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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영어 연설하던 박근혜의 유연함은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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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영어 연설하던 박근혜의 유연함은 어디로 갔나?

[한반도 브리핑] 남북관계, 남아있는 옵션이 별로 없다

남·북 당국회담이 결국 무산됐다. 회담 무산에 대해 남·북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13일 담화를 통해 남·북 당국회담을 파탄 낸 한국정부가 엄중한 후과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담화를 발표하였고 이에 대해 정부는 북한이 '남·북 당국회담' 무산의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한 것과 실무접촉 과정을 일방적으로 왜곡해 공개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북한이 과거 남북회담 관행을 운운하고 있으나 과거 관행을 일반 상식과 국제적 기준에 맞게 정상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대응하였다.

▲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13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북당국회담 무산을 우리 정부의 책임으로 돌렸다. 정부 역시 조평통 담화에 반박하면서 북한에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촉구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외교에서 '의전(儀典)'이 중요하듯이 남·북 관계에서도 의전은 무시할 수 없는 사항이다. 외교에서 의전을 중시하는 이유는 미시적으로는 상대국의 입장을 배려함으로써 양자 협상 또는 회담을 보다 자국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이고 거시적으로는 상대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의전은 확고히 고정되어 있다 할 수 없으며 사안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방미 중 미국 연방하원에서 연설을 영어로 하였다. 통상적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상대국의 언어에 아무리 능통한다고 하여도 자국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영어로 연방하원에서 연설하였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영어로 연설함으로써 미국연방하원의원들에게 그리고 미국언론들에 보다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었고 한미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남·북 당국회담을 위한 준비 회의에서 한국의 이러한 외교적 유연성은 실종되었다. 오히려 의전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기선(機先)을 제압하려는 계기로 활용하려 하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통일부 당국자는 조평통담화에 대해 반박하면서 "정부는 북한에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으며, 북한이 성의를 갖고 책임 있게 대화에 호응해 오길 바란다"고 촉구하였으나 북한이 자신들의 담화에 밝힌 내용을 철회하고 회담에 다시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의전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 실제 남북 당국자 회담 그리고 회담에서 논의될 안건과 그것이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정세에 미칠 영향이다.

먼저 우리가 파악하여야 할 것은 전쟁위기까지 갔던 남북관계가 어떻게 '남북당국자 회담'이라는 유화국면으로 갔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분석은 필자의 기고문 "이지마의 방북과 최룡해의 방중, 우연의 일치였을까?"를 참조하기 바란다).

전운이 감돌았던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대화와 협상의 국면으로 바뀐 것의 계기가 된 것은 지난 5월 14일부터 17일까지 일본이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参与, 특별보좌관)를 전격적으로 북한에 특사로 보낸 것에서 비롯된다. 이지마 참여는 15일 북한의 최고위급 외교담당자인 김영일 노동당 국제비서와 면담하였을 뿐 아니라 17일에는 북한의 대외 수반격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만났다.

이지마 참여가 돌아가고 5일 후인 22일 북한은 인민군 총정치국장이자 노동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그리고 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최룡해를 중국에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로 파견하였다. 최룡해특사는 3박 4일 동안의 중국방문기간 중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판창룽(范長龍) 중국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만났으며 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를 예방하여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필 서신도 전달하였다.

지난 16일 북한 김영남(오른쪽)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일본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일본 특명 담당 내각관방 참여(參與·자문역)가 면담을 가졌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리고 6월7일과 8일 미·중 정상회담이 미국에서 열렸다. 미·중 정상회담은 이미 1년 전부터 준비된 것이지만 일본이 북한으로 특사를 파견하고 곧이어 북한이 중국으로 특사를 파견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 아닌, 전격적인 일이었다. 북한과 유일한 '동맹국'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G2시대에 신형대국관계를 지향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그리고 패권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지만 여전히 유일 패권국으로 남아 있는 미국으로서도 미국과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북한과 북한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미국과 중국을 'G2'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집어넣고는 있지만 아직 중국은 미국과 패권경쟁을 하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며, 아울러 미국은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유일 패권국이라는 사실이다. 즉 북한문제는 미국에게 보다 당면한 문제라고 할 수 있고 미국은 이 문제를 푸는 것에 보다 당사자적인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지난해 말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와 올해 초 제3차 핵실험 강행에 대해 미국이 유엔안보리를 주도하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군사훈련으로 맞대응하였고 급기야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르는데 필수적인 항공모함 니미츠호를 한반도에 파견하였고 북한은 항공모함을 공격할 수 있는 지대지 미사일인 KN-02로 추정되는 단거리 발사체를 3일 연속으로 발사하며 대응하였다.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면전 위기로 가고 있었다.

미국과 북한간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자될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미국도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 또한 명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과의 전면전을 피하면서 북한의 위협에 굴복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방향에서 북한 문제를 풀어갔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 일본을 통해 북한이 원하는 것을 조건을 달아 전달하는 것이며 그 조건의 내용은 남·북 관계개선을 기반으로 다자간의 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미국입장에서 남·북 관계개선이 선차적인 조건이 되는 것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북한문제가 미국에서는 외교적으로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미국국민들이 북한 문제를 남·북간의 문제로 보는 것에 연유된다. 미국은 패권국의 입장에서 남·북간의 문제를 조정, 관리하는 모습을 고수하려 하기 때문에 우선 악화되어 있는 남·북관계가 풀려야만 북한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입장 (박근혜 정부는 지난 방미 때 미국의 숙원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동북아 미사일방어체제 동참에 동의함으로써 동맹국으로서의 입지를 높였다)에서 한국이 상황에 이끌려 피치 못해 조력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한국이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남북관계개선을 선차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조율을 통해 중국이 다자회담을 주도하게 하여 중국의 위상제고를 도와 지난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의 동참을 이끌어내 완성한 동북아 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한 중국의 반발을 일정하게 상쇄하는 효과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일촉즉발의 전쟁의 위기에서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 정세가 갑작스러운 유화국면으로 변하게 된 것은 이와 같은 복잡한 배경이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정세변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남북관계개선이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데 초석 또는 관문과도 같기 때문에 남북관계개선에서 한국의 기여도에 따라 한국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에 핵심 (linchpin)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현재 남북관계는 일정기간 또는 이명박 정부 시절과 같이 불신과 대립으로 5년을 보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남·북 관계개선이 되지 않고 미국과 동맹이 지속된다면 동북아는 한·미·일 동맹의 한축과 중국, 북한, 러시아를 다른 축으로 갈등, 대립하는 신(新)냉전체제로 들어갈 가능성도 내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한국이 배제된 상태에서 동북아에서 평화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다자회담이 열릴 수 있고 지정학적으로 동북아 중심 그리고 관문이 되는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동북아 국가들 간의 경제개발/협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경제개발/협력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어느 가능성을 타진하여 보아도 한국에게 유리하지 않다. 단 북한이 조용히 내부적으로 붕괴되거나, 그렇게 되지 않아도 현 상태에서 또 다른 핵 실험도 인공위성 발사도 하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데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과연 그러한 바람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이러한 바람도 현실성이 없다면 단 한 가지 옵션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과거 남·북관계 개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북한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비중 있는 인물을 특사로 파견하여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회담을 갖고 남·북 당국회담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남·북 정상회담에 들어가는 것이다. 상황은 상이하지만 2000년 첫 번째 남·북 정상회담도 비슷한 경로를 거쳐 성사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진퇴양난의 형국이지만 낙담만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더 늦기 전에 특단의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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