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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닮은 日 전공투의 추억…'중딩'의 대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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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386' 닮은 日 전공투의 추억…'중딩'의 대리 전쟁!

[프레시안 books] 소다 오사무의 <우리들의 7일 전쟁>

"야, 우리 X됐다. 이제 급식비 어떻게 띵기냐(꿀꺽 하냐)."

지인이 24일 치러진 무상 급식 주민 투표 이후,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나 신문에서 들은 그 어떤 말보다 인상적이었다며 전해준 '중딩'들의 생생한 투표 감상평이다.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며,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중딩'이란 이름이 갖는 현주소다. 허세 부리는 이들을 뜻하는 '중2병'이란 단어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여중생"이라는 사교육 시장에 발 들인 선배들의 푸념에서도, 중학생에 대한 무시와 혐오가 드러난다.

초등학생은 귀엽고 고교생엔 기특하다며 애정을 쏟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중학생에겐 '무개념' 딱지가 익숙한 우리이기에, 이 소설의 '중딩들'은 너무 성숙해 더욱 낯설다. <우리들의 7일 전쟁>(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양철북 펴냄)의 주인공들이다. 1985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로 전29권, 1500만 부 판매 부수에 이르는 '우리들' 시리즈의 시초가 된 이 청소년 소설은 도쿄 변두리 한 중학교 1학년 2반 학생들이 폐 사무실을 점거하고 '해방구'를 선언하면서 벌인, 7일간의 반란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은 자기 배만 불리는 데 열심인 어른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다.

▲ <우리들의 7일 전쟁>(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양철북 펴냄). ⓒ양철북
6월의 어느 날, 열세 살 아이하라 도루는 같은 반 기쿠치 에이지에게 아라 강 둔치의 폐 사무실에 "해방구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해방구는 뭐며 권력은 또 뭐고, 중학생인 자신이 왜 권력에 맞서야 하는지 어리둥절해하는 에이지에게, 도루는 1960년대 일본의 학생 운동,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 이름을 처음 듣는다는 에이지에게, 도루는 짐짓 아는 척 '"너네 아빠는 그럼 논 폴리(논 폴리티컬 파, 학생운동기 당시 정치에 무관심했던 이들)였겠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도루 역시 딱히 정치의식이 있어서 반란을 도모하는 것은 아니다. 도루의 눈을 빛나게 만드는 것은 불만("넌 꼰대들이나 부모나, 뭐 그런 어른들이 하는 일에 만족해? 하고 싶은 말 없어?")과 자신감("우리도 힘을 합치면 어른들이랑 싸울 수 있어"), 그리고 모험에 대한 기대("위험하지, 그러니까 재미있는 거고")다. 마침 몸이 근질근질했던 아이들은 모두 이 선동에 이끌린다. 결행 1주일 전, 놀랍게도 2반 남학생 22명 전원이 모인다. 여학생들은 어른들이 불순한 이성 교제로 낙인찍을 우려 때문에 일부러 배제했으며, 결행 이후 바깥에서 어른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드디어 결행일. 종업식 날 한 반 남학생들이 전원 사라지자 동네는 발칵 뒤집힌다. 저녁 일곱 시,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해방구 방송'이 배달된다. 1970~80년대 활동했던 전설적인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의 테마곡 '불꽃의 파이터'와 함께, 흘러나오는 전쟁 선포의 메시지. "살아 있다. 살아 있다. 바로 어제까지는 악마의 지배를 받아 영양분을 빨렸지만 오늘 마신 '해방'의 앰풀로 지금은 완전히 되살아났다…" 아이들의 부모 세대가 기억하고 있는, '니혼 대학 전공투'의 시다.

이후 한 장(章)당 하루 단위로 펼쳐지는 7일 간의 전쟁은 예상대로의 수순을 밟아 간다. 정의를 상징하는 2반 아이들 앞에서, 적을 상징하는 '나쁜' 어른들은 망신을 당하거나 물리적인 화를 입는다. 외부 평가에만 연연해 학교를 억압한 주제에, 당장 해방구에서 나오지 않으면 정학을 내리겠다고 협박하는 교장, 교감은 미로에 빠진다. 학생들을 괴롭혔던 무식한 폭력 교사 '물개' 사카이는 아이들이 낸 어려운 문제를 풀지 못해 매스컴 카메라 앞에서 1인 2역의 레슬링 경기를 펼친다.

아이들은 돈에 환장한 건설 회사 사장 호리바 센키치, 불법 낙태로 번 돈을 불륜 애인에게 쏟아 붓는 산부인과 의사 가키누마 야스키 등 자신의 부모에게도 정면으로 칼을 겨눈다. 이 과정에서 어른들의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면모들이 낱낱이 고발된다.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청춘물의 문법대로,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개개인이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하며 모두 한 뼘씩 자라난다. 스포츠 아나운서를 꿈꾸는 아마노가 레슬링을 중계 하듯 '해방구 방송'을 진행하고, '일렉킹'이란 별명대로 전자 기계에 능숙한 사토루가 남학생 중 유일하게 밖에 남아 FM 방송을 멀리까지 퍼뜨린다. 평소에 공부벌레나 마마보이로 놀림 당하며 중심에서 어울리지 못했던 아이들도, 자기 가치를 하나씩 발견하며 모두가 예쁘고 완벽하게 하나로 어우러진다.

단지 답답한 학교에 '엿 먹여보자'며 일을 도모했던 아이들, 그러나 7일간의 전쟁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커다란 결실을 거두며 끝난다. 심지어 무능력한 경찰을 앞질러 종업식 날 진짜로 유괴 당해버린 친구 나오키를 구한다. 거기다 나오키를 유괴한 불쌍한 빚쟁이 아저씨에겐, 몸값으로 요구했던 1700만 엔을 받아내 '적선' 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모든 반란은 '사라지는 것'으로 종료된다. 그 탈출마저 감쪽같아 어른들에게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떠올리게 만든다.

비현실적으로 완벽한 전쟁. 약자라기보다 약자를 벌하거나 돕는 위치로 권력 전복에 성공한 아이들. 하지만 이 소설을 맘껏 즐기기 불편한 이유는 단지 이런 과도한 설정 때문은 아니다. 애초에 이 소설은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 때 생겨나는 리얼리티는 썩둑 자르고, 통쾌한 복수극만을 강조하기로 마음먹은 태세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강력한 도전 세력을 상징해야 한다. "이 아이들은 기존 질서를 깨뜨리려 하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비행 청소년 쪽이 낫다"는 여자 '일진 짱' 구미코의 아빠 센키치의 말 속에서 그 의도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는 소설 속 어른들만의 걱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들의 7일 전쟁>은 소설 속 어른들만 위협을 느끼는, 그 소설 자체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소설이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1학년 2반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젊음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캐릭터들이다. 이 욕망의 주체는 교장, 교감 같은 판에 박힌 기성세대가 아니라, 한 때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섰지만 지금은 자기 안위만 추구하는 아이들의 부모, '전공투 세대'다. 이들은 자기 아이들에게서 과거 자기들의 모습을 본다.

이런 구도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도루의 아버지 아이하라 마사시다. 니혼 대학 투쟁에 참여해 결국 교도소 신세까지 진 열혈 운동권이었던 그는, 석방 뒤 투쟁에서 만난 소노코와 결혼해 도루를 낳고 평범한 학원 원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선생과 부모들이 단체로 해방구에 모인 자리에서, 마사시는 해방구라는 붉은 글씨를 보고 홀로 진정으로 감동한다. 그는 도쿄대 야스다 강당 함락 당시 마지막 방송을 기억해 낸다. 방송은 "우리의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를 대신해서 싸울 동지들이 방송을 재개하는 날까지 일시적으로 방송을 중단한다"는 내용. 마사시는 아이들에게서 '우리를 이을' 동지들의 모습을 보며, 아내에게 속삭인다.

"요즘 대학생들을 봐. 이제 권력에 대항할 에너지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어. 고등학생은 또 어때? 고등학교는 대학의 예비 학교로 전락하고 있잖아. 중학생도 3학년이 되면 교사가 시키는 대로 해. 소란을 피우는 건 몇몇 불량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뿐이야. (…) 결국 우리 뒤를 이을 수 있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는 거지. (…) 어쩌면 저 애들이 우리 뒤를 이을 녀석들인지도 몰라."

뒤를 이을 아이들이라! 기가 막히게 닮아 있는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2008년 여름, "미친 소, 너나 드셈!" 등 톡톡 튀는 손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촛불 소년·소녀, 즉 10대들에게 보냈던 386 세대들의 찬가와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마침 2007년 말 "짱돌 대신 토익 책을 선택한" '88만 원 세대'로 묘사된 한심한 20대와의 대조 속에서, 운동 세대들은 자식 세대를 치켜세웠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이 '가족적인' 회상을 통해 2008년의 촛불과 1987년의 6월 민주 항쟁에서의 '업적'을 이어 놓는 시도, 불필요한 부분까지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려는 시도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10대 당사자들은 이 찬사를 매우 불편해 했다.

물론, 이 소설에서도 당사자인 중학생들이 그 찬사의 불편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과거 전공투였지만 지금은 연예인의 스캔들을 뒤쫓는 일로 승승장구하는 인기 리포터 야바 이사무가 해방구를 보도하며 "시들었나 싶었던 학생 운동은 (…) 다시 살아난 거야!"라며 불타오르자 아이들은 냉소한다. "저는 전공투에게 묻고 싶은데요, 아저씨는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세요? (…) 모두가 치마를 들치라고 하면 아저씨는 들칠 거예요? 아저씨가 하고 있는 일하고 치마를 들치는 일하고 뭐가 다르죠?" 이렇게 말할 때, 아이들은 꽤나 예리하다.

그러나 이런 장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설 속 아이들에게 마냥 끌리기 어려운 이유는 이 반란이 결국 전공투의 '추억'을 환기하는 어른들의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7일 전쟁은 야스다 강당 점거 투쟁에서 맥락을 제하고 재미를 덧붙여 데려 온 한바탕 축제다. 마지막 순간까지 중계 마이크를 놓지 않던 아마노는 말한다. "우리 부모들도 지금은 타락했지만 젊었을 때는 꽤 멋진 일을 했군요." 그래, 멋진 일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왜 피를 흘리며 싸웠는지, 아이들이 왜 사회와 학교에 불만을 느끼는지가 아닌 '반란의 추억'이 연대감의 기반이 되는 장면은, 그다지 뭉클하지도 유쾌하지도 않다. 게다가 일본의 대중적인 학생 운동이 비단 외교적·경제적 조건의 변화 뿐 아니라 심각한 내부 폭력 문제로 처절하게 종식되었단 사실을 떠올릴 때, 붉은 물감의 현수막을 보고 청춘을 떠올리는 도루의 아빠보다 "옛날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며 허무를 느끼는 엄마 소노코 쪽이 차라리 가슴에 와 닿는다. 지금은 타락했지만, 멋진 일을 했다. 타락했지만, 빛났다. 타락했지만…. 이라고, 전공투 세대의 후일담이 아이들의 입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이 전쟁은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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