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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2번' 민주당으론 박원순·안철수 현상 이해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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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2번' 민주당으론 박원순·안철수 현상 이해 못한다

[박동천 칼럼] '기호 2번'의 함정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야권의 유력한 후보로 등장한 박원순 변호사가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겠다고 하자, "기호 2번의 힘"과 민주당의 위신을 결부시키는 발언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박원순 변호사가 민주당에 입당하는 편이 나을지 말지에 관해서는 잠시 접어두자. 그리고 이 "기호 2번"이라는 상징에 관해 우선 검토해 보자.

선거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 북미 사회에서 후보에게 기호를 매기는 사례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에도 기호는 없다. 남들이 안 한다고 우리도 따라서 안 해야 하느냐고 되묻고 싶은 사람은 한국에서 이 기호가 왜 생겼는지를 돌이켜보라. 초창기 선거에서는 기호로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 작대기가 (로마 숫자가 아니다!) 사용되었다.

글자를 읽지 못해서 정당도 후보자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장치가 바로 그 작대기였다. 그런 제도 아래서 이승만과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민주 선거의 이름 아래 독재가 가능했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과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인데, 지금 계속 그런 유산을 고칠 생각은커녕 그 안에 안주하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민주와 개혁을 표방하는 사람이라면 오늘날 선거 기호를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민주당은 왜 "2번"인가? 왜 "1번"도 아니고 "3번"이나 "4번"도 아닌 "2번"인가? 현재 상황만 두고 말하면 현재 국회에서 원내 2당이기 때문에 "2번"이다. 하지만 박원순의 입당 여부와 관련해서 "기호 2번"을 말하는 민주당의 인사들은 현재 상황만을 염두에 두는 것 같지 않다.

그들은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기호 2번이었다는 기억을 되새기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줄곧 원내 2당에 머물렀던 오랜 역사가 이제 그들에게는 향수어린 정체성을 구성하게끔 되고 만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것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다가오는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박원순이 출마를 결심하고, 안철수가 양보하고, 그래서 이것이 비단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광역시의 선거라는 의미를 넘어 전국적인 파괴력을 가지게 된 까닭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내년에 있을 두 차례 선거의 결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스스로 현 정권의 실정과 무능과 파괴적인 토건 드라이브와 반민주적 폭거를 심판하여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야권의 맏형 노릇을 하겠다고 자임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설사 지금은 "2번"의 처지일지라도, 스스로 "2번"의 한계 안에 자신을 가둬서는 안 된다.

요약하면, 민주당이 내년 선거에서 정권 교체의 주역이 되어, 명실상부한 평화와 복지와 민주를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들의 의식 안에서 "기호"도 "2번"도 털어내 버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기호 2번"이라는 문구에 정치적 사유가 갇혀있는 한, 민주당은 박원순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바라는 바를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수렴할 수도 없고, 오히려 박원순을 시기하고, 심지어 음해하려는 움직임까지 잘 안 보이는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한국 정치가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극복하는 역사적인 분수령을 넘어설 계기가 내년에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금이다. 민주당이 적어도 공식적으로 연합 정치에 앞장섬으로써, 그 계기에 보탬이 되겠다고 천명한 자세까지는 고무적이다.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라는 구체적인 의제가 목전의 현안으로 닥치자, "민주당의 위신"을 들먹거린다는 것은 인간에 있어 공식적인 명분과 실제 행동이 얼마나 상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불행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그럴 리는 없다고 믿고 싶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 안에 정착되어 있는 고정관념 때문에 스스로를 기만하고 나아가 선의에 충만한 시민적 기대를 배신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 박원순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박원순의 입당 여부는 순전히 본인이 정할 일이다. 박원순이 만약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 이겼다고 할 때, 민주당의 "기호 2번"의 조직적 지원을 거절하고 가령 "기호 8번"으로 출마했다가 떨어질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곁에는 "기호 2번"을 달고 나갔다가 오히려 식상한 유권자들의 투표 불참 때문에 떨어질 위험도 있다. 이것은 모든 투표에서 어쩔 수 없이 모든 후보자가 감수해야 할 일반적인 불확실성이다. 이런 불확실성이 양쪽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마치 한 쪽에만 있다는 식으로 진실을 호도하는 태도는 전형적으로 박정희의 군부 독재와 이명박의 토건 독재를 규정하는 특징이다. 민주당이 자주 이런 모습을 흉내 내기 때문에 "한나라당 2중대"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것이다.

불확실성은 부인한다고 해서 확실성으로 둔갑할 리가 없다. 지금 민주당이 할 일은 박원순을 견제하거나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내에서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을 최대한 공정하고 최대한 깔끔하게 관리해서 잡음이 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것이 건강한 시민들의 마음속에 대안 정치의 희망을 심어주는 유일한 길이다.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이 감동적으로 청결하게 이뤄진다면, 그 다음 단계인 박원순과의 단일화 과정에 대해서도 하나의 이정표 노릇을 하게 된다. 최종 단일화 과정이 뜨거운 경쟁과 행복한 승복으로 구성된다면, 투표율도 자연히 올라가고 시장 선거의 승리도 확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최종 승자가 박원순으로 나타나느냐 아니면 민주당 후보로 나타나느냐는 이에 비하면 부차적인 일이다.

정치인에게 목전의 승리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목전의 승리에만 목을 매다는 정치인들이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이나 소위 "진보" 정당에까지 너무 많다는 것 때문에 오늘날 이 나라의 시민들은 날마다 수치심과 절망감에 시달리며 하루의 삶을 억지로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에 전통이 있고 위신이 있다면, 그나마 과거의 역사적 계기에서 비록 항상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무엇이 더 큰 가치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거기에 헌신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덕택으로 지금 민주당이 있는 것이다.

지금이 다시 그래야 할 때가 왔다. 지금 다시 무엇이 더 큰 가치인지를 깨닫고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민주당이 역사에서 승자의 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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