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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사는 곳, '21세기 한국'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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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사는 곳, '21세기 한국' 맞아?

[親Book] 앤서니 루이스의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2012년 벽두, 시민 박정근이 구속되었다. "2010. 3. 21. 트위터에 'seouldecadence'라는 아이디로 계정을 개설하여 북한 조평통에서 체제 선전·선동을 위하여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사이트·트위터·유튜브 등에 접속, 이적표현물 384건을 취득·반포하고, 북한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글 200건을 작성 팔로워들에게 반포하였으며, 학습을 위하여 이적표현물인 북한 원전 '사회주의문화건설리론'을 취득 보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며칠 전까지 그의 리트윗(RT)을 보며 이 사람 패기 보소, 하고 낄낄 웃던 나는 졸지에 "북한의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글을 반포당한" 팔로워가 되었다. 리트윗으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말하던 계정 주인이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고 나니, 그의 트위터 계정도 당연히 입을 다물었다. 아니, 다물렸다. 웃음이 쑥 들어갔다. '웃을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실감이 나며 모골이 송연했다. 이제 조금도 우습지 않다.

헌법 제21조는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를 헌법적 가치로 보장한다. 형사소송법은 구속 사유를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로 정하고 있다. 이 매끈하고 '자유민주주의적인' 법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출두한 스물세 살 자영업자의 몸뚱이가 일정한 주거에서 한참 먼 수원에 있는 한 경찰서의 유치장 벽 안에 갇혔다. 바로 그 '법'에 따라서 말이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자유로운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헌법적 가치로 명시한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발전해 온 과정을 다룬 앤서니 루이스 저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박지웅·이지은 옮김, 간장 펴냄)에서, 우리는 답을 찾는다.

▲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앤서니 루이스 지음, 박지웅·이지은 옮김, 간장 펴냄). ⓒ간장
수정헌법 제1조와 부딪혔던 첫 번째 일반법은 1798년에 제정된 선동법이었다. 연방 대통령을 욕하는 사악한 시민들을 처벌하는 근거로, 당연히(!)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던 선동법은 1801년에 폐지되었다. 허나 '공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억압을 정당화하는' 선동법의 특징은 사라지지 않았다. 1917년,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간첩법이 만들어졌다. 몬태나 주는 주 선동법을 제정했다. 전시 식량 통제를 "정말 웃기는 일"이라고 말한 외판원이 7년 반 이상의 중노동을 선고받는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시민들이 전쟁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공포라는 독에 면역성을 지닌 사회는 없다.' 수정헌법 제1조에도 불구하고 전시 미국 법원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보증인이 아니었다.

사회는 종종 공포에 사로잡힌다. 공포는 억압을 부르고, 억압은 자유가 아니라 공포를 수호하는 물리적인 힘이 된다.

이 책은 수정헌법 제1조가 탄생하고 백 년 이백 년이 지나도 계속되어 온 이 공포의 수호 과정을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선동법, 간첩법과 같은 법에 의해 감당하기 힘든 벌금형을 선고받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국외로 추방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에 살고 있던 12만 명의 일본계 이주민이 일본계 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막의 강제 수용소에 강제로 갇히는 일이 일어났다. 법원은 이 강제 이주 명령을 따르지 않은 시민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전쟁이 끝났다고 끝이 아니었다. 공산주의자 색출과 무차별적 폭로가 뒤를 이었고, 베트남전이 간신히 지나가자 2001년 9월 11일 테러가 일어났다. 미국인들의 국제 전화가 도청되고, 테러와 관련되었다는 의심을 받은 시민들이 변호인 접견조차 없이 무기한 구금되었다. 모두 21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자유를 향한 전진은 느리고 후퇴는 쉬웠다. 큰 용기는 더 큰 힘에 쉽게 짓밟혔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작은 용기들은 수정헌법 제1조를 지키는 힘이 되었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정치적인 의사 표현만이 아니다. 사생활, 음란물, 언론, 나치 옹호나 이슬람 극단주의 같은 우리가 쉽게 용인하기 힘든 사상들과 수정헌법 제1조의 관계 또한, 중요한 판례들과 그 사안을 둘러싼 여론과 운동의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의사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이런 다양한 쟁점들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로서의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말한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건조한 책이다. 이 책에서 만나는 판례의 차분한 소수의견, 정돈된 생각, 단 몇 줄로 놀라울 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각 사건 요약은 읽는 이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는 민주주의의 횃불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결코 차갑지 않다. 무언가를 태우기 위해서는 건조한 장작이 필요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 마지막 소제목은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용기'이다. 저자는 첫머리에서 브랜다이스 대법관의 말을 직접 인용한다.

"민주정치의 절차들을 통해 적용되는 자유롭고 두려움 없는 추론의 힘을 확신하는 용감하고 자립적인 사람들에게는, 의사표현에서 비롯되는 그 어떤 위험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저자는 이어,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용기는 특히 '판사들의 용기'라고 말하며, 비밀과 탄압은 공포를 낳고 개방성이야말로 우리에게 자신감을 준다고 거듭 강조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용감하고 자립적인 시민들로 이루어진 민주주의 공동체라고 생각했다. 어떤 반체제적인 의사 표현도 우스꽝스러우면 우스꽝스럽지, 더 이상 위협은 되지 않는 건강한 나라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팔로워들에게 풍자적 리트윗 좀 했다고 구속 영장이 청구되고, 그 구속 영장이 법원에서 정말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면, 사법부 눈에 보이는 우리나라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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