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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의 비밀, 성경 아닌 이 '만화'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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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의 비밀, 성경 아닌 이 '만화'를 봐!

[이명현의 '사이홀릭'] 펠릭스 페라니의 <우주>

"만화책에서 그 이야기를 처음 접했어요. 아마 그것에 대한 개념 정립도 만화책을 통해서 얻었을 거예요. 사실 만화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요."

네덜란드에서 유학하던 때의 일이다. 가끔씩 한국인 연구원과 학생들이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하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위의 말은 어느 사회학 박사가 한 말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동의했었다. 그의 이름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 날 모두들 숨겨놓았던 애인을 공개하듯 '만화를 통한 자신만의 학습기'에 대해서 털어놓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별과 우주에 화제가 이르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주에 대한 개념이 형성된 것은 만화 덕분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약간은 의아하고 충격적이었다. 과연 그럴 만한 만화책이 있었는지 회의적으로 되묻게 되었었다. 너무 교육적인 면만 강조하거나 고압적으로 계몽하는 만화책들만 떠올랐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선배가 책 한 권과 그 책을 번역한 원고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스티븐 호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얇은 만화책이었다. 영문판 첫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그 만화책에 매료되고 말았다. 강렬한 흑백의 대비를 이루고 있는 그림도 좋았지만 툭툭 튀어나오는 짧은 글들도 핵심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멋진 만화책이 있다니, 하면서 혼자 기뻐서 날뛰던 기억이 난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만화 작가와 함께 '멋진' 우주 만화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했었다.

나중에 서점에서 선배가 번역한 스티브 호킹에 대한 만화책을 만났다. 반가워서 책을 집어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언뜻 보니 같은 시리즈 내에 그 책 말고도 재미있는 제목들이 눈에 여럿 띄었다. 그 중에서도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이 총서 시리즈 제1권인 <우주>(펠릭스 페라니 지음, 크리스틴 로슈 그림, 김영신 옮김, 이두 펴냄)였다. <우주>를 펼치자마자 나는 또 다시 매혹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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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펠릭스 페라니 지음, 크리스틴 로슈 그림, 이충호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큰 별 네 개가 떠있는 하늘을 배경삼아 길게 누워있는 사람이 내뱉은 듯한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글자가 첫 장에 박혀있었다. 도발적이고 시니컬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흑백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이 툭툭 던지는 대화로 분위기를 절정으로 몰아가는 방식도 신선했다. 매혹적이었다. 이어지는 짧지만 명확한 설명도 잘 어울렸다. 있어야할 곳에 있어야할 것이 있다고나 할까. 내용도 형식도 미학도 모두 매혹적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우주>를 다 읽어버렸다.

"캐롤린…이것 봐, 이것이 혹시…남자의 그거 아닐까…."
"아이 바보 같아. 그건 아녜요, 윌리엄." (무식하군.)


<우주> 속에는 이렇게 수수께끼처럼 이어지는 장난스러운 대화가 자주 나온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여러분들도 그림을 보면 동감하면서 피식 웃을 것이다.

"1920년대 말에 허블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
"은하들이 서로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단 말이지요?"
"은하들이 서로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빨리 멀어져 간단 말이지요!"
"그러니까—은하들이 서로 멀어져가고 있다는 건, 우리은하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걸 뜻하나요?"
"우주의 중심 같은 것은 없어. 서로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다른 은하에서도 똑같이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군요."


이처럼 마치 교과서를 요약해 놓은 것 같은 정교한 대화도 있다. 몸을 뒤로 좀 제치고 말을 툭툭 던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대화에 꼭 어울린다.

"…우주 배경 복사라고?"
"그건 다시 돌아오는 오페라 가수 같은 거야, 밥."


이렇듯 멋진 시적 비유들도 넘쳐난다. 물론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충 설명을 읽어야할 것이지만.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번역자의 용어 선택이 좀 어색하다. 천문학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와 어긋나서 생경한 느낌을 주는 말들이 여러 번 눈에 띄었다. 예를 들면 분광사진기는 분광기로, 접시형 전파 수신기는 접시형 전파 망원경으로 쓰면 더 좋을 것이다. 오역도 눈에 좀 보인다. 예를 들면, 30쪽에 실린 "지구가 우주 안에서 하나의 위성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라는…" 중에서 '위성'은 '행성'의 명백한 오역이다. (물론 원본의 오류일 가능성도 있다.)

<우주>는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마치 긴 서사시 한편에 온갖 우주 이야기를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압축의 결정판 같은 만화책이다. 따라서 많은 보충 설명이 필요한 책이다. 실제로 <우주>를 대학교 교양 천문학 교재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한 학기 내내 이 책에 적혀있는 구절과 그림을 해설하는 식으로 강의를 했었다. 그렇게 해설하면서 학생들과 같이 읽어나가기에도 적합한 책이 바로 <우주>이다.

지인들이 읽을 만한 우주에 대한 책을 소개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먼저 그 사람이 우주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어느 정도 지식 체계가 잡혀있는지를 알아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초보자에게 권하는 책은 보통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로 귀결되곤 한다. 이미 읽어본 사람들에게도 다시 읽어볼 것을 권하면서 약간의 보충 설명을 곁들인다. '우주'라는 서정적이고 서사적인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이다.

정말 우주에 대한 열정이 있고 나름대로 책도 많이 읽고 지식 체계가 갖춰져서 스스로 내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 <우주>를 권한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압축된 만화책 <우주> 속에서 내가 느꼈던 그 희열을 다시 느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이 나온 것이 1993년의 일이니 그동안의 천문학의 새로운 발전을 감안해서 읽으라고 사족을 단다.

<우주>가 출판된 후 천문학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고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 중에는 틀린 것도 있고 좀 더 분명해진 것도 있고 새롭게 밝혀진 것도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꼭 긴 설명과 함께 사족을 달곤 한다.

허블상수 값이 큰 논란이라고 적혀 있지만(52쪽), 이는 더 이상 논란이 아니라 작은 오차와 함께 그야말로 상수가 되어있는 형국이다. 우주의 시작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55쪽), 지금은 아주 활발하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주의 나이도 100억 년과 200억 년 사이에서 논쟁 중이(60쪽) 아니라 137억 년으로 굳어졌다. 우주의 미래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129쪽) 아니라 가속 팽창하며 영원히 커져가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주제이기도 하다.

<우주>가 1993년과 2011년 사이의 천문학적 혁명의 간극을 메우면서 다시 쓰이고 그려졌으면 좋겠다. 원작자의 시도가 없더라도 각주로라도 보완되었으면 좋겠다. <우주>는 오래되었다고 버려지거나 잊혀져버리기에는 너무나 멋지고 잘 짜여있고 충실하고 아름다운 책이기 때문이다. 증보 보완판을 기대해 본다.

내가 사랑하는 만화책 <우주>의 매력은 마지막 장에서까지 우리가 간과하기 쉽지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새삼스럽고 멋진 멘트와 여전히 시니컬한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 도도함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현재 우리가 된 것은,
우주가 현재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

이 글을 다 쓴 후, <우주>가 출판사를 옮겨서 새로운 <우주>(펠릭스 피러니 지음, 크리스틴 로슈 그림, 이충호 옮김, 김영사 펴냄)로 다시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책을 사서 달라진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얼른 보니 2006년에 지은이가 일부 내용을 보완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쪽수가 몇 쪽 늘었고 그림과 텍스트가 좀 더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먼저 위에서 지적했던 내용이 고쳐졌는지 살펴보았다. 우선 다소 어색하던 용어 선택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접시형 전파 수신기는 전파 망원경으로 바로잡혔다. 오역이라고 지적했던 "지구가 우주 안에서 하나의 위성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라는…" 중 '위성'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대신 "지구가 평범한 위치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으로 번역되어 있었다(34쪽).

번역자가 바뀐 만큼, 텍스트의 변화도 보인다.

"캐롤린… 이것 봐, 이것이 혹시… 남자의 그거 아닐까…"
"아이 바보 같아. 그건 아녜요, 윌리엄."


이두 판 <우주>에서 이렇던 것이 김영사 판 <우주>에서는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 원문의 변화인지 번역자의 재치인지는 모르겠다.

"캐롤라인, 설마 이게…"
"맞아, 오빠. 이건 새로운 천체야!"


인용했던 한 군데를 더 살펴보자.

"…우주 배경 복사라구?"
"그건 다시 돌아오는 오페라 가수 같은 거야, 밥"

이렇던 것이 요렇게 바뀌었다.

"이거 시민 라디오 방송이야?"
"내 생각엔 또 그 오페라 가수 같은데, 윌슨."


위의 글에서 1993년부터 2011년 사이의 천문학적 발견을 반영했으면 하는 바람을 적었었다. 2003년의 개정판에서 많은 부분이 반영된 것 같다.

허블상수 값은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값이 제시되었다 (54쪽). 우주의 시작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지만(59쪽), 다중 우주나 끈 이론 같은 새로운 이론들도 소개하고 있다 (153쪽, 162쪽). 우주의 나이도 137억 년으로 적혀 있다(64쪽). 우주의 미래에 대해서도 가속 팽창하며 영원히 커져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133쪽). 가속 팽창의 원동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암흑 에너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145쪽).

증보 보완판을 기대해 보겠다던 내 바람이 이루어진 것 같아서 너무 기쁘고 설렌다. 새롭게 번역된 <우주>의 마지막 멘트와 함께 '기쁜' 마음으로 쓴 사족을 닫으려 한다.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우주가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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