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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젬병인 '문과 인간들', "이 책 한 번 잡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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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젬병인 '문과 인간들', "이 책 한 번 잡숴봐!"

[이명현의 '사이홀릭'] 박석재의 <우주를 즐기는 지름길>

"컴퓨터 프로그램 짜고 화면 디자인도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인데요… 제가 문과라서… 이과 출신 동료들이 프로그램 짤 때 미분 어쩌구 하면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고… 그래서 과학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분 같은 걸 문과생도 배울 수 있는지… 궁금해요."

지난 연말에 열렸던 어느 과학책 북 콘서트에 참가했던 한 직장인이, 대담자들이 질문 시간을 주자 느닷없이 던졌던 질문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천재 물리학자 두 명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북콘서트에 와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싶다가도 '또 그 놈의 문과 타령' 하면서 괜히 심술이 났다. 그래도 '공대생인데 이런 책은 뭣 하러 읽으라고 하세요' 하면서 내 마음에 상처를 주던 녀석들 보다는 훨씬 낫다고 자위했었다.

유행처럼 융합을 해야 한다고 난리다. 창조적 융합을 해야 살아남는다고 호들갑이다. 애당초 인위적으로 문과니 이과니 하고 강제로 구분을 해놓고는 이제 와서 무슨 융합을 한다고 호들갑인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원인을 무효화시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그래야 우선 자신을 이과니 문과니 하면서 낙인찍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이 없어졌는데 어디에 핑계를 댈 것인가. 물론 문과와 이과를 고등학교 때부터 구분 지으려는 더 심오한 철학과 복잡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눈엔 그 전부터 그래왔으니까 그냥 그렇게 하자는 관성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 일단 그냥 없애버리고 어떻게 되는지 보면 될 일이다. 최소한 '나는 이과니까' 또는 '문과라서' 이런 말은 없어질 것이다. 그때가 창조적 융합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렇게 심술을 부리면서 퉁퉁거리고 있는 사이에 질문 시간은 끝났고 대담도 모두 마무리 지어졌다. 나는 재빨리 질문을 던졌던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느 책 읽는 모임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분명히 자신들을 문과 출신이라고 불렀을) 일반인들을 위한 수학 강의가 있었고 수학적으로 접근한 일반상대성이론 강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한겨레신문>의 '사이언스 온'에 그 내용이 연재되고 있다고도 귀띔을 해주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해주려고 했는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녀가 행사장을 떠나고 나서야 내가 그녀에게 <우주를 즐기는 지름길>(박석재 지음, 천문우주기획 펴냄)을 읽어보라고 권하려고 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천문올림피아드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늘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왔다. 비유와 은유가 넘쳐나는 대중 과학책의 해설 방식에 슬슬 싫증을 나타내는 지인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다.

▲ <우주를 즐기는 지름길>(박석재 지음, 천문우주기획 펴냄). ⓒ천문우주기획
박석재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서문에 해당하는 '책머리에'에 직설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여러 분야를 한 맥락에서 보여 주는 '꿈의 교과서'를 만들고 싶었고, 우주를 즐기는 지름길은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문과와 이과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일에 기여하고 싶기 때문이며, 실용적인 관점에서도 '꿈의 교과서'는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수학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과학(특히 천문학)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책이다. 먼저 좌표계와 벡터에 대한 기본적인 수학적 개념을 익힌 후 운동, 중력과 전자기력, 역학 같은 물리학적 개념을 익히고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거쳐서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수학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 출발은 박석재가 명확하게 밝힌 것처럼 '고등학교 문과 수학'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는 과학자가 될 꿈을 가진 고등학생, 우주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는 대학생, 재충전이 필요한 중등 과학 교사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등학교 문과 수학을 이해하고 있으면서 우주를 즐기고 싶은 일반인'들에게 이 책의 통독을 권하고 있다. 질문을 던졌던 그녀에게 지금 꼭 필요한 책일 것이다.

몇 년 전에 한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주말 반 과학 영재 학교에 참가한 중학교 2학년 (혹시 1학년이었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일반상대성이론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3시간 동안 진행된 강의에서 내가 사용한 교재는 바로 <우주를 즐기는 지름길>이었다. 249쪽에서 254쪽에 실린 일반상대성이론 내용을 응용해서 강의를 했었다.

먼저 평평한 공간에 그려진 직각 삼각형에서의 피타고라스 정리를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이를 3차원 공간으로 확장시켰고 또 시간 차원을 더해서 4차원 시공간에서의 거리와 시간 사이의 관계(즉 시공간 내의 길이)를 살펴보았다. 그런 후 이 과정을 평평한 공간이 아닌 굽은 공간에 적용시켜서 시공간 내의 길이에 대해서 탐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굽은 시공간을 다루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전개되었다.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차근차근 한걸음씩 나아가면서 강의를 했는데, 의외로 잘 이해하면서 따라와 주었다. 내친 김에 블랙홀의 크기를 계산하는 식까지 유도하고 예를 들어서 계산해 보기까지 했다. 간단한 기하학적인 개념으로부터 시작된 수학을 바탕으로 한 이 날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먼저 중학교 정도의 수학 실력을 갖고 있는 (물론 과학 영재반 학생들이니 선행 학습을 통해서 고등학교 수학에 익숙해져 있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기반으로 한 일반상대성이론을 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잘 이해하면서 따라왔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고 고마웠다.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다소 생소하고 어려웠지만 수학을 사용하니 실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답변이 많았다.

과학도 다른 모든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어렵다. 어떤 과학적 내용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수학은 빼고 한마디로 요약해서 설명해 달라는 기자들의 요구를 받으면 정말 난감하다. 그런 질문을 하는 기자들이 정말 야속하고 밉다. 그런 답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쉽게 설명해 보려고 비유와 은유를 들면서 노력해 보는 것뿐이다. 그런 질문을 하는 기자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우주를 즐기는 지름길>을 읽고 공부해서 황홀한 과학에의 수학적 접근법을 체험하고 익혀보라는 것이다. 그 중학생의 말처럼 실체적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은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운 과학의 세계에 대해서 하나씩 하나씩 익히면서 나아갈 때 느끼는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감흥이다. 그 길을 가는데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는 친구가 수학이다. 중학생들의 고백처럼 수학을 통하면 세상의 과학적 실체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우주를 즐기는 지름길>은 그 길로 가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기꺼이 동반자가 되어주겠다고 손짓하고 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이 책과 함께 과감하게 닫힌 문을 열고 '우주를 즐기는 지름길'로 넘어오시라. 고달프지만 황홀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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