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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들려주는 시트콤 혹은 잔혹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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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들려주는 시트콤 혹은 잔혹극?

[2011 올해의 책]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프레시안 books' 송년호(71호)는 '2011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가 따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대신, 1년간 필자·독자·기획위원으로 참여한 12명이 각자의 '올해의 책'을 선정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들을 2011년과 함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년 넘는 아파트 생활을 중단하고 서울에 방 한 칸을 얻어 산 지 겨우 5년. 그러나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설 때마다 매번 처음 와본 곳처럼 길을 헤매며 어색한 험담을 내뱉는다. 미혼이거나 전세라도 아파트가 없으면 애 취급당하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 만 2년. 그러나 아파트에 저당 잡히는 인생이 두려워 미래 계획에는 그 항목을 덮어 놓은 채 30대를 향해 걸어 나가고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박해천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는 이런 시점의 내게 다가왔다.

이미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냈듯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토건 경제나 자연 경관에 기댄 흔한 아파트 비판서가 아니며, 그 점에서 일차적으로 독자를 흡인한다. 아파트는 담론의 영역에선 늘 투기의 온상이라는 빤한 악역을 맡아 왔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저자는 아파트의 입을 빌려 "나는 담론의 가상 세계에선 언제나 패배하지만 물질의 현실 세계에선 백전백승"이라고 자못 거만한 투로 본질을 발설한다.

백전백승, 그건 단순히 아파트가 토건 경제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 가장 훌륭한 재테크 수단이 된 상황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돈벌이라는 면만을 바라본다면, 아파트에 매혹당하는 자들의 종착지는 오로지 돈 그 자체여야 한다. 저자가 집중한 것은 아파트 스스로가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주조하는 요체였다는 사실이다.

디자인 연구자인 저자는 "아파트는 한국의 시각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켰나"란 질문으로 이 책을 열고 있는데, 그 답으로 정말 각막에 머무르는 상(像)만을 다룬다고 단정하면 곤란하다. 특정한 '보는 방법'을 기르는 데, 또는 '보이기 위한' 삶을 살도록 하는 데, 나아가 그 시각을 충분히 훈련한 한국형 중산층을 낳는 데 아파트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가 질문의 전체 모습일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란 주거 모델이 어떤 사람들을 흡수했고 그들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했으며, 그들이 살아가면서 새로운 습속을 어떻게 확산시켜 갔는지를 조망한다. 나아가 그 확산이 거주자에게 어떤 윤리를 갖게 했는지,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하게 했는지, 어떤 취향을 익히게 했는지-종합하자면 '어떤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는지를 추적한다. 이 과정엔 어항, 화초라는 자연을 닮은 인테리어 장식품의 유행부터 방문 판매 형식으로 각 거실에 침투했던 '미제' 가전제품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피아노, 태권도 학원과 가든 형 갈빗집에서의 가족 외식 등 우리가 아파트 안팎에서 겪었던 모든 행위와 기억들이 총동원된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박해천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물론 처음부터 아파트가 그러한 장치를 프로그래밍한 채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아파트의 현대적 생활양식이 미처 따라오지 못한 기술, 여론과 마찰을 빚었던 1962년 마포아파트의 경우에서부터, 아파트와 아파트 생활자들은 숱한 모험과 실험을 반복했다. 시대가 정치적 '사태'나 '사건'을 분출시키고 몇 번의 버블과 버블 소멸을 거듭하는 사이, 기술의 결과물이 상품으로 쏟아졌고, 아파트 역시 진화와 장소적 확장을 거듭해 갔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아파트의 진화와 함께 커간 이들에 대한 세대론적 고찰이다. 특히 강남 일대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던 1970년대 당시, 한국전쟁-보릿고개-4·19를 거친 뒤 서울로 올라와 드디어 압축 성장의 기회 앞에 티켓을 쥐고 있던 1940년대 생이 '강남 1세대'로 부상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들 60대는 현재 시점의 정치적, 담론적 환경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3~40대, 그러니까 1970년생들의 아버지다. 아들들은 대학 교육의 수혜를 받으며 아버지 세대의 가치와 반목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이제 신도시의 부동산을 바라보며 욕망의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다. IMF 외환위기의 일차 표적이 되었던 50년대생 '이름 없는 세대'와 그 불운을 물려받은 '88만원 세대'의 모습도 아파트란 렌즈를 통해 그려진다. 이런 가족 성장담을 4·19나 5·18, 6월 항쟁 같은 정치적인 사건을 중심에 둔 세대론보다 훨씬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것, 그래서 조심스럽게 내 부모가 가졌던 아파트 사(史)와 그들의 탈정치성의 이유를 돌아보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이 책의 힘이다.

이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하는 것은 '픽션'과 '팩트'의 이중 구조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1부는 각기 다른 화자가 등장하는 '픽션' 4개로, 2부는 언론 기사와 공식 기록 등을 편집한 '팩트'로 이루어져 있다. 픽션의 주인공은 군인과 건축가의 그것이 뒤섞인 '변종의 시선'과 '아파트' 자신, '강남 중산층인 1940년대 생 남자', 그리고 '꽃무늬'다.

그동안 비난 혹은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화자들은 작정한 듯 자기변호를 쏟아낸다. 따라서 네모반듯하고 거리 설정이 가능한 설명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책을 펼치면서부터 장황한 허구와 씨름하면서 이야기의 저편을 더듬어나가는 심리전에 몰입해야 한다. 네 개의 목소리는 서로 다른 입구를 가진 "미로의 구조물"이지만, 스치거나 엇갈리고 반목하고 보완하면서 모양 좋은 옴니버스로서 완성도를 지닌다.

픽션 형식의 1차 효과는 일단 재미로 나타난다. 인용 문장이 거의 문학 작품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물론 4개의 글은 빽빽한 증거를 함께 끌고 나가야 하기에, 만일 단편 소설 같은 강약 조절 능력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숨 고르기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가 '소설 쓰기'에 실패했다기보다 오히려 다른 수까지 포함해 목적을 초과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화자의 위악과 과장이 그들이 하는 그럴듯한 이야기에 독자들이 완전히는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2부 '팩트'는 그 장황한 변호 너머의 무엇을 유추해내는 데 길잡이 구실을 해준다. 한강을 중심으로 시작된 중요한 아파트 확장의 역사를 종으로, 인테리어와 자녀 교육, 쇼핑과 여가라는 생활양식을 횡으로 엮었다. '픽션' 파트의 인용문이 주로 문학 작품인 것과 달리 '팩트' 파트는 대부분이 월간지의 르포나 사진 자료, 일간지 생활면 기사가 차지하고 있다. 그 역사는 같으므로 2부에 들어선 독자들은 1부라는 기시감을 겪게 되지만, 무의미한 돌림노래는 아니다. 인격을 지닌 목소리(픽션)가 관찰자의 딱딱한 자료(팩트)로 제3자화할 때 비로소 감지되는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팩트라는 길잡이를 통해 네 개의 목소리를 리플레이하는 독서의 말미, 독자들은 즉각적으로 자신과 아파트 사이에 놓인 사적인 기억들을 불러들이게 된다. '프레시안 books'에 이 책의 서평을 썼던 김영글 역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개인의 기억을 소환하는 책"이라고 평했다. (☞관련 기사 : 꽃무늬의 고백, "이것은 왜 '유토피아'가 아니란 말인가")

저자는 이 '픽션'과 '팩트' 사이의 빈 공간을 "책이 마련한 독자의 자리"라며 독자 개개인이 "길 찾기의 해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아파트에 관한 자신의 '진짜' 경험담으로 채울" 자리라 강조했다. 그 상호 보완적인 독서, 자기 내러티브를 개입시키는 과정을 통해 저자가 기대하는 것은 "아파트가 구축해놓은 매혹의 자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주거 공간과 일상 사물을 상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올라 탈 것인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다. 마침 때는 강남 1세대-70년대 생 부자(父子)가 벌였던 "기묘한 애증의 게임"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때다. '이름 없는 세대'의 자식인 우리 세대의 이름은, 아파트 평당 분양가에도 못 미치는 너무나도 초라한 숫자 아니던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올해의 책으로 꼽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파트와 한국 시각 문화라는 주제와 아파트 속 삶이 잡혀질 듯한 생생한 묘사, 이를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자료들, 뛰어난 문장 등등. 그러나 특히 감동했던 건 이 책이 결론에 이를 때까지 완벽한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어떤 가설을, 이렇게 웅장하면서도 치밀하게, 조심스러우면서도 흥미롭게 다루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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