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과 미국은 전형적인 안보딜레마에 빠져 상호 불신과 군사적 긴장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남북의 두 최고지도자는 원칙을 갖고 안보문제에 대처하는 강한 지도자상을 대내 여론에 각인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거두었는지 모른다. 잇단 핵무력 시위에 나선 오바마 행정부는 한미동맹 강화, 한국의 대미 무기의존도 심화, 미 행정부의 동아태전략 촉진 등 그 성과가 적지 않다. 중국도 남북 양쪽에 그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이렇게 관련국들이 다 이익을 본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가?
염치없는 두 분단정권
김정은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일말의 평화의식과 통일의식이 있다면 정전 6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대화에 나서지 않고 겨레와 세계 앞에 얼굴을 들기 어려울 것이다. 언론은 정전협정을 맺은 7월 27일이 되기 전까지는 올해가 정전 60주년임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봄의 전쟁위기는 우리가 한국전쟁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위험지대, 잠재적인 전쟁 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이 가슴 조이며 전쟁 위기를 보내며 바란 것은 오직 하나, 총을 내려놓고 대화에 나서 평화를 조성하라는 기본적 요구였다. 이 명제 앞에 대화의 격을 운운하며 대화를 버린 두 분단정권은 염치(廉恥)를 알아야 한다.
▲ 남북 수석 대표의 격 차이로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 설치된 회담장이 철거되고 있다. ⓒ뉴시스 |
군사적 대치와 이념적 불신을 바탕으로 한 남북 대결구조 혹은 분단체제는 민중이 원한 것이 아니라 분단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얼굴을 달리하지만 동종의 정치세력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정전 60주년, 분단 65주년을 맞이한 오늘 두 분단정권이 역사와 민족 앞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하길 바란다.
분단체제는 정전체제에 의해 지탱되어 왔고, 정전체제는 외세가 분단을 형성하고 고착시키는 통로로 활용되어 왔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지난봄의 군사적 긴장서 주변 강대국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남북의 갈등이 군사적 대결로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실제 군사충돌이 일어나자(혹은 일어나기 일보 직전에) 개입해 한반도문제 관리자로서의 처신을 내보이는 식으로 분단을 영구화하고 있다. 겨레를 분단시키고 한국전쟁에 관여한 외세는 남북의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남북 갈등과 대결을 조장하며 분단을 지속시키고 있다. 여기에 두 분단정권은 상대를 적대시하는 동시에(혹은 상대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외세에 편승하며 분단의 장기화를 방조하고 있는 셈이다.
외세의 한반도문제 관리= 분단영구화
핵보유국 미국과 중국이 핵공격 위협을 이유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을 비난하는 것이 공정할까 생각해본다. 객관적으로 보아 냉전 해체 이후 북한이 놓인 안보상황이 미국, 중국이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경우보다 더 절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다시 나설 조건을 조성하고 핵개발 중단에 나설 반대급부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럼에도 북한은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2005년 9월 9.19 공동선언을 위반했다. 핵무기를 가질 의사도 능력도 없다던 김일성 주석의 발언,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준수하겠다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은 거짓이 되었다. 핵무력-경제 병진노선을 내세운 김정은 정권은 북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하는 경제제재를 더 많이 받게 되었다. '강성대국' 건설이 무망하게 되었다. 김정은 정권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분단을 종식시키고 평화와 통일을 열어갈 비전을 동포와 세계 앞에 내놓을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불신의 '신뢰 프로세스'
대화의 격을 운운하고 원칙 있는 남북관계를 정립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가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5년간 남북대화가 중단된 상태에서 전쟁 위험에서 겨우 벗어나 대화가 단비 같이 느껴진 마당에, 그리고 대화 의제가 뚜렷한 상태에서 형식이 내용보다 중요할 때도 있다는 발상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태도이다. 북의 핵실험을 비핵화 공약 위반으로 비판할 수는 있어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의 국가발전전략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내정간섭의 소지가 있을뿐더러 남북대화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상대를 불신하고 일방적인 자세로 접근할 때 어떻게 신뢰를 조성하고 공동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남북대화 재개 줄다리기 과정에서 민간의 역할을 폄훼하는 듯한 정부의 입장은 통일문제에서 민관의 관계, 요즘 회자되는 민주적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일천함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가 북과 남 내부, 양면에서 불신의 늪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은 둘이 새로운 하나가 되거나, 둘 중 하나가 사라지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다. 체제경쟁 패러다임에 빠진 통일관이다. 그래서 자신이 사라지지 않거나 자신의 주도로 통일하려고 상대에 대한 불신을 없애지 못한다. 이때 평화는 구두선(口頭禪)이거나 선택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통일이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 평화공동체 수립의 문제라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이름하여 통일평화론이다.
통일평화론의 대두
북의 핵무기 개발과 남의 핵발전소 문제는 한민족의 생존은 물론 동북아시아의 공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안보와 성장을 두 축으로 하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문명사적 전환기에 불신과 대결이 가당하기나 한가?
남북의 민중은 깨어있어야 한다. 두 분단정권의 강경한 태도와 위험한 행보는 대내 보수여론에 맞춘 정권 지지도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깨어있지 않으면 민중의 생명과 생존은 권력정치에 희생될 수 있다. 정전 60주년에 항구적인 평화를 꿈꾸는 근본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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