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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 필독! "이것이 '마케팅의 정석'!

[프레시안 books]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펴냄)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수학의 정석>을 연상시키는 시침 뚝 뗀 제목과 띠지에 적힌 문구다.

"그 소설 어때?"란 친구의 질문에 "재미있다" "재미없다" 말고 좀 더 멋지게 대답할 수 없을까? 일본 현대 문학의 기수 히라노 게이치로의 '깨알 같은' 소설 감상법!

과연 솔깃한 이야기다. 어쩐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소설을 보는 눈이 한층 깊어질 뿐 아니라, 감상을 말하는 어휘력도 부쩍 늘어날 것 같다. 단순히 "재미있다"고 말하는 대신 "세상을 톺아보는 작가의 웅숭깊은 주제의식이 참으로 실다워 천산지산하며 허송하던 나의 반생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하는 식으로. 물론 우정에는 조금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소설을 읽는다는 건 본디 외로운 일이고 기왕 외로울 거라면 말발이라도 좋은 편이 낫지 않겠는가?

제목은 제목이요, 홍보 문구는 홍보 문구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누구나 일주일 안에 피아노 죽이게 치는 방법>이나 <합법적으로 세금 안 내는 110가지 방법>, <살아서 하늘 사람 되는 방법>까지, 세상엔 이미 '방법'을 다룬 수많은 책이 있으니 거기에 <소설 읽는 방법> 하나쯤 추가된다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금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그 방법이란 것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생각해 보자.

1) 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
2) 소설을 간혹 읽긴 하지만 즐기지는 않는 사람
3) 소설을 종종 읽지만 영양가 없이 읽는 사람
4)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

굳이 고르자면 아마 2번과 3번이 '소설 읽는 방법'이 필요한 사람일 것이다. 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방법이 필요 없을 테고,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테니까. 죽은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에게 '숨 쉬는 방법'이 생뚱맞은 것과 마찬가지다. 같은 의미에서 2번과 3번을 각각 '스스로는 숨을 잘 못 쉬는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숨을 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이때 2번에게 필요한 것은 산소 호흡기다. 물론 책은 산소 호흡기가 될 수 없으니 3번으로 한정하자. 3번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호흡법, 말하자면 <배꼽 호흡 건강 혁명>이나 <입으로 숨 쉬면 병에 걸린다> 같은 책이다. 그런 책의 특징은 무엇인가. 보통 사람과는 메커니즘이 다른 호흡법을 수련했거나 수많은 환자들을 살펴본 경험을 토대로, 평소대로 숨을 쉬는 것만으로는 생각해낼 수 없는 지점을 제시한다는 것. 물론 그런 방법들이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 <소설 읽는 방법>(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반면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을 채우고 있는 것은 시시풍덩한 일반론이다. 저자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기초 편'을 '소설'의 사전적 정의를 고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동물행동학에서 빌려왔다는 네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소설의 내적 구조('메커니즘')와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의 위치('발달'),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기능')과 문학사적 맥락에서의 위상('진화')을 고려하는 책 읽기를 제안하는가 싶더니 이내 '큰 화살표'로서의 플롯과 '작은 화살표'로서의 '주어+술어'라는 문장 구조에 대한 고찰로 넘어간다.

무난하며 그럴듯한 진행이다. 그런데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이론이 전개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소설을 조금 더 사랑하는 방법'으로 서둘러 개론을 마무리한다. 여기까지가 49쪽, 11쪽에서 시작했으니 실제로는 4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복잡한 이론 따위 싫어하니까, 하는 식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를 별 다른 성찰 없이 겉핥기식으로 늘어놓기에 적당한 분량이긴 하다. 그럼에도 명색이 '소설 읽는 방법'이라는 것이 이렇게 빈약해도 좋은 건가,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숨 쉬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호흡기의 구조와 들숨과 날숨의 의미에 대해 변죽만 울리다 끝내는 꼴이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직접 소설을 읽어나가는 '실천 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애당초 특별할 것도 없는 방법론이었다. 자연히 그 '실천' 또한 특별할 리 없다. 그가 다루고 있는 아홉 편의 소설들 중에서 내가 이미 읽은 것은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과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정유리 옮김, 황매 펴냄),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박경희 옮김, 미디어2.0 펴냄) 세 편이다.

하지만 정작 즐겁게 읽은 부분은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젊음 없는 젊음>(국내 미출간)과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일본 문학 성쇠사>(국내 미출간), 후루이 요시키치의 <사거리>(국내 미출간)를 다룬 꼭지였다. 무엇보다 인용된 소설의 장면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소설가다운 눈과 필치로 작품의 결을 섬세하게('깨알 같이'라고 해야 할까?) 짚어내고 있지만, 그것이 앞서 말한 방법 때문은 아니다.

굳이 방법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감상을 늘어놓을 때 그의 글은 편안하다. 오히려 방법을 적용하려 들 때면 고등학교 국어 자습서와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할 이야기가 더 있을 텐데, 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차라리 단순한 에세이였다면, 혹은 서평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그래서 들었다. "작가가 그 혼돈 속의 어떤 것을 색깔로 떠올린 첫 창조의 순간을 상상해보면 신비한 감동이 밀려온다."(61쪽)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일이다."(121쪽) 같은 문장들 역시 그쪽이 훨씬 어울리지 않는가.

전작 <책을 읽는 방법>(김효순 옮김, 문학동네 펴냄)이 그 거창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슬로 리딩'이라는 확실한 방법 때문이었다. 물론 독창적인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 스물네 시간을 모두 독서에 쏟는다고 해도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이 쌓여만 가는 책 앞에서 기죽지 말고 천천히,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온전한 세상을 느긋하게 즐기라는 메시지는 독서 강박에 시달리는 많은 독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니다. 많은 독자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소설을 읽고 있다. 그 또한 소설 읽기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무엇 때문인지 자신의 방법을 널리 전파하기로 결심하고, 엄밀한 방법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소설 읽는 방법>이라는 또 하나의 거창한 제목을 가진 책을 세상에 내보낸 것이다.

물론 그는 성공한 작가이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많은 책을 읽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내가 숨을 쉬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며 숨 쉬는 시범을 보인댔자 정작 숨 쉬는 법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수많은 독자들의 방법을 분석한 임상경험(?)을 토대로 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뜨인돌 펴냄)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의 저자들처럼 보통 독자들과는 메커니즘이 다른 자신만의 독서법을 들려주었어야 했다.

그러니 결국 이것은 제목 탓이다. '내가'라는 주어만 들어갔어도, 혹은 '방법'이라는 단어 앞에 '하나의'라는 수식어만 들어갔어도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제목은 뭐랄까, 너무 뻔뻔하다. 가벼운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득세하고 있는 일본 문학 시장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의 문학 사랑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이렇게 빈약한 콘텐츠에 '소설 읽는 방법'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이는 일이야말로 소설을 우롱하는 짓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다시 띠지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 책의 띠지야 말로 어떤 '방법'을 체현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눈길을 잡아끄는 홍보 문구와 '깨알 같은'과 같은 친근한 표현, 그리고 독자를 바라보는 잘생긴 작가의 측면 사진까지(책날개에 들어간 최근 사진과 달리, 13년 전 파릇파릇하던 신인 시절의 사진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그야말로 마케팅의 정석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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