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폐막일에 있었던 기자 회견에서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지난 16년 동안 가장 어려운 영화제였다. 1, 2회 때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다…올해 BIFF는 영화의 전당과 시공사의 비협조로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폭탄 발언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렇게 서러움을 겪어가며 할 필요가 있나 싶다"면서 "좋은 집 필요 없다. 텐트 치고 야외 행사로 영화제를 할 수도 있다"는 비장한 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상전 노릇하는 집주인
첫 번째 문제는 영화의 전당을 지으면서 출범한 영화의 전당 재단이었다. 건물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이 재단은 영화의 전당 건물이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으로 지어진 만큼 영화제 지원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런데 재단은 자신이 공간의 주체이고 영화제는 건물을 빌려 쓸 뿐이라는 착각을 한 것이다.
이들은 개막을 앞두고 영화제 스태프들이 밤을 새가며 일을 할 때도 그 빛나는 공무원 정신으로 퇴근을 해버리는 것은 물론 정신없이 돌아가는 영화제 측의 일에 제동을 걸기 일쑤였다. 초청 인사 불러놓고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담당자' 찾아 3만 리를 헤매듯 해야 했다. 기본적인 업무도 내팽개쳤다. 화장실 등 건물 청소는 물론 화장실의 화장지 비치까지 영화제 스태프들이 해야 할 정도였다.
완공도 되지 않은 건물에서 개막식을 치르느라 모든 영화제 스태프들이 터질 듯한 초긴장 상태에서 준비를 하는데 영화의 전당 김승업 대표는 아내와 함께 레드카펫으로 입장하기도 했다. 그 비상시국에 건물 관리 책임자가 어처구니없게도 게스트로 등장한 것이다. 부산시가 임명할 때에도 영화와는 관련 없는 인사라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앞으로 BIFF가 걱정"이라고 한마디씩 하던 장본인이었다.
▲ 부산 영화의 전당. ⓒblog.naver.com/kkeehwan |
MB가 울고 갈 부산시의 '폭풍 삽질'
또 다른 문제가 있다. 11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는 총 관객수 19만6177명, 참석 게스트 8828명, 취재진 2440명, 상영 영화 70개국 307편이라는 준수한 성과와 함께 폐막했다.
그러나 올해 영화제의 최고 뉴스는 뭐니 뭐니 해도 폐막일의 '물바다'였다. 30밀리미터의 비를 견디지 못하고 그 거대한 건물 전체에 물난리가 난 것이다. 직원이 "비새는 곳이 셀 수가 없다. 창피하다"고 실토했을 정도로 건물 꼭대기에서 지하층까지 영화의 전당은 부실 그 자체였다.
사실 영화의 전당은 건물 내부 외부를 가리지 않고 조악하고 난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외벽을 잠시만 살펴봐도 한눈에 마감이 엉망이고 틈이 벌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아파트 모델하우스보다도 못하다. 내부 인테리어는 더하다. 어떤 이는 변두리 면사무소 수준이라고 평했다. 한마디로 말해 껍데기만 지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나.
이게 바로 올해 영화제가 시끄러웠던 진짜 이유다. 부산시는 '무대뽀 정신'으로 건물만 지어 올린 것이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놀라지 마시라. 그들은 정말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폐막 직후의 지역 신문 기사 내용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개·폐막식장인 더블콘(야외 무대)이 비가 오면 사용할 수 없게 설계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니까 비가 오는 경우 그 공간은 비가 새서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말이다. 이는 시공사인 한진중공업의 "설계 탓"이라는 변명이나 조승호 부산시 건설본부장의 "비가 오면 야외 공연을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바람구멍을 통해 비가 새도록 설계한 것 같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그 공무원의 말이 정말 기가 막힌다. 1700억 원을 들여 건물을 지으면서 "비가 새도록 설계한 것 같다"니.
부산시의 막장 행정, 폭풍 삽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9월 29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하고 10월 6일 BIFF 개막식을 치렀다. 준공 검사조차 받지 않은 사실상의 불법 건축물에서 급한 대로 가승인만 받아서 대통령 모시고 행사하고 또 1주일 뒤 부산 최대의 국제 행사까지 치른 것이다. 이런 '막장적 무뇌 행정'을 가능케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부산의 오랜 숙원 사업이던 BIFF 전용관이 이렇게 부실 덩어리로 전락하게 된 것은 부산시가 워낙 서둘러 정치적으로 일정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무리수는 바로 부산시의 최고위층의 결정이었다는 게 지역에선 파다한 이야기다.
최근 부산처럼 지리멸렬한 광역자치단체는 없다. 부산 서쪽의 경제자유구역은 올해 지식경제부로부터 꼴찌 평가를 받았고 동부산관광단지 계획은 수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엎어지고 또 엎어졌다. 유니버설스튜디오, MGM, 서머스톤 등과의 잇따른 협상이 실패하더니 이 사업을 기사회생시키겠다며 두바이의 기업과 협약을 맺으며 요란한 팡파르를 울렸지만 이도 결국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 2009년 초 결국 허남식 시장은 대시민 사과까지 해야 했다.
계속 헛발질만 하던 부산시가 그즈음 꽂힌 게 바로 영화의 전당이다. 2008년 삽질을 시작하더니 이후 폭풍 삽질이었다. 그런데 설계가 어떤지, 그 안을 어떻게 꾸밀지, 어떻게 운영할지는 생각하지 않고 삽질만 했다. 설계사인 쿱 함멜브라우사가 설계해 8년 만에 지었다는 독일의 BMW벨트(BMW본사 홍보관)와 쌍둥이 건물인데 부산시는 이걸 3년 만에 짓겠다고 했다.
막장 행정, 부실 시공, 졸속 개관의 결과는?
지난 여름 많은 이들이 부실 공사를 염려했다. 한눈에 봐도 10월 개막식은 무리였다. 개관 전 기자 회견에서 쿱 함멜브라우의 울프 프릭스 대표는 "3년이라는 공사 기간이 너무 짧지 않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유럽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그러나 부산시 건설본부장은 개관을 강행하며 "디자인과 설계가 비슷한 독일 BMB벨트는 시공이 8년 걸렸지만 규모가 훨씬 큰 영화의 전당은 3년밖에 안 걸렸다. 기적이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이러한 막장 행정, 부실 시공, 졸속 개관의 결과는 처참하다. 이미 시공이 끝난 마감재를 다 뜯어냈고 완공 한 달도 안 돼 대대적 대공사에 들어갔다. 이건 엄밀히 말해 '개보수'가 아니라 '재공사'다. 결국 시장님 업적 과시를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인 공사로 인해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붓고도 모자라 수리비를 또 끌어다 부어야 한다. 이 건물엔 시비 1078억 원 뿐 아니라 국비 600억 원도 들어갔으니 온 국민이 함께 열 받으셔도 무방하다.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재공사 수준의 전면 개보수 때문에 개관 일정의 연기가 불가피했지만 이미 잡혀있는 공연과 연주자들의 일정 때문에 보수 공사와 행사를 병행하기로 했다. 그로 인한 불편함은 시민들의 몫인데 영화의 전당 이미지와 신뢰도의 추락 역시 불가피하다. 이미 일부 공연 관계자들은 "부산에서 일 못 하겠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폭풍 삽질의 처참한 결과는 또 있다. 원래 영화제 전용관으로 계획된 이 건물은 부산시가 필요 이상으로 규모를 키우는 바람에 운영에 따른 적자 손실 문제가 제기되었다. 사실 문화예술 공간은 수익성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영화의 전당은 연중 9일간 열리는 BIFF를 위한 전용관이기 때문에 영화제를 통한 무형의 가치를 생각해야지 건물을 활용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발상은 건물의 원래 취지와 목적은 물론 기능마저 훼손하게 마련이다.
'닥공'의 새로운 버전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한 가장 대표적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기형적으로 탄생한 하늘연극장이다. 영화의 전당의 대극장 격으로 원래 1300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관으로 계획됐던 하늘연극장은 수익 사업을 위한 멀티형 극장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840석 규모의 3층 구조로 바뀌었다. 영화제 때는 영화도 상영하고 그 외 기간엔 클래식, 국악,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을 수용하겠다는 욕심이었다.
사실 800석 규모에 3층 관객석은 비상식적인 억지 설계에 가깝다. 결과는 영화 상영에도, 음악 공연에도 부적합한 애매한 공간의 탄생이다. 영화를 위한 공간은 흡음을 위해 바닥에 카펫을 깔고 벽면도 천 재질로 마감한다. 음악 연주 공간은 그 반대다. 그런데 하늘연극장은 벽면은 콘크리트 노출 마감이고 바닥엔 카펫이 깔려 있다. 결국 영화 상영 때는 그나마 벽면에 커튼을 치는 식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클래식 공연 때는 음향 전달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는 지난 달 백혜선과 부산시향의 공연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소리가 둔탁했을 뿐 아니라 1층에선 오케스트라의 악기가 피아노에 묻혔고 3층에선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에 가렸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이렇다. 관객들은 "2층에서 보자." 공연 관계자들은 "클래식을 하기에 좋은 공연장은 아닌 것 같다."
간단하게 말해 철학도, 생각도, 계획도 없는 공사였던 것이다.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전북 현대의 '닥공(닥치고 공격)'만 있는 게 아니다. 부산시의 '닥공(닥치고 공사)'도 있다.
'더 이상 나쁠 수 없다'는 부산, 누구의 책임인가
그 어느 시민도, 영화 관계자는 물론 영화 애호가도 영화의 전당을 빨리 개관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한다. 올해 꼭 문을 열어야 한다고 '목숨 걸고' 달려든 것은 부산시라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정이었나. 1700억 원을 들여 지어놓고는 아직껏 준공 검사도 받지 못하고 제 기능도 못하는 데다 해를 넘겨가며 계속 보수 공사를 벌여야 하는 이 꼴이 도대체 뭔가.
시장 잘 뽑아야 한다. 저쪽 어디는 시장 잘 뽑으니 무상 급식도 하고 대학 등록금도 반값 만들고 시청 소속 비정규직 2800명을 정규직으로 바꿔줬다. 시장이 먹여주고 학교 보내주고 취직시켜 준다. 바로 '사람 우선'의 행정이다.
부산은 '개발 우선'의 행정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그 놈의 '개발'만 떠들어 댔지만 되는 개발은 한 개도 없다. 하는 것, 손대는 것마다 엎어졌다. 그래서 '마이다스의 손'이라 했더니 누구는 '마이너스의 손'이란다.
사람 우선의 행정이 부산에선 불가능한가. 가능하다. 생각하고 판단하면 된다. 생각이 짧으신가. 그럼 물어보기라도 해라. 도대체 생각도 않고 묻지도 않고 정책결정을 하니 지금 부산의 꼴이 어느 부산 시정 평가 토론회의 제목처럼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아니겠는가. '폭풍 삽질' '닥치고 공사'의 부산에 미래는 없다.
도대체 얼마나 말아드셔야 멈추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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