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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그 '가짜' 베스트셀러 ○○○에 속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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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그 '가짜' 베스트셀러 ○○○에 속지 마!"

[1주년 특집] 책 동네 뒷담화 "아니, 정말?"

읽을 만한 된 북 리뷰 섹션을 만들어 보자는 야심찬 기획으로 2010년 7월 31일 출발한 <프레시안>의 주말 서평 웹진 '프레시안 books'가 벌써 50호 발행을 맞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스마트폰 시대에, 나름 '뉴 미디어'였던 인터넷 언론이 구태의연하게 책이라니, 하는 냉소적인 시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레시안 books를 만들며 '책을 더 이상 읽지 않는 사회'라는 프레임 너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 책을 고민하며, 또 책 이야기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1년을 달려오면서 한 번도,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1주년 기념호인 50호에서는 열혈 독자들을 모시고 책과 책동네에 관한 솔직한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25일 서울 장충동 프레시안 사옥에 '책벌레' 세 분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솔직히 밝히자면 이들은 평범한 독자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터넷 서점에서 독자의 주머니를 여는 역할을 맡는 MD, 출판사에서 책 홍보를 책임지는 마케터, 번역가 등의 역할을 두루 거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 매체에서 활약하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서평 필자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번에는 세 사람 다 이런 출판산업 종사자로서의 정체성은 잠시 감추고 평범한 독자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가능하면 가감 없는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자 프레시안 books와의 대화는 익명으로 공개합니다. (세 사람은 챈들러, 구달, 마리로 칭합니다!) 두 시간에 걸친 대화를 갈무리해 보니 정말로 다양한 독자의 목소리가 있더군요.

그들이 독자로서 내뱉은 요구를 하나씩 정리해 보니 무려 10개입니다. 다음은 그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로 프레시안 books도 앞으로 독자가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북 리뷰 섹션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왼쪽부터 마리, 챈들러, 구달. ⓒ프레시안(손문상)

① 책의 종수와 수명을 늘려라!

프레시안 : 매일 신간이 엄청나게 쏟아집니다. '프레시안 books'로 오는 책만 매주 100권이 넘어요. 하지만 그 중 소개를 할 만한 책은 정말 적습니다. 저는 자원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웃음) 이렇게 책이 많이 나와도 되는 건가 걱정이 될 때도 있어요. 어떠신가요?

구달 : 저는 오히려, 책이 너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프레시안 : 국내 출판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책의 종수 자체가 적은 것은 아니라고 해요. 그럼에도 읽을 책이 없다면, 정작 나와야 할 좋은 책들이 안 나온다는 얘기 아닌가요?

구달 : 글쎄요. 내가 읽지 않는다고 경제·경영서, 자기 계발서가 많이 나오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게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현상일 수도 있고. 오히려 절대적인 종수가 보장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 상대적으로 덜 팔리는 과학책 같은 것도 더 많이 나오지 않겠어요. 책 생태계에 균형이 잡히면 좋겠지만 그것까지 우리가 조정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챈들러 : 저도 마찬가진데요. 책이 정말 많이 나오는 건 맞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출판사에서도 수익을 내기 위해 나름대로 검토를 하고 내는 거니까 나온 책에 대해서 '이건 왜 나왔지' 묻는 것도 저희가 할 일은 아닌 것 같고요. 오히려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책들이 절판되거나 품절되어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현상, 이런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책의 수명이 너무 짧다고 할까요.

마리 : 저는 출판 시장이 풍요 속 빈곤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전체 종수에 비해 질적으로 좀 떨어지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게 사실이고요.

사실 출판사에서는 매달 '수금액'을 채우기 위해서 책을 내거든요. 한 달에 3종을 내던 곳에서 갑자기 1종만 낼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큰 문제는 말씀하신 대로 수명이 짧은 거죠. 낸 책이 수명이 다하면 그 책의 내용을 잇는 기획이 나오기 보다는, 그것을 대체하는 그렇고 그런 책만 계속 생산되는 식으로요.

프레시안 : 제 말이 그 말인데요. 구달 님은 경제·경영서, 자기 계발서 쏠림 현상에 대해 가타부타 뭐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이신데, 그래도 독자 입장에서 보면 너무 비슷비슷한 책이 많이 쏟아지잖아요.

구달 : 여러 가지가 연결된 문제라 출판사 탓만 하긴 어렵다고 봐요. 출판사에선 급히 낼 수 있는 종류를 찾으니까요.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그 출판사 성격에 맞는 책을 내는 게 아니라 이미 시장에서 '먹히는' 주제를 따라가잖아요. (출판사가) 독자를 끄는 게 아니라 시장에 끌리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주제가 겹치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아요.

독자 입장에서 최선은 결국 종수의 확보가 아닐까요. 내가 관심 없는 분야일 땐 열 권 중 한 권 고르는 것도 귀찮지만,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10권도 부족한 경우가 있죠.

② '매대'에 속지 않을 권리를 달라.

챈들러 : 그런데 쏠림 현상이 책 구매자들한테 상당히 피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넷 서점에서 메인 화면은 오프라인 서점의 매대나 마찬가지인데요. 예전에는 독자들한테 메인화면을 보여줄 때, 내부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자기 계발서를 자주 노출시켰다면, 이제 좀 다른 분야의 책으로 바꿔보자 하면서. 그런데 요샌 그 고민이 사라진 것 같아요.

구달 : 그건 맞아요. 저도 인터넷 서점에서 일했지만, 요즘 인터넷 서점 들어가면 메인 화면에 뭘 노출시키는지 안 봐요. (웃음) 뭘 보여주려는지 빤히 알겠더라고요.

프레시안 : 어떤 걸 보여주는데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굉장히 많은 독자들이 책을 선정할 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게 바로 인터넷 서점 메인 화면이거든요.

챈들러 : 과거엔 메인 화면 배치에 (서점 직원의) 생각이 많이 반영됐어요. '이런 책이 요즘은 의미 있을 것 같다', '이것도 조명해봐야 한다' 이렇게 가치 판단을 했고, 편집하는 사람의 개인 취향이 들어가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은 누가 봐도 잘 나갈 것 같은 책들만 올라오죠. 가령 마이클 샌델이 작년에 불티나게 팔렸으니까 그의 책이 나오면 무조건 올리고.

무엇보다 출판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이 책, 비싸게 주고 사왔고 광고도 세게 할 거다. 팔아줘야지 먹고 산다" 이렇게 나오면 인터넷 서점에서도 맞춰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광고비 많이 집행하는 책들이 몇 권씩 나오니까, 그런 책들로만 메인 화면을 구성해도 모자라는 거죠.

구달 : 맞아요. 그렇게 바뀐 시점이 출판사 광고를 받으면서부터예요. 신문 북 리뷰 섹션도 광고 없으면 내키는 대로 쓸 텐데, 광고에서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책이 잘 나갈 것 같아서 광고를 한다'가 아니라 '광고를 세게 하니까 책이 잘 나간다'로 뒤집히는 거예요.

예전엔 출판사 마케터들이 책을 직접 읽어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밀어줘서 그게 인터넷 서점에 노출되고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이젠 먼저 광고 크기가 정해지고 그에 따라서 판매량도 판가름 나는 거죠. "저희 광고비로 얼마 써요" 이러면 홍보를 해 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죠.

마리 :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나온 책이 출간 첫 주에 종합 판매 순위 13위~15위쯤에 오르면 성공적으로 진입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일반 독자들한테 아무리 봐도 기묘한, 익숙지 않은 제목의 과학책이 15위에 오른 거예요. 그게 (인터넷 서점) 메인 톱에 올랐거든요. 바로 이게 메인 화면의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재로선 인터넷 서점의 힘이 굉장히 세잖아요. 그러다보니 출판사에서는 (책을 노출시킬) 자리를 몇 개월 전부터 마련해놓지 않으면 안 돼요. 솔직히 말하면, 신문은 급하게 광고 자리가 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인터넷 서점은 절대 없어요. (웃음) 이런 상황이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인터넷 서점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요.

③ 무리한 '오퍼' 경쟁을 막자!

마리 : 이런 유통 구조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의 '오퍼(offer)' 경쟁도 심하죠.

무라카미 하루키, 시오노 나나미처럼 국내에서 잘 팔리는 작가들의 책이라면 말할 것 없고요.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매해 알 수 없는 책에 출판사들의 오퍼 경쟁이 쏠린다는 거예요. 지난해 <룸>(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같은 경우가 그랬어요. 사전 경쟁이 엄청 치열했는데, 국내에선 잘 안 팔렸어요. (웃음)

그런데 이렇게 비싸게 선인세를 주고 무리한 계약 조건에 사오면 많이 팔아야 하니 자연스럽게 광고 규모가 커져요. 그럼 그게 또 인터넷 서점 메인 화면에 오릅니다. 이게 무한 반복이에요. 좋은 책이 아니라, 출판사가 돈을 많이 쓴 책이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노출되는 셈입니다. 독자들이 속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프레시안 : 한 출판사에서 외국의 한 인기 추리 소설을 100만 달러 가까운 선인세를 주고 샀다고 들었어요. 사실 국내 시장을 염두에 두면 그렇게 나갈 만한 추리 소설은 아니었는데요.

챈들러 : 그 추리 소설은 마케팅에도 비용이 상당히 들어갔을 걸요?

▲ 구달. ⓒ프레시안(손문상)
구달 :
솔직히 문학동네가 하루키에 엄청나게 돈 들인 걸 보고 다들 뒤에서 수군거려도, '돈 있으면 우리도 하겠다'고 하잖아요.

하루키 정도가 아니더라도 아이템을 검토하고 거기에 배팅하는 건 출판사로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그 추리 소설은 상당히 양호한 편이예요. 그만큼 돈을 들일 책인가 아닌가는 개인의 판단 문제지만, 유명세를 염두에 두면 비교적 합리적인 배팅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이 말은 바꿔서 말하면, 정말로 형편없는 배팅이 많다는 얘기도 돼요. 그래서 정말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일하시는 분은 독자보다 책을 많이 아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무리수를 두는 거예요? 왜 독자들도 알 만한 시장 상황을 착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마리 : 외서의 경우에는 대중의 주목을 받으리라고 예상되는 책들이 분기별로 하나 정도씩 나오는 게 적당해요. 그런데 이런 외서가 거의 매달 나와요. 에이전시에서 별 걸 다 들고 와요. 이건 영화사에 판권이 팔렸다든가 이건 어떤 문학상을 받았다든가. 출판사 입장에서는 '혹시나' 하면서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이름도 모르는 외국 작가의 첫 작품의 시놉시스만 보고 거액을 오퍼하는 경우도 있어요. 게다가 한 분야에서 성공한 책이 몇 권이 생기면, 나중에는 그 분야에서 선인세 경쟁이 쏠리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3년 전엔 일본 소설이었고요. 요즘은 '일상 철학' 분야라든가 '하버드' 들어간 책들이죠. (웃음)

프레시안 : 출판사 상대로 사기를 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겠어요.

챈들러·구달·마리 : 일부 에이전시가, 지금 그걸 하고 있어요. (일동 웃음)

마리 : 저도 출판사에서 일하기 전에는 궁금했어요. 책을 잘 아시는 분들이 왜들 그러실까. 그런데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대부분 종합 출판사를 지향하고, 편집자가 하는 일도 중구난방이잖아요. 아주 색깔이 뚜렷한 출판사, 편집자 한 명이 특정 분야만 담당하는 출판사가 아니고서는 (특정 분야 책의 동향을 꿰뚫어 보고 무리한 경쟁을 하지 않기) 어려운 일이죠.

프레시안 : '주인-대리인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돈은 어차피 출판사 오너가 내지만, 오퍼는 대부분 편집자가 하잖아요. 게다가 출판사 오너가 책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는 편집자의 권한이 더욱더 세지겠지요. 자금력이 있는 출판사 편집자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질러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그 중에 하나만 걸리면 되니까.

그러다 보니, 자꾸 무리한 선인세 경쟁도 생기고 또 결과적으로 에이전시에 휘둘리는 게 아닐까요? 자금을 대는 출판사 오너가 원칙이 있다면 한국의 출판사가 '글로벌 호구'가 되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하긴 어떤 출판사는 오너들이 나서서 그런 경쟁을 독촉하기도 한다니까. 그럼 이건 주인-대리인 효과는 아닌가? (웃음)

구달 : 그런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더구나 편집자들의 이직률이 오죽이나 높아요. 이건 그냥 오가다 들은 얘기인데, 편집자 중에 어떤 사람들은 회사 나갈 때가 되면 다 계약을 해놓고 간다는 얘기도 있어요. 자신이 읽고 싶은 책 위주로. (웃음) 그럼 그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야 할 테니까.

마리 : 그런 일이야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에요. (웃음) 진짜 문제는 편집자가 전문적이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죠. 한 명의 편집자가 자기 결을 그대로 지키면 그 출판사의 전문 분야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전문성이 생길 때쯤 보통 후임자를 못 만들고 나가요. (웃음) 그럼 또 결이 바뀌고, 계속 '헛' 계약만 남발하게 되는 거죠.

④ 작은 출판사엔 기회를 주고, 큰 출판사엔 책임을 요구하라!

구달 : 지금까지 얘길 들으니 역시 큰 출판사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독자로서는 큰 출판사 책을 믿지요. 작은 출판사에서 10권짜리 시리즈를 기획한다고 했을 때, 2권만 나오면 벌써 불안해져요. 시장 반응이 안 좋아도 끝까지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요. 큰 출판사는 팔리든 안 팔리든 약속은 지키죠. (웃음)

책 관련 일을 하는 입장으로서도 마찬가지예요. 작은 출판사랑 일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어요. 돈 문제가 아녜요. 심리적인 부담, 즉 감정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관여한 책이 안 팔리면 계속 마음을 졸여야 하고. 작은 출판사의 취지엔 공감하더라도 일하는 입장에선 큰 출판사랑 하는 게 마음이 편해요.

프레시안 : 몇 개의 큰 출판사가 출판계를 좌우하는 현상은 얼핏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지만, 말씀 들어보면 독자 입장에선 의도하지 않아도 큰 출판사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네요. 그런데 출판 산업의 구조를 살펴보면, 마냥 작은 출판사를 탓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아까도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가 나왔는데, 작은 출판사는 마케팅 면에선 큰 출판사와 겨룰 수가 없잖아요. 그럼 작은 출판사는 점점 더 독자에게 책을 노출할 기회가 없어지니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이죠. 예전엔 작은 출판사가 이른바 '대박' 책을 내서 중견급이 되는 경우가 적잖이 있었는데 이제 갈수록 그런 일을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마리 : 지금은 출판 시장 자체의 파이가 작아졌어요. 그걸 더 많은 출판사가 나누려다 보니 힘들어지죠. 대박은 대박인데, 회수되는 금액 자체가 반도 안 되는 거예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옥을 확장할 정도로 규모를 넓힌 출판사는, 드라마로 만들어진 인터넷 소설 낸 ㅍ사 밖에 없단 얘기가 있어요. (웃음)

또 하나 문제는, 작은 출판사가 아니라 큰 출판사에 있어요. 그들이 버리는 책들이요. 큰 출판사에서 한 달에 20~30종을 낸다고 하면, 그 중에서 높은 돈 주고 사온 거나 주요 작가의 소설 같은 밀어야 할 책이 정해져 있잖아요. 나머지는 마케터들이 버려요. 큰 출판사가 다양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독자들이 접할 수 있는 책은 아주 제한이 되는 거예요.

프레시안 : 맞아요. 작은 출판사 아니 중견급 출판사라면 상당히 신경 써서 마케팅을 해줄 만한 중요한 책들이 큰 출판사에서 소홀히 다뤄지는 걸 보면 속상할 때가 있어요.

구달 : 그러고 보면 '1인 출판'에 대해서도 한 번 정리해볼 때가 된 것 같아요. 다른 사업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다는 이유로 몇 년 전부터 1인 출판사가 굉장히 늘었는데, 다들 소득은 냈는지 의미 있는 사업을 했는지 궁금해요. 제가 옆에서 보면, 그다지 1인 출판사를 하시는 분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 같은데….

마리 : 출판사가 늘수록 말단 편집자는 시급만 떨어져요. 갈 곳이 많아지니까 몸값이 싸지는 거죠. (웃음) 이런 점에서도 1인 출판사 범람을 평가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프레시안 : 출판사 사장이나 중견 편집자를 만나보면 공공연히 '규모화'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요. 영세한 출판사가 난립하는 구조에선 장기적으로 좋은 기획이 나올 수 없고, 편집자의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단 얘기죠.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국내 큰 출판사들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했었나요? 편집자 길러내고, 필자 발굴하고? 이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⑤ '책쟁이'들이여, 악평에 초연하라!

프레시안 : 구달 님은 번역을 하시죠? 혹시 출판사와 호흡이 안 맞아서 고생한 적은 없었나요?

구달 : 다행히 운이 좋아서인지 그런 적은 없어요. 그런데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제가 번역하는 분야가 워낙 소수 분야라, 서로 끈끈한 분위기가 좀 있어요. 돈 벌고 싶은 사람은 기피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 (웃음) 그런데 소설 번역하는 분들은 정말 별별 일을 다 겪는대요. 분명히 성인 대상 책인데 조금이라도 더 팔려고 대상 독자를 낮춰서 청소년 소설 말투로 바꾼다거나, 진지한 내용의 책인데 표지에 장난스런 일러스트가 들어간다거나.

프레시안 : 그러면 번역하시는 입장에서, 다른 번역서 볼 때 어떠세요? 눈살 찌푸려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구달 : 와. 정말 많아요. 정말 왜 그런 거예요? (웃음) 아까 출판사 분들이 책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 얘기했잖아요. 그게 번역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저는 제가 일하는 분야에 애정이 있어서 어지간한 번역 오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오탈자에도 관대하고요. 오히려 많이 팔려서 다음 쇄에서 바로잡을 수 있도록 사줘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예요.

그런데 정말 노골적으로 잘못된 것들을 그대로 두는 건 이해가 잘 안돼요. 예전엔 돈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정보가 인터넷에 떠다니잖아요. 검색 한 번만 해보면 자기네 출판사에 독자들이 어떤 걸 기대하는지, 해당 번역가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다 나와요. 원작자와 번역자 궁합이 안 맞단 얘기가 나오면, 다음부터 다른 분을 쓰면 되지 않을까요?

인터넷 서점에 글 쓰는 독자들은 굉장히 호의적인 편이라 웬만해선 번역이 좋지 않단 얘기를 안 쓰거든요. 거기에 올라간 거면 심각한 거죠.

마리 : 사실 번역자 계약 해지 문제는 여러 가지가 얽힌 일이라 깨끗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독자들의 지속적인 항의가 있다면, 책을 회수한다든가 정오표를 개시한다든가 하는 방법을 쓸 수 있어요.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독자 분들이 좀 더 눈높이를 높여서 출판사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시하고 그러면 좋겠어요.

구달 : 전 그런 의미에서 '독자 리뷰 이벤트'를 굉장히 안 좋게 봅니다. 진짜 서평이나 항의를 가려버리는 효과를 낳잖아요. 서평단이 어떻게 안 좋은 얘기를 쓰겠어요. 그런 서평들은 기본이 (10전 만점에) 8점 이상이에요. 책 관련 일 하는 사람은 보면 알죠. 어떤 서평이 '시켜서' 나온 건지. 하지만 관심 없거나 잘 모르시는 분들은 '좋은가 보다' 하고 넘어가겠죠.

마리 : 사실, (서평) 개수만 봐도 알아요. 출간된 지 1주일도 안 된 책에 어떻게 10개 넘는 서평이 붙겠어요.

솔직히 회사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그거거든요. 그런데 안 할 수가 없어요. 아까 메인 얘기도 했지만 서평이야말로 더 많은 노출 기회를 얻는 방법이잖아요. 그걸 꼼꼼히 보는 독자는 적어요. 문제는 '개수'죠. 일반적인 독자의 패턴을 상상해 보면, 리뷰가 한두 개 달렸나 열 몇 개 달렸나가 구매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일 것 같아요.

프레시안 : '악평' 관련해서 저희도 할 말이 있어요. (웃음)

매주 서평을 싣다 보면 그 안에 책의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지만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있어요. 어떤 필자는 단어 하나하나 들어가며 아주 적나라하게 지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편집자들이 너무 격렬하게 반응하세요. 패턴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그 부분은 지워달라' 이런 읍소, 하나는 엄청난 불쾌감 표출이에요.

마리 : 출판사 '윗분' 가운데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인터넷 매체나 인터넷 서점에 좋지 않은 리뷰가 올라왔을 때 지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데.

챈들러 : 그건 역자 본인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아주 유명한 교수님이 외서를 번역했어요. 그런데 제가 일하던 인터넷 서점에 그 책의 번역에 대한 혹독한 평이 올라온 거예요. 제자들한테 번역을 맡긴 것도 아니고, 양심이 있다면 빨리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그 교수님이 회사에 찾아오셨잖아요. 사장 나오라고. (일동 웃음)

그 교수님이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느니 해서 결국 그 평을 지웠어요. 독자 분하고는 직접 전화로 상의를 하긴 했죠. 어쨌든 엄청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구달 : 익명을 전제로 하는 '악평 사이트'가 있길 바랄 정도예요. (웃음) 하지만 광고를 받으면 절대 불가능하겠죠.

⑥ '사재기 마케팅'의 진실을 알 권리

프레시안 : 자꾸 출판사 분들이 싫어할 얘기만 나오네요. (웃음) 저는 정말 궁금한 게 '사재기 마케팅'입니다. 출판사 스스로 책을 잔뜩 사들여서 판매 순위를 높이는 방법인데요.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면 놀랄 때가 많아요. 이해가 안 되는 책들이 나온 날부터 시작해 너무나 오래 상위권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올해 상반기에 열풍을 일으켰다는 책 중 몇 권은 정말 끈질기게 상위권을 유지하던데, 제 주변에선 그 책 봤다는 사람이 없거든요. '저건 사재기가 아닐까' 의심했는데, 정작 독자들은 사재기 관행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아요.

챈들러 : 바로 그런 책들이 사재기의 결과 아닐까요?

마리 : 음…, 베스트셀러 순위 목록을 보면서 느낌이 왔다면 그건 100퍼센트입니다. 거의 대부분이 (사재기)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재기가 정확히 뭐예요? 그러니까 서평단한테 보내는 경우, 기업에서 대량 주문하는 경우, 저자가 직접 사서 '뿌리는' 경우도 넓게 보면 사재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귀여운 정도에요. 어느 정도 규모부터 사재기가 되느냐의 문제인 거죠. (판매 부수를 올리기 위해) 정말 수많은 방법이 있는데 그렇다고 다 사재기로 처벌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씁쓸한 건, 그리고 진실은, 사재기를 얼마나 능청스럽게 잘 하느냐가 요즘 출판사 마케터의 능력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에요.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 목록과 아이디를 추적하면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그런 사재기는 아마추어에요. '프로'는 흔적을 남기지 않죠. (웃음) 그런 건 사재기 축에도 못 껴요. 바보짓이지.

대표도 모르게 영업팀장이 사재기를 하거나, 영업팀장도 모르게 대표가 하는 경우도 있어요. (웃음) 심지어 편집자 당사자가 자기가 만든 책이 사재기 대상인지 모르면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 좋아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인터넷 서점 MD로 일 하실 때, 사재기의 현장을 목격한 적은 없나요?

▲ 챈들러. ⓒ프레시안(손문상)
챈들러 :
제가 일했던 분야가 원래 잘 안 팔리는 분야라 (웃음) 찾기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가끔 진지하게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평소에 광고도 잘 안 하시는 이 분야 전문 출판사에서, 그런 얘길 어디서 듣고 와서 "몇 부나 팔면 베스트셀러에 올라요?" 하고 묻는 거예요. 결국 사재기를 하진 않으셨지만 그 책을 좀 밀고 싶었던 거겠죠. 가만 보면 저도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늘 있었어요. 주변에 읽은 사람을 못 본 책들이 기묘하게 높은 순위를 유지할 때가 많잖아요.

프레시안 : 저는 심지어 사재기 대행업체도 있다고 들었어요.

마리 : 옛날부터 있었어요. (웃음)

프레시안 : 말을 종합해 보면 결국 대부분이 공공연히 하고 있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데, 잡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거군요. 근절할 수 있을까요?

마리 : 작년에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사재기가 적발된 출판사의 출판물에 대해서는 3년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지 못하도록 자정 결의를 한 적이 있는데, 해당 책뿐 아니라 그 출판사에 벌칙을 내리자는 취지 자체는 좋은 것 같아요. 어차피 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노출되기 위해 그런 짓을 하는 데 그걸 원천 봉쇄하는 거니까. 하지만 문제는 못 잡거나 잡아도 봐 준다는 거죠.

전 무엇보다 '이 책은 사재기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판정이 내려져도, 독자들이 그 책 고르기를 멈출 것인가, 이게 궁금해요. 업계에서야 해당 출판사에 대한 신뢰나 책의 가치를 낮춰 보겠지만… 정작 영향을 받는 독자들은 안 그럴 것 같아요. 그러니 출판사에서 사재기를 계속 하는 게 아닐까요?

⑦ 우리에게 더 많은 도서관을!

프레시안 : 서점 얘기를 해 봅시다. 점점 작은 서점들이 사라져가고 있잖아요.

구달 : 이미 늦었어요. 아마존 전자책이 한국에 진출해서 그나마 남은 오프라인 서점마저 다 쓸어버릴 것 같아요. (웃음) 전자책 때문에라도 오프라인 서점은 최소화되겠죠.

마리 : 현실적으로 지방의 작은 서점이 살아남으라고 마냥 응원할 수만은 없어요. 지방 서점은 출판사에 지불을 제때 못 해주니까, 그게 점점 쌓여서 출판사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넘어가 버리거든요. 그러면 당연히 출고 정지 명령을 내려요. 그러면 점점 거래가 어려워지고, 그게 쌓이면 어느 순간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몇 개 대형 서점 위주로 정리가 되는 거죠.

그러면 주요 서점의 공급률은 점점 높아지고, 작은 서점의 공급률은 낮아지겠죠. 주요 서점은 책을 싸게 살 수 있지만 작은 서점은 그렇지 못하게 되죠. 또 악순환이에요. 심지어 지방 서점에선 인터넷 서점의 반값 할인 행사 때 책을 산 다음 그걸 서점에서 파는 경우도 있어요. 그게 훨씬 이윤이 많이 남는 거죠.

이런 기형적인 방법이 생기는 걸 봤을 때 마냥 동네 서점을 살리거나 늘리자고 주장하기 어려운 점이 있죠. 출판사한테 희생을 전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런 유통 문제를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다양성' 타령만 하는 건 정말 게으른 접근이에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에요.

프레시안 : 독자 입장에서는 급히 필요한 책이 있을 때 동네 서점이 없어서 아쉽기는 합니다. 물론 그 필요한 책이 동네 서점에 있을지는 또 문제긴 합니다만. 방금 지적했듯이 동네 서점에 문제가 많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동네 서점 살리기에 관심을 갖는 건 그것이 문화 인프라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다행히 서점은 사라지고 있지만 도서관은 예전보다 확실히 좋아졌지요. 훨씬 더요. 저는 언제부턴가 도서관 덕분에 점점 책 소유 집착이 낮아지고 있어요. 예전엔 '나중에 필요할 때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책을 집에 쌓아뒀는데…, 그러다 정작 필요할 때는 못 찾고요. (웃음) 요즘에는 근처의 도서관에 웬만한 책은 있으니까요.

마리 : ㄱ시 사는 분들이 그런 말씀 많이 하시던데요.

구달 : 와. 저도 1년 전 ㄱ시로 이사 갔는데, 신간 구입 빈도가 정말로 극적으로 떨어졌습니다. 근처 도서관에 신간이 1~2주 만에 들어와요.

마리 : 제가 살까말까 고민하는 신간을 ㄱ시 분들은 벌써 빌려서 읽고 계세요. 저는 서울시 ㄱ구에 사는데 거기 도서관엔 올해 4월 말에 나온 저희 출판사 책이 아직도 없어요. 상당한 베스트셀러인데도. ㄱ구는 신간이 잘 안 들어올 뿐 아니라 최근에는 정기 간행물 소장도 부실해졌어요. ㄱ시는 관련 공무원들의 이해와 의지가 있다고나 할까요? (웃음) 서울시는 여전히 심각해요.

챈들러 : 저도 서울 사는데, 제가 자주 가는 ㅁ구 도서관은 괜찮아요. 근데 신간은 일단 포기해요. 대여 경쟁이 워낙 심하거든요. 저도 도서관에 자주 다니면서부터는 책을 잘 안 사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갖고 있던 중고 책을 팔기 시작했죠. 도서관에서 언제든 구할 수 있으니 굳이 내가 소장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구달 : 서점에 가서는 어떤 책을 소장할지 고민해요. 행복한 고민이죠. 여담이지만 소설가 장정일이 어디선가 이런 말을 했어요. 책이 많아서 버릴 때가 종종 있는데 그 순서가 도서관에 있을법한 책부터래요. 그러다 보니 정작 집의 책장에는 누가 볼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책밖에 안 남는다고. (웃음)

아무튼 개인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책 덕에 먹고 사는 나조차 이렇게 신간 구입을 잘 안 하게 되었는데, 도서관 많아지는 게 과연 좋은 건가? 하고….

프레시안 : 도서관 운동 하시는 분들은 출판계를 위해서라도 오히려 도서관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전국에 2000개의 도서관이 생기고 또 장서 확보 예산이 충분하다면 거기서 한 권 씩만 사줘도 인문·사회 과학 서적들은 1쇄를 소화할 수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좋은 책을 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거죠.

구달 :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답이 바로 그거예요. 일본의 신간 판매율이 떨어지자 어느 유명한 작가가 "출간된 지 1년이 안 된 책은 도서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고 주장해서 논쟁이 붙었다는데, 그런 결론은 정말 수세적인 거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도서관이 2000~3000개가 되어서 1쇄만 팔려도 얼마나 좋아요. 그걸 바탕으로 소장 가치가 있는 책들, 의미 있는 시리즈 기획을 고민하면 되고요.

프레시안 : 도서관 문화가 보편화된 나라에서는 출판계가 도서관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기는 이상한(?) 일도 있다고 해요. 구미(歐美)의 꽤 유명한 학술 전문 출판사는 하버드,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대학 같은 곳에서 박사 학위 받는 사람들한테 "너희 논문, 약간만 손을 봐서 책으로 내 주겠다"는 제안을 한대요.

그걸 500권만 찍어서 한 권당 100만 원가량의 높은 가격을 붙이는 거죠. 영어 자료이기 때문에 영·미의 주요 도서관뿐 아니라 전 세계 국립도서관, 대학도서관이 구매 대상이 되죠. 그야말로 '도서관 등 쳐먹는' 사업 방식인데요. (웃음) 물론 우리가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요. 한국의 도서관 가운데 이름 없는 신진 학자의 첫 책을 100만 원 주고 살 곳은 없으니까요.

⑧ 한국의 스티븐 킹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프레시안 : 출판 불황에도 꾸준히 팔리는 유일한 분야가 바로 소설입니다. 소설 좋아하시나요? 저는 최근 몇 년간 국내 작가의 소설을 거의 안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는 대신 공감하기 어려운 자기 독백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강하고, 그렇고 그런 '또래 소설'에 머무르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챈들러 : 음… 사실, 먹고사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소설가는 아주 불쌍해요. 이를테면 유명인 자서전 대필하는 일 한 건당 1000만~2000만 원을 받는다고 해요. 그런데 전업 소설가는 1만 원짜리 초판 1쇄 3000부를 팔면 고작 300만 원을 만지는 거잖아요. 그나마 한국 작가 중에서 초판 1쇄가 다 팔리는 작가는 극소수고.

한국 소설의 재미없는 경향을 비판하셨는데 거기에 대해 변호하자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소설가도 처음이나 두 번째 작품에서 엄청난 대작을 쓸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초기엔 유명 작가를 모방하기도 하고 유행에 영합하기도 하다가 슬슬 발전을 해 나간다고 봤을 때, 한국 작가들은 첫 작품을 발표하고 그 다음 작품을 내기가 참 어려운 환경에 있어요.

작가의 역량이 꽃 피워지기 전, 그래서 제대로 평가할 토대가 생기기 전에 많은 이들이 전업 작가를 포기하는 거죠. 어떤 사람은 대필 작가가 되고, 어떤 사람은 지방 대학 교수로 가고.

물론 첫 번째 두 번째에서도 빛나는 작가들이 없는 건 아니죠. 가령 김애란은 처음부터 자기 색깔이 있었고,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았잖아요. 그러면 또 "김애란 같은 소설만 읽냐?" 하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아니라는 거죠. 작가의 역량이 부족하기보다, 독자가 유행만 쫓아간다기보다, 일단 소설 장르가 다양하게 발전할 기회나 자원이 부족해요.

마리 : 국내 작가들은 또 작품만으로 평가되는 게 아니라 작가 캐릭터로 평가되잖아요. 이를테면 박민규 같은 경우요. 또 '젊은 여자 작가 군(群)'을 모아 놓으면 출판사나 언론이 선호하는 '캐릭터'가 딱 나오잖아요. 등단하려면 겹치는 캐릭터를 피해서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보여주어야 하죠. 그건 소설 외적인 건데 또 판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니까요.

구달 : 저는 한국 작가와 번역되는 외국 작가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봐요.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외국 작가의 책들은 그 나라에서 잘 나갔던 것들이 번역되어서 들어오는 거잖아요. 한국에서는 일본 소설이 있기가 있지만, 일본에도 지지부진한 작품들이 수도 없이 나올 텐데 한 번 걸러져서 나오는 거죠.

그건 그렇고, 한국 소설의 위기가 시장이 원체 작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한국어 사용자가 너무 적기 때문에 출구가 없어요. 이렇게 좁은 내수 시장에서 왜 그리 작가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이 많은지 궁금해요. 안타깝기도 하고요.

프레시안 : 제 불만이 그것과 이어지는데요. 한국 소설은 '스토리텔링'이 안 되거든요. 내수 시장이 적기 때문에 그걸 돌파하려면 중국으로든 동남아로든 번역이 되어서 널리 읽혀야 할 것 같은데, 누구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한국 작가들이 (스토리텔링 강화를)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어요.

구달 : 그 부분은 오늘 이 자리와 좀 다른 차원에서 얘기되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지적하신 부분은 등단 관행의 문제거든요. 한국에서 등단은 단편으로 이뤄지잖아요. 단편에선 제아무리 김애란이라도 스토리텔링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없죠. 하지만 일단 등단은 해야 하니까 단편을 써요. 그리고 단편 작품집을 내죠. 그럼 돈이 안 되고요. 그러니 취직을 해요. 이러면 장편 못 쓰죠? (웃음)

챈들러 : 박민규가 초기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한겨레출판 펴냄)과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펴냄)로 상을 받고 등단을 한 뒤에 원로 평론가들이 "이 친구 잘 쓴다. 그런데 과연 작가의 기본인 단편도 잘 쓸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했대요. (웃음) 그만큼 문단에 단편에 치중하는 전통이 강한 거예요.

단편 심사 기준이 문체 미학, 이미지 묘사, 기교 같은 거잖아요. 이런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에 현재 현상을 "한국 작가들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로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마리 : 전 한국 소설의 독자로서, 스토리텔링이 많이 약하다는 의견에 동의해요. 그런데 그 이유가 있다는 거죠. 최근에 '프레시안 books'에서도 다뤘던 정유정의 <7년의 밤>(은행나무 펴냄)은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런데 정작 문단에서는 이 작가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안 하고 있어요. 단편을 발표한 적이 없었거든요.

한국 문학에 '이야기' 씨가 아예 마른 건 아니죠. 그런데 우리가 외국에 판권을 팔아봤자 대상이 중국 아니면 타이완뿐이고 제대로 된 에이전시나 한국어 번역자도 없는 상황이니, 작가 입장에선 외국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어차피 돈 포기하고 하는 작가 생활인데 자기 성취, 문단의 인정이 더 중요하죠.

구달 : 그래도 불과 몇 년 전부터이긴 해도 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장편 상이 많이 생겼잖아요. 그렇다면 슬슬 성과를 갈무리해볼 때인데요. 워낙 또 혜성처럼 나타났다 혜성처럼 사라지셔서. (웃음)

프레시안 : 그렇게 나온 게 대개 '칙릿' 소설에 상을 주지 않았어요?

챈들러·구달·마리 : 아뇨. '루저' 소설도 있었어요. (일동 웃음)

⑨ 신문 서평, '읽을거리'가 되어라!

프레시안 :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문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나아가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게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일 텐데요. 그런데 언론의 서평 면(북 리뷰 섹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주 읽으세요?

마리 : 글쎄요. 저는 오프라인 언론의 서평 면은 안 읽어요. 신간 정보는 인터넷 서점이 더 빠르니까 책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언론 서평 면을 읽을 필요가 없고요. 유일한 읽을거리라면 작가 인터뷰일 텐데 그나마도 더 깊은 인터뷰가 문예지에 있으니까요. 굳이 언론의 서평 면을 들여다볼 이유가 없지요.

구달 : 저도 언론사 서평 면은 어떤 책을 몇 면에 어느 크기로 소개했나만 체크하고 몇 분의 칼럼만 읽습니다.

챈들러 : MD로 일하던 몇 년 전부터 출판사 분들이 신문사 서평 면이 책 판매에 별로 영향을 안 준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실제로 힘이 없다는 거죠. 저도 서평 면 안 읽어요. 정보는 인터넷 서점의 '새로 나온 책' 목록과 표지만 봐도 더 빨리 얻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프레시안 books'의 다른 점은 그 자체로 '읽을거리'가 된다는 거죠. 그게 차별화에 성공한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달 : '프레시안 books'는 서평자에게 원고 마감까지 최소한 2주 정도 시간을 주죠? 그게 가장 다른 점인데요. 종이 신문은 그 주에 출간된 책을 주말에 다 다뤄야 하니까요.

프레시안 : '프레시안 books'는 창간 때부터 속보 경쟁은 포기했었어요. 가능하면 그 책을 가장 잘 평할 분을 찾아내 여유를 갖고 서평을 맡기자고. 그런데 그렇게 차별화를 해놓고도 흔들리는 경우가 많죠. 다른 언론사가 먼저 크게 다루면, 내부에서도 '이건 급히 다뤘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이 나와요.

그래서 처음에 출판사에 부탁한 게 '사전 예고제'였어요. 그런데 절대 안 되더라고요. 한국 출판계가 워낙 열악하다 보니 출간 직전까지 제목조차 정해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니까요. 한편 이런 경우도 있어요. 과거에 ㅅ출판사는 실제 이 시스템을 도입해서 출간 예정인 책의 내용을 기자들한테 검토를 부탁했데요. 그런데 검토하는 기자가 없더래요. (웃음)

구달 : 저는 속보 경쟁은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해요. 누가 신문을 두세 개씩, 그것도 서평 면을 비교해 가며 열독하겠어요. 어차피 자기가 보는 신문에 나오는 책만 보는 거거든요.

아, '프레시안 books'는 인터넷으로 기사가 공급되니까 그런 면에서 경쟁에 대한 강박을 가질 수도 있겠군요. 조·중·동 세 개를 동시에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하나 보고, <프레시안>을 인터넷으로 보는 사람은 있을 테니. 아무래도 그런 신문과는 소개되는 책들도 겹치게 마련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출간된 책을 빨리 소개하는 것에 집착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봐요. 읽고 나서 보도 자료가 훤히 보이는 기사, 어떻게 내용을 빼다 엮었는지 알 것 같은 기사는 정말 필요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기사를 쓰느라고 속보 경쟁을 하는 것은 정말로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마리. ⓒ프레시안(손문상)
마리 :
맞아요. 속도는 일간지보다 인터넷 서점 파워 블로거들이 훨씬 빨라요. 책 좋아하는 사람이 주말까지 왜 기다려요. (웃음) 무엇보다 출판계 사람들에게 '프레시안 books'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은 포털 사이트 메인에, '핫'한 제목으로 올라간다는 것이죠. (일동 웃음) 출판사 입장에서는 '재탕 효과'를 톡톡히 봐요.

요즘 책의 수명이 너무 빠르니 출간 1~2주차에는 뭐든 순위가 올라가지만 그 이후엔 시들해지거든요. 그런데 '프레시안 books'에서 3~4주 되는 시점에 서평을 내면 또 잠깐 다시 올라가요. (웃음)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한 시사 주간지 '아까운 걸작' 꼭지에 소개가 되고요. 이러다 보니 일간지 서평 면의 포지션이 제일 어정쩡해요.

프레시안 : '프레시안 books'에는 일간지 서평과는 다르게 가끔 심한 비판 글이 실리기도 하잖아요. 가끔은 그 책을 읽지 말라는 수준까지요. 서평은 필자들이 자유롭게 쓰기 때문에 저희가 조절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게 좋을지…. 어차피 책 읽자고 만드는 건데요. (웃음) 의도치 않게 1년 사이 관계가 나빠진 저자, 편집자들이 있어요.

구달 : 정직한 건 좋다고 봅니다만 번역에 대해서든 책의 관점에 대해서든 서평자의 의견이 강하게 들어가는 건데 다들 눈높이가 다르잖아요. 그 점을 감안해 조율을 잘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가령 강양구 기자는 재생 가능 에너지 관련 책이 나오면 다 아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독자에겐 참신한 얘기거든요.

그렇게 눈높이가 독자보다 훨씬 높은 서평은 독자한텐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그 책이 염두에 둔 대상 독자에게 책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해요. 독자와 다른 눈높이에서 저자나 출판사를 질타하는 서평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특정한 분야의 전문 서평도 가끔은 필요하긴 하겠지만요.

마리 : '프레시안 books'에는 저처럼 꾸준히 보는 열독자도 있겠지만 우연히 알게 되거나 새로이 진입할 독자들도 많을 텐데요.

'깐다', '안 깐다'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봐도 '프레시안 books가 비판하면 말은 되더라' 하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개인의 저널이 아닌 이상 개별 필자들의 원고 수준은 매번 달라지겠지만 매주 어느 정도의 수준, 일관된 감수성이 지켜지면 괜찮을 것 같아요.

⑩ 어쨌든 읽자!

챈들러 : 지금까지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처음에 이런 대담을 해보자는 메일을 보고서 놀랐어요. 인터넷 서점에서 MD로 일할 때에도 그때그때 실무적인 것들을 고민했지 유통, 독자, 문화 이런 걸 전체적으로 고민하는 않았어요. 그래서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망설여지기도 했고요.

구달 : 저도요. 얘깃거리 목록을 나열한 걸 보고서, 이렇게 불만이 많나 했어요. 그런데 저도 스스로 몰랐던 불만을 막 털어놨네요. (웃음)

마리 : 저는 평소에 출판계에서 일하는 게 맞는지 고민을 많이 해요. 계속 똑같은 문제들이 제기되는데 시스템 전체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래서 점점 회의적이 되어가고 있어요. 출판이 불황이 아니라 아예 사양 산업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최대치가 고생하는 1인 출판사 사장님들이라면….

챈들러 : 그래도 얘기를 들어 보면 요즘 출판사에서 대졸 신입 공채를 하면, 예전과 다르게 고학력자들이 많대요. 대기업 회사원으로 살기 따분할 것 같은, 영어 공부는 싫지만 책은 좋은 친구들한테는 출판사가 매력적인 직장일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문제는 얼마 안 가서 많이들 이직한다는 건데….

프레시안 : 꽤 큰 출판사에서 신입사원 지원서를 받았는데, 열에 아홉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개 펴냄)를 꼽았대요. 이 책이 나쁘단 게 아니라, 그때 그게 한창 유행이었거든요. 출판사에 지원하는 이들조차 읽는 책이 빤하다는 얘기에요. 다양한 책을 읽는 문화가 아니라는 거죠.

가끔 섣불리 책의 종언을 선고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자책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오더라도 텍스트 자체가 죽는 것은 아니잖아요. 형태는 바뀌어도 편집자라는 직업은 남을 거고. 그 시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전문적인 출판인 양성, 그리고 그 전에 책 문화 자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책 문화를 매력적으로 만들려면 결국 여기 계신 분들이 힘을 좀 내셔야 하는 건데. (웃음)

챈들러·구달·마리 : 네. 그건 '프레시안 books'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웃음)

프레시안 : 네, 결국 결론은 이건가요. 저자가, 역자가, 출판사가, 서점이, 언론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래도 읽자! (웃음) 오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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