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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잡아가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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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잡아가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기고] '희망 버스' 송경동 시인 구속을 반대한다

한진중공업 정리 해고를 반대하며 309일간 크레인 고공 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연대하고자 '희망 버스' 행사를 기획했던 송경동(44) 시인에게 구속 영장이 발부됐다.

지난 18일 오후 9시께 부산지방법원 박미리 영장 전담 판사는 특수 공무 집행 방해, 일반 교통 방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공동 건조물 침입,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다섯 가지 혐의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송 씨와 같은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정진우(43) 진보신당 비정규직실장에게도 영장이 발부됐다.

이런 송경동 시인의 구속을 보면서 박진성 시인이 <프레시안>에 긴급 기고를 보냈다. 박 시인은 구속 영장 발부 결정에 "한 사람의 자유를 잡아 처넣겠다고 결정을 하려면 좀 신중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희망 버스 안의 '희망'은 보이질 않고 육중한 기계 덩어리, 버스만 본" 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편집자>


▲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부산 영도 경찰서 출두를 앞두고 있는 송경동(오른쪽) 시인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희망 버스 송경동 시인의 외로운 정부

송경동 시인께.

또 하나의 코미디가 시작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형이, 경찰서에 자진 출두하던 날, '수배 중'이라는 우스운 꼬리표를 스스로 반납하던 날, 그래, 저들은 또 얼마나 "사소한 질문들"을 던질까. 309일을 목숨 걸고 공중에서 버텨낸 김진숙에게 구속 영장을 내밀 때, 아, 이놈들이 코미디언들 밥줄까지 끊으려 안달이구나, 한참을 웃었더랬는데, 또 하나의 코미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형.

그렇게 애타게 찾았으면, 제 발로 찾아온 형에게, '특수 공무 집행 방해, 일반 교통 방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공동 건조물 침입,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이딴 걸 들이밀어 구속할 게 아니라,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형을 그렇게 애타게 간절하게 발발거리면서 찾았으면, 형에 대해 그렇게 알고 싶었으면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이게 뭐냐고"(송경동, '혜화경찰서에서'), 정말 이게 뭐냐고, 한참을 웃었더랬습니다.

오늘은 한국작가회의 규관 형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형이 구속되어 대책 회의를 하고 있는데 기고문 좀 하나 쓸 수 있겠느냐. 늦은 오후였고 산책을 하고 있었고 비 그친 하늘이 참 맑았더랬습니다. 규관 형과 저는 일면식도 없습니다. 통화만 몇 번 했을 뿐, 규관 형의 시집, <패배는 나의 힘>을 읽으면서 전율했을 뿐.

규관형과 나는 무던한 사입니다. 아닙니다. 한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그에게 모조리 마음을 주었다면, 나를 다 준 겁니다. 마찬가지로 일면식도 없는 송경동 시인을 제가 형이라고 호명하는 이유는, 내가, 형의 글에, 형의 희망 버스에 나를 다 줬기 때문입니다. 그게, 제가 아는 희망입니다. 제가 배운 희망입니다. 망설이다가 망설이다가 옆의 사람 손을 잡는 일, 옆의 사람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일. 시커멓게 수염 난 사내들의 거친 사랑입니다.

한 사람의 운명에 간섭하고 싶다면 그 사람을 먼저 좀 알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 주진 못하더라도,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 사람의 운명을, 한 사람의 자유를 잡아 처넣겠다고 결정을 하려면 좀 신중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들의 눈에는 희망 버스 안의 '희망'은 보이질 않고 육중한 기계 덩어리, 버스만 보이나 봅니다. 아니, 애초부터 저들의 희망과 우리들의 희망은 그 국적부터, 색깔부터, 계급부터 다른가 봅니다.

안 보이는 희망을 버스에 태울 생각을 하시다니, 형은 참 대단도 하십니다. 정리 해고 제도에는 정작 정리 해고에 대한 사랑이 없고 정리 해고에 대한 희망이 없고 자본만 있습니다. 인턴 제도에는 정작 인턴에 대한 사랑이 없고 인턴에 대한 희망이 없고 자본만 있습니다. 비정규직 제도에는 정작 비정규직에 대한 사랑이 없고 비정규직에 대한 희망이 없고 자본만 있습니다. 디자인 서울에는 정작 디자인에 대한 사랑이 없고 디자인에 대한 희망이 없고 자본만 있습니다. 4대강 사업에는 정작 강에 대한 사랑이 없고 강에 대한 희망이 없고 자본만 있습니다.

진짜 사랑과 진짜 희망이 없는 것들을 저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희망 버스에는, 제가 아는 희망 버스에는 진짜 사랑과 진짜 희망이 있습니다. 진짜가 아닌 놈들은 진짜를 제일 무서워합니다. 진짜입니다. 역사가 그걸 제일 잘 압니다.

멀리서, 누가 누구를 죽이는 듯한 고요 속에서 형의 시를 읽습니다. 든든합니다. 진짜의 희망을 진짜의 엔진에 태우는 기술을 형에게서 배웁니다. 손 잡아주는 기술, 우리가 연대라고 말하는 기술, 사랑의 기술. 어느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복사씨와 살구씨가 사랑에 미쳐서 날뛰는 기술".

그곳에서의 시간이 차라리 형에게 휴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질문들"이 자꾸만 형을 괴롭히겠지만 그곳에서 형이 써 나갈 시들을 생각하면 나는 벌써부터 한 계절 건너 설레는 꽃나무입니다. 이미 희망 버스는 어딘가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서로의 가슴에 희망을 아로새기는 기술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발랄한 혁명, 이렇게 서늘한 혁명, 이렇게 가슴 뛰는 혁명의 복판에서 나는 촌스럽게도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어쩌면, 형이 그리고 싶었던 희망 버스, 저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희망 버스는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복사씨처럼 단단한 형의 시 한편을 여기에다 이렇게 옮겨 적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형.

나의 외로운 정부

송경동

어려선 자주적 민주 정부에 빠져보기도 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일국 혁명을 넘는
영구 혁명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오늘부터 나는 내 안에서
작고 새로운 하나의 정부가 되기로 한다
하나의 새로운 민족
이성도 동성도 아닌 다성애자
전혀 다른 빛깔의 인종
또 다른 질감의 대지와
산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헛된 기대에 빠지지도
낙담하지도 쓸쓸해지지도 말자는 다짐
이 무수한 정부들이
제각기 자유롭고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이 올 때까지
타협하지 말자는 나의 외로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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