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벌써 '왕할아버지' 모습이었던 극작가 오영진은 만날 때마다 북한에 있는 고향 이야기를 하나씩 해주었다. 언젠가는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이 겹친 날이라면서 축하해 달라고 어린 나를 붙들고 농을 부리기도 했다.
극작가 이강백은 긴 머리에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열심히도 탁구를 쳤었다. 탁구 라켓을 쥐는 법을 처음 내게 가르쳐준 것도 그였다. 만날 때마다 그와 탁구를 쳤다. 말이 별로 없었지만 무슨 말을 할 때면 꼭 말끝에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하고 꼬리를 붙이곤 했었다. 그는 그 때 세상에 작품을 막 내놓기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몰랐었다. 철이 들면서 그들이 극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희곡을 읽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런 글을 쓰는 그들이 새롭고 멋져 보였다. 갑자기 극작가가 되고 싶어졌다. 이미 천문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나는 이 때문에 몇 날 며칠을 혼자서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들은 희곡에 관심을 갖는 꼬마 아이가 신기하고 기특했던지 기회가 될 때마다 희곡집과 대본을 전해주곤 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희곡을 접할 수 있었고 연습용 대본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를 따라서 극장에 직접 가서 연극을 보기 시작했다. 희곡이나 대본으로 읽으면서 혼자 상상했던 장면을 연극 무대에서 보는 재미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와 이강백의 <결혼>을 특히 좋아했다. 읽고 또 읽고 소리 내어 낭독하면서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무대에서 연극으로 보고 싶어졌다. 나는 안달이 나 있었지만 이들 작품은 좀처럼 무대에 올라오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대학생이 되어서야 두 작품을 직접 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다. 펜팔 하던 여자 친구가 나타난 기분이었다.
(아마도) 국립극장에서 본 <맹진사댁 경사>는 내가 오랫동안 상상해 오던 그 모습 그대로의 무대였다. <결혼>은 두 번 봤다. 한번은 '떼아뜨르 추'라는 카페식 극장에서 만났는데 얼추 내가 상상하던 것과 비슷했다. 창덕궁 옆에 있었던 '공간 사랑'에서 또 한 번 <결혼>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내 상상과는 전혀 다르게 연출된 흥미롭고 놀라운 무대였다.
그동안 연극은 종종 보러 다녔지만 마지막으로 희곡을 읽었던 것은 몇 년도 더 지난 것 같다. 오랜만에 무대에서 보고 싶은 희곡이 나타났다. <봄날은 간다>(최창근 지음, 이매진 펴냄)는 <봄날은 간다>, <서산에 해 지면 달 떠온단다>, <13월의 길목>, 이렇게 세 편의 희곡을 모아서 펴낸 희곡집이다. 세 편 모두 이미 무대에 올려 졌던 작품들인데, 나는 아직 이들을 무대에서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봄날은 간다>를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그냥 조용히 정독하면서 읽었고 그 다음에는 사랑놀이 하듯이 큰 소리로 낭독하면서 읽었다. 최창근의 희곡에 노을처럼 서서히 물들면서 매혹되었고 무대에서 연극으로 보고 싶어졌다. 안달이 났다.
사실 처음 읽었을 때는 좀 심심했다.
▲ <봄날은 간다>(최창근 지음, 이매진 펴냄). ⓒ이매진 |
어머니는 내내 같은 무대에 있지만 그들과는 다른 시공간에서 '간극'을 유지하면서 간간히 추임새를 넣고 알 듯 모를 듯 개입하다가 물러나곤 한다. 등장인물들은 과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약간의 한이 맺혀있었지만 극적인 화해를 강박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다가 그저 봄날의 나른한 꿈처럼 조용히 막이 내린다.
<서산에 해 지면 달 떠온단다> 역시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1930년대 한강 마포나루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수줍고 풋풋하게 이어져가는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이어진다. <봄날은 간다>에서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잔잔해 보일 정도의 예측 가능한 갈등과 이어지는 밋밋한 화해만 있을 뿐이다. 등장인물들은 그냥 일상을 그렇게 살아가기만 한다. 별로 극적이지도 않게. 그냥 담담하게만. 금방 사라져버리는 불꽃처럼. 주인공 격인 소금장수 성진의 말이 그렇듯이.
성진 : (허허 웃는다) 우리네 인생이 마치 저 불꽃놀이 같아.
언젠가 한번 눈부시게 타올랐다 곧 스러지고 마는.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지니까 더 아름다운 게지.
자네나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아마 있었겠지.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갔어.
(석이와 솔이를 향해) 이젠 니들 차례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지만 그 우여곡절들을 헤치고 나면
앞으론 너희들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게야.
한 번을 타오르고 스러지더라도 맘껏 있는 힘을 다해
불꽃으로 피어 올려야 해.
<13월의 길목>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이런저런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 <13월의 길목>이라는 카페에 모여서 그들만의 파티를 한다. 그들은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아픔을 공유한 채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살았었다는) 의미에서 가족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최창근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을 위해서 "이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숨을 쉬고 있는 한 채의 집"을 생각했고 선재가 운영하는 카페 '13월의 길목'을 만들어냈고 선재로 하여금 그 사람들을 초대해서 꼭 한번은 하고 싶었던 파티를 열게 했다.
선재 : 그냥…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꼭 한 번은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살다 보면 그런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선재 : 이 카페도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구석이죠.
가실 : 그래서 지금 우리가 모여 있는 거고?
가실 :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있는 공간이 나인 셈이지.
이 카페 '13월의 길목'이 나란 말이지?
수현 : 우리는 거기 모여 13월로 가는 길을 찾고 있는 거고요.
이들의 모임을 귀신들의 향연으로 반전시키는 극적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큰 갈등도 극적인 화해도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죠" 하는 동호의 대사에 걸맞게 등장인물들은 충실하게 각자의 감정 분출을 억제하면서 서로 간의 '간극'을 유지하고 있다. 마치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떠나는 사람처럼 자신의 넋두리만을 충실하게 늘어놓고 있다. 넋두리를 받는 사람도 받을 만큼만 받는 임무를 수행하듯이 덤덤하다. 그리고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떠나버린다.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도 못했는데.
난주 : 잠깐 동안 머물렀다 곧 되돌아가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길어졌어요. 이제 정말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머나먼 항해.
영수 : 이 별에서 제각기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느라 힘드셨죠?
이 메마르고 팍팍한 땅에서 두 발을 디딘 채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을 텐데.
그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시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화 : 마지막으로 할 말 없으세요?
정든 별과의 작별이 눈앞에 다가옵니다.
낭독하면서 다시 한 번 읽고 보니 이젠 심심하지도 않고 공감도 하게 되고 읽는 재미도 생겼다. 마음이 흔들렸다. 극단적인 갈등도 극적인 반전도 없이 물 흐르듯 흘러만 가는데 어떻게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인가? 그렇게 묻다가 다시 왜 격동의 모습을 보여야만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내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다.
희곡을 읽는 내내 가족, 인연, 연민, 거리, 간극, 체념, 끈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최창근은 아주 긴 마법의 끈을 하나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그 끈을 붙잡고 아주 조금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만 흔들어댄다. 그 끈 위에 등장인물들을 모두 올려놓고 그들이 가족이라는 인연을 맺어가도록 정말 살살 흔들어댄다. 그들이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와 간극을 유지하도록만. 그들이 만나도록만 흔든다.
끈을 힘껏 흔들어서 그들을 극적인 화해의 파동으로 몰아가지도 않는다. 모르는 척 살살 긴 파장으로 끈을 흔들기만 한다. 물이 흐르듯 흔들어서 인연도 맺히지 않고 흘러가 버리게 내버려둔다. 흔들림의 파장을 바꿔가면서 그들 스스로 춤추게 한다. 등장인물들은 긴 베이스음의 파동만을 운명으로 느끼고 체념하고 현재를 살아간다.
등장인물들은 끈이 파장을 달리하면서 흔들릴 때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떠올리고 조금씩은 오기를 부리지만 근본적으로 '착한' 심성을 가졌다. 그래서 끈 위에서 흔들리는 서로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슬프지만 그들은 따뜻하다.
희망이 현실을 삼켜버리는 격동과 반전 대신 긴 끈 위에 선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최창근의 희곡은 역설적으로 진짜 삶과 더 밀접하게 맞닿아있고 오히려 더 리얼하다. 늘 있을 것 같은 그 흔들림에 우리가 공감하고 같이 흔들리는 것이다. 우리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들도 이미 그 끈 위에 올라타고 있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그 삶의 끈을 끝끝내 놓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구차하고 힘겹더라도. 그러니 최창근과 그의 희곡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덕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어.
그래도 살 만큼 살아야지.
자네나 나나 맡겨진 책임이 있질 않나.
자네한텐 석이가 있고 내겐 솔이가 있고.
성진 : 그래. 자네 말이 옳아.
그래도 어떤 땐 죽지 못해서 살아온 건 아닌가 싶어.
한평생 악다구닐 쓰면서 빈껍데기밖에 안 남은 몸을 질질질
끌고 말이지
그러고 보면 삶은 누리며 즐기는 게 아니라 견디며 채워가는
건가 싶으이.
내 육십 평생도 그렇게 흘러갔구먼.
연극 무대에서 이들 희곡을 다시 만나고 싶다. 무엇보다 <13월의 길목>의 엔딩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 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면서 설레기 시작했다. 피아노 줄에 배우들을 묶어서 위로 한껏 들어 올리려나?
그들의 몸이 한, 둘, 셋 어둠 속 허공 위로 떠오른다.
어느 한순간 모두 사라진다.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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