못할 것 하나 없는 우리 새끼가 눈보라 치는 가시밭길을 자진해서 걷겠다는 사실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탓이다. 먹고 사느라 바빠 자식에게 소홀했던 옛날을 돌아보며 눈물도 흘리실 거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건 당신이 예상했고 또 바랐던 결과가 아닌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자, 당신은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데 성공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3-1에서 3-4의 과정을, 그러니까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친구에게 시를 쓰는 일에 매진할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예술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없이도, 다시 말해 어떤 선언 없이도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답은 뻔하다. 보네거트가 말한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 하지만 당신이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언제나 너무 차갑거나 뜨거운 주제에 수압도 세지 않은 샤워기가 당신의 노래에 감동해 물 대신 젖이나 꿀을, 하다못해 와인을 뿜어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에 감동한 친구가 당신을 위해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빛나는 문학사의 한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도 없다.

물론 샤워를 하며 노래를 부르다 욕실 앞을 지나가던 관계자에게 발탁되어 억만장자가 된 U2의 보컬 보노가 있다. 친구가 보낸 원고를 차곡차곡 모아둔 것으로 모자라 전부 태워버리라는 유언까지 무시하고 출판을 감행한 막스 브로트 덕에 세계 문학사의 로열 석을 꿰찬 카프카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이고, 모든 예외는, 그 단어 자체가 의미하는 것처럼, 그것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더럽게 어렵다는 사실만을 말할 뿐이다. 하물며 그 결과물이 한심하기까지 하다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당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어떤 것을 창조했고, 그 대가로 영혼의 충만한 기쁨을 얻었다. 축하한다. 당신은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었던 어떤 것을 구태여 만들어냈고, 그 대가로 고독과 배고픔을 얻었다. 다시 한 번, 축하한다.

문제는 분명하고 또 단순하다. 그건 바로 돈이고 생계이고 그것을 포함하는 현실 그 자체다. 무엇을 하건 어떻게 하건 그들에게도 하루하루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런 현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은행가들이 모이면 예술을 논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을 논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보네거트가 생략한 부분이다. 그는 2에서 '생계 수단'이라는 단어를 슬쩍 언급한 뒤, 그것이 마치 부모에게만 중요한 일이라는 양 서둘러 다른 차원의 이야기(3. 예술은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들고,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인간적인 방법이다)로 넘어간다.

그럼에도 그의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낭만주의의 이데올로기가 그 틈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배고픈 예술가라는 환상. 반 고흐의 삶을 그의 작품보다 더욱 아름답게 덧칠한 바로 그 신화. 하지만 반 고흐가 반 고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반 고흐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외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말하지만 더럽게, 정말 더럽게 어려운 일이다. 얼마나 어려운지 반 고흐조차 살아서는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여기서 문제. 만약 반 고흐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미술책? 위인전? 정답은 기네스북(또는 '해외 토픽' 등의 가십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 등의 TV 프로그램)이다. 아마 당신도 '여전히 가망 없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세계 최고령 화가' 부문에 올라 있는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낭만주의 이데올로기의 작용은 대체로 무해한 것으로 취급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반 고흐는 분명 안타까운 삶을 살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러니 우리가 그의 삶에 낭만이라는 향신료를 몇 방울 첨가함으로써 이제라도 그의 삶을, 죽음을, 예술을 빛나는 어떤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들이 약간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틀린 말은 아니다. 고흐의 반응이 조금 궁금하긴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언젠가 아버지가 CF를 통해 말씀하셨듯이) 살아있는 한 우리는 '즐겨'야 한다. 언제나 문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반 고흐들이 있다. 그만큼의 재능은 없을지 몰라도, 그만큼 절망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예술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오늘도 안개 낀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삶의 어떤 교차로에서 우리는 종종 그들을 마주치곤 한다. 조금은 어색한 통성명을 마친 후 우리는 말한다.

"오, 문학을 / 영화를 / 미술을 / 음악을 하신다고요? 정말 멋진 일을 하시는군요. 저도 책 / 영화 / 그림 / 음악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혹시 남는 책 / 영화표 / 그림 / CD 좀 없나요?"

교양 있는 문화 시민들의 반응이라면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예술과 예술가의 곤경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가정되)는 이들이니까. 그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멋진데요. 별로 멋진 일이 아니라고요? 배도 고프시다고요? 정말 예술가 맞으시네요! (사려 깊은 웃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도 있잖아요. 비록 배고픔을 참을 수 없는 체질 때문에 저는 감상자로 남았지만, 이왕 선택한 길, 조금만 더 배고픔을 참으시면 당신도 꼭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언제나 응원할게요! 그런데 정말 남는 책/영화표/그림/CD 좀 없어요?"

그들이 정말 그 예술가를 응원하는 것은 아마도 그가 세상을 떠난 후가 될 것이다. 낭만주의적인 예술관에서는 죽은 예술가보다 더 예술적인 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책과 잡지를 사거나 영화를 보러 갈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34쪽)라고 말한 것은 보네거트였다.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바꿀 것을 제안한다. "책과 잡지를 사거나 영화를 보러 갈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병든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고. 누군가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자의식으로 가득 찬 구질구질하고 지질한 이야기를 즐길 필요는 없는 거라고(나는 여기서 어떤 편견을 지적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말에서 무슨 취향을 찾을 수 있는가? 그들은 단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정말 뛰어난 예술가라면, 왜 아직도 가난하고 배고픈가요? 왜 아무도 당신에 대해 말하지 않죠? 그리고 당신이 뛰어난 예술가가 아니라면, 내가 왜 당신의 작품을 소비해야 하나요?"

이건 차라리 농담이다. 예술은 배고프고, 그렇기에 예술이라는 낭만적인 관점은 정작 굶주린 배를 안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예술가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물론 이미 죽은 작가에 대해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뒤늦게 도착한 천재이고,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우리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예술가로 평가 받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문화 시민들을 위한 팁 하나. 먼저, 어떤 물건을 사야할지 모르겠다면 무조건 비싼 쪽을 골라라. 그리고 어떤 작가의 작품이 좋은지 모르겠다면 무조건 죽은 작가 쪽을 택해라. 그것이야말로 절대 무시당하지 않을 취향이다.

이는 동시대의 감수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무라카미 하루키가 25년 전에 한 이야기의 다른 버전이기도 하다. <상실의 시대>의 나가사와는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읽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에 대해 주인공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는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59쪽) 과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러므로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무엇보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나쁘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농담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무언가 농담을 한다면 이것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일단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후로는 갈 곳을 잃은 30대의 예술가(지망생)로서, 동시에 부대 조직표에 '대령(진)'('진급 예정'의 약자)이라고 굳이 써넣는 어느 소령들처럼, '(지망생)'이라는 단어를 괄호 안에 넣을 만큼의 자의식을 뒷주머니에 넣은 채 현실의 뒷골목을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한 인간으로서, 나는 지금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내 이빨이 보고 싶다면 핫도그라도 내밀어야 할 거라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진)'이라는 표현에 입술을 살짝 씰룩이긴 했다. 세상에, '(진)'이라니!)

낭만주의 예술가론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이유도 결국 이와 같다.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이 글이 지금 그런 것처럼) 대개는 지루하고 종종 비루하게 느껴지는 반면, 낭만주의는 예술에 예술보다 더 '예술적'인 어떤 후광을 부여한다. 동시에 그것은 예술을 우리의 삶으로부터 떼어내 어떤 천재(혹은 괴짜 혹은 잉여)들의 전유물로 만든다. 그리하여 예술적이지 않은 우리의 삶을 예술로부터 보호함과 동시에,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문화는 예술을 삶에서 분리한 후, 예술가들에게 '아웃소싱' 하는 셈이다. ('진정한 예술'이라는 것에 대한 마르크스와 하루키의 상반되는 진술이 공통으로 전제하고 있듯) 고대 그리스의 시민은 예술을 위해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노예들에게 위임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선량한 소비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예술을 예술가들에게 위임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의 예술가들을 그리스 시대의 노예와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예술가들은, 채찍으로 두들겨 맞지는 않으니까. (물론 부모님께 맞을 수는 있겠지만 이 자리에서 다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당신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미디어와 예술계(관련 업계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는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길 뿐 아니라 철저하게 이용한다. 놀랄 일은 아니다. 초국적 기업들이 개발도상국의 어린아이들에게 상품 생산을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3세계의 소년소녀들이 형편없는 임금을 받으며 한 땀 한 땀 손수 꿰맨 신발이 화려한 포장을 거쳐 비싼 값에 팔리는 것처럼, 예술가들의 고독한 작업은 업계와 비평가, 언론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포장을 거친 후에야 우리 앞에 하나의 상품으로 놓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소년소녀들의 존재를 가능한 한 지우려 하지만, 미디어와 예술계는 예술가들의 삶을, 우리의 짐작대로 별로 평탄하지는 않았을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 예술은 배고프고 그렇기에 예술이라는 낭만주의의 기묘한 전도가 마법을 부리는 지점이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예술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그녀가 얼마나 '예술적'인 고난을 겪어왔는지, 그러한 삶의 서사가 대중을 얼마나 감동시킬 수 있을지,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매출/시청률을 올릴 수 있을지의 여부다. 기능이나 품질이 아닌 브랜드가 명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인도의 소년소녀들은 스타가 될 수 없지만, 예술가는 스타가 될 수 있다. 축하한다. 예술가를 꿈꾸는 당신은 이미 퓨쳐-스타-예술가다('미소 지나' 스타일로 읽어주시길). 진짜 스타가 되기 전까지는 형편없는 임금조차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당신을 진정한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당신의 자산,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연금 보험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 그래도 여전히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다면 매주 로또를 살 것을 권한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되지 않겠는가?

너무 멀리 온 느낌이다. 커트 보네거트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배고픈 예술가라는 환상과 개인의 취향의 문제를 거쳐 조악한 문화 비평 비슷한 꼴이 되어버렸다. 엉뚱한 과장이 있었고, 무리한 비유가 있었으며, '목숨을 건 도약'에 가까운 비약이 있었다. 모든 목숨은 소중하다. 그러니 이쯤에서 다시 보네거트와 그가 생략한 것의 문제로 돌아가자. 부모에게 상처를 입힌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입고 먹고 마시고 자야하는 예술가의 생계 문제로.

나는 지금 답이 없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발견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들에 의해서만 환기되는 이야기이고, 결국 그조차 감정의 소모로만 끝나고 마는 이야기이며, 어느새 싸늘하게 잊히는 이야기다. 나는 여기서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가는 예술가들을 존중해야 한다거나 그들이 스스로 자처한 일이니 다만 결과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혹은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거나 그보다 더욱 시급한 문제들이 널려있다는 둥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는 말이다. 물론 내 통장 잔고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으니, 누구나 가슴에 3000원 정도는 있다는 말로 대신하기로 하자.

먼저 내가 사랑하는 작가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유족과의 명예 훼손 소송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가 지금까지 늘어놓은 이야기들을 보네거트가 몰랐을 리 없다는 사실을 밝혀야겠다. 비록 나라도(물론 그는 '나라 없는 사람'이지만!), 시대도 다르지만 생계를 위해 소방수와 영어교사, 자동차 외판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던 그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징집되어 포로 수용소에 갇힌 채로 13만 명의 주민들이 학살된 드레스덴 폭격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조건과 그 불편한 진실들에 관한 위대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다. 그러니 그의 말은 그가 살아낸 삶의 연장선상에서, 생의 마지막 장을 써나가고 있는 노작가라는 콘텍스트를 통해 읽혀야 한다. 그건 아마 이런 말이 아닐까.

"내가 해봐서 아는데, 비록 부모는 반대했고 먹고 살기도 더럽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예술을 해서 정말 행복했어. 네가 정말 원한다면, 그리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렇게 해. 예술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야!"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오남용 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천성이 나쁜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볼품없고 흔한 말처럼, 우리 사회의 넘쳐나는 '멘토'들이 밥만 먹으면(혹은 밥을 먹기 위해서) 떠들어대는 무책임한 충고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그렇지만 사과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건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겪은 후에 마침내 성공한 예술가에 대한 또 하나의 낭만적 서술이 아니다. 그는 이런 삶을 살았노라고, 그러니 그는 진정한 예술가이고,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으니 닥치고 경청하라는 말도 아니다. 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략한 어떤 부분을, 그 틈을 채워보자는 하나의 제안일 뿐이다. 예술을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낭만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이를테면 우리의 삶, 같은 것으로.

이제 필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다시 보네거트의 말로 돌아가자.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 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 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그의 말처럼 예술은 생계 수단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아니라고 말했지 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건 예술로 생계를 이어가는 게 더럽게 어렵다는 말이지만, 동시에 예술이 굳이 생계 수단이 될 필요는 없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더럽게 어렵다'에 주목해서 이 글을 썼다. 그런 어려움을, 차라리 더러움을 우리로 하여금 강 건너 불 보듯이 여기게 만들고 심지어 부추기기까지 하는 낭만주의적 예술관에 대한 비판(과 비난과 비약)을 늘어놓았다.

그럼 이번에는 '아니다'에 주목하면 어떨까? 예술은 생계 수단이 아니다. 어떤 예술은 돈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예외에 불과하다. 그러니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가난할 수밖에. 하지만 굳이 예술이 생계 수단이 될 필요는 없다. 어떤 예술은 돈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예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라, 지금 내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건가?

여기서 잠깐. 우리의 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낭만주의의 엔진을 한번 꺼보도록 하자. 삶과 예술을 분리해서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그러니까 예술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고독한 천재가 현실에서 몇 걸음 물러선 채 자신의 내부로 침잠해 영감을 끌어올려 만들어 내는 무언가 고귀한 것'이라는, 혹은 우리 같은 성실한 생활인들과는 달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무능한 패배자들의 자위행위에 불과한 것'이라는 편견을 줄기차게 뽑아내는 그 빌어먹을 기계 장치를 말이다. 이것은 결국 개미와 베짱이의 이분법을 폐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미(내일을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노동을 하는 정직한 생활인 / 내일은 나아질 거라는 헛된 망상에 빠진 채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어 인생을 소모하는 미련한 노동 기계)가 아니다. 그들 또한 베짱이(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사회에 무임승차하여 흥청망청 인생을 탕진하는 정신 나간 철부지 얼간이 / 남다른 예술적 재능과 혜안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한계를 훌쩍 넘어 자기만의 세계를 살아낼 배짱을 가진 능력자)가 아니다.

커트 보네거트의 말은, 한 마디로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술은 생계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그 결과물을 구태여 돈으로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 업무와는 다르다. 가게 운영과도 다르다. 예술을 할 때 우리는 상사나 거래처, 고객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예술로 생활하는 전업 예술가들과도 다르다. 말 많은 업계 사람들과 기자와 평론가의 눈치를, 무엇보다 대중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잠깐만, 이렇게 조건이 좋은데, 당신은 왜 아직 예술을 하지 않는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예술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당신이 한때 예술가를 꿈꿨다면, 생활을 이유로 포기했다면,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충실한 소비자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을 위해 돈을 벌고 쓰기를 반복하고 있다면, 차라리 그냥 예술을 하시라. 생계를 위해 예술을 포기할 필요도, 예술을 위해 생계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 당신은 그저 훌륭한 소비자이기를 그만두면 된다. 이것이 내가 커트 보네거트의 행간에서 읽은, 혹은 읽고 싶은 말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 당신이 소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에, 혹은 발자크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해 펜을 꺾은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그럼에도 여전히 미련이 남아 다 읽지도 못할 책들에 월급을 대부분을 쏟아 붓고 있다면, 인터넷 서점의 플래티넘 고객이 되는 일을 포기하라. 당신이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을 하건, 대신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책상 앞에 앉아 당신의 소설을 써라. 그 시간 동안은 최선을 다해서. 카프카의 표현대로라면 "죽은 듯이 쓰라". 물론 그 말이 가장 절실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예술에는 단점이 있다.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에는 뭔가 약하다는 것. 하지만 솔직해지자.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방법은 대서양의 날치 알보다 많고, 우리 모두는 그 분야에 타고난 전문가가 아니던가. (한때 나는 그저 눈을 깜박이거나 숨을 길게 내쉬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그러니 부모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건 다른 일에 맡기고, 예술은 단지 당신의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일에 쓰는 게 좋겠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이야말로 무엇보다 공허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이며 또 무책임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나도 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팔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돈을 쓰는 일 말고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거다. 그것이 바로 예술 아닌가? 상품화된 예술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돈을 벌고 또 쓰는 일과 무관한, 시장과 교환이라는 자본주의의 구조와 무관한 예술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노동과 소비의 쳇바퀴에서 잠시 벗어나, 종종 예술하고 앉아있기도 하면서 가끔은 예술하고 자빠지기도 하는 것.

그것만이 예술의 상품화와 예술의 게토화라는 얼핏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그러나 결국 동전의 양면에 불과한 우리의 낭만적인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지금 믿는다고 썼다.

*

원래 이 글은 이렇게 끝날 예정이었다. 곳곳에 찜찜한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할당된 분량을 이미 훌쩍 넘겼을 뿐 아니라 많이 쓴다고 해서 '프레시안 books'에서 내게 원고료를 더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불만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오히려 계속해서 내게 청탁을 주는 것에(도대체 왜?) 감사를 하면 몰라도. 실제로 나는 어떤 매체건 일단 원고료를 주기만 한다면 너무 고마운 나머지 큰 절을 하듯 넙죽 엎드린 채로 타이핑을 하는 버릇이 있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원고 마감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농담이 아니다.

이미 여기까지 읽는 수고를 감행한 당신에게(그런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이 글의 마지막까지 함께 해줄 것을 요청할 뻔뻔함이 내게는 없다. 사실 그리 대수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이 글의 마지막을, 그러니까 "나는 지금 믿는다고 썼다"라는 문장을 쓴 후, 나는 커트 보네거트를 만났다. 맞다. 나는 지금 제정신이고, 당신이 '설마?'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어로 쓰자면 "I mean it"쯤 될까? (이해해 달라. 보네거트와 대화를 나눈 후 뒤늦게 학구열에 불타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보네거트를 만났다. 1922년 11월 11일에 태어나 2007년 4월 11일에 세상을 떠난 바로 그 사람을. 믿기 힘든 만남이었지만, 못 믿을 만남도 아니었다.

만남에 이르기까지 내가 했던 일을 이 자리에서 주절주절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시간 낭비가 될 뿐이니까(그리고 지금도 원고는 한없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원고를 마치고 기분 전환 삼아 놀러갔던 놀이동산의 빙고 게임에 당첨되어 다름 아닌 '영혼과의 일일 데이트권'을 받았다는 것, 그것은 한 장의 티켓과 삼익 리코더와 노란 종이봉투로 이루어진 패키지 상품이었다는 것, 그리고 저승에서 보네거트 찾기는 비슷한 문장 구조를 가진 어떤 속담만큼이나 어려웠다는 사실 정도만 밝혀두기로 한다(정 궁금한 사람은 오르페우스 신화나 단테의 <신곡>을 참고하라). 아, 돌아오는 길엔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써야했다는 것도. 리코더가 없었더라면…휴,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기억이다.

비틀즈의 노래 제목만큼이나 길고도 험한 길을 비틀즈의 노래도 없이 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막상 도착한 천국이라는 곳도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아니, 솔직히 말해 하늘과 땅 차이였다. 물론 내가 도착한 쪽이 땅이었다는 말이다. 더러운 구름 곳곳에 담배꽁초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질 않나, 발가벗은 아이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물총을 쏘아대질 않나(그나마 오줌을 싸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신께 감사를 드리는 바다), 온통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음울한 표정의 사람들은 난생 처음 듣는 곡조의 휘파람을 불어대며 추잡한 농담을 던지질 않나, 심지어 자신을 천사장이라고 밝힌 어떤 사람은 하얀 코트를 걸친 채 내게 다가오더니…아니, 여기까지만 하자. 분명한 건 두 번 다시 방문하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해도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예의 곱슬머리를 한 보네거트는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그래, 소감이 어떤가? 하하. 맞아. 빌어먹을 천국이지. 천국이 이런 곳인 줄 알았다면 아마 예수도 무신론자가 되었을 걸세!"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이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장담컨대, 한 번도 천국을 보지 못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는 나를 건물 왼편에 있는 돌계단으로 안내했다. "바로 저기를 오르다 넘어져서 뇌진탕에 걸렸다네." 그가 말했다. "그렇게 가는 거지."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여기가 지구에서 살던 바로 그 집인가요?" "아니. 똑같이 다시 지은 거야. 잊지 않기 위해서." "뭐를요?" "내가 죽었다는 사실 말일세." 나는 그 계단을 오른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다시 그날이 온다 해도 나는 저 계단을 오를 걸세. 마지막 남은 쿠바산 시가가 저 위에 있거든. 물론 그땐 계단을 오르기 전에 텍사스 레인저스 모자를 쓰겠지만." 왜냐고 묻는 내게 그는 예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지 부시를 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조지 부시는 과거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였다.)

그는 내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후, 그 계단을 올랐다.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날렵한 동작이었다. 잠시 후 담배상자를 들고 내려온 그는 내게 담배를 권했다. 나는 내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from The Land of Morning Calm)에서 왔다는 사실을 정중하게 상기시켰다. "어른, 심지어 죽은 사람과는 맞담배를 피울 수 없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끈질기게 권했고, 꽤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못했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 개비를 받아들었다. "어때, 이제야 천국에 온 것 같지 않나? 천국에서 피우는 담배야 말로 진정한 천국이지." 그가 물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이지 끝내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그가 말했다. 자세히 보니 담배 연기는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게 아니라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게 바로 구름의 정체였던 것이다. "나를 만나러 온 목적이 뭔가? 이렇게 먼 길을 올 정도면, 자네가 얼빠진 놈이 아니라면 말이지만,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얼빠진 놈 선발 대회에서 우승은 장담 못해도 언제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재원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정말 만나고 싶었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모두 살아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코를 훌쩍이며 당신의 팬이라는, 죽어서라도 만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하하, 저승까지 찾아오는 팬이 있다니, 아시모프한테 자랑이라도 해야겠는 걸." 그가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내 눈을 보게, 젊은 친구."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 위에 있다 보면 별 노력 없이도 많은 걸 알게 된다네.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슬슬 본론으로 들어 가야하지 않겠나? 아무리 분량의 제한이 없는 글이라고는 해도, 이런 식이라면 자네 입장은 물론이고 '프레시안 books'의 입장도 적잖이 곤란할 것 같은데?"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얼마 남지 않은 얼이 빠져나가는 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어…어떻게 그걸?" "천국에도 검색 엔진은 있다네.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검색할 수 있지." 그는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말했다. "내가 종종 내 이름을 친다는 사실은 비밀이네.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 쓴 것만으로도 자네는 충분히 곤경에 빠졌네. 구렁텅이에 빠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일장연설이 이어졌다. 그는 먼저 내가 그의 글을 인용한 것에 대해 작가로서 고마움을 표한 후 내 글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의 글을 일부러 오독한 점, 그렇게 해서 엉뚱한 목적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점, 엉뚱한 목적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한 점, 그리고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 자신의 이름을 팔아댄 점, 얼렁뚱땅 훈훈한 마무리를 지으려했던 점, 그걸로 모자라 지금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점 등등…. (물론 나는 충분히 곤경에 빠졌으므로, 그것들을 모두 옮기는 어리석은 짓을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빈약한 논리를 들이대며 모욕적인 비약을 감행했다는 것. 나는 그게 제일 나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글을 이어가기 위한 위악적인 제스처였을 뿐이잖아요. 대부분은 과장 섞인 농담이었고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세상을 향해 밑도 끝도 없는 불만을 터트리고 싶었던 건 아니고? 자네, 혹시 욕구불만인가?" 내가 또 다시 반박하려하자 그가 손을 내밀어 내 말을 막았다. "자,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없네. 질문 두 개만 받도록 하지."

나는 그 순간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으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생각에 잠긴 척 잠시 눈을 감아야 했다. 심호흡을 하며 다섯을 세고 난 후,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언제나 묻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던 바로 그 질문을.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정말 모르겠는데, 세상 누구도 말해주질 않아요."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죽은 사람한테 살아가는 방법을 묻다니, 자네도 참 짓궂군.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규칙을 말해줄까? 제기랄, 착하게 살아야 한다!" 마치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했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 그는, 이내 정색하며 덧붙였다. "자네가 즐겨 찾는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검색창에 '멘토'라고 쳐보게. 마음에 드는 결과가 없다면 '위로', '치유', '공감', '청춘' 같은 단어를 쳐도 좋네. 미안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야." 내게 대답을 하면서도 그는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마치 지구에서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요. 저는 정말 계속해서 이런 일을 해야 하나요? 솔직히 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저는 민망해 죽고 싶다고요." 그것 또한 심각한 문제였다. "자네 보코논 교의 교리를 기억하나?" 그가 되물었다. "당신은 아팠지만 이제 다 나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타임 퀘이크>) "그래, 바로 그거지. 그 안에 답이 있다네." "뭔데요 그게?" "글쎄, 그건 자네 스스로 생각해 봐." 어느새 그의 모습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정말로 해야 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잠깐만요, 잠깐만!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해요? 이 글은 아직 안 끝나는데! 이 글을 어떻게 끝낼지는 가르쳐주고 가셔야죠! 저기요! 선생님! 사장님! 하느님!" 나는 아이처럼 울부짖으며 그를 불렀다. 그러자 마치 물에 뜬 주둥이처럼(표현력이 부족한 탓이지 절대 어떤 앙금이 남아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다) 허공에 떠있던 그의 입이 가볍게 떨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작은 탄식처럼 그의 입술을 빠져나온 그의 마지막 말. 나는 그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어느새 검은 옷을 차려입은 보안 요원들이(잠깐, 여기 천국이 아니었나?) 내 팔을 붙잡고 지구로 돌아가는 길로 나를 데려갔다. 다음에 이어진 일은 말한 대로다.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 탓에 앞만 보며 걸어야했지만,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나는요, 오빠가"와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바로 그 목소리)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볼 뻔했다. 하지만 나는 신화적인(아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보다 훨씬 더 큰) 인내심을 발휘하며 그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피리를 불면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피리를 너무 많이 불어서 부대낄 때면 잠시 속을 게워내기도 하면서…(피리와 함께 받은 노란 봉투의 용도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침내 눈앞에 나타난 지구는 파란별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David Bowie, 'Space Oddity')

이제 그의 마지막 말을 이 자리에 옮길 차례다.
그건 이런 말이었다.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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