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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은 정말 노무현을 용서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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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권영길은 정말 노무현을 용서했는가?"

[박동천 칼럼] 권영길에 대한 실망 그리고 기대

나는 자유 거래(Free Trade)의 원칙을 지지한다. 그러므로 상대가 미국이든 유럽연합(EU)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칠레든 뉴질랜드든 인도네시아든 어떤 다른 나라든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권영길과 민주노동당이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뿐만 아니라, 지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은 크게 잘못되었다고 나도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권영길이 추구하는 가치와 여러 곳에서 충돌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나는 그에 대해 전체적으로 높은 기대와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를 굳이 밝히자면, 모든 면에서 나와 의견이 일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내가 존경하고 기대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둘러싸고 권영길이 보인 행보는 실망스럽다.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세 가지는 그가 했다고 보도된 발언, "김주익이 목을 매 죽고 농민 전용철이 맞아 죽고 허세욱이 불타 죽는 그 비극이 언제 일어났냐 (…)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을 수는 없다"는 말과 관련된다 (☞관련 기사 : "노무현 정부 책임자들, 용서는 해도 잊을 수 있겠는가?") 나머지 하나는 통합이 무산된 뒤에 보인 태도와 관련된다.

첫째, 그는 "용서는 해도 잊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통합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용서한 사람의 태도인가 아니면 용서하지 못한 사람의 태도인가? 이리 뒤집어보고 저리 뒤집어보고 아무리 따져 봐도, 권영길의 태도는 후자지 전자가 아니다.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통합에 반대하고 있으면서, "용서는 해도 잊을 수 없다"는 따위 번지레한 말로 치장하는 행태는 평소에도 신물이 나지만, 특히 이명박의 일상적인 헛소리와 겹쳐져서 더욱 혐오스럽다.

둘째, 김주익과 전용철과 허세욱의 죽음이 모두 똑같이 노무현의 책임인가? 먼저 허세욱의 경우를 보자. 노무현이 한미 FTA를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허세욱이 그 때문에 죽지는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그만큼, 그의 죽음에 노무현이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책임으로 연결될 수는 없다. 불필요한 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상세하게 따지지는 않는 편이 현명하리라고 생각된다.

단, 한미 FTA는 아직도 비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설사 비준이 되더라도 그 때문에 한국 농민이 모두 파멸할지, 또 농민 중에 누가 파멸할지는 예상만으로 확정되는 일이 아니다. 백보를 양보해서, 한미 FTA가 발효된 탓으로 한국 농업이 예상을 뛰어넘어 실제로 파멸될 조짐이 나타난다면, 그때 가서도 고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2011년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미래에 속한 일인 만큼 여전히 무수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을 5년 전에 생사의 갈림길로 파악한 것은 분명히 과장이다. 안 그래도 여러 방면에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압박을 받는 농민들의 정서에다 대고, "FTA 하면 한국 농민 다 죽는다"는 식으로 부추긴 선동은 정치 지도자라면, 그리고 지식인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셋째, 김주익과 전용철의 죽음에는 당시의 정권이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노동계와 농민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있는 정권은 이 세상에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한국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는 뚜렷한 대안이 있다 치더라도 한국 사회의 세력 분포 상으로 노무현 정권에게 그런 근본적인 변혁을 성사시킬 수 있는 힘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공평한 균형점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경로를 거치든지 여러 가지 입장 사이에서 타협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공동체 차원의 결정이 무엇으로 낙착되든지, 최종 결정에 만족할 사람보다는 불만이나 아쉬움을 느낄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언론과 관료와 사법과 학계와 기업과 경찰과 군대, 등등, 주요 사회 세력들이 일방적이라고 일컬을 만큼 보수적인 가치와 연고에 의해 주도되는 환경에서는, 설사 혁명 정권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기득권들을 몽땅 무시할 수 있는 힘은 가지지 못한다. 한국 자본주의에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는 현재를 살고 있는 공적 양심이 미래를 바라보면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할 과제이지, 물러난 지 이미 4년이 지난 정권에 대고 분풀이할 일은 아니다.

넷째, 후일담을 들으니 권영길은 트위터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 부결됐지만 국참여당은 2012 승리의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할 동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당대회 후폭풍…권영길, 김영훈에 당원들 '비난'") 이 보도를 보면서 내 마음속에는 권영길에게 무슨 확신이 있는지 의문이 일어난다. 통합은 안 되지만 함께 가야할 동지라는 입장이 확신의 반영일 수는 있다. 가령, 통합 자체에 반대는 아니고 지금 이렇게 하는 통합에 반대한다는 확신일 수도 있고, 정당 통합에는 반대하면서도 선거에서는 연대한다는 확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금 권영길이 말하는 수준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명확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언제 어떤 조건으로 통합을 하자든지, 아니면 연대의 폭과 방법을 치밀하게 제시하면서, 민주노동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참여당 지지자들까지 설득하겠다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 "2012년 승리"라는 문구가 집권을 뜻하는 것이라면, 연대를 통해 집권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아가 민주당의 지지자들 및 수많은 무당파까지도 설득하겠다고 나서야만 일관적이다.

▲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연합뉴스

그래도 나는 아직 권영길에 대한 기대를 모두 다 내버리지는 않는다. 나는 그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통령에 출마해서 "부유세"를 주장하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 정치에서 복지가 의제의 꼭대기로 올라간 데에는 그의 "부유세" 주장이 물꼬를 튼 공로가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유행하고 있는 복지 담론에서도 여전히 "부유세"는 주류에서 밀려나 있다. 그러므로 권영길이 계속 "부유세"를 당당하게 외쳐주기를 나는 기대한다.

아울러 사법 개혁과 병무 개혁과 의회 개혁과 세무 개혁과 교육 개혁에도 그가 충격적일 만큼 참신한 대안을 제시해준다면 좋겠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1. 사법 개혁 : 항간에서 거론되는 공직자비리수사처는 기껏해야 옥상옥이다. 기본적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을 타파해야 한다. 새로운 부서를 만들 필요 없이 국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수사권을 주면 된다. 국회가 국정 조사를 할 때 해당 조사위원회가 소환과 수색 영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하고, 인권위원회는 법원에게 영장 발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국회의 조사위원회와 인권위원회에는 검사를 파견해서 기소가 필요하면 기소까지 할 수 있도록 한다. 경찰의 수사권 문제는 모든 사건에서 수사 개시와 동시에 판사의 절차적 통제를 받도록 하면 해결된다. 그리고 배심 재판의 확대, 검사장과 법원장의 주민직선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개혁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방방곡곡 은밀한 곳에서 핍박 받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법의 보호막을 제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체제 차원에서 정의롭게 편성할 경제적 설계도는 아직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 현재의 자본주의 아래서라도 부당한 억압을 공개적으로 호소하고 공개된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기회만은 부여해야 맞다는 뜻이다. 그래도 모든 노동자가 만족할 만큼의 정의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늘진 곳에서 지금 횡행하고 있는 불의는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 병무 개혁: 징병제를 폐지해야 국방력이 강화된다. 병역이라고 하면 말단 소총수 징집을 표준으로 삼는 발상을 내다 버리고, 누구든지 각자의 역량에 따라 군대에 기능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러면 여성, 약시, 평발, 집총 거부자 등을 가릴 필요가 없이 유사시 국가 보위라는 목적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생산 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제1국민역으로 등록하도록 한다. 단,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는 한, 소집은 자원자에 한한다. 17세부터 45세까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유사시 소집에 응하겠다고 등록하도록 정하고, 실제로 6개월 이상 복무한 사람에게만 피선거권을 준다. 자원한 사람들에 대한 기초 군사 훈련은 각자가 봉사할 기능에 맞춰서 다양하게 조정한다.

이렇게 하면 "신의 아들"과 "어둠의 자식들" 사이에 위화감이 생길 여지가 없다. 병사들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한국 사회에서 군대식 문화의 기가 꺾일 것이고, 시민 전체의 주권 의식이 높아질 것이다. 장교들 가운데 생각이 잘못된 사람이 있더라도 더 이상 노예를 거느릴 수는 없기 때문에, 직무 자체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다.

3. 의회 개혁 : 뉴질랜드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 지역구에서 250석 비례 대표 명부에서 250석을 선출하되, 각 정당이 차지할 최종 의석수는 100퍼센트 정당 득표율에 따른다. 국회는 휴가 기간만을 제외하고 연중 상시 개원하며, 상임위원회 또는 조사위원회 중심으로 운영한다. 입후보자든, 지지자든, 일반 시민이든 선거와 관련된 모든 행위를 자유롭게 보장하고, 돈의 흐름에 관해서만은 투명한 회계 책임을 강제한다. 민주노동당이 일반적으로 비례 대표제를 원한다는 것은 대략 알려져 있지만, 전국적인 공론장의 의제로 올리기 위해서는 더욱 구체적인 개혁안을 더욱 큰 소리로 더욱 자주 외쳐야 한다.

4. 세무 개혁 : 종합적으로 고쳐야 할 대목이 무수히 많지만, 우선 시급한 것은 종교인과 종교 단체로부터 소득세를 징수하는 일이다.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현재의 모습을 보면 이 문제는 거론 자체를 회피하는 실정이다. 이 주제를 공식적으로 발의할 수 있는 주체는 민주노동당 말고는 달리 없다. 만일 참여당과 진보신당까지 함께 한 목소리를 내도록 권영길이 힘을 쓴다면, 통합에는 반대했지만 여전히 "함께 가야 할 동지"라는 말에 수긍할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5. 교육 개혁 : 초·중·고등학교에서 국어와 사회와 도덕과 역사 분야의 교재로 무엇을 읽힐 것인지에 관해 교육과학기술부는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 교과서에 "민주주의"라고 쓸지 "자유민주주의"라고 쓸지를 두고 공동체가 분열하는 현상의 원인은 단 하나, 교육과학기술부가 교과서 내용에 대해 통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교육을 세뇌의 수단을 삼으려는 불순한 정치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옛날에 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에는 교과서도 귀중한 문헌이었다. 반면에 지금 한국에는 이미 각 단계의 눈높이에 맞춰서 무수하게 많은 한글 문서들이 나와 있다. 교과서를 통해서 민족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세뇌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아울러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서부터는 적어도 인문사회 분야에서부터 객관식 시험을 폐지해야 한다. 정치와 도덕과 역사와 문학의 본질은 자아의 형성하는 덕성과 자아를 표현할 지성의 함양에 있다. 자아의 형성과 표현을 정답이라는 틀에 가둬버리는 순간 억압이 발생하며, 억압에 일상적으로 시달린 심성은 심술과 왜곡으로 가득 차게 된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 출신 나경원의 행태를 최근에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나는 이 점을 확인하고 있다. 초·중·고 과정에서부터 인문사회 분야에서 "정답"이라는 발상 자체를 폐기하고, 글쓰기에서 나타나는 끈기와 집중력, 논리적 일관성, 사유의 신선함,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하는 능력, 등을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

이런 제안이 2012년에 모두 채택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정책 연합의 과제로 몇 가지라도 채택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에 한 자리를 해보려고 노리는 사람들은 이런 제안에 내심 동조하더라도 앞장을 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권영길은 기왕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제 여러모로 이 사회의 원로가 된 셈인데, 나는 아직도 그의 영혼은 양심을 대변하는 젊음으로 충만하다고 믿는다.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나도 실망이 적지 않았지만, 실망을 원한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권영길도 원한을 두고두고 간직할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당 대회에서는 "용서는 해도"라는 문구를 정반대의 뜻으로 사용했지만, 위에 적은 바와 같은 발본적인 개혁안들을 주장한다면 노무현에 대한 원한을 공동체의 진보를 향한 확신으로 승화시켰다는 데 한 점의 의심도 남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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