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지는 당시 곤봉 점수가 평소보다 30여 분 늦게 발표됐고 전광판 점수와 기록지 점수가 다르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대한체조협회는 점수 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세 종목에서 앞섰는데 나머지 한 종목에서 어지간히 못하지 않고서는 2등으로 내려앉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상 발표가 지연된 그 30분간 뭔 일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점수 조작, 승부 조작 같은 일은 밥 먹듯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밥 먹듯' 벌어진다.
체육계에서 소년체전, 전국체전은 이른바 '황금어장'으로 불린다. 대회 규모만큼이나 '비리의 제전'이다. 2007년 소년체전에서 발생한 심판의 금품 수수가 드러나 대한농구협회 집행부 7명이 승부 조작으로 사퇴했다. 2005년 고교 야구에서는 협회장의 지시에 의해 심판장이 주심에게 승부 조작을 지시하고 그 대가로 감독, 심판, 학부모 간 금품과 향응이 오간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99퍼센트가 그렇다'고 하고 '사전 작업 안 들어가면 무조건 진다고 한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거래를 알고 있다.
▲ 한국 리듬체조의 대표 선수 신수지. 그는 최근 자신의 미니홈피에 "더러운 놈들아. 그딴 식으로 살지 마라. 이렇게 더럽게 굴어서 리듬체조가 발전을 못하는 거다"라는 글을 실었다. ⓒ뉴시스 |
꼬리 자르기의 명수 대한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회는 지난 5일 승부 조작에 가담한 프로 축구 선수들 47명 전원에 대해 축구계 완전 퇴출을 결정했다. 선수는 물론 지도자, 축구 단체 임직원, 에이전트 등 축구와 관련된 모든 직종에서 영구 제명된 것이다. 20대 젊은이들의 인생의 숨통을 끊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난 6월에도 K리그 승부 조작 1차 가담자들 10명에게 이번과 똑 같은 징계를 내렸다.
사실 징계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선수들이 저지른 죄를 감안하면 축구계에서 내보내는 게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대하는 대한축구협회 등 축구계의 태도와 자세다. 올해 K리그 승부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축구계는 계속 발뺌만 하다가 검찰이 사건을 터뜨리니까 그때서야 뒷수습에 나섰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건이 터지고 또 그 많은 선수들이 구속되고 심지어 자살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이를 타개할 대책 마련은 하지 않고 계속 선수들만 벌주고 있다. 특히 축구협회장은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이 무엇 하는 짓인가.
물어보고 싶다. 첫째 질문이다. 지금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리고 문제의 발원지였던 구단에 있는 축구인 출신 임원들은 승부 조작을 알지 못했는가. 이제까지 알고도 모른 척 하지 않았나. 1998년 월드컵 직후 차범근이 프로 축구계에 횡행하는 승부 조작과 판정 비리에 대해 말했을 때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대책 마련을 했는가. 반성은커녕 인정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축구계의 문제를 외부에 까발렸다고 차범근에게 징계로 보복했다.
그러면 그건 20세기 때의 일이라 치고 2008년 N리그와 K3에서 승부 조작 사건이 벌어졌을 때 대책 마련하고 선수 등 축구인들 교육 시켰는가. 그 때도 선수들만 징계하고 해당 구단 해체하는 것으로 넘겼다. 그런데 올해는 승부 조작 때문에 57명이 제명됐다. 이제까지 뭐했는가.
승부 조작, 누구한테 배웠을까
하나 더 묻겠다. 이 어린 선수들을 징계한 협회, 연맹의 축구인과 각 구단의 감독, 코치들은 승부 조작 한 적 없나. "몰랐는가"를 묻는 게 아니라 "안 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본인이, 당사자가 되어, 직접, 스스로, 적극적으로 승부 조작을 한 적 없는가. 직접 선수들에게 승부 조작 지시한 적 없나. 없는 사람 한 번 손들어 보기 바란다.
협회나 연맹에서 일 하려면 지도자 생활하면서 '좋은 관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축구계뿐 아니라 스포츠계에서 '좋은 관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승부 조작에 참여하느냐, 아니면 이를 거부하느냐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소돔에 의인 열 명이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결국 열 명의 의인이 없어 유황불로 심판하셨단다. 한국 축구계에는 승부 조작을 거부하는 의인 열 명이 과연 있을까.
내가 아는 주변의 축구인들에게 물어봤다. 선수 생활 하면서 승부조작한 적 있냐고. "아니"라고 대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면 감독 생활하면서 승부 조작한 적 있냐고 물었다. 딱 한 명만 안 한다고 했다. 또 축구인에게 언제부터 해봤냐고 물어봤다. 지금은 축구를 그만 둔 한 젊은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했다고 대답한다. 다른 축구인은 중학교 때부터 해봤단다. 초등학교 땐 감독이 안 시켰냐고 물으니 자기는 중학교 때부터 축구 시작했단다.
궁금해졌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선수도 아니고 도대체 초등학생에게 어떻게 승부 조작을 지시할까. "감독이 그냥 나가서 서있으라고 그래요."
사실 축구계 승부 조작의 실상을 알리면 축구인들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왜? 다른 스포츠도 다 하니까.
한국 스포츠는 조작이다
승부 조작을 거리낌 없이 하는 종목을 따로 꼽을 필요가 없다. 다 한다. 지난 추석 전 한국방송(KBS)이 방영한 <천하장사 만만세>는 씨름계의 노골적인 승부 조작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 때문에 은퇴한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그 시절의 그 못된 버릇은 지금도 없어지지 않았다. 선수는 이기고 싶은데, 선수는 젊을 때 빨리 돈을 벌어놔야 하는데 자꾸 지라고 감독이 명령한다. 그래서 이종격투기로 전향한 선수도 있다.
한국 스포츠에서 승부 조작은 전방위적이다. 감독도 하지만 학부모가 직접 나서기도 한다. 운동을 하는 자녀가 있는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은 대학 진학이다. 대학을 가려면 고2, 고3 때 전국 대회에서 4강 또는 8강에 들어야 한다. 그래서 개인 종목의 경우 연초에 고3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이기도 한다. 등록 선수 숫자가 많지 않은 경우인데 거기서 아예 1년 성적을 결정한다. 돌아가며 입상을 하자는 것이다. 감독, 부모에 협회 임원들까지 끼어들어 한마디로 '아사리판'이 된 가장 유명한 종목이 바로 쇼트트랙이다.
팀 종목은 감독들이 주도한다. 야구도 축구 못지않다. 그래도 초등학교 야구는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감독들은 그 어린, 티 없고 해맑기만 한 아이들에게도 승부 조작을 지시한다. 이런 선수 생활이 지겨워 야구를 떠났다는 한 사업가의 증언이 놀랍기만 하다. 투수에게는 "땅으로 (원바운드로) 던져" 타자에겐 "그냥 스윙하고 들어와."
감독들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승부 조작은 가능하다. 심판이 있다. 심판들도 꽤 열심히 한다. 판정 비리의 수많은 사례는 많은 언론이 이미 다룬 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없어지지 않았다. 줄어들지도 않았다. 한 심판의 고백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승부 조작에 참여한 날 저녁 "아이들의 눈망울이 어른거렸다"는 한 심판의 증언은 우리를 한 없이 부끄럽고 슬프게 만든다. 그러나 그 심판은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압력이 들어오면 했을 것이다. 왜? 다 하니까.
나는 젊은 선수들의 인생을 절단 내는 결정을 한 축구협회가 스스로는 아무 반성도 않고 선수들만 희생시키는 행태에 분노한다. 그 젊은 청년들이 (나는 평소 이들을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누구에게서 승부 조작을 배웠는가. 축구인들에게서, '감독님'들에게서 배운 거 아닌가. 축구협회 임원들이 뿌린 씨 아니던가.
자기들이 가르쳐놓고 왜 그 아이들만 징계하는가. 그 아이들은 '감독님'들로부터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 왜 아이들의 인생을 절단 내는가. 협회는 왜 사과도 않고 근원적인 대책 마련도 하지 않는가.
또 다른 공범들 : 저널리스트는 없고 리포터만 남았는가
한국 스포츠가 승부조작의 백화점이 된 데 크게 기여한 또 다른 공범이 있다. 바로 기자들이다. 이들이야말로 '한통속'이다. 구단이나 협회가 제공하는 공짜 밥, 공짜 술, 공짜 여행에 길들여져서인지 이들은 언제나 구단편이고 협회편이다. 스포츠부 기자 중에 선수 편 들어주는 기자는 정말 찾기 힘들다.
이번 승부 조작 사건과 관련해서도 축구 담당 기자들의 보도 행태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축구 담당 기자들 사이에선 오히려 "이러다가 야구한테 먹히는 거 아냐?"라는 분위기가 돌기도 했다. 기사를 쓰면 특종인데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사건의 '마무리'를 원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스포츠 기자들 중 '저널리스트'는 손에 꼽는다.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은 협회와 구단의 말만 전하는 '리포터'일 뿐이다.
K리그 승부 조작 파문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승부 조작에 가담한 선수 57명은 영구 제명됐다. 그러나 승부 조작을 알았던 구단 관계자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이들은 승부 조작 가담 선수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다른 팀으로 보내기도 했다. K리그 전체가 쑥대밭이 된 이유다.
또 승부 조작을 알았을 뿐 아니라 선수들에게 승부 조작을 가르쳐 준 축구인들 중 이를 책임 진 사람도 없다. 아무도 없다. 협회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축구 담당 기자들은 알고 있는 것도 쉬쉬하며 입을 닫았다. 아이들만 다치고 어른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신수지가 했던 말은 여기서도 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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