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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모술수'의 정치사상가? 아니, 새시대 꿈꾼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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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모술수'의 정치사상가? 아니, 새시대 꿈꾼 혁명가!

[청춘의 고전] 6강 박종성 교수, <군주론>과 <브이 포 벤데타>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권모술수의 정치', '잔인한 폭군' 등을 얘기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년). 위의 인용구는 그의 역작 <군주론>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문장인 동시에 현대에 '마키아벨리 정치학', '마키아벨리 리더십' 따위를 얘기할 때 전제되는 문장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수많이 해석되고 반박된 정치사상가도 드물다. 그의 입체적인 사상을, '냉혹함' 한 가지로만 설명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인간성, 신앙심도 잊어라"라는 말에서도 '비인간성'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정치에 있어 종교 원리를 배격하려고 했던 세속성과 전통 정치철학을 전복하려는 혁명성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열린 '청춘의 고전' 여섯 번째 시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이어 강의로 풀어낼 박종성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외래교수는 위와 같은 단편적 평가에 의한 일반적인 오해들을 지적했다. 그는 "마키아벨리즘이 기만과 사악함, 위선을 의미한다면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주의자가 아니었다"는 말로 그 평가를 정면 반박했다.

박종성 교수는 "우파들은 마키아벨리즘을 일종의 파시즘으로 해석하지만, 내가 보았을 때 마키아벨리가 추구했던 자유는 명백히 인민의 자유였다"며 "마키아벨리가 천착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인민의 자유 의지를 확대시킬 것인가'였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론>은, 모든 것이 통제된 사회에서의 혁명을 다룬 <브이 포 벤데타>와 '자유를 향한 쟁취'라는 지점에서 만날 수 있다. '냉철한 시선으로 보는 정치권력'이란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의에서는, 혁명적인 사상가이자 자유가 확장된 국가를 꿈꾸었던 한 '인민'으로서의 마키아벨리가 새롭게 조명됐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한 장면. ⓒ프레시안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피부색이나 성적,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이 '정신 집중 캠프'로 끌려가 의문사를 당하고, 남은 사람들은 엄격한 통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제3차 세계 대전 이후 2040년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다. 이름마저 의미심장한 '서틀러' 당의장이 군과 언론을 장악하고, 야간 통금마저 잔존하는 그야말로 파시즘의 재림과 같은 사회다.

사회운동가였던 부모를 어린 시절에 잃은 주인공 '이비' 앞에 어느 날 가면을 쓴 '브이(V)'라는 의문의 사나이가 나타난다.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자랑하는 브이는 마치 몬테크리스토 백작, 셰익스피어, 오페라의 유령을 섞어 놓은 듯한 인물이다.

1605년에 런던 국회의사당 폭파 테러를 감행한 실제 인물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브이는, 그날 밤 이비 앞에서 재판소를 폭파시키고 1년 뒤 국회의사당을 폭파하겠다고 선언한다. 폭압적 정부를 전복시키겠다는 브이의 완벽한 계획 아래 수년 전 정권 장악 음모에 가담했던 이들이 살해되는 등 사건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그 속에서 공포에의 굴종과 자유에 대한 투쟁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박종성 교수는 혁명에 대한 판타지를 구현한 이 영화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쟁취해야 할 자유는 무엇이며, 브이는 어떤 존재여야 할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가 타파해야 할 자유 억압의 원리는 '동일성'이며, 브이의 자리엔 다양한 '주체'가 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말하는 주체란 '해방 혹은 혁명의 주체'로, 이 자리에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단일 계급만이 아니라 여성, 장애인, 유색인 등 그 어떤 것도 와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키아벨리가 꿈꾼 것은?

▲ 니콜로 마키아벨리. ⓒnavercast.naver.com
박종성 교수는 먼저 '사상가'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특정한 사상을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마키아벨리의 대표 저작인 <로마사 논고>와 <군주론>에는 체계적 이론이 없지만, 마키아벨리는 최초로 '현실 정치학'을 만든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박 교수는 "과거의 정치학은 이데아를 상정하고 나머지(현실)는 가짜라고 말했던 플라톤의 사상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학문이었다"며 "마키아벨리는 기존의 고정적 형이상학 전통을 깨고 생생하게 존재하는 현실과 그 위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문제를 투명하게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현실주의 정치사상가였던 마키아벨리는 실제로 자신의 책에서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쓴 바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왔기 때문"이라며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가 가진 진짜 학문적 관심과 꿈은 무엇이었을까. 박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당장 다섯 개 도시 국가(교회 국가,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로 쪼개져 있는 이탈리아의 통일이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군주국의 새로운 군주"를 바라며 <군주론>을 집필했다.

마키아벨리는 자국의 방위를 위한 '외세의 개입'을 이탈리아 통일의 장애물로 봤으며, 따라서 인민의 군대를 주장하고 용병에 반대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고 살아간 피렌체를 사실상 지배했던 메디치가는 "신생 군주가 처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상황", 즉 "외국 군대의 도움에 의해 국가"를 건설한 상태였다.

또한 그는 교회, 즉 교황 권력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교황에서 추기경으로, 추기경에서 주교로 이어지는 중세 종교적 위계질서를 깨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기존의 낡은 정치와 관습, 특히 교회 권력을 청산하지 않으면 이탈리아의 통일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로선 대단히 혁명적인 사상이었으며, 후에 <군주론>을 포함한 그의 모든 저작이 교황 파울루스 4세에 의해 금서가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새로운 군주국의 새로운 군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군주는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가 아니라 인민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통치자/지도자"이며 새로운 군주국은 "모든 전통과 단절된 국가"여야 한다. 그 국가는 마키아벨리가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요새는 인민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라 말한 데서 드러나듯, "군주가 인민에 편에 서는" 국가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과제는 알튀세르가 '마키아벨리의 고독'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기존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져 온 '불변하는 질서'에 대한 정치철학과는 완전히 선을 그은 것이었다. 항구적인 진리와 코스모스가 지배하는 세계를 추구했던 기존의 정치철학과 달리 마키아벨리가 추구한 것은 오히려 자유의 철학과 카오스의 세계였으며, 그 속에서는 행위자의 독립성과 "개인적 자유를 공유된 공적 자유로 확장하는 과제"가 강조된다.

ⓒ프레시안(민정훈)

<군주론>의 핵심 개념, '비르투'와 '포르투나'

마키아벨리가 주체성과 자유를 옹호했다는 사실은 <군주론>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는 '비르투'와 '포르투나' 개념을 통해 잘 이해될 수 있다.

원래 도덕적인 맥락에서 겸손함, 용맹스러움, 단호함 등을 상징했던 '비르투'는, 그의 사상 속에서 인간의 역량과 윤리정치 영역의 독자성을 뜻한다.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진 로마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포르투나'는, 항해를 방해하는 폭풍우처럼 인간의 자율성을 위협하고 한계 짓는 상황들, 즉 '운명'을 가리킨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비르투(역량)과 포르투나(운명) 간의 관계에 따라 자유가 확장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운명이란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반만 주재할 뿐이며 대략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 있다는 생각이 진실이라 판단한다"는 그의 말을 통해 양자 간의 역학관계를 그려볼 수 있다.

즉 강력한 교황 권력의 영향 하에 있던 당시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군주국을 꿈꾸었던 마키아벨리가 역량과 운명 간의 변증법을 통해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자유의 정신'이었으며, 이것이 그 철학의 핵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자유의 정신'은 새로운 군주국을 위해선 기존에 우리가 가졌던 것을 모조리 파괴해야 한다는 전복적인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자유로운 생활양식에 익숙해온 도시국가의 지배자가 된 자는 그 도시를 파멸시켜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도시에 의해서 도리어 자신이 파멸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유를 쟁취하려면, 즉 비르투를 확장시키려면 우리가 갖고 있는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고 박종성 교수는 설명한다. 자유를 억압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로서의 '공포'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서틀러라는 폭군의 권력을 지탱시켜 주는 것 역시 사람들의 공포다.

주인공 이비 역시 중반까지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데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며, 브이는 그것을 극복시켜 주기 위해 그녀에게 쥐가 나오는 독방과 정치 고문이라는 '가상현실'을 마련하기까지 한다. 감옥에서 이비는 과거 한 레즈비언 여성이 휴지조각에 남긴 편지를 읽고 자유의 진정한 힘을 깨닫는다. 박종성 교수는 "브이가 봤을 때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국가가 갖고 있는 힘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일"이라고 이 장면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국가의 기만과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며 "민주주의란 표상 안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중의 뜻인 양 포장하고 기만하는 정치인들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 속에 사는 우리에게 마키아벨리가 주는 메시지는 '진실에 대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과 '위선의 정치를 직시하라'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중 한 장면. ⓒ프레시안

브이는 하나가 아니다 : '구체적 동일성'의 시대로

지금 시대에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기성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박 교수는 우리 시대에 자유를 억압하는 원리가 '동일성'이라며 이는 피부색과 성적, 정치적 취향이 다른 자들을 정신집중 캠프에 집어넣었던 영화 속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동성애자들을 대하는 '보통 사람들'의 태도를 볼 때에도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인터넷 블로그와 댓글을 조사한 결과,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 당시 혹시 발생할지 모를 테러에 대비해 회의장 근처로 무슬림들을 접근 금지시키자는 의견, 외국인 노동자의 에이즈 감염 사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며 그들을 '범법자'라 부르는 이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종교와 인종에 대한 편견은 '단일민족' 신화가 여전히 지배적인 한국에서 이렇게 폭력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종성 교수는 "독일 나치가 유대인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할 때 썼던 원리가 이런 순혈주의와 다를 게 무엇인가"라고 비판하며 순수에 대한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폭력성을 감지하고 지양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추상적 동일성의 세계에서 구체적 동일성의 세계로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현대 사회에서 자유를 향한 투쟁은 우리에게 심어준 '외부'라는 공포를 극복하고, 다양성을 지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브이 포 벤데타>에 맞추어 보면 "브이의 시대에서 이비의 시대로의 전환"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영화에서 혁명은 브이라는 한 인물의 계획에 의해 일어나지만, 국회의사당이 폭파되는 순간 모든 사람이 브이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장면이 상징하는 것처럼 브이라는 '자리'엔 누구나가 올 수 있다.

박종성 교수는 "과거 저항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과 같이 단일한 무엇으로 표현되어있었지만, 구체적 동일성의 시대에는 가면을 쓴 브이처럼 주체의 자리는 비어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이 주체는 알튀세르의 개념대로 '호명된 주체'가 아니라 열려 있는 상태다.

브이를 좇던 형사가 "브이는 누구였소?"라고 묻자 이비가 "그는 에드몬드 단테였죠. 그리고 내 아버지였고 내 어머니였죠. 내 오빠였고 내 친구였죠. 그는 당신이기도 했고 저이기도 했죠. 그는 우리 모두였어요"라고 대답한 대목에서 이런 해석은 설득력을 얻는다.

▲ 박종성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외래교수. ⓒ프레시안(민정훈)

마지막으로 박종성 교수는 마키아벨리 사상에서 좀 더 보충되어야 할 것은 "형상과 질료의 결합을 통한, 정치의 힘을 실현시키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이데아'를 상정하지 않는 현실정치를 강조했지만, 어떤 것을 '꿈꾸는 일' 즉 '형상을 갖는 일' 역시 자유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꿈을 꾸어야지만(형상을 가져야지만) 그 꿈을 향해 질료(인민의 역량)를 가다듬을 수 있다는 변증법적 관계가 빚어진다.

박 교수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절망적인 상황, 열망과 강건한 믿음, 개개인들에 잠재한 탁월한 역량" 등 '질료'에 대해 설명했지만 '형상'은 삭제되어있었다. 그는 "지금 우리가 그것을 다시 복원할 필요성이 있다"며 "어떤 것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갈 길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곱 번째 강의는 9월 17일(토) 6시 같은 장소에서, '문화가 산업이 되어 야만적 대중을 생산하다!'라는 주제로 열립니다. 현남숙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과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엮어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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