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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 '간첩'? 우리 안의 악마를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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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 '간첩'? 우리 안의 악마를 깨우다!

[철학자의 서재] 송두율의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

귀향

귀향이라는 말은 묘한 울림을 갖는다. 고향이란 떠도는 자들이 으레 겪게 되는 이국땅에서의 설움을 달래주는 공간이고, 그곳으로의 회귀란 설움에서 벗어나 치유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귀향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치유는 이미 시작된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이국에서의 고독한 현실은 어느새 풍요로운 안식처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꿈속의 고향은 언제나 과거의 아름다움 속에 자리한다. 그래서 귀향에 대한 꿈은 보통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목가적 과거의 이미지를 갖는다. 하지만 이 목가적 과거 공간은 과거의 시간대에 존재했던 실제의 고향이 아니다. 사실 그렇게 아름다웠던 고향이란 없다. 다만 그렇게 미화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 결핍되고 좌절된 기대를 과거에 대한 향수로 포장하여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향에 대한 갈망은 과거로의 회귀라기보다는 좌절된 현재적 기억의 파편을 그러모아 만든 미래적 소망이다. 우리는 이것을 과거의 시간대에서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고향으로 고개를 돌려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의 눈은 기실 미래의 고향을 바라보면서 나아가고 있다. 발터 벤야민은 이러한 형상을 <역사 철학 테제>에서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 이미지와 더불어 제시했던 적이 있었다.

송두율의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후마니타스 펴냄)는 이 '미래의 고향'으로의 고통스러운 여정의 기록이다. 그가 귀환하고자 하던 고향은 '과거의 영광을 기리는 추억 속에 머무르는 고향'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에 억압되고 좌절되었던 소망의 파편들을 배열하여 바라보는 '미래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그는 굴절된 과거에서 억압받던 이들의 목소리의 파편들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소망을 그러모아, 아직 있지 않지만 당도해야 할 고향으로서의 통일된 조국을 전망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고향 사람들은 이 미래의 고향에 대한 기획을 외면하고 과거의 고착된 기억 속에 머물러 그를 거부했다.

귀환을 둘러싼 히스테리

▲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송두율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2003년 가을과 이듬해 여름까지 남한 땅에는 한 방랑 지식인의 귀향을 둘러싼 사건이 벌어졌다. 1967년 독일 유학길을 올랐다가 사상적 신념에 의해 귀환이 허락되지 않았던 한 지식인이 37년 만에 고향 땅을 밟으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의 목에 걸린 가시다. 떠들썩했던 냉전 히스테리 극은 이 방랑 지식인이 귀향에 대한 자신의 꿈을 '근원으로의 귀환'이라는 회고적 정서 안에서 꿈꾸기를 거부하고, '경계인'의 입장에서 '미래의 고향'을 전망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경계인', '미래의 고향'이라는 말은 대한민국의 일반적 상식과 논리에서는 알쏭달쏭한 것이기만 하다.

처음에 한국 사람들은 그의 귀환에 대해 그저 고향을 그리워하던 동포 지식인의 귀환이라는 이미지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고향 사람들은 37년 동안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오는 그가 자신들의 현재적 정체성과 고향 땅의 역사를 은근히 긍정해주기를 바랐다. 정부와 기득권 세력은 이러한 은근한 기대를 준법 서약 강요와 처벌의 위협으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송두율은 자신의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자 했다. 기대 속에서의 환대와 처벌의 위협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구사한 한국으로서는 체면을 구긴 셈이었다. 거절의 당혹스러움 속에서 한국 사회는 그동안 애써 억제했던 사나운 마음들을 분별없이 터뜨려 버렸다.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는 역량 있는 지성인은 어느새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으로 낙인 찍혔다.

노동당에 가입해 유학생들을 회유하던 간첩이라는 피의(被疑) 사실이 공표되자 한국 사회는 배신감으로 들끓었다. '비판적 지식인인 줄로만 알았더니 간첩이라니!' 자유주의적 관용을 자부하던 한국인은 일순간에 '나는 콩 사탕이 싫어요'를 외치던 과거인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몸 사림'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주장하든 거부하든 '간첩'이라는 낙인 앞에서는 일단 뒷걸음치거나 경계하는 것이 한국인들에게 체화된 정체성이었다. 이 몸에 배인 행태 앞에 피의 사실 공개의 불법성이라든가, 법치주의, 생각은 처벌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 법 원칙 등은 어느새 망각되었다. 숱한 희생 속에서 1987년 설립한 민주적 헌법 체제를 자랑스럽게 되뇌던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는 그렇게 힘없이 스스로 무너져갔다.

히스테리의 근원

해방 이후 우리는 근대적 국민(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국민(민족) 국가라는 근대적 정치 형식을 중심으로 구성원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경로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한반도에서는 동족 간의 내전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서로 다른 전망을 가졌던 이들은 분할 점령의 기간 동안 상호 협력보다는 배제의 정치를 전개했다.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은 정치적 전망을 달리하는 세력에 대한 배제를 효과적으로 관철시키면서 구성원 간의 연대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강화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전쟁이 기획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쟁으로 그들이 얻은 성과는 분명했다. 정치적 지배력과 규범적 정당성 모두에게서 불안을 느꼈던 당시의 정치 세력들은 전쟁을 통해 정치적 경쟁자들을 일소하고 체제에 대한 구성원들의 충성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었다. 체제에 대한 충성심은 각자의 점령지에 존재하는 적대자들을 색출하고 학살하는 과정에서 키워졌다.

민간인 학살과 국가 폭력은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흔을 입혔다. 학살은 사교와 가족 관계마저도 훼손시켰다. 형과 아우, 아비와 자식, 친구와 친구가 이념적 적대자로서 맞서는 일은 결코 적지 않았다. 기존의 가족 관계와 공동체적 유대는 갈가리 찢겨졌다. 오직 내 편과 적이 있을 뿐이었다. 이웃과 친구, 친척과 가족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모든 구성원은 자기 부정과 왜곡, 자기 은폐에 익숙해졌다. 전쟁 후 한민족의 정치·사회·문화적 자기 정체성은 다양한 체제 외적 자기 욕구를 강압적으로 숨기거나 단일화하는 폭력적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학살은 자아 외부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각자가 속한 체제 이념이 허용하지 않는 지향들은 자아 내부에서도 '학살'되었다. 자아 내부에 존재하던 체제 외적 욕구는 금기시되거나, 제거되어야 할 타자가 되었다. 타자는 비록 이념적 적대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자기 내부에 존재하고 있던 체제 외적 소망이자, 자신이 고발·학살·외면했던 친지·가족·이웃·동료의 모습이다.

이 타자가 자아의 내부와 외부에서 간혹 얼굴을 내비칠 때, 격렬한 거부의 히스테리가 발동한다. '타자의 얼굴'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체제 외적 정체성과 학살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타자가 또 다른 자신이고, 자신이 학살의 주범임을 인정했다가는 자신이 애써 키워낸 정체성은 해체되고, 자신의 외적 삶 또한 위협받을 게 분명해 진다.

이 위기 상황에 대한 타개책이 히스테리적 고발이다. 타자 거부 반응은 적극적이고도 명시적으로 표명될수록 좋았다. '타자의 얼굴'을 배제하려는 히스테리 반응은 집단화하여 사회적 제의로까지 발달하였다. 반공 궐기 대회는 그 좋은 예다. 2003년 가을에는 궐기 대회 대신 여론몰이를 통한 히스테리였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반인륜적 과오와 추악한 정체성에 대한 자기 응시는 낯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미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 정상이라고 자부하고, 그것의 어두운 과오를 망각하고 있던 대부분의 구성원들에게 자기 응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빨갱이 사냥식의 냉전적 사고를 훌륭히 극복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쟁과 분단의 현실을 강요했던 반민주적 세력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민주적 헌법 체제를 창조해냈다. 이 자신감은 '타자의 얼굴'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하게 만들었다. 이 망각과 게으름에 경종을 울린 것이 '간첩 송두율의 얼굴'이었다.

우리 안의 이분법

'송두율의 얼굴'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리 안에 내밀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냉전 의식을 드러나게 한 데에 있었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한편으로는 역사에 비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에 부끄럽지 않았다. 1987년 이후 이룩한 민주 헌법과 사회 민주화 그리고 남북 통일을 위한 획기적 노력 등은 역사적 책무에 대한 자랑스러운 성과물이었다.

우리는 독재의 서슬 하에서 나와 내 가족의 입에만 관심을 두는 이들이기도 했지만, 민주적 헌정과 평화 통일 공동체를 위한 계기를 마련한 이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신감 속에서 체제 적대자로서의 '타자들'도 우리가 이룩한 자유주의적 정치 문화 하에서 관용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냉전 세력이 조성한 틀은 이미 우리의 의식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과 북 모두를 오가며 화해의 틈새를 모색하던 한 지식인의 행위가 '납득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보이는 듯하자, 저 알량한 '자유주의적 관용'의 허세는 그 밑천을 드러내게 되었다. 한국 사회가 이룩한 자유주의적 정치 문화의 관용을 넘어서는 수준의 피의 사실이 공개되자, 혐의는 어느새 진실이 되고, 양심적 지식인은 거짓말쟁이 박쥐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유주의적 사회의 법 및 정치 원칙에 의하면 생각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으며, 사상의 자유는 가능한 한 최대한 허용해줘야 한다. 또 어떤 행위가 타인에 대해 객관적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경우에는 법적 처벌을 할 수 없으며, 혐의 사실의 공개는 공익적 이유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는 감행될 수 없다. 혐의 사실의 공개로 인해 부당한 판정과 단죄가 여론의 이름으로 자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헌법의 성취를 통해 자부하고 있었던 자유주의적 정치·법 문화는 '간첩'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우리가 자랑하던 자유주의적 관용과 원칙은 아직 분단 체제의 이분법적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 민주화된 한국 사회는 여전히 두 개의 조국 중 하나를 선택해 그것에 수렴되어야만 한다는 이분법적 개념 틀에 갇혀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송두율에게 모든 것을 밝히고, 사과하고, 전향하라고 떼를 썼다. '사오로가 바오로가 되어서야' 히스테리는 멈췄고, 그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원칙을 훼손하는 상처를 입었다. 적과 나, 절대악과 절대선이라는 이분법적 개념 틀에 안주하는 한, 아무리 자유주의적 교양과 사상의 자유를 암송해낸들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망은 탄생할 수가 없다.

우리는 아직 그 정도였다. 그 정도의 우리에게 '경계인'이라는 말은 아리송할 수밖에 없었다.

경계인

송두율은 '경계인'이라는 용어로 한국 사회에서 내면화된 적과 동지의 이분법을 넘어보고자 하는 자신을 설명했다. 이 용어는 남과 북의 엄중한 경계선 속에서 적과 동지, 절대악과 절대선의 이차원적 이분법을 극복하고, 새로운 틈새 공간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표상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 용어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고 말았다.

우리 사회는 '경계인'이라는 개념을 양쪽 세력에 대해 객관적 균형을 취하면서 계량적 중립을 지키는 것으로 인식하거나,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회색인 정도로 해석했다. 전자의 경우라면 '경계인'이란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마치 치우치지 않는 판단을 내리는 공정하고도 불편부당한 심판관과 같은 이미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그의 '경계인'은 불편부당성의 이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경계인적 입장은 이상적 상태에서 가정된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 세계와의 접촉 속에서 모색되고 배열된다.

우리는 늘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자전거를 타지만, 사실 고정된 자전거의 중심 지점이나 선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자전거의 중심은 왼쪽과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운동 속에서 존재한다. 왼쪽으로 넘어지려는 몸을 억지로 오른쪽으로 돌려내려다가는 중심이 무너진다. 중심이란 오히려 왼쪽으로 넘어지려할 때 왼쪽으로 기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좌편향의 운동 속에서도 좌에 대한 일정한 긴장을 의식하는 운동 속에서 역설적으로 발생한다.

송두율이 말하는 중심이란 바로 이렇게 좌우를 넘나드는 운동의 긴장 속에서 섬광과 같이 나타나고 사라지며, 명멸하지만 여전히 지속하는 '기우뚱한 중심'이다. 이 중심은 운동 속에서 명멸하기에 어떤 고정된 지점이나 위치선으로 표기될 수 없다. 오직 삼차원적 연장 공간 속에서 시간적 배열의 과정에서 불현듯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송두율이 구상하는 남과 북의 만남은 바로 이 경계적 운동 공간에서 배열된다. 이 공간에서 남은 북이 될 기회를 가지게 되고 북도 남이 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자는 자신의 개념 틀을 상대화시켜 제 안에 자리한 낯선 이의 얼굴과 목소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남과 북, 과거와 미래, 주체의 영광과 타자의 좌절, 선과 악,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새로운 미래의 정신을 섬광과 같이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명석 판명한 구분을 중시하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보자면, 운동 속에서 교차하고 공존하는 이 역설적 공간에 대한 상상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말로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탈이분법 논리의 상상은 의외로 가까이 존재한다.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피에로의 얼굴, 소수 부족의 '변신 가면(transform mask)' 등은 이러한 사고의 현존을 증언하고 있다. 범고래 얼굴을 한 가면 끝의 끈을 잡아당겨 가면 안의 인간 얼굴이 나타나도록 한 변신 가면은 범고래와 인간 얼굴의 교차 운동을 통해, 이분법이라는 세속적 상황을 극복하고 틈새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을 의식하도록 이끈다.

인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례 의식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 세속과 신성성의 틈새에 대해 생각해보고 체험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의 영감을 얻고 있었다. 어쩌면 송두율의 경계인적 사고는 이 신화적 사회의 상징적 사고 논리가 보유하고 있던 잠재력과 맞닿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송두율에 따르면, 악마(惡魔·diabolos)라는 말의 어원은 '나누어진 것(diabolon)'이라는 그리스어로서, 이는 '결합된 것'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상징(symbolon)이라는 말의 상대 개념이다. 즉, 편을 가르고 이간질하는 '악마'적 사유를 극복하고 하나로 만드는 사회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상징'적 기억을 미래의 지평 속에서 오늘날 새롭게 상기하는 사고 상상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분단 현실에서의 폭력적 이분법이라는 악마적 사고를 쫓아내고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새로운 비판적 사유 논리가 필요하다. 한편으로 그것은 신화적 사회의 상징적 사고 논리와 잇닿아 있다. 하지만 신비화의 길로 잘못 들어서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세속화된 근대 사회의 현실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부정변증법적 사고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미래로의 귀향

책의 서문에서 송두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계인'에게 고향은 과거로의 회귀만을 의미할 수가 없다. 경계의 이쪽이나 아니면 저쪽, 어느 한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과거의 추억 속에 살며 그 속에서 자기 존재의 뿌리를 별 어려움 없이 관습적으로, 때로는 본능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쪽과 저쪽 사이의 경계에서 제3의 그 무엇을 구하려고 할 때,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미래의 고향에 우리의 생각을 천착하게 할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유토피아, 즉 '없는 땅'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미래의 고향이 선에서 면적으로, 또 면적에서 공간으로 변화하며 넓어질 때 그 안에서 더욱 많은 사람이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의 '지금시간(Jetztzeit)'을 연상시키는 이 구절은 미래로의 귀향이 이루어지는 시간에 대한 변증법적 경험을 소망하고 있다. 그의 귀향은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가는 무비판적이고도 선형적인 회귀가 아니었다. 시세의 압력에 굴복한 '탕자의 귀환'도 아니었다. 오히려 역사적 과오와 영광의 신화가 뒤섞인 '과거의 고향'을 현재의 비판적 성찰을 통해 해방시켜, 새로운 '미래의 고향'을 꿈꾸기 위한 귀향이었다.

송두율의 귀향은 완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미래의 고향'으로의 꿈이 유산된 것은 아니다. 그의 미완의 귀향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새로이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었던 좌절된 타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새롭게 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타자들의 목소리와 얼굴을 응시하고 상기할 때, 우리는 과거의 파편 속에 잠재한 경계적 공간으로서의 미래의 고향을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고 전망하게 될 것이다.

그 고향은 남과 북의 이념 대결에서뿐만 아니라 제국의 압력에서 좌절된 타자들 모두를 껴안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그의 실패한 귀향은 우리의 귀향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그의 상처를 통해 얻은 우리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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