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은 전라북도 변산군 모항리에 사는 농부다. 날마다 농사일로 고된 생계를 잇는 농부 시인이 10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냈다.
요즘 귀농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일이 고돼서 좌절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나는 하물며 농사일을 거의 해본 적도 없이 입으로만, 손가락으로만 농사 운운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지만 <콩밭에서>를 읽으며 뜨거운 시심(詩心)을 억제할 수가 없어 독자들과 함께 읽어보려고 한다.
일하다 지쳤는지 / 꽃들은 늘어지고
당신들도 좀 쉬세요 / 호밀랑은 걸어놓고
뒤이어 이파리들 / 푸르게 푸르게 일어선다
-등나무
도시 생활에 찌들대로 찌든 나는, 1950년대 말에 변산반도 작은 어촌에서 태어나 자라고 평생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시인의 삶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솔직히 말해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이 이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인 시를 쓸 수 있는 것에 놀랐다. 시인 박형진에 궁금한 것이 많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초등학교 시절을 쓴 자전 동화 <갯마을 하진이>(보리 펴냄)도 올해 출간되었다.
책을 구해 읽고서 알았지만, 그 당시 가난한 어촌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시인이 열일곱 살 때에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뛰놀던 동갑내기 친구들 열여덟 명이 전부 도시로 일하러 떠났고, 그 후로 시인은 고향에 홀로 남아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가난한 갯마을 하진이
"… 동무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마다 하진이는 괴로웠습니다. 도시로 떠나갈 수밖에 없는 동무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럴수록 하진이는 동네를 더욱 잘 살게 만드는 방법은 갯벌을 막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진이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부자로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니고, 갯벌은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으로요. 갯벌을 막으면 그곳에 살던 귀중한 생명들이 모두 사라지고 마니까요. (…)"
―'글쓴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갯마을 하진이> 중
시인의 집 앞에 펼쳐진 텃밭에는 갖은 채소와 작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사시사철 밭농사 논농사를 함께 지으면서 언제 아름다운 시심을 길러 좋은 시를 쓰냐고 할지 모르지만 시인이라면 강단에 서건, 번역을 하건, 농사를 짓건 삶이 곧 시요 시가 곧 삶이다. 박형진 시인도 매일 뙤약볕 아래 논밭에서 골병 든 몸을 던지며 농사를 짓는다. 그러는 동시에 가슴속에서도 시를 짓는다. 그리곤 한밤중에 홀로 깨어 종이 위에 쓴다.
소쩍새도 낮에 / 힘든 일 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 왜 저리 울고 있나
―새벽
시인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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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밭에서>(박형진 지음, 보리 펴냄). ⓒ보리 |
박형진 시인은 직장 동료의 아버지이지만 그 무렵까지 나는 시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기에 내게 훌륭한 시인이 아니라 그저 좋은 직장 동료의 좋은 아버지였던 셈이다. 햇볕이 쏟아지던 5월 한낮에 그는 작물이 빽빽이 들어찬 밭 한가운데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더없이 바쁜 때 큰딸 직장 동료들이 왔으니 못 본 체 일만 할 수도 없고, 거기서 하던 일을 멈출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한참 밭일을 더 하고서야 시인은 마당으로 들어섰다. 손에 들린 자루는 딸과 손님들 챙겨 줄 작물로 묵직했다.
양파밭 매다가 / 감자밭 매다가 / 돌아서 양파밭 매고 / 또 돌아서 감자밭 매고
논에 갔다가 / 집에 갔다가 / 또 논에 갔다가 / 밭에 가는데
니미럴!
낮잠 자다 하품 하냐 / 뻐꾸기 우는 소리 너무 한가해 / 내 발걸음도 느려진다
―오월
꾸밈없는 농군의 입담으로 농사가 바쁘다고 말하고 짬짬이 본 사물에게 몇 마디 뇌까렸을 뿐인데 이렇게 재미난 시가 나온다. 평범하고 속된 언어로 강약과 완급을 조절해서 감동적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가 시인이다. 더욱이 농부 시인은 논밭을 바쁘게 오가며 곡식과 채소를 돌보고 허리는 절반으로 휘면서도 자신만의 노랫가락을 멈출 수 없다. 땅과 곡식, 관절염과 신경통이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서 나오는 노래다.
농사나 시나 아무런 매개 없이 열매를 얻을 수 없다. 농부가 땅을 파고 김을 매려면 농기구가 필요하듯이 시인이 현장에서 시구를 건져 올리려면 일과 자신을 통틀어서 진실되게 털어놓는 자신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생명이 하는 노동
학창 시절에는 신경림 시인의 <새재>(창비 펴냄)를 들고 눈으로 뒤덮인 문경새재를 넘기도 하고, <남해 금산>(문학과지성사 펴냄)을 쓴 이성복 시인처럼 기막힌 시를 쓰고 싶어서 밤낮으로 시를 생각하며 습작도 했지만 어줍지 않게 학문을 하겠다고 대학원에 들어간 뒤로는 시가 지닌 진실된 힘과 그 아름다움을 점점 잊고 살아왔다. 학자에게 농부의 농기구나 시인의 목소리 같은 것은 무엇일까.
이제까지 철학자나 과학자와 같이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세계관이니 가치관이니 방법론이니 또 관점이니 법칙이니 하면서 그들의 방대하고 심오한 학문 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파헤치고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런 노력들도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자연과 인간이 주고받으며 살아온 노동의 역사를 배우는 일이다.
인간이 자연에 노동을 가해서 먹고 살아온 역사와, 풀과 나무와 곡식들이 물·흙·햇볕·바람들과 협동하며 노동해온 생태계의 역사를 배우려는 자세다. 그렇지만 이런 절실한 배움, 깨달음은 학자들이 아니라 시인들로부터 자꾸만 울려나온다. 박형진 시인도 농사를 하면서 자연계와 주고받은 생명 노동에서 자신이 배운 것을 들려준다.
못난 놈 못난 놈아 / 이 봄동을 보아라 / 일찍이 포기 차서 단단한 배추는 / 스스로 / 부드러운 속을 감싸고 있는 그것 때문에 / 역설적이게도 겨울 찬바람에 / 얼고 썩지만
거름을 못 얻어먹고 늦되어 / 이파리들을 다 오므리지도 못하는 봄동은 / 아무리 얼어도 썩지 않고 /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이파리가 / 얼음장처럼 두꺼워지지 않더냐…
―대한에 서서
쉽게 읽히면서도 시인의 깨달음이 그득하게 울려나오는 이 시처럼 학문을 하는 학자들도 대중에게 쉽게 읽히고 삶의 근원에 도움이 되는 글을 생산해야 한다. 그러려면 읽어야 할 책도 많고, 공부만 할 수 없으니 생계도 꾸려야 하는데 갈수록 생존이 힘든 세상이다.
벼랑에 몰린 노동
그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이 나라 농민들의 생존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안팎은 굴욕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강제로 통과시키려는 한나라당과 그것을 막으려는 시민, 농민, 노동자, 야당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농민이 시위를 하면 무조건 붙잡아 가두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생각이다. 농민들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서 전국 농민이 다 들고 일어날까 걱정이 되나 보다. 그러나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인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 논농사는 지어온 지 이제 십 년이 되지만 / 상환료 갚느라 쌀은 다 돈사야 하고 / 일 년 열두 달 / 다시 빚일 수밖에 없는 돈으로 / 이렇게 한 가마씩 팔아먹어야 되는 일 / 아랫니 빼서 윗니 박는 꼴이다 / 그 희디흰 쌀이 방앗간에서 다 / 팔려 나갈 때 / 나는 기껏 손으로 한 줌을 쥐어 본다 (…)
―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과 불평등을 견디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온 농민들은 지금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쌀을 사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도시 사람들에게 식량을 대느라 정작 자신들의 노동의 열매를 누리지 못한다. 농민이 절벽에 내몰려 있다는 것은 비유나 수사가 아니다.
용산 철거 현장에서 경찰의 사냥 놀음에 구석까지 몰려 살해된 도시 빈민들, 굶어죽기 전에 자살을 택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300일이 넘도록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해고된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는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과 똑같은 벼랑 위에 농민들이 있다. 그 벼랑 위에서 시인이 춤을 춘다.
(…)
춤을 춰라! / 저 불타는 벼 논 속에서
노랠 불러라! / 야적의 나락 가마 옆에서
농사꾼이 / 지은 농사 팔지 못하고 / 쌓아놓고 나눠 먹을 때 /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 우리가 바라는 세상 / 유토피아다 춤을 춰라 / 세상을 바꾸는 전복의 춤 / 세상을 갈아버리는 멧돌질의 노래
투쟁의 제단에 바치는 / 농투산이의 거친 영혼에 바치는
―춤
시인이 낳은 자식들
시인의 딸은 지금은 함께 일하지 않지만 늘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위 존재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작은 일 하나라도 남을 속이는 법이 없고 자신을 미화하는 일도 없는 친구였다. 언제나 솔직한 생각을 자연스레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말이 행동을 앞서거나 넘쳐 피로감을 준 적이 없다.
그런 됨됨이가 너무 기특해서 어느 날 내가, 아직 20대 초반인데 사람이 어찌 그리 담백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오히려 정색을 하며 내가 평소에 무엇이든 긍정적인 면을 과장하고 너무 좋게 보는 버릇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부정적인 면은 접어두고 긍정적인 면만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습관이 아니다. 그녀의 충고는 앞으로도 오래 내 가슴에 남을 것이다.
열 받아서 돌아버리겠거든 / 지하철 2호선이나 타고 돌아라 / 사방이 턱턱 막힌 옥탑방 2층 / 손바닥 같은 선풍기가 밤새 돌아도 / 저 고층건물의 에어컨을 낳겠느냐 / (…) 제정신 가지고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이 열탕지옥 같은 비정의 욕망세상 / 또 한 대의 순환선이 굉음을 울리며 달려든다 / (…) 아아 잠들 수 없는 옥탑방의 몸부림
―옥탑방의 딸에게
이 시는 제목 밑에 "서울 딸애들 사는 곳에서 하룻밤 묵다 더위 때문에 도저히 잠들 수 없어서 나와 새벽에 지하철 속에서 쓰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나는 시인이 낳은 사람 자식, 열매 자식, 그리고 시 자식, 그 모든 자식들을 하나로 묶어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 모든 자식들은 그 부모를 닮기 마련이다. 시인의 자식은 당연히 시인을 닮는다.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나름 정직한 오관(五官)으로 자신과 사물을 대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철학자의 바람직한 태도일 뿐 아니라 좋은 시인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그런 힘을 시인의 자식들은 빼닮아 갖고 있다. 나도 이 시인이 낳은 자식들처럼 보랏빛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 뚜렷한 갈증을 갖고 천천히 소리 내서 읽는다.
던져야 했다 / 몸뚱이 / 호미 쥔 손끝이 아닌 / 손끝에 머무는 마음 언저리가 아닌 / 무릎 꿇고 / 두 손 받들어 입 맞추듯이 / 땅에 바쳐야 했다 몸뚱이
동이 땀을 쏟아야 했다
정수리에서 흐른 땀은 / 가슴을 타고 / 배꼽을 타고 / 자지 끝에 이르러 길을 찾다가 / 뜨겁게 신음하는 땅의 불두덩 위에 / 비처럼 쏟아지고
물에 잠긴 낙엽같이 / 땀에 전 살은 썩어 / 육즙의 냄새마저 말갛게 사라져서는 / 그 실금 같은 / 삼베 올만 남아야 했다
이윽고 / 하얗게 바랜 뼈가 / 툭! 하고 일어설 때 / 환생하듯 피어나는 저 / 보랏빛 새끼 꽃들 / 꽃들 (…)
―콩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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