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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남성이라고 믿은 '소녀', 그의 진짜 '性'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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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자신이 남성이라고 믿은 '소녀', 그의 진짜 '性'은?

[청춘의 고전] 5강 김세서리아 교수, <주역>과 <소년은…>

성전환 수술은 받지 않았지만 뼛속깊이 자신을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생물학적 여성'은 과연 여성일까, 남성일까? 우리를 여자 혹은 남자로 정체화(identification)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은 명확할까?

지난 7월 1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열린 '청춘의 고전' 다섯 번째 시간에 던져진 질문이다. 이날 강의 주제는 '<주역(周易)>과 성 정체성'. 동양 철학과 여성주의 이론을 접목시킨 연구로 알려진 김세서리아 성신여자대학교 연구교수가 강단에 섰다. 김 교수는 주류 동양 철학을 여성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공자 페미니즘을 상상하다>(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 등의 책을 펴냈다.

오래된 유교 경전 <주역>은 천지만물을 양(陽)과 음(陰)으로 구분하며, 만물들이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차면 기우는 달처럼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나 그 원칙만은 영원 불변하다는 철학으로, 이 원리를 인간사에 적용시켜 풀어낸다. 주역의 원리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 역시 완전히 분리되어 고정화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꼬리를 무는 것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존재다.

▲ <소년은 울지 않는다>. ⓒnaver.com
<주역>과 함께 볼 영화는 킴벌리 피어스 감독의 1999년작 <소년은 울지 않는다(Boys don't cry)>. 한 '생물학적 여성'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른 여성을 사랑하는 등 남자처럼 살아가다, 결국 자신의 존재를 들켜 성폭행을 당하는 등 비극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1993년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와 고전 <주역>이 우리 삶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김세서리아 교수는 "<소년은 울지 않는다>를 통해 우리가 강고하다고 믿어 왔던 남녀 간의 구분이 명확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으며, <주역>을 통해 음과 양이라는 다른 두 영역을 보존하면서도 대립 구조를 상정하지 않는, 상관적(相關的) 사유와 경계 흐리기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 그리고 여, 이분법을 넘어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주인공 티나 브랜든(힐러리 스웽크)은 절도 혐의로 수배 중 장난삼아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지금까지 살던 곳과 다른 동네에서, 이름까지 '브랜든 티나'로 바꾼 채 남자로서 전혀 다른 삶을 산다. 그의 곁에는 라나 티셀로(클로에 셰비니)라는 사랑하는 여인도 있다. 하지만 과속 위반으로 정체를 들키게 되고, 브랜든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라나의 전 애인 패거리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기에 이른다.

김세서리아 교수는 "브랜든 티나(티나 브랜든)의 성별 정체성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열었다. 이어 "라나를 사랑하는 브랜든은, 레즈비언으로서인가, 남성으로서인가?" 하고 물었다. 우리가 명확하다고 여겨 왔던 성 정체성/성별 정체성 구분이 사실은 모호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 김세서리아 성신여자대학교 연구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어 김 교수는 성별 정체성을 남/녀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것의 위험성과 불합리함을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보통 누군가를 '여성'이라 말할 때 그 근거로 거론되는 생식기관(자궁, 나팔관 등), 호르몬(에스트로겐), 염색체(XY)조차 모든 여성이 갖춘 필수 조건이 아니라며, "이러한 구분은 XXY와 같은 소수 염색체를 가진 사람, 폐경에 이른 사람(에스트로겐 분비 중단), 자궁이나 나팔관이 없는 사람 등 소수자들을 주변화하고 배제한다"고 말했다.

이분 구도 자체가 지닌 문제도 있다. 남녀를 비롯해 인간과 자연, 이성과 감성, 서양과 동양, 삶과 죽음 등 세계를 이분법으로 구분할 때 "각각이 지닌 복잡한 정체성이 소거되는 한계가 생긴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또한 그 이분 구도는 늘 위계적 질서로 빠진다고 덧붙였다. 조선 시대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남존여비' 사상이 그 대표적인 예다.

김 교수는 "만물을 두 범주로 나누는 것은 그 둘을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하며, 각각을 고정화한다"며 "각각이 가진 미세한 차이들을 계속 조각내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같은 '여자'로 묶인다 해도 백인 중산층 여성과 흑인 노동자 여성이 처하는 현실이 다르듯이, 하나의 커다란 이름으로 범주화시킬 때 간과할 수 있는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와 남자, 음과 양 등 분명히 구별되어 보이는 두 개의 다른 범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면 될까? 김세서리아 교수는 '뫼비우스의 띠'를 상상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 번 꼬인 상태로 맞붙어 있는 뫼비우스의 띠는 겉과 안의 경계가 모호하고 서로 통해져 있지만, 겉과 안이 완전히 하나로 뭉뚱그려지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분 범주 간의 관계는 '문지방'을 사이에 둔 안과 밖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문지방은 방 안과 방 밖을 가르는 경계선이지만 그 두 곳을 연결하는 지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음양 등 서로 다른 두 범주는) 명쾌하게 구분되는 것 같지만 분명히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다"며 "이러한 '문지방 이론', '경계 이론'을 통해서 성/성별 정체성과 관련된 논의를 새롭게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 만물을 설명하는 원리?

중국의 오경(五經) 중 하나인 <주역>에 깔려 있는 철학은 바로 이러한 '경계 흐리기'다. 동양 고전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추상적인 책으로 통하는 <주역>은 음과 양이라는 두 기운을 통해 인생관부터 국가관, 우주의 원리까지 일체의 사상을 설명해 낸다.

김세서리아 교수는 한국 국기의 상징인 '태극'이 음양의 원리를 근원적으로 설명해 주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태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두 마리 물고기를 형상화한다. 두 물고기는 이어져 있다. 아직 천지가 열리지 않고 음양의 2기(氣)가 나누어져 있지 않을 때의 단 하나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조, 서로 다른 기운이 공존하고 있는 구조에서 <주역>의 원리를 읽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주역>이 "(음과 양의 기운) 각각의 차이를 보존하면서도 그들이 어떻게 연관 지어져 있는가를 드러내 준다"며 "둘 또는 그 이상으로 나뉘는 것 안에서도 서로 '함께' 하는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상관적 사유로서의 음양에 주목하는 것은 이분법을 넘어서는 데 유용한 전략을 모색하게 해 준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주역>에서 대대(對待)와 변역(變易)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강조했다. 먼저 대대는 천지와 상하 등 성질이 상대되는 것들이 항상 동시적으로 존재함을 이르는 개념이다. 송대의 학자 주희(朱憙, 1130~1200년)는 "천지는 다만 일기일 뿐이지만 곧 스스로 음양으로 나뉘어서 음과 양 두 기의 상호 감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화생한다"며 "그러므로 사물에는 상대가 없은 적이 없다"고 쓴 바 있다.

이처럼 다른 성질의 두 가지가 위계 없이 공존하는 예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 교수는 "딱딱한 머리통 안의 보드라운 뇌, 물렁물렁한 엉덩이를 떠받치는 단단한 대퇴부 뼈" 등 신체에서부터 "더울 때 먹는 삼계탕과 추운 지방에서 먹는 냉면" 등 세시풍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차이를 지워서 뭉뚱그리는 게 아니라, 차이를 보존한 상태로 함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위계적 이분법을 극복하면서도 '다름'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 틀을 마련할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또 하나의 논리는 변역(變易)이다. 김 교수는 '역(易)'은 "주변 환경에 맞춰 몸빛을 변화시키는 카멜레온을 형상화하는 문자"라며 "日은 머리 부분이고 아래쪽 勿은 발과 꼬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글자는 일월(日月, 해와 달)을 가리키기도 하며 그렇기에 음양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물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이르는 개념이다. 주희는 변역에 대해 "음양과 주야의 유행(流行)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세서리아 교수는 "낮은 밤이 되고 밤은 낮이 되며, 봄이 가면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온다. 만물은 고정화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특성을 지닌다"면서 변역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나아가 변역이 "음양을 실체화(고정화) 하고 차별을 정당화 해왔던 전통을 비판할 수 있는 주요한 근거"이며, 따라서 "그 비판을 통해 '음양론을 차별 담론이 아닌 '차이 담론'으로서 재구성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다고 강조했다.

대대와 변역의 원리를 <소년은 울지 않는다>와 관련해 성(性) 정체성에 대입해 보자. 남성과 여성, 남성성과 여성성은 서로 다른 특질이지만 늘 함께 존재하며 서로 끊임없이 기가 통하는 가운데 생명력이 유지된다. 또한 남성 안에서도 우리가 여성성이라 부르는 것들이 존재하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세서리아 교수는 "여성이라고 해서 누구나 부드러운 것이 아니다. 어떤 '관계' 속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특질이 부여되는 것"이라며 "여성성/남성성을 고정적인 것으로 볼 때 그 안에 존재하는 미세한 차이들을 간과하며, 거기에 포함되지 않거나 한 번에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김 교수는 현대의 우리가 <주역>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종, 성, 나이 등 차이를 가진 어떤 것들에 대해 이분법이라는 대립 구도, 위계 구도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복수성의 개념들로 이해하게 해 주는 것"이라면서 "갈라진 것, 규정된 것을 넘어서는 철학"이라고 정리했다.

김 교수는 또한 자신이 취하고 있는 관점인 여성주의에 대해 "여성의 권익 향상만 논하려는 학문이 아니"라면서 "소수자,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 보편성에 가려진 차이 등을 얘기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우리의 삶과 사고 체계를 지배해 온 남성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논의로 이해해 달라는 뜻이다.

동양 고전과 젠더 정치학을 넘나든 이번 강의엔 약 80여 명이 모였으며, 강의 후 동양 철학이 시대를 전복하는 상상력이 되지 못했던 이유 등에 대해 열띤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한편, 이날 강의 전에는 상반기 '청춘의 고전' 수익금 전달식이 있었다. 수익금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한 어린이 치유 센터 '하늘소리'의 공부방에 전달됐으며 윤세나 성공회 신부가 대표로 나와 감사의 말을 전했다.

여성인 윤세나 신부는 "한국에 성공회가 전파된 지 111년에 이르도록 여성은 성공회 사제가 될 수 없었으나 현재는 20명의 여성 사제가 존재한다"며 아직도 많은 부문에서 여성이 소수자 정체성이 되고 있는 상황을 강조했다. 그는 "강의를 계기로 종교에서 일상 영역에 이르기까지 성 정치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윤세나 성공회 신부(왼쪽)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여섯 번째 강의는 8월 20일(토) 6시 같은 장소에서, '냉철한 시선으로 보는 정치 권력'이라는 주제로 열립니다. 박종성 방송통신대학교 외래교수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섞어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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