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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짜 정의? '외로운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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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짜 정의? '외로운 동물'!

[프레시안 books] 노다 미치코의 <덴코짱>

"이건 뭐라고 써져 있는 거예요?"

담벼락에 붙어 앉아서 한창 열심히 강연을 듣고 있던 한 사내아이가 손을 들더니 불쑥 이렇게 물었다. 그 녀석 눈에는 강연을 위해서 나눠준 점자 그림책 표지에 새겨진 점자가 알 수 없는 암호처럼 느껴졌을 터이고 그게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점자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한 시각 장애인 여자 아이에게 넘겼다.

"생명의 씨앗 혜성"

그 아이는 손가락으로 점자를 재빨리 훑더니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그렇게 외쳤다. 눈이 멀쩡한 다른 아이들은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춘천의 작은 도서관에서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과 보통 아이들을 섞어놓고 강연을 했다. '10월의 하늘'이라는 이름을 걸고 과학자들이 전국의 작은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는 일종의 기부 강연 행사였다.

몇 년 전에 천문학 교육에 관련된 학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미국 보스턴 과학 박물관에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천문학 강연을 진행하고 있던 천문학자를 만났다. 라는 점자 그림책도 한 권 얻어왔다. 마음속에 기회가 되면 시각 장애인을 위한 천문학 강연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일을 실행시켜보기로 하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만화가 조남준 화백에게 계획을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일을 같이 하자고 했다. '10월의 하늘' 강연을 위해서 먼저 조남준과 함께 우주 이야기를 담은 점자 그림책을 만들었다. 둘 다 점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점자 도서관을 찾아가서 배우면서 열 쪽 정도 되는 작은 점자 그림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내 강연에 앞서서 드라마 PD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고 <슈퍼스타K> 시즌3에서 인기를 모았던 가수 이정아가 노래를 몇 곡 불러준 뒤여서 분위기는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점자 그림책을 나눠주면서 아이들의 반응을 먼저 살폈다. 시각 장애인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열심히 점자 그림책을 만지면서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책자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아이들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점자 그림을 만지면서 호기심을 보였다.

점자를 읽을 줄 아는 시각 장애인 아이들을 강연의 중심에 올려놓고 진행을 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아이들이 점자로 적혀 있는 간단한 문구가 궁금하다고 하면 바로 시각 장애인 아이 한 명에게 다가가서 마이크를 넘겨주고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 큰 소리로 다른 아이들에게 알려주라고 하는 식으로 강연을 했다.

시각 장애를 갖고 있거나 건강한 눈을 갖고 있거나 그런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분위기를 즐겼고 정말 기뻤다. 특히 시각 장애인 아이들이 웃음을 보이면서 적극적으로 대답도 하고 할 때는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점자 그림책을 학교에 갖고 가서 자랑해야겠다고 했을 때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그 날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어느 화요일 오후였다. '프레시안 books' 기획 회의를 하면서 새로 나온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글씨 크기로 봐서)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를 대상으로 쓰인 것 같은 동화책 <덴코짱>(노다 미치코 글, 오타 도모 그림, 김경인 옮김, 양철북 펴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덴코짱은 이 책의 주인공인 이즈미카와 카렌의 별명이다. 일본말로 '점자 읽는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는데, 시각 장애인인 카렌에게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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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코짱>(노다 미치코 지음, 오타 도모 그림, 김경인 옮김, 양철북 펴냄). ⓒ양철북
도서관 강연 현장에 있었던 초등학교 6학년 딸에게 <덴코짱>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딸아이와 나는 틈날 때마다 서로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그 책을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글을 쓰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도서관의 감흥이 잊혀 지기 전에 <덴코짱>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원래 내 생각은 <덴코짱>을 읽고 서로 독립된 글을 쓴 다음 교환해서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계획은 틀어져 버렸다. <덴코짱>을 딸에게 건넨 순간부터 우리들의 대화가 시작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이 책을 받아들자마자 도서관 강연 이야기를 꺼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나누기가 먼저 진행되었다.

내가 책 읽기를 미루고 있는 사이 딸아이는 <덴코짱>을 다 읽고 종이에 독후감을 써서 내게 내밀었다. 입력을 해서 파일로 달라고 요청을 했더니 바로 컴퓨터를 켜고 옮겨 적더니 내게 이메일로 글을 보내왔다.

우선 딸아이가 보내 온 글을 고치지 않고 아래에 그대로 옮겨 적는다. 보기 좋게 단락만 내가 나누었다.

<덴코짱>을 읽고…

이 책, <덴코짱>은 간단하게 말해서 감동과 신기함을 전해주는 책인 것 같다. 왜냐하면 카렌이 눈이 안 보인다는 게 참 안타깝기도 하고,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행복하다는 게 참 대견스럽기도 하다. 음… 만약 내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싶고, 많이 우울할 것 같은데….

그리고 배울 점과 반성되는 점도 있었다. 덴코짱이 시각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책을 엄청 많이 읽었다는 걸 듣고는 나도 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요즘은 이래저래 좀 바빠져서 책을 통 읽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책 읽는 게 좀 귀찮아지기도 한 것 같다.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카렌도 책을 많이 읽었고, 또 책읽기를 좋아하는데, 눈이 멀쩡한 나는 책읽기를 귀찮아한다는 게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예전처럼 책 읽는 습관을 가지면 또 금방 예전처럼 책읽기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뽑자면…아무래도 유령 이야기를 하던 카렌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유령 이야기가 무서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난 그 이야기가 무서운 것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왠지 카렌의 외로움이 그 이야기에 담겨져 있던 것 같다. 특히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생각들과 그리움이랄까…그리고 난 카렌의 어머니가 아무리 유령이라고 해도, 카렌의 곁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카렌이 기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 같아도 우리 엄마가 아무리 유령이라도, 귀신이라도 내 곁에 있어주고, 또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내 얘기를 들어줄 수만 있다면 내 곁에 있는 게 내 곁에 아예 없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이 든다. 또 유령이란 게 마냥 무섭게만 느껴졌는데 카렌의 유령 이야기를 들으면서 카렌의 곁에 아무도 없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카렌은 되게 명랑하고, 솔직하고, 밝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외로움이란 건 참 말 그대로 외로운 것 같다. 외로움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다기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커지는 게 더 맞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카렌이 외롭지 않고 정말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면 좋겠는데…난 왠지 카렌의 유령이야기에서 이제까지의 카렌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춘천에 작은 도서관이라는 도서관에 가서 우리 아빠가 점자책으로 우주에 대해서 시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강의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재밌게 같이 즐기고, 설명해주던 것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나도 눈을 감고 점자를 만져보고, 그림도 만져보았는데, 점자는 무슨 뜻이었는지 도통 몰랐었는데 시각 장애인들이 그 뜻을 가르쳐줘서 시각 장애인들과 같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인상 깊었고, 너무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그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점자 하니까 든 생각이, 책을 읽다 보니 책 그림에 점자와 그 뜻이 나와 있는 그림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로 톡 튀어나온 점자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좀 더 생생하게 느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걸 만져보는 시각 장애인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또, 이 책을 시각 장애인들에게 들려주거나, 점자책으로 출판해서 줄 수 있다면, 그들이 매우 좋아할 것 같다. 또한, 공감 가는 내용도 있을 것 같다. 시각 장애인들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해 줄 수 있다면, 이 책이 적절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우리나라는 아직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말로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라고 해 놓은 것이 많지만, 막상 보면 불편한 점이 꼭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다.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등등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고, 우리와 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려서 어떤 것을 체험해보거나, 느껴보거나,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들이 꽤 많은데, 이 편견들이 좀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딸아이의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어떻게 글을 써야할까, 고민하다가 솔직히 방향을 잃고 말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 대부분을 아이가 이미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냥 한두 가지만 덧붙이는 것으로 내 글을 마감하기로 했다.

<덴코짱>은 나름대로 아픔을 갖고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즐겁고 따뜻한 일상생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각 장애인인 카렌은 물론 이 책의 화자인 우에노도, 카렌의 할아버지도 모두 크고 작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늘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배려하면서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만남의 기쁨과 함께 이별의 슬픔도 곳곳에 스며있다.

그런데 그 모든 핵심에는 이 모든 희로애락을 더 이상은 나눠 가질 수 없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궁극적인 외로움이 있는 것 같다. 온전히 자기 자신만이 감당해야만 하는. 딸아이가 그 점을 포착해낸 것에 사실은 좀 놀랐다. 그리고 그 궁극의 외로움을 그 아이와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딸아이도 나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외로웠다. 그래서 우리는 더 부대끼면서 마주하면서 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점자책을 읽을 때 덴코짱의 그 기쁨에 찬 얼굴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보물산에 있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우에노가 카렌의 모습을 묘사한 이 글을 보니, 점자 그림책을 만지면서 웃음 띤 얼굴로 질문에 대답하던 그 때 그 아이들 모습이 겹친다. <덴코짱>을 읽는 딸아이의 외로운 마음이 겹친다. 거기에 가을 같은 내 마음 하나를 더 겹쳐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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