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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덕,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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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덕,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이제 그만!

[정희준의 '어퍼컷'] 진보, '도덕' 따위는 내다버리자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좀 좁힐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왕 좁힐 바에 과감하게 좁히기로 했다. 그래서 '학교 안'으로 국한해 여기에서만이라도 부끄럽지 말자고 결론을 냈다. 그런데 이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요즘은 그냥 '민폐 끼치지 말고 살자'는 정도로 타협하고 산다.

생각해 보니 떳떳하게 살아보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부끄러움과 자책감뿐이었다. 내 삶 앞에 떳떳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도덕성'의 깃발을 드는 자기 선언보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곽노현 논란의 재구성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뉴시스
최근 진행되는 '곽노현 논쟁'을 들여다보면 크게 두 가지를 놓고 싸움들을 한다. 하나는 사퇴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선의'냐 '대가'냐의 문제이다. 후자는 보수 대 진보의 대결 구도가 확연한데 전자는 재밌게도 진보 내에서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퇴와 관련해서 개인적 의견을 말하자면 곽노현은 지금 사퇴할 이유가 없다. 본인이 강하게 부정하기도 하지만 검찰의 대가성 입증도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게다가 전 서울시장 오세훈이 사퇴하는 날 사건이 터졌다는 귀신 곡할 타이밍도 그렇고, 또 검찰이 미확인 정보를 계속 '흘리기' 하고 '청부 언론'이 이를 받아쓰기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진보의 오래된 문제일 뿐 아니라 지금의 혼란 역시 이것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곽노현이 박명기에게 2억 원을 줬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진보 진영에서 나온 이야기는 '당장 사퇴'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 '도덕성'이었다.

진중권은 "도덕성이 유일한 무기인 진보 진영이 이를 내다버리고 싸울 수 없다"면서 "도덕성에 커다란 흠집"이 갔기 때문에 "법적 책임에 앞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홍인기 역시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는 진보 진영에는 이번 사건이 족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사퇴를 주장하진 않았지만 조국도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를 것이라 난감"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덕성이 정말 진보 진영의 유일한 무기인가? 진보는 정말 도덕성에 바탕하고 있는가? 아니, 어쩌다 도덕성이 진보의 족쇄가 됐는가?

왜 보수의 십자가를 진보가

도덕성은 원래 보수의 덕목이다. 도덕이란 당연히 기존 가치들의 결집이고 보수의 이데올로기이다. 가진 자일수록, '사회 안정'을 추구할수록, 모범을 보이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진보는 도덕적일 수 없다. 진보가 무엇인가. 변화다. 기존의 사고와 행동의 틀에서 자유로워야할 뿐 아니라 도전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도덕적일 수 있겠는가. '진보=도덕성'이라는 공식은 한마디로 논리 모순이다.

그렇다면, 어쩌다 도덕성이 '진보의 무기'가 되었나. 군사 독재가 이어지고 정경유착이 뿌리내리면서 우리의 보수는 부패했다. 사실 한국의 보수는 스스로 부패(또는 부정)했거나 부패를 옹호하거나 부패와 친한 사람들이다. 돈도 많은 사람들이다. 박정희 시대의 실력자 이후락은 자신의 부정한 축재를 "떡을 만지다 보면 손에 떡고물이 묻게 마련"이라며 합리화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부패는 자연스런 조합이 되었다.

그런데 공룡과도 같은 보수와 맞서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진보는 내세울 게 없었다. 급한 대로 집어든 게 도덕성이었다. 사실 진보엔 가난한 이들이 많았고 따라서 도덕성에선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진보와 도덕성의 조합은 부패한 보수의 아픈 곳 찌르기에는 매우 편리하면서도 탁월한 무기였다.

스스로 도덕성 프레임에 갇혀버린 진보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제까지 선거는 독재 대 반독재나 민주 대 비민주의 대립 구도를 보였는데 사실 그 바닥에 깔린 프레임은 바로 부패 대 반부패였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온 정운찬이나 손석희 같은 깨끗한 이미지의 인물들은 본인들의 정치 성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진보 진영의 주자가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게 되었다. 작금의 '안철수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봐도 보수적 인물인데 (보수의 간판 이데올로그 윤여준이 돕고 있다.) 정작 그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면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의 표를 가져간다지 않는가.

문제는 진보가 계속 도덕성을 표방하다 보니 스스로의 도덕성을 계속 증명해야 하고 또 사소한 도덕성 시비에도 매우 취약한 구조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한나라당과 불법 대선 자금 규모를 가지고 시비를 벌일 때도 "한나라당 불법 선거 자금의 10분의 1을 넘지 않는다"고 주장하자 한나라당과 10분의 1을 넘는다, 아니다를 가지고 치졸하게 돈 계산까지 하며 싸우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진보는 도덕성일랑 보수에게 던져버려라. 진보라고 해서 '도덕 DNA'가 더 많은 것도 아니고 또 사람 상대하고 조직을 꾸리게 되면 한 점 부끄럼이 없기란 불가능하다. '도덕성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는 진보를 보며 보수는 웃는다.

그들을 보라. 돈도 많은데다 룸살롱에서 '자연산'과 함께 멋지게 술 마시고 혹 실수를 해도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하며 당당하게 빠져 나가지 않는가. '부패도 능력'이라는 사람까지 있다. 특히 진보가 도덕성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보수는 부패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만 뿌려대는 꼴이다. 왜 보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낑낑대는가.

촌스런 진보는 가라

진보는 능력으로 승부해라. 능력 있지 않나. 지금 보수의 실력자나 이데올로그들은 대부분 진보에서 훈련받은 사람들 아닌가.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 진보적 시민 단체의 젊은 활동가들은 웬만한 교수보다도 훌륭하지 않은가. 정책 만들기도 바빠 죽겠는데 왜 '도덕성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까지 해야 하나.

특히 '도덕성 타령'은 진보의 확장에 방해가 될 뿐이다. 특기(?)가 고작 도덕성이라는 진보에 요즘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겠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다. 안철수, 손석희, 김제동, 박경철 모두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이겐 성공한 사람이 곧 떳떳한 사람인 것이다.

이제 '도덕성이 유일한 무기'인 진보와는 안녕을 고해야 한다. 성공한 진보, 부자 진보가 나와야 하고 전문인 진보가 많아져야 한다. '식스팩복근' 진보도 나와야 하고 '까도녀' 진보, '섹시한' 진보도 나와야 한다. 노동자가 부자가 되는 세상도 어서 와야 한다.

강남 좌파를 까칠하게 보는 진보, 유일한 무기가 도덕성이라는 진보. 나는 그런 진보 안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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