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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힘, 눈만 감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철학자의 서재] 줄리아 로벨의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문명 의식과 중화주의

이른바 '중국'이란 무엇을 지칭하는가. 요순우탕(堯舜禹湯)의 다스림이 있기 때문에 중국이라고 하며 공자, 안연, 자사, 맹자의 학문이 있기 때문에 중국이라고 한다. 지금 중국이라고 할 만한 것이 어디에 존재하는가. 성인의 다스림과 학문이라면 우리나라가 이미 얻어 옮겨 왔다. 어째서 다시 먼 곳에서 구하려 하는가. (卽所謂中國者, 何以稱焉. 有堯舜禹湯之治之謂中國, 有孔顏思孟之學之謂中國. 今所以謂中國者何存焉. 若聖人之治, 聖人之學, 東國旣得而移之矣. 復何必求諸遠哉.)

이 문장의 주인공은 위대한 실학자로 평가받는 정약용이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조선에서 '중국'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명나라를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시키며 등장한 오랑캐의 나라, 청(淸)과 대면해야 했던 조선 후기 지식인으로서, 정약용은 조선이 영원히 중국 밖 변방의 이민족일 수밖에 없다는 숙명 앞에 당당하다.

정약용의 자신감은 현실의 중국(淸)이 아니라 이념의 중국(中華)만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온 것이다. 정약용에게 중국이란 지리적 경계가 아니라 올바른 정치와 학문으로 대표되는 '문명' 그 자체였던 것이다.

원래 중화(中華)라는 말은 하(夏), 화(華), 화하(華夏) 등과 더불어 한(漢) 민족이 자신들의 거주 지역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던 지리적-공간적 개념이었다. 이후 중화 개념은 지리적 경계를 넘어 '문화적 중심'의 의미로 확장되었고 결과적으로 중국인들의 대외 인식을 규정하는 핵심 개념으로 작동해 왔다. 중화 개념이 문명 개념인 한 이는 지리적 경계를 뛰어넘은 보편성과 초월성을 획득하게 된다. 지리적 이(夷)에 속하면서도 명나라로부터 문명의 핵심을 전승받은 문화적 화(華)라는 자기 정체성을 세웠던 조선의 이중적 자기 인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

500년 조선의 역사는 진정한 문명의 계승자 즉 소중화(小中華)로서의 문화적 자부심과 변방의 이민족이라는 열등감이 만들어내는 이중적 변주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의 등장과 '서학'으로 대표되는 서양 학술의 전래는 조선 지식인으로 하여금 지리적 중심으로서의 중국 관념을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러나 현실의 중국을 상대화시킨 조선인들이라 해도 이념의 중국 즉 '중화'는 여전히 국가와 사회 운영의 목표이자 지향점이었다.

이는 춘추대일통(春秋大一統) 등 대의명분을 강조하던 권력층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청과 서양으로부터의 문물을 수용하자고 주장했던 북학론자들 누구도 문화적 이념으로서의 중화 의식을 벗어난 이는 없었다. 중심으로서의 청나라를 부정할 수 있다 해도 '중화'에 대한 신념과 자부심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에서 '이념의 중화'는 언제나 '현실의 중국'을 압도하고 초과했다.

현재의 눈에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이들의 중화 의식은 사실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추종과 관련이 없다. 조선인들에게 중화는 특정 국가가 아니라 문명 의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문명 의식 덕택에 조선인들은 물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문화적 자긍심으로 안을 통일시키고 국가적 명분을 세울 수 있었다. 문명적 자부심을 통해 조선 지식인들은 자신들을 문명의 주체로 세울 수 있었고, 이런 태도를 바탕으로 중국뿐 아니라 서양의 문물과 기술까지도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수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조선이 문명 의식으로서의 중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침략적인 서양 열강 그리고 일제라는 폭압적 타자와 조우한 뒤였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이념이나 태도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강력하고 폭력적인 전환의 시대였다. 조선은 대체 가능한 전망이나 지향도 없이 서구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도록 시력 전체를 교정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구 문명의 우월성 앞에서 문명국가로서의 조선의 자긍심과 주체성은 모두 도산한 은행의 채권처럼 휴지조각이 되었다.

그 후 조선에서 중국은 서구 제국주의적 문명 관점에서 비루하고 무능한 타자로 전락하고 대신 서양과 일본이 새로운 발전의 모델로 설정되게 된다. 따르고 싶은 타자로서의 서양과 민족의 원수로서의 일본, 그리고 전근대적 낙후성의 상징으로서의 중국의 이미지는 우리의 일상에까지 깊이 뿌리내려져 있다. 중화가 아닌 새로운 문명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이중성을 내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복잡하고도 비주체적인 경험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태도를 요청하는 중국

회고하건대 2010년은 어느 해보다 중국에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던 것 같다. 국내 전문가들의 성과물인 (대선 펴냄)를 비롯해 중국의 대국화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을 담은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에드워드 스타인펠드 지음, 구계원 옮김, 에쎄 펴냄), 서구 근대와 다른 중국형 발전의 토대를 짚어내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마틴 자크 지음, 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같이 중국의 성장을 주제로 한 도발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의 책들이 2010년 하반기에 쏟아져 나왔다.

잠시 숨을 돌려 생각해보면 국내외의 학자와 전문가들은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주요 2개국(G2) 시대의 개막을 앞 다투어 선언하면서 작금의 상황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자리에 서려는 듯하다. 이런 긴장과 알 수 없는 다급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G2'라는 단어는 공포에 가까운 심경을 불러일으키며 순식간에 세계 전체에서 승인되었다. 실제 경제적 수치와 관계없이 그리고 누구의 관점인지 상관없이 'G2'는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전 세계의 경제, 정치, 문화 등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의 힘을 확장시켜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세계에서 중국은 그런 존재다. '아시아'는 중국에게 좁은 무대이며 심지어 전략적인 차원에서만 붙는 상징적 기호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그 어떤 '태도'를 요구한다. 중국이 우리에게 실질적 행위에 영향을 미치며 이후 벌어질 일들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될 '태도'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중국의 변화를 자신들이 이끈다고 믿으며 그 관리의 방안을 창출하고자 애써왔던 미국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낯설다. 왜 중국이라는 국가가 우리에게 특정한 태도를 요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낯선가? 지정학적 위치상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오랫동안 그리고 강력하게 중국에 대한 태도를 요구받았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중국은 우리에게 태도를 요구했지만 우리는 그 요구를 언제나 과거형으로 받아들여 왔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을 떠올릴 때 우리는 안전하고도 평탄한 자리에 서 있었다. 예를 들어 중국 철학을 중심에 두고 동서양 철학을 20여 년 공부해 온 나 같은 사람이 제일 좋은 예일 것이다. 학문으로 접하는 중국은 책 속에만 있었고 책으로부터의 도전은 읽는 사람이 나름대로 조절할 수 있는 평면적인 것이었다.

현실의 중국이 어느 자리에, 어떤 위상에 있건 나의 연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철학, 사학, 문학 등 인문학으로 중국에 접근하는 연구자들은 대체로 과거형으로 중국의 사상과 문화를 끌어내서 안전하게 중국을 소비할 수 있었고 따라서 현실의 중국 상황과 충분한 거리를 둘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중국에 대해 보다 역동적인 경험을 한 사람은 다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단순하기는 마찬가지다. 20세기에 사업으로건 여행으로건 발로 경험하고 눈으로 느낀 중국은 과거의 영광과 관계없이 낙후된 저개발의 사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평면으로 중국을 만났건 날것으로 중국을 만났건 적어도 중국이 이처럼 국제 사회에 강력하게 부상하기 전에는 우리에게 복잡한 태도를 요구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서구적 근대세계가 심어 놓은 새로운 문명의 관점은 중국을 과거의 호랑이로 박제시킬 만큼 충분히 강력했고 유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미국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대국이 된 현재 중국의 국제적 지위와 경제적 위상은 티베트와 신장 지역에 대한 탄압, 동북 공정으로 대표되는 역사적 접근의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 문화 혁명 때 폐기처분되었다가 최근 다시 최고의 문화적 수출품으로 변모한 공자 등을 포함하며 우리에게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강력한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

장성으로 중화주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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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줄리아 로벨 지음, 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더 이상 안전한 각도에서 중국을 소비하거나 대상화할 수 없다면 무엇이든 우리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영국의 젊은 역사 연구자 줄리아 로벨이 쓴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를 읽는 것도 탐색 과정의 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왜곡된 신화로, 중국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동서양 전체의 경외와 찬탄을 받아온 만리장성을 바늘삼아 3000여 년의 중국사를 꿰뚫는 독특한 방식의 역사책이다. 저자는 원래 흙으로 쌓아올린 벽에 불과했던 장성이 위대한 장성으로, 그리고 온 세계로서 '만리'에 이어져 있는 거대한 중국의 상징으로 굳어지는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사실상 장성의 역사는 정착 생활을 하면서 삶의 경계와 테두리를 분명히 해야 하는 농경 민족과 끝없이 이동하면서 삶의 경계와 테두리에 갇힐 수 없는 유목 민족의 생존을 건 대결의 역사다. 저자는 이런 역사적 갈등 관계에 얽힌 인물과 일화들을 통해 장성이 북방의 기마 민족들을 막는 물리적 장벽의 기능뿐 아니라 이른바 '오랑캐(夷)와 중화(華)를 가르는 중화주의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한다.

본래 진나라에 축조되기 시작한 장성은 방어용이면서 동시에 초원으로 팽창해 나가고자 하는 팽창주의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천문학적인 경비와 인력을 소진하면서 농경지에서 수백 킬로미터씩 떨어진 곳에 성벽을 세우는 비경제성과 비효율성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타자와 자기를 가르는 이념적 표지이자 외부 세계로 확장해가는 팽창주의의 상징으로서 장성은 엄청난 경비와 인력 손실을 보전하고도 남은 자기 선언이자 타자 정복의 논리였던 것이다.

이 책은 장성을 둘러싼 역사적 장면들을 스케치하듯 정리하면서 그 속에서 작동한 이념적 장성에 대해 생각하도록 제안한다. 중화주의로 대표되는 이민족에 대한 중국의 배타주의, 고립주의, 폐쇄주의가 중국의 내외에 그리고 과거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어떻게 작용했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이런 제안은 G2 시대를 맞는 우리에게 유효하다. 중국인들이 여전히 장성 속에서 살고 있고, 우주에서 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계없이 장성을 민족의 표상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장성 안에 그리고 장성을 담고 산다는 사실은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모든 이들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전제가 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현대 중국인들까지 장성의 신화에 동참하는 한 장성이 이들에게 '마음의 감옥'이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이 마음의 감옥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중국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는 수단인 인터넷 방화벽을 통해서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저자의 이런 제안 앞에서 우리는 이 책을 보는 서양인들과 같은 태도의 자리에 설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의 중국학자나 중국 전문가들처럼 중국이 결코 서양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낙관의 자리에 설 수도, 중화주의를 오리엔탈리즘에 버금가는 중국 중심주의로 보면서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비판의 자리에 설 수도, 일시적일 것이 분명한 현재의 경제적 우위에 안주해 낙후된 저개발 사회로 무시하는 조악한 우월의 자리에 설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짜 긴장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일지 모른다. 지리적 중화도, 문화적 중화도 벗어나 서양 중심의 세계사에 포섭된 우리가 과연 현재의 시점에서 중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고 상대할 수 있을까? 우리의 시선과 태도에 영향을 끼쳐 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각각의 성분들을 확인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누구의 시선으로 중국을 보고 있는지, 누구의 뒤에서 두려워하고 또 안도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1세기 중화주의는 중국이 세계사에 독보적 존재로 등장하는 강도만큼이나 주의가 필요한 주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느리거나 혹은 둔감하다. 우리 안에 중국을 보는 냉정한 눈도, 현명한 눈도 찾기 어렵다는 느낌이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중국들'과 여러 맥락에서 부각되는 새로운 '중국들'을 바라볼 통찰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경제적 맥락뿐 아니라 정치적 맥락에서조차 미국의 중국학을 넘어서지 못하며 우리와 중국의 관계를 과거의 역사 안에서만 조명하거나 혹은 경제적 관계로만 조명하려는 단선적 시선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부담으로 다가올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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