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되살려 놓은 호랑이와 늑대는 도대체 어디서 삽니까? 동물원에서요?"
'언어의 마술사'였던 그 과학자도 순간 말문이 막혔던 모양이다. "그게…, 그건…." 레이 커즈와일과 테리 그로스먼의 <영원히 사는 법>(김희원 옮김, 승산 펴냄)을 읽으면서 바로 이 에피소드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생각이 이런 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영원히 사는 법? 영원히 살면 뭐해? 좋은 꼴을 볼까?"
영원히 사는 법?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에 펴낸 <특이점이 온다>(김명남·장시형 옮김, 김영사 펴냄)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미래학자다. 이 장황한 책을 간략히 요약하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신인간'으로 대체되는 시점이 조만간 오리라는 것이다. 이 시점이 바로 그가 말하는 '특이점'이다. 그는 특이점 이후의 세상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진화의 다음 단계"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 <영원히 사는 법>(레이 커즈와일 지음, 김희원 옮김, 승산 펴냄). ⓒ승산 |
신인간의 탄생을 거창하게 예견한 커즈와일이 육식과 커피 대신 채식과 녹차를 권하고, 근력 강화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비타민과 영양 보충제의 홍보 대사를 자처하는 모습은 낯설고 다소 우습다. 그렇다면, 그가 이런 책을 펴낸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의학 혁명까지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9가지." 원제도 대동소이하다. "Transcend : Nine Steps to Living Well Forever." 그렇다. 이 책은, 커즈와일이 조만간 올 것이라 믿는, 생명 연장의 미래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그 시점, 그러니까 특이점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일종의 장수 비법을 갈무리한 것이다.
"이 책에 쓰인 조언을 정확히 실행에 옮긴다면,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는 거죠?" 하는 질문에 커즈와일이 어떻게 답하는지 들어보자.
"개인에 따라 다를 겁니다. 가령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심장 발작이 올 확률이 높다고 칩시다. 하지만, 우리 권고안을 따른다면 그 위험을 95퍼센트는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타당하다고 믿습니다.) 자, 원래의 질문에 대답한다면 한 20년쯤 되겠네요."(수명 연장 20년!)
"그 20년을 더 사는 덕분에 그 사이에 첨단 기술이 등장해서 말 그대로 유전자를 바꾸어 버리는 그런 시대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이미 이런 목적의 약물이 개발 중인 것만 1000여 개가 넘지요. 그러면 수명을 10년에서 20년쯤 또 다시 여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수명 연장 40년!)
"그러면 금세기(21세기) 중반까지는 살게 되겠죠? 그쯤 되면 혈관 속을 여행하는 초소형 장치가 나와서 체내의 세포 수준에서부터 건강을 지키는 발전이 가능할 때죠. 그 때가 되면 수십 년은 더 살 수 있을 겁니다. (…) 최소한 20년 뒤부터는 매년 수명이 1년 이상씩 연장될 것으로 봅니다. (…) 바로 당신에게 남은 기대 수명 말입니다."(수명 연장 ○○년!?)
불평등한 세상에서 사는 법
사실 앞에서 인용한 커즈와일의 비전을 읽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앞뒤 안 가리는 그의 호언장담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구멍은 이 책을 덮을 때까지 채워지지 않았다. 이 책은 과하게 평가되어 있는 커즈와일의 밑바닥을 보여준다. 문제를 지적하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니, 몇 가지 생각나는 것만 나열하자.
우선 커즈와일이 이 책에서 말하는 건강 비법을 실천하려면 상당한 재력이 필요하다. 당장 그는 건강 비법의 첫 번째로 의사와의 상담을 꼽는다. 그러나 그의 이웃의 모습은 어떤가? 이 책이 나온 2009년만 하더라도 전 국민 의료 보험이 없었던 미국에서는, 시민의 상당수가 당장 필요한 치료를 돈이 없어서 받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언젠가 (한국에서의 내 처지와 다르지 않을) 미국 뉴욕의 한 글쟁이가 치과 치료를 할 돈이 없어서 치통에 시달리며 사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글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에서는 국민건강보험 덕분에 기침 한 번, 상처 한 번, 치통 한 번에 벌벌 떨지는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커즈와일이 얘기한 대로 비교적 '젊음'을 유지한 채 늙으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그의 사진만 봐서는 그렇게 젊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노력은 대개 상당한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의사와 상담, 스트레스 조절, 정기 진단, 영양 섭취, 영양 보충제 등. 특히 직장에서 은퇴해 정기 수입이 끊긴 노년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이제 갓 환갑(그는 1948년생이다!)을 지낸 그는 적지 않은 돈을 모아놓은 모양이다. (그 중 일부는 한국의 출판사, 언론사가 가져다 받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기는 쉽지 않다. 당신은 어떤가?
위험한 세상에서 사는 법!
시야를 세계로 넓히면 커즈와일의 비전은 더욱더 생뚱하다. 선진국에서 건강을 가로막는 요인이 암, 치매, 당뇨, 심장병 등 만성 질환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전 세계로 살펴보면, 여전히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요한 질병은 말라리아, 에이즈(AIDS) 등과 같은 전염병이다. 지금도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사는 수많은 이웃이 이런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커즈와일보다 훨씬 더 많은 성취를 이룬 빌 게이츠 같은 부자가 말라리아 퇴치야말로 인류의 중요한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전염병 문제는 커즈와일 같은 선진국 부자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21세기가 시작하자마자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조류 독감(AI) 같은 전염병의 위협이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지 않았나? 앞으로 훨씬 더 독성이 강하게 변이한 박테리아,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쳤을 때, 커즈와일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전쟁, 테러는 훨씬 더 복잡한 얘기니 논외로 하자!)
분명히 그는 "그 따위 전염병쯤이야 과학자들이 금세 해결할 것"이라고 큰소리칠지 모른다. 마치 중세 시대 흑사병이 돌 때, 신부들이 신에게 울부짖었던 것처럼. 그러나 진실은 이렇다. 커즈와일 같은 부유한 선진국 시민의 수요에 맞추고자 과학자들이 만성 질환, 성 기능 개선제, 탈모 치료제 등의 연구에 집중한 탓에 전염병 연구는 박테리아, 바이러스의 변이 속도를 못 따라가는 게 현실이다.
정말, 운에 맡길 필요가 뭐가 있는가!
커즈와일이 '영양 섭취', '독소 제거'를 위해서 나열한 방법을 읽다 보면 헛웃음은 쓴웃음으로 바뀐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항생제나 호르몬을 주지 않고 '풀어서 키운' 토종닭이 제일 좋다." "가능한 한 언제나 유기 농업 제품을 먹어라." "약한 전자파라도 생체의 조직 기능에 변화를 일으켜서 DNA 손상과 같은 다양한 건강상 해로움을 일으킨다는 증거들이 보고되고 있다. 확실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운에 맡길 필요가 뭐가 있는가?"
이쯤 되면 월든 호숫가에 살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과연 그가 꿈꾸는 '신인간'이 탄생할지 모르는 시대에 이런 삶이 가능할까? 당장 (특이점이 오려면 꼭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나자마자 근처에서 유기 농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농부가 오염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을 그는 알까?
(2008년이던가, 커즈와일은 한 강연에서 "앞으로 20년만 지나면 태양광 에너지가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와 같은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 이유로 "기술 진보"를 언급했는데, 지금 태양 에너지가 널리 보급되기 위한 선결 조건은 기술 진보가 아니라 에너지 전환을 위한 다각적인 실천이다!)
더구나 기후 변화 등의 원인으로 식량 수급에 문제가 생기리라는 경고가 현실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커즈와일은 또 이렇게 답하리라. "생명공학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통해서 식량 위기를 해결할 것이다." 아니, "운에 맡길 필요가 없다"며 각종 전자기기를 멀리하라는 사람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불확실한 위험은 감수하겠다고?
책에서 나오는 미래 기술에 대한 비전으로 눈길을 돌리면 커즈와일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그는 조금만 버티면 (2034년쯤 되면) 인공 장기가 기존 장기를 대체하고, 세포 크기의 로봇의 일종인 나노봇이 몸속의 대사 작용을 관장하리라고 전망한다. 참, 기이한 일이다. 아니, 헤어드라이어, 전기면도기도 전자파 때문에 가능한 한 사용 시간을 짧게 하라고 권고하는 사람이 몸속에 인공 장기, 나노봇을 넣고 평생 살겠다고?
영원히 살아서 어쩌려고?
이제 커즈와일의 장광설이 준 허탈함을 벗을 때다. 건강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면, 이 책보다 좋은 조언은 훨씬 더 많다. 당장 한의사 이상곤의 <프레시안> 연재를 고쳐 쓴 <낮은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을 읽거나, 혹은 2010년에 역시 <프레시안>에서 인기리에 연재했던 연세대학교 운동의학센터의 '메디컬 피트니스'만 살펴봐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서 진짜 생각할 것은 무엇일까? 혹시 지금이야말로 바로 "영원히 사는 법"에 대한 강박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할 시점이 아닐까. 인간 수명 연장이 과연 최고선인가? 커즈와일의 말대로 정말로 특이점이 와서 인간이 영원히 사는 상황을, 바꿔 말하면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을 인류는 그대로 용인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250년 동안 저주 받았던 사상가 토머스 맬서스를 다시금 숙고해야 할지 모른다. 이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토론은 다음에 좀 더 본격적으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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