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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지식인 고백 "당장 핵폭탄 1250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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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지식인 고백 "당장 핵폭탄 1250발 만든다!"

[프레시안 books] <후쿠시마, 일본 핵 발전의 진실>

야마모토 요시타카 선생님께,

이번에 한국에 번역돼 나온 <후쿠시마, 일본 핵 발전의 진실>(임경택 옮김, 동아시아 펴냄)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사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의 지식인 몇 사람을 떠올렸어요. 그들이라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는 일면식도 없는 야마모토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사실 야마모토 선생님의 명성은 1980~90년대 한국의 이공계 대학생 사이에서도 유명한 것이었어요.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가진 한국의 이공계 대학생이라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 교토 대학 교수와 함께 입자 물리학을 연구하다 전공투(全共鬪) 의장을 지낸 야마모토 선생님의 경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와 야마모토 선생님을 연결 지어서 생각해본 것이 꼭 학생 운동 경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야마모토 선생님은 1969년 12월 "평범한 물리학도로서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며 홀연히 세상을 등지고 나서, 학원에서 물리를 가르치다 <과학의 탄생(磁力と重力の發見)>(이영기 옮김, 동아시아 펴냄)을 펴냅니다.

현대 물리학의 핵심 개념인 '힘'의 기원을 중세의 마술적 세계관에서 찾은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차례 탄복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나름의 '현대의 지성' 목록에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는 이름을 올려놓았으니까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했던 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핵 발전의 불편한 진실

▲ <후쿠시마, 일본 핵 발전의 진실>(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임경택 옮김, 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후쿠시마, 일본 핵 발전의 진실>은 불편한 책입니다. 일본의 지식인이 독하게 마음먹고 지금 일본이 어떤 지경에 처했는지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니까요. 나라 안팎에서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어두운 소식이 들려오는 상황에서, 이런 책을 읽는 일본인의 심정은 어떨지…. 하지만 일본인이 아닌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야마모토 선생님은 이 책에서 일본의 핵 발전이 핵 무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선생님께서 인용한 1958년 핵 발전에 박차를 가한 총리대신 기시 노부스케의 솔직한 속내는 중요한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태평양 전쟁 중 일본의 '전시 통제 경제'를 책임졌던 'A급 전범'이었지요!)

"원자력 기술은 평화적 이용 또는 무기로서의 사용 모두 가능하다. 어느 쪽으로 사용할 것인가는 국가 정책이고 국가 의지의 문제이다. (…) 기술이 진보하면 무기로서의 가능성은 자동적으로 고양된다. 일본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일 수 있다."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은 백지 한 장의 차이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종이 한 장의 차이도 없다고 한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원자력의 다양한 이용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군사적인 목적의 원자폭탄 발달로부터 생겨난 것들이다. 평화적으로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유사시에 이것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기시 노부스케의 이런 호언장담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야마모토 선생님께서 인용한 <아사히신문> 2011년 7월 21일자 기사를 보면, 일본은 수십 년에 걸친 핵 발전의 결과 핵무기 1250발분에 해당하는 10톤의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다섯 번째입니다.

일본의 대륙간탄도탄 수준의 미사일(로켓) 제조 기술을 염두에 두면, 일본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습니다. 이미 1975년 당시 일본 과학기술청 원자력 담당 과장이 도쿄의 영국 대서관에서 "일본은 3개월 안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말을 부정할 근거가 제게는 없습니다.

핵 발전과 핵폭탄은 똑같다

핵 발전을 둘러싼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마음이 더욱더 무겁워집니다. 보수, 진보 막론하고 기시 노부스케가 날카롭게 포착했던 핵에 대한 진실을 외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줄기차게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국의 핵 발전을 찬양할 때, 그것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무기 개발과 사실은 "백지 한 장의 차이도 없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혹시 애써 부정하는 걸까요? 실제로 한국의 보수 중에는 핵무장에 대한 열정을 감추지 않는 이들이 점점 나타나고 있습니다.)

갈지자 행보는 진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선에서 핵 발전 포기를 공언했던 한 진보 정당은 정작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단호한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역시 핵 발전과 핵무기의 차이가 "백지 한 장의 차이도 없음"을 깨닫지 못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자위'를 위한 핵무장을 은근히 옹호하기도 합니다.)

야마모토 선생님, 오늘날 세계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금융 위기'를 거론하겠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냉전 체제 내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해온 요소였던 핵폭탄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의 가장 큰 불안 요인입니다. 금융 위기가 무서운 것도 그것이 자칫하면 세계적 수준의 혹은 지역적 수준의 분쟁을 낳아서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2만7000개의 핵폭탄이 존재합니다. 북한까지 염두에 두면 아홉 개 나라가 핵폭탄을 가지고 있고, 일본과 같은 나라는 언제든지 핵무장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냉전 종식 이후 핵무기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면서 테러리스트들이 소형 핵폭탄 몇 개 정도를 확보할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평화학자 폴 로저스가 말했듯이, '용'들을 없애고 나니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지금 인류의 안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단호하게 핵무기를 반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핵 발전 퇴출이 되어야겠지요. 야마모토 선생님께서 후쿠시마 사고와 핵 발전을 논하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요?

핵 발전은 '괴물'이 아니다!

야마모토 선생님,

<후쿠시마, 일본 핵 발전의 진실>을 마무리하면서 선생님께서는 일본 사회의 현재 모습을 '원전 파시즘'으로 규정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정·관·재가 일체가 된 '괴물' 권력이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추진한 핵 개발이 결국 후쿠시마의 참상을 낳은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렇다면, "한 번 폭주를 시작하면 거의 절망적일 정도로 통제를 하기 힘든" 이 '괴물'의 고삐를 어떻게 쥘 수 있을까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일본이 "탈 원전 사회, 탈 원폭 사회"를 선언하자는 야마모토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야마모토 선생님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 발전에 반대하는 국내외 많은 지식인의 목소리에서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절박한 반대 뒤에 깊은 패배감이 엿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패배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혹시 우리는 핵 발전을 반대하면서 그것의 위험을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감히 '괴물'에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사실 그것은 '괴물'이기는커녕 소년 다윗의 돌멩이 하나에도 쓰러질 수 있는 골리앗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핵 발전이 돌멩이 하나에 쓰러질 약체는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핵 발전은 세계 곳곳에서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자신의 힘을 과시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마치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괴물'처럼 인식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역사적으로 구성된 많은 요소의 네트워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핵 발전을 구성하는 네트워크에 구멍이라도 하나 생긴다면, 바로 거기서부터 그 네트워크 전체가 파괴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야마모토 선생님께서 책 전체에 걸쳐서 인용하는, 핵발전소에서 몸담았다 그것의 위험을 포착하고 반대 입장으로 돌아선 히라이 노리오, 기쿠치 요이치 등과 같은 과학기술자들 역시 그런 작은 구멍들입니다.

후쿠시마 사고는 어떻습니까? 후쿠시마 사고야말로 바로 그런 핵 발전의 네트워크에 생긴 큰 구멍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체르노빌 사고와 시민들의 격렬한 반핵 운동이 독일의 핵 발전을 퇴출시켰던 것처럼, 후쿠시마 사고와 그에 따른 시민의 실천에 따라서 일본, 한국에서도 다른 미래가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요?

*

사실 <후쿠시마, 일본 핵 발전의 진실>과 같은 책도 핵 발전에 던지는 돌멩이 중 하나입니다. 마침 이 책이 소개될 즈음에 한국에서는 약 90명의 대학 교수들이 '탈핵 에너지 교수 모임'을 결성해, 지난 11월 11일 출범식을 가졌습니다. 이런 돌멩이가 하나둘 씩 늘어난다면,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일찍 '핵발전소 없는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또 다른 글과 책으로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직접 뵙고 이런저런 의견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지금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일본도 조만간 한국을 따르겠지요. 무엇보다도 건강에 주의하십시오.

2011년 11월 18일

한국에서 강양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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