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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무너지는 날…삼성 반토막, 강남 생지옥, 청와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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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무너지는 날…삼성 반토막, 강남 생지옥, 청와대는?

[평화가 우선한다] '전쟁의 추억'을 봉인하는 책

2012년 4월 15일. 김일성의 생일 '태양절', 휴전선 근처의 북한군 일부가 총부리를 남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돌렸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에 불만을 품은 북한군 내 반대파가 쿠데타를 기도한 것이다. 평양 근처에서 국지적인 교전이 있었고, 이 소식은 곧바로 전 세계로 타전됐다.

교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미국은 곧바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 체제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와 핵무기가 한국, 일본, 타이완 등 우방을 위협하는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 일본 요코스카의 미군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이 동해와 남해 인근의 공해상으로 이동했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에 중국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중국은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권력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북한 내 소요 사태를 빌미로 미국을 비롯한 제3국이 내정 간섭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중국 역시 2011년 시험 운항을 했던 자신의 항공모함을 황해로 전진 배치했다.

2012년 4월 16일. 정작 난리가 난 곳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었다. 4월 11일 총선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던 남한은 북쪽에서 들려온 총성에 패닉에 빠졌다.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곳은 주식 시장이었다. 연초 1800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주가 지수는 곧바로 곤두박질쳤다. 외국인들의 '팔자' 러시로, 정부의 외환 시장 방어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가파르게 올랐다.

2012년 4월 18일. 북한의 평양 주변에서 산발적인 교전이 여전히 계속되면서 한반도의 긴장은 더욱더 고조되었다. 중국군이 김정은의 승인 하에 압록강을 건너리라는 군의 발표가 있었다. 미군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미국은 김정일 사후 북한에서 내란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만든 '작전 계획 5029'를 만지작거렸다. 그에 따라 미군과 한국군 일부가 북한으로 넘어가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정부는 부인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2012년 4월 19일. 이날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한국 거주 미국인의 철수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사재기로 대형 할인점의 물건이 동이 났다. 특히 서울 강남의 동요가 심했다. 인천국제공항은 한국을 탈출하는 외국인, 내국인이 섞여서 북새통을 이뤘다. 대학생과 시민 몇몇은 미국과 한국의 개입은 곧 전쟁으로 이어진다며 '인간 방패'를 자처하고 판문점으로 가는 길목에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2012년 4월 20일. 검은 금요일이었다. 100만 원이 넘던 삼성전자 주가가 40만 원대로 주저앉았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주가 지수는 이미 500대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금값이 폭등했고, 기름을 비축하려는 인파로 주유소가 장사진을 이뤘다. 이 와중에 일부 기업이 자산을 해외 이전한다는 소문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돌았다.

2012년 4월 23일. 평양뿐만 아니라 압록강 인근에서도 교전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중국군의 개입에 반대하는 북한군의 내부 소행이라는 주장, 미국이 사주한 반(反) 김정은 파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엇갈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하 벙커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남쪽에 미칠 여파를 최소화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생업에 종사하라."

2012년 4월 24일. 청와대 고위 인사를 포함한 정부 주요 인사의 가족 일부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진이 트위터로 공개되었다. 정부는 '괴소문'을 차단한다며 주요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인터넷 서비스를 무기한 중단했다. 인터넷 신문이 서비스를 중단한 틈에 몇몇 보수 언론은 "평양 만수대의 김일성 동상이 끌어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물론 오보였다.

황사보다 더 짙은 공포가 한반도를 뒤덮었다. 잔인한 4월이었다.


ⓒ프레시안(손문상)

2011년 12월 19일 정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닷새가 지났다. 지난 닷새 동안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일제히 '북한 붕괴' 가능성을 점검했다. 1990년대 중반(김일성 주석 사후)에 한반도를 떠돌던 '북한 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새롭게 등장한 '김정은 체제'가 군부의 지지를 받지 못해서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앞에서 거친 상상력으로 써본 가상 시나리오는 진짜 북한 붕괴가 일어난다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본 것이다. 이 가상 시나리오는 북한 붕괴를 점치는 이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점을 강조한다. 북한에 문제가 생기면 남한이 곧바로 직격탄을 맞으리라는 사실이다. 시나리오가 보여주는 가상 상황이 '오버'라고? 항상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는 법이다.

미군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백날 폭격해도 미국 시민의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북한에서 총탄이 오가는 순간 한국 시민의 일상생활은 풍비박산이 난다. 왜냐하면, 휴전선은 서울에서 고작 한 시간, 평양은 고작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books'가 2011년 송년호의 귀중한 지면을 '북한 제대로 알기'를 위해서 할애한 것도 이런 중대한 착각을 교정하기 위해서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도, 복지와 시장의 갈등도, 생태와 개발의 긴장도 모두 한국이라는 공동체-사회가 온전할 때의 얘기다. '전쟁의 추억'을 다시 불러와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가?

다 같이 죽자고? 아니, 혹시 전쟁이 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첫 번째 질문 : 북한은 과연 붕괴할 것인가?

▲ <정세현의 정세 토크>(정세현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대형 서점의 북한 서가에 가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책들이 가득하다. 그나마 대부분은 냉전 시기에 쓰인 '김일성은 뿔났다' 수준이 대부분이다. 이런 마당에 과연 일부 대학은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은 북한학과를 아예 없애려는 모양이다. 북한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 한반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들썩이는데 북한 연구의 토대를 부수겠다는 건가?

그런 먼지 뒤집어쓴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은 남북 교류의 산 증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원광대학교 총장)이 쓴 <정세현의 정세 토크>다. 2008년 7월 15일 첫 회를 시작으로 총 60차례 진행된 <프레시안>의 인기 연재 '정세현의 정세 토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제훈 <한겨레21> 편집장의 평을 들어보자.

"외교, 안보, 통일 분야 담당 기자들 사이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제대로 비판하는 하나의 가이드라인' 구실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회자된다. (…) 술자리 토론에서 의견이 다른 지인과 사이에 '마음의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이 책은 전문 서적 열 권 이상을 읽은 뒤에 느낄 지적 희열과 개안을 독자들에게 안겨줄 것이라 믿는다." (☞관련 기사 : 칠흑같은 MB 시대, '정세의 등대'를 켜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언론에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얘기하자마자 제일 먼저 이 책을 집어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선 정세현 전 장관이 북한 붕괴를 놓고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 전 장관은 이렇게 간명하게 북한 붕괴 전망을 일축한다.

"3대 후계자로 알려진 3남 김정은은 나이가 어려 경험이 부족하고 능력이 별로 없을 테니까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 역사에서만 봐도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젊은 세자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에 선왕을 승계하면 중신들이 그 젊은 임금을 잘 보필합니다. 그렇게 조선조 500년을 끌고 왔어요.

김정일 위원장도 조선 시대 중신에 해당하는 원로들이 보필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겁니다. (…) 북한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적 선거로 정권의 정통성이 인정되는 체제라면 김정은 체제는 오래 못 갈 겁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 정권의 정통성은 선거가 아니라 혈통으로 결정되고 있어요. 북한은 사실상 왕조라고 봐야 합니다.

왕조는 혈통으로 정통성을 규정하는 거고, 중신들이 버텨주면 그냥 가는 겁니다. 이걸 무시하고 후계자가 나이가 어려서 붕괴할 거라고 말하는 건 너무 섣부릅니다. 북한을 비판할 때는 독재 국가니 왕조니 비판하면서, 전망할 때는 민주주의 잣대를 들이미는 건 모순입니다. (…) 북한 체제의 장래를 전망하려면 체제 위협 요인만 따질 게 아니라 체제 지탱 요인도 같이 분석하고 비교해야 합니다." (<정세현의 정세 토크>, 65~68쪽)

이런 분석에 미국의 한국 현대사 연구자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교수도 공감을 표시한다. 커밍스 교수는 20일 미국 군사 전문지 <디펜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원로 지도층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다시 김정은 후계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이끌어왔다"며 "이들이 김정일과 김정은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 "북한 원로 지도층이 김정은 체제 전환 이끌 것")

두 번째 질문 : 북한은 몰상식의 '깡패 국가'인가?

"나는 김정일을 증오한다. 김정일은 피그미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 <김정일 코드>(부르스 커밍스 지음, 남성욱 옮김, 따뜻한손 펴냄). ⓒ따뜻한손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북한에 대한 한국 및 서방 언론의 태도를 한마디로 규정하면 '조롱'이다. 김정일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북한 여성의 태도를 보여주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앵커의 멘트가 뒤따른다. 하지만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당시의 대한민국은 어땠나? 그 때도 독재자의 죽음에 거리 곳곳에서 오열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북한은 혼란스러운 나라다. 그러나 그 나라도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나름의 논리를 가진 나라다. 마치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500년이나 지탱되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 조선 왕조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운영되었듯이 말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김정일 코드>(따뜻한손 펴냄)는 북한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는 책이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에서 "북한이 일체의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강압적 국내 정치"를 가지게 된 책임의 상당 부분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잿더미"로 만들어 놓은 미국의 "무서운 파괴"에서 찾는다. 커밍스는 "전쟁이 잠잠해진 1951년 봄 이후에도 미국은 2년간 북한에 맹공을 퍼부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가 침묵하는 이 폭격으로 300만 명의 북한 주민이 희생당했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에서 북한 체제를 옹호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북한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북한에는 정치범들이 있는가? 물론이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최소한 10만 명이나 된다. 강제노동수용소가 있는가? 심지어 최고 간부라고 할지라도 통치자의 의지를 거스르면 가족들과 함께 격리된 지역에서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 체제가 인간의 자유를 향상시킬 것인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그러나-"조선 민족을 위한 자유"처럼-자유라는 말이 외국 침략자에 대한 독립적인 입장을 의미하기도 하는 한국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신랄한 판단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민족적 자유 독립은 예수가 탄생한 무렵부터 같은 장소에서 통합과 통일성을 유지해온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인 덕목이다.

(…) 이 나라는 처음 40년은 식민 통치로, 그 다음 60년은 민족 분단과 전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으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불안정한 국가다. (…) 때때로 북한에서는 죽음의 그림자와 악에 근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구세대들의 괴로움에 시달린 듯한 얼굴에서도 이런 감정이 스며 나온다.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느낀다. 첫째는 명치끝의 통증이다. 나는 그들이 옳다는 것과, 지독한 폭력이 압도했던 20세기에서도 가장 처참한 전쟁으로 인해 겪은 고통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미국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더 두려운 느낌으로 미국인들 대부분이 1950년대 초 그들의 이름으로 자행했던 전쟁의 참극을 알지 못하고,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정일 코드>, 251~253쪽)

그리고 커밍스 교수는 요덕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가족과 함께 10년간 갇혀 있었던 강철환(현재 <조선일보> 기자) 씨의 경험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되묻는다. 미국은 몰상식의 '깡패 국가'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운가?

"(강 씨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10년간 수용된 전과가 평양 거주나 대학 입학 그리고 엘리트 지위로 진입하는 데 반드시 장애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언한다. 반면에 미국은 감옥에 흑인으로 가득 찬, 강제노동수용소를 가지고 있다. (…) 그곳에는 모든 흑인 청년들의 25퍼센트 이상이 감금돼 있다. 이것이 경찰국가인 북한의 핑계거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을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미국인들이 먼저 그들의 내부 도시가 가진 병폐에 대해 무엇인가를 시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김정일 코드>, 142~143쪽)

세 번째 질문, 북한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가?

▲ <냉전의 추억>(김연철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한국의 언론은 끊임없이 되묻는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우문(愚問)이다. 왜냐하면, 북한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북한의 의지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즉, 앞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김정은 체제'와 공존하기 위해서 한국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의 <냉전의 추억>(후마니타스 펴냄)은 60년의 냉전 기간 동안 "선을 넘어 길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전쟁의 공포'가 짓누른 60년간의 역사를 수십 개의 일화를 통해서 살펴보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 것은 (남과 북을 막론하고) 그 공포를 통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실체다.

예를 들어서, 1994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7월 8일)하기 직전 무슨 일이 있었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을 이렇게 회고했다.

"클린턴 대통령하고 그 때 대판 싸웠습니다. 그때 내가 싸우지 않았다면 아마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거예요."

한국도 모르게 미국이 전쟁을 검토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연철 교수에 따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은 거짓말이다." 당시 미국 클린턴 행정부 핵심 당사자 세 명이 쓴 책을 보면, 김 전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반대로 증언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시종일관 밀어붙인 것은 김영삼 대통령 자신이고, 한국은 미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

북한과의 전쟁 공포로 '사재기 열풍'을 불러온 1994년 여름의 난리는 김영삼 정부가 만든 것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6월 6일 "북한이 무모한 모험을 감행한다면 자멸과 파멸의 길로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청와대는 북핵 보도를 늘려 달라는 부탁을 방송사에 했고, 6월 9일부터 방송은 전쟁 위기, 북핵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이 난리는 일단락이 되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멈추지 않았다.

"카터의 방북이 결정되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카터의 방북은 실수'라고 비난했다. (…) 김영삼 정부는 협상의 길목을 차단하면서, 북핵 문제를 위기의 길로 몰아갔다. 성숙한 국민 의식을 안보 불감증으로 몰아세웠으며, 행정망을 통해 사재기를 결과적으로 부추겼다. (…) 강남 부유층이 집중적으로 보여 준 사재기 열풍은 '만들어진 공포'였다." (<냉전의 추억>, 149쪽)

그나마 이렇게 '만들어진 공포'로 전쟁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2000년 남북 정상 회담과 같은 평화를 향한 여정으로 반전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이른바 '평화 세력'의 노력이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피스메이커>는 책 제목대로 '피스메이커'의 숨은 노력을 생생히 보여준다.

▲ <피스메이커>(임동원 지음, 중앙북스 펴냄). ⓒ중앙북스

임동원 전 장관은 <피스메이커>에서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이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히 전한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핵심은 1990년부터 10년간의 남북 교류를 다룬 뒷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으로서 27년간 '피스키퍼'로 일하던 임 전 장관이 '피스메이커'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세상이 변했습니다. (…) (1960~70년대) 한국은 자유 진영의 첨단 기지로서 공산 침략에 대처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국제 냉전은 끝났습니다. (…) 2차 세계 대전 후에 분단되었던 나라들은 모두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반공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종식시키고 분단을 극복하여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모든 사상과 정책은 그 시대의 아들입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낡은 시대의 사상과 생각을 계속 고집한다면 낙오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 둘째, 이제 북한의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지금은 세계사의 대전환기입니다. (…) 북한의 변화를 슬기롭게 유도하여 안보 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적극적 평화'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싸우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부전승전략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두 가지 이유, 두 가지 상황 인식에 따라 이제 저는 평화를 지키는 소극적인 피스키퍼의 위상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나가는 피스메이커로서의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피스메이커>, 164~166쪽)

"공산주의 비판과 대공전략론을 강의하고, 자주국방을 외치며 군사력 증강 계획을 주도하시던 강경한 반공 보수주의자가 왜 그렇게 변하셨습니까?" 재향군인회가 주최한 강연에서 적잖이 실망스럽다는 투로 질문을 던졌던 한 청중에게 임동원 전 장관이 한 답변이다. 이렇게 '피스메이커'가 만들어졌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남쪽이 변해야 북쪽도 변한다.

마지막 질문, 한반도에 희망이 있는가?

▲ <북조선 연구>(서동만저작집간행위원회 엮음, 창비 펴냄). ⓒ창비

싫든 좋든 남쪽과 북쪽은 운명 공동체다. 남쪽에서 문제가 생기면 북쪽에서 눈물이 흐르고, 북쪽에서 문제가 생기면 남쪽에 불똥이 튄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둔다면, 남쪽도 북쪽도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 일찍이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를 '분단 체제'라고 명명했고, 2009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서동만 전 상지대학교 교수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서 평화, 복지, 경제의 새로운 도약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으며, 체제의 성격과 발전 수준이 다른 북조선의 경우도 남북이 함께 해야 바람직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 평화, 복지, 개발을 연계한 '남북 협력 발전' 구상을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준비해야 할 때다." (<북조선 연구>, 374쪽)

정세현 전 장관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통일 비용을 계산하는 데 늘 투자 비용만 계산했지 분단 시대에 불가피하게 지불해야 했던 분단 비용을 빼지 않은 것이었어요. 통일이 되면 분단 비용은 통일 비용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통일 비용을 계산하려면 투자 비용에서 분단 비용을 빼야 순투자 비용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럴 빠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 7000만이 넘는 국내 시장을 가지고 남쪽은 하이테크, 북쪽은 노동 집약적 산업을 발전시키면 최근의 중국처럼 고속 성장도 가능합니다. 요새 청년 실업 때문에 고민인데 남이나 북이나 일자리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결과고요. (…) 남북이 경제 교류, 협력을 하고 남북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요." (<정세현의 정세 토크>, 26~30쪽)

서동만 교수, 정세현 전 장관이 말하는 방향은 '몽상'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현실로 이뤄야 할 '과제'다. 그런 길을 닦지 않고서는 한반도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2013년 6월 15일. 남북 정상이 제주도에서 만났다. 앞서 4월 15일 북한 정부는 핵무기 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이번 정상 회담은 이런 북한의 선언에 맞춰서 좀 더 긴밀한 남북 간의 교류 협력 현안을 조율하고, 더 나아가 세계에 선언하는 자리의 성격이 컸다. 한편, 이 자리에서 남측은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을 중단하고,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2013년 7월 15일. 정부는 북한의 에너지난 해결을 위해서 남측에서 제조한 풍력 발전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서해안 일대에 풍력 발전 산업 단지를 조성하고, 거기서 생산한 풍력 발전기를 해로를 통해서 북한으로 운반할 계획이다. 이런 발표에 맞춰서 북한은 핵발전소 건설을 전격 중단했다.

2013년 8월 15일. 김정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뉴욕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북한의 변화 노력을 설명하면서 국제 사회의 각종 경제 제재를 풀어줄 것을 호소했다. 한국 정부가 이런 북측의 입장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이날 유엔 총회에서는 전격적으로 북한 지원을 위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2013년 12월 17일. 국제 사회의 지원으로 북한의 경제 사정이 급속도로 호전되면서 북한 체제가 안정되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날 김정은 부위원장은 개성처럼 남한 기업이 들어오는 경제 특구를 북한 곳곳에 다섯 곳 이상 만들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남북 대학의 상호 학문 교류를 제안하며, 일단 북한 대학생 수백 명의 남쪽 유학을 건의했다.

2014년 1월 1일. 김정은 부위원장이 2014년을 '희망의 행군' 원년으로 선포했다. 김 부위원장은 남측과 국제 사회의 지원에 각별한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불발된 남북 단일팀을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브라질 월드컵에서 보게 되리라고 장담했다.

한편, 남북 정부는 수년간에 걸쳐서 남북의 국문학자들이 공동으로 제작해 2013년 발표한 <겨레말대사전>에 맞춰 교과서, 공문서의 맞춤법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이런 움직임에 호응해 남쪽의 몇몇 출판사는 <겨레말대사전>에 맞춰서 편집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함께 읽기

<정세현의 정세 토크>(정세현 지음, 황준호 정리, 서해문집 펴냄)
<김정일 코드>(브루스 커밍스 지음, 남성욱 옮김, 따뜻한손 펴냄)
<냉전의 추억>(김연철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피스메이커>(임동원 지음, 중앙books 펴냄)
<북조선 연구>(서동만 지음, 서동만 저작집간행위원회 엮음, 창비 펴냄)

브루스 커밍스의 <김정일 코드>와 함께 북한 체제의 성립 과정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책은 서동만의 <북조선 사회주의 체제 성립사 1945-1961>(선인 펴냄)이다. 서동만의 이 책은 전 세계 북한 연구자의 필독서로 자리 잡은 역작이다. 심지어 북한의 연구자도 이 책을 참고한다는 후문이다.

이종석의 <새로 쓴 현대 북한의 이해>(역사비평사 펴냄), <북한의 역사>(이종석·김성보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백학순의 <북한 권력의 역사 : 사상, 정체성, 구조>(한울 펴냄)도 현대 북한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꼽힌다. 현재의 남북 관계를 '분단 체제'의 틀로 분석한 백낙청의 다음의 작업도 한반도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지침이 된다.

<흔들리는 분단 체제>(백낙청 지음, 창비 펴냄)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백낙청 지음, 창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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