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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공휴일이 한 번도 안 겹치는 '꿈의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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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공휴일이 한 번도 안 겹치는 '꿈의 달력'

[이명현의 '사이홀릭'] 이정모의 <달력과 권력>

새해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달력을 펼쳐놓고 한숨을 쉬는 일이다. 공휴일이 일요일과 (요즘은 토요일도) 겹치기라도 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수업이 있는 날이 마침 공휴일이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올해 달력을 보니 신정 첫날부터 일요일이고 설날 연휴 첫째 날도 일요일이다. 어린이날은 토요일이고 추석 연휴는 최악이어서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다.

공휴일을 다 찾아먹을 방법은 없을까? 그럴 때마다 등장하던 대체 공휴일 이야기도 잠깐 나오다가 말았다. 그렇다면, 아예 달력을 바꾸면 어떨까. 공휴일이 절대로 일요일과 겹치지 않는 그런 '꿈의 달력'을 만들면 어떨까. 우리들의 꿈은 이렇게 소박하지만 사실 달력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달력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지구는 하루에 한번 자전을 한다. 달은 지구 주위를 한 달에 한번 공전한다. 지구는 해 주위를 1년에 한번 공전한다. 달력은 결국 지구와 달과 해의 이런 반복적인 움직임을 우리 나름의 언어로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연히 하루, 한 달, 한 해가 기본 단위가 되어야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달의 공전 주기로서의) 한 달이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하루의 정수배가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한 달은 약 29.53일 정도 된다. 그러니 한 달의 길이를 딱 떨어지게 29일이나 30일로 정할 수가 없다. 더구나 (지구의 공전 주기로서의) 한 해도 365.24일로 365일이나 366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달력은 한 달의 길이가 29일이나 30일이고 한 해의 길이가 365일이나 366일이 되도록 교묘하게 디자인한 근사적인 표현물이 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많은 경우 이런 자연과 달력의 숙명적인 엇박자에 종교적 문화가 개입을 하면서 7일을 한 묶음으로 하는 '한 주'라는 지극히 작위적인 주기가 끼어들면서 더 엉망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흔히 양력이라고 부르는 달력은 1582년에 채택된 그레고리력이다. 이 달력은 그동안 사용되어 오던 권력과 종교적 간섭에 엉망진창이 된 달력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자연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조금 보완한 달력이다. 여전히 한 달의 길이가 28일에서 31일까지 불규칙하다. 매년 날짜와 요일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치는 경우가 생긴다. 한 주일이 두 달에 걸치는 경우도 다반사다. 자연의 주기와의 오차도 날이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규칙성이 파괴되어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500년 전에 교황이 칙령으로 정한 그레고리력을 우리가 지금껏 사용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사실 그레고리력을 고집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관성처럼 그냥 사용하는 것뿐이다. 그 세월 동안 미우나 고우나 그 속에 문화가 쌓였고 애환이 녹아들면서 그레고리력은 거대한 문화적 상징이 되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합리성이나 실용성을 내세워서 이 달력을 고치기가 어렵게 된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7일'의 신화에 집착하는 거대 종교가 권력을 잡고 있다는 점도 달력 개혁의 큰 방해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한 새 달력에 대한 인류의 도전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에도 천문학자 리처드 콘 헨리와 경제학자 스티브 핸크가 '헨리-핸크 영구 달력'을 디자인해서 발표했다. 이 달력의 가장 큰 특징은 날짜와 요일이 항상 일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번 달력을 만들면 사소한 보완만 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종교적 저항을 고려해서 7일을 한 주로 하는 주기는 그대로 유지했다. 이들이 제안한 달력은 3, 6, 9, 12월은 31일, 나머지 달들은 30일로 구성되어있다. 윤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5년이나 6년마다 12월의 마지막에 일주일을 더 추가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의 달력도 그동안 제안되었던 '합리적인' 다른 달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들이 제안한 새 달력은 별 다른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이런 노력이 계속 된다는 것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가운 일이다. 어쩌면 달력 개혁이 인류의 새로운 문명의 바로미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 <달력과 권력>(이정모 지음, 부키 펴냄). ⓒ부키
이정모가 쓴 <달력과 권력>(부키 펴냄)에는 이런 불합리하고 불완전한 달력과 관련된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히 달력과 얽혀 있는 권력과 종교 그리고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는 천문학을 전공했지만 사실 달력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교과서에 실린 달력과 관련된 몇몇 단원들을 공부했었고 수업 시간에 달력을 만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본 것이 거의 전부였다. <달력과 권력>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내가 접한 가장 긴 달력 이야기였다.

<달력과 권력>은 지은이가 명확하게 밝힌 것처럼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로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그 답은 이 책 속에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도서관을 뒤진 끝에 이정모는 이 책을 쓰고야 말았다.

"본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대학 도서관이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립 도서관은 도처에 널려 있다. 달력에 관한 책을 한 권 읽고 미진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하여 참고 도서를 찾으면 어김없이 도서관에 있었다. 수메르와 로마의 달력에 관하여 1800년대에 출판된 책들이 글자체만 현대적으로 바뀌어 재출판된 것을 비롯하여 달력에 관한 수십 종의 책을 동네의 조그만 시립 도서관이 갖추고 있는 것이다. 본에 없는 책은 사서에게 부탁하면 다른 도시에서라도 구해서 가져다주었다. 생태 생화학을 연구하는 필자가 전공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달력'에 관한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독일의 우수한 도서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전공자가 아닌 이정모가 독일의 본에 있는 도서관을 전전하면서 이 책 저 책의 내용을 짜깁기해서 만들어낸 '짜깁기 책'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이정모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달력과 권력>이 출판된 후 귀국하여 그의 대표작이 된 <해리포터 사이언스>(정창훈·이정모 지음, 휘슬러 펴냄)를 구상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첫 만남에서 나는 그가 놀라운 짜깁기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무척 부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 바로 친구가 되었다. 내 느낌은 이정모가 거미 같다는 것이었다. 퉁퉁한 겉보기 모습과는 달리 섬세하게 이야기의 실을 뿜어내면서 거미줄 마냥 그 이야기를 짜깁기 해나가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 바로 <달력과 권력>이 아닌가 한다. 그의 손을 거치면서 달력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이 역동적인 이야기 거미줄이 되었다.

물론 사용하는 용어가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다. 통상적으로 '그레고리력'이라고 사용하는 것을 이 책에서는 줄곧 '그레고리우스 달력'이라고 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고천문학자 안상현에게 문자로 물으니 바로 페이스북에 길게 답을 남겼다. (좋은 세상이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우리가 통상 '-력'이라고 번역할 때, 원문을 보면, almanac인 경우가 있고, calendar인 경우가 있고, calendrical method인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그레고리력이라면 보통 Gregorian calendar를 뜻하는데, 그 역법이 좀 간단하기 때문에 흔히 그레고리 역법이란 말은 잘 안 쓰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대통력이나 시헌력은 태양계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복잡한 역법(calendrical method)입니다. 그것에 의해서 계산된 소위 천체력이 역서 또는 책력이라 부르는 것인데 영어로는 astronomical almanac 또는 그냥 almanac이라고 합니다. 또 일상용 달력 즉 날짜와 요일만 나온 것은 흔히 달력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서양의 calendar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레고리력은 천체력도 아니고 역법이라고 할 것도 없이 4로 나누어떨어지면 윤년이고 100으로 나누어떨어지면 윤년이 아니며, 2월의 날짜 수만 조절하면 되지요. 그러므로 그레고리 달력이라고 번역하면 '그레고리 교황 시대에 제작된 달력'을 뜻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는 것 같으니, 그레고리력으로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작은 오류도 몇 군데 보인다. 예를 들면, 204쪽에 '은하수의 동쪽 독수리 별자리의 알타이어(α) 별과 서쪽 거문고 별자리의 베가(β) 별이 그렇다.'라고 써놓았는데, 알타이어가 α별이고 베가가 β별이 아니라 알타이어는 독수리자리의 α별이고 베가는 거문고자리의 α별이다. 27쪽에 '성일'이라고 적어놓은 것은 '항성일'로 고치면 그 뜻이 더 명확해질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이정모가 주로 독일 자료를 사용해서 글을 썼다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포맷임에 틀림이 없다. 참고한 영문 자료가 하나도 없다는 것도 밝혀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독일에서 이 책을 썼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독일 자료에 비해서 한글 자료는 주로 신문 기사나 웹 사이트 기사여서 독일 자료와의 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좋은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고 자료들도 축적되었을 것이니 이를 활용해서 <달력과 권력>의 개정판을 내놓아야할 때가 된 것 같다.

<달력과 권력>은 이정모의 뛰어난 짜깁기 실력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10년이 넘는 작가로서의 경륜과 여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실들을 반영한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책에는 분명히 이정모의 성찰도 들어갈 터이니 한국의 콜린 윌슨의 탄생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꿈을 꿔본다. 사실 <아웃사이더>의 작가 콜린 윌슨이야말로 영국의 도서관을 전전하면서 그 많은 역작을 쏟아냈던 짜깁기의 대왕이 아닌가.

더 철저하게 더 뻔뻔스럽게 짜깁기한 <달력과 권력> 개정판을 보고 싶다. 한국의 콜린 윌슨을 보고 싶다.

덧글. 참고 문헌에 "저자 미상, 세종 시대의 천문학, http://astro.snu.ac.kr/~sha/Sejong.htm"이라고 적어놓은 사이트는 위에서 언급한 안상현이 대학원 시절에 운영하던 지금은 폐쇄된 개인 홈페이지다. 안상현은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고천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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