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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의 선언 "우주에 생명은 인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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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의 선언 "우주에 생명은 인간뿐!"

[이명현의 '사이홀릭'] 마르셀로 글레이서의 <최종 이론은 없다>

요즘 학생들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물리학과'가 이과의 꽃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시절에는 그 위세가 다소 꺾여서 입학 커트라인은 의과 대학이 높았지만, 그래도 학교 전체 수석은 물리학과 지망생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이론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서 물리학과에 진학했었고 다들 자신이 대통일장 이론을 완성하는 제2의 아인슈타인이 될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힘을 하나로 묶어서 단일한 공식으로부터 세상만사를 한방에 설명하는 궁극의 이론에 대한 꿈이 어린 학생들을 물리학의 길로 인도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별 저항 없이 모든 것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최종 이론' 또는 '만물 이론'의 실재를 그냥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늘 그래왔고 아인슈타인 같은 당대의 위대한 물리학자가 그 길을 가고 있으니 으레 그러려니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더 어릴 때는 '최종 이론'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가슴이 뛰었고 아련하고 막연하지만 그 무엇인가가 그 곳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반드시 이룩해야만 하는 과학의 궁극의 길이라는 믿음마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나는 과학적 환원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학문 분야의 속성상 전통적으로 이론 물리학자나 입자 물리학자들은 '최종 이론'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다. 모든 것을 단순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통일된 수식으로 나타내려는 이론 물리학자나 물질을 쪼개고 쪼개서 궁극적인 기본 입자를 찾아내려는 입자 물리학자들이 환원주의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은 환원주의 자체만큼이나 환원적으로 보인다.

물론 일부 통계 물리학자나 고체 물리학자는 하나의 궁극적 이론으로의 환원에 적극 동의하지 않거나 여러 다른 단계에서 근원적인 물리 법칙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너그러운 편인 것 같다. 나 같은 관측 천문학자는 보통 그 중간쯤 되는 태도를 취하곤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 때 '최종 이론'의 신봉자였던 입자 물리학자 마르셀로 글레이서는 <최종 이론은 없다 : 거꾸로 보는 현대 물리학>(조현욱 옮김, 까치 펴냄)에서 대다수 과학자들의 이런 '의례적'인 '최종 이론'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 또는 믿음이 허망한 종교적 망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예배 장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구실과 대학의 과학자들은 자연 세계에 대한 설명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인식은 신자들의 그것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즉, 자연의 겉으로 보이는 복잡성의 근저에는 더 단순한 실체가 존재하며, 여기서는 모든 것이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주장하려고 한다. 물질세계의 모든 비밀-자연의 숨겨진 코드-을 통일하는 물리 이론에 대한 믿음은 전일성에 대한 종교적 믿음의 과학적 등가물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는 과학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잊지는 않고 있다.

"에테르 전설이 보여주는 둘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과학에서는 종교에서처럼 망상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과학에서는 조만간 자료들이 나오고 이론과 모형의 교차 검증이 이루어지고 해결책이 등장한다."

숨겨진 종교적 망상 때문에 과학자들이 '최종 이론'을 추구하는 행위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한다. 사실 과학자도 진화 생물학적 습성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니 지난 세월 동안 지속되어온 인류의 종교적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래서 글레이서의 지적은 외면할 수도 없고 비켜갈 수도 없는 과학자의 진화적 숙명일지도 모른다.

왜 과학자들은 모든 화살표가 한 곳을 지향하는 '최종 이론'에 몰입하는가 하는 문제는 오히려 '믿음에 대한 믿음'의 문제로 먼저 진화 심리학적으로 탐구해야할 영역인 것 같다. 하지만 단일한 궁극의 원리와 실체가 존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과학자들의 (그의 말에 따르자면) 종교적 망상적 행태와는 별도로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 논의되고 검증되어야할 문제일 것이다. 망상 때문에 '최종 이론'을 추구한다고 해서 '최종 이론'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리일 것이다.

▲ <최종 이론은 없다>(마르셀로 글레이서 지음, 조현욱 옮김, 까치 펴냄). ⓒ까치
글레이서는 <최종 이론은 없다>에서 우주는 왜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며 조화롭고 대칭적이어야 하는가, 라고 묻고 있다.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도그마로부터 벗어나서 세상을 다시 보자고 호소하고 있다. 그가 살펴본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온통 비대칭적이며 불완전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실재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와 실재 자체를 혼동'하지 말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다.

"모든 불완전성의 배후에는 구조와 복잡한 행태를 생성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불완전성과 불균형은 생성의 씨앗이다. 완전한 자연이란 정적이고 형태가 없을 것이며 오직 플라톤 철학의 영역 속에만 존재하는, 실재와 동떨어진 무엇일 것이다."

글레이서는 "최종 진리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구조물이다."라고 선언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과학은 놀라운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만든 것이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이 창조하는 담론이다"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글레이서가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언뜻 스티븐 호킹이 <위대한 설계>(전대호 옮김, 까치 펴냄)에서 주장한 '모형 의존적 실재론'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렇게 되면 논의가 인식론으로 넘어가게 된다. '실재'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 이론은 없다>에서 그의 논의는 거기까지는 미처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양자 역학에서 사용되는 기법은 전자나 가장 단순한 원자, 이온들에는 성공적으로 적용되지만, 좀 더 큰 원자나 복잡한 분자로 가면 쓸모가 없다"면서 환원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다. '최종 이론'에의 헛된 꿈을 접고 각 단계에서 존재할 수 있는 근원적인 물리 법칙의 창발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필립 앤더슨이나 생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만 같은 학자들의 논리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환원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이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궁극적으로 화학 결합으로 뭉친 원자들의 총체이기는 하지만, 생명은 이런 식의 묘사로는 표현될 수 없는 무엇이다.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명을 네 가지 기본 힘을 통해서 상호작용하는 기본 입자들로 환원한다면, 이는 우스꽝스러운 짓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글레이서는 <최종 이론은 없다>의 많은 부분을 생명 현상, 지구 생명체 그리고 외계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원자의 운동이 직접적으로 생명체의 행동을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따로 떼어내서 '특별한' 현상으로 분류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선뜻 동의하기 힘든 대목이다. 환원주의에 기대지 않더라도 '생명'은 물리적 현상일 뿐이다. 다만 무생물에서 생명이 창발하는 작동 원리를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뼈아픈 과학자들의 습성을 지적했고 '최종 이론'에 기대지 않고도 우주를 기술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보여주었다. 그런데 글레이서는 느닷없이 우주에 지적 생명체는 '우리뿐'이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이 책에서 그토록 길게 생명에 대해서 서술을 했다는 의혹이 들 정도다. 좀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지구와 태양계(그리고 오늘날 천문학자들이 관찰하고 있는 일부 항성계)의 생명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감안하면, 지구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동의하기 매우 힘들며 우주에 수많은 문명이 있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가 어렵다."

"원시적 생물 형태는 크게 드물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구 비슷한 행성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지구 비슷한 행성이 드물다면 복잡한 생명체 역시 매우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의식을 갖춘 생명체, 다시 말해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서 심사숙고할 능력을 갖춘 생명체는 더더욱 드물 것이고, 심지어 우리 은하 내에 하나밖에 없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주의 동반자-신성한 것이든 외계의 것이든-를 너무나 오랫동안 갈망해왔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주에는 우리밖에 없다."

그는 왜 이렇게 성급하게 '우리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무엇이 그를 최신의 우주 생물학적인 관측 결과도 외면하면서 그렇게 조급하게 선언하도록 만들었을까? 최근의 우주 생물학적 관측 결과는 지구와 비슷한 외계 행성이 아주 흔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2011년 2월 케플러 우주 망원경이 첫 네 달 동안 관측한 결과를 보면 1000여 개의 외계 행성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60여 개가 지구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그 다음 문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를 정말로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인류에게는 새로운 목적이 생기게 된다."

글레이서는 이런 관점을 스스로 새로운 '인간 중심주의'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은 "우리 우주는 생명이 그 안에서 번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강한 인간 원리'는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의 주장이야말로 바로 또 다른 버전의 '인간 원리' 같아 보인다.

이어지는 문장을 보면 오히려 그의 '인간 중심주의'를 '초강력 인간 원리'라 부를만하다.

"나는 일단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각하고, 생존이라는 대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희망한다. 지구는 얼마나 희귀한 천체인가, 복잡한 생명체는 얼마나 희귀한가,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위태롭고 얼마나 소중한가.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덕률이 필요하다. 이곳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아마도 언젠가는 우주 전체에 생명을 퍼뜨릴 것을 목표로 하는 도덕률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이 과업은 각자의 집 뒷마당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왜 그토록 희귀하고 특별해야만 하는가? 희귀하지 않으면 특별하지 않으며 고귀하지 않은 것인가? '도덕률' 운운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글레이서 자신이 <최종 이론은 없다>를 통해서 그토록 경계하던 종교적 망상의 도그마에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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