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부터 이 책이 나오면 내가 서평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이전의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도 아직 정독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속독하면서 훑어보기는 했지만 게으름 탓에 정독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서평을 핑계로 차분하게 읽어볼 속셈이었다.
'프레시안 books' 편집회의에서도 이미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서평은 내가 쓰겠다고 이야기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책이 갖고 있는 여러 맥락에서의 중요성과 역사성을 감안하면 서평 대신 인터뷰나 대담으로 그 이야기를 담아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회의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야기가 내 예상과는 좀 다르게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편집위원 몇 사람의 의견이었다. 나도 동감하고 있었다.
"이미 일반대중에게 노출이 많이 된 정재승과의 단독 인터뷰는 좀 식상하다."
"내가 사회를 보고 정재승과 그에 필적하는 다른 과학 저술가 한명을 같이 초청해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중심으로 하되 그동안 출판된 국내 저자가 쓴 대중 과학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하는 대담을 해보면 좋겠다."
그런데 편집위원 중 한 명에게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에 대한 다른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재승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애정과는 별도로 책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요약하면 이렇다.
"출판사를 옮겨서 출간한 10주년 개정 증보판 자체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크게 다루어야할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는 과학 저널 <네이처>의 요약판이라는 세간의 평가도 있다."
"이 책은 문화방송(MBC)의 책 읽기 프로그램의 선정도서가 되면서 그 프리미엄으로 원래 가치에 비해서 더 많이 팔렸다."
"오히려 독자들은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넘어서는 정재승의 다음 저작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편집위원은 이 책과 꼭 관련을 지어서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물리학자들이 물리 이론을 내세워서 경제를 분석하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다른 편집위원은 이 책을 직접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대중 과학책이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옳은지 과학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를 다시 상기시켰다. 좀 확대 해석하자면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의 위치를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책으로 규정지은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번 개정 증보판이 원래 책과 비교해서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는 점도 부언했다.
▲ <과학 콘서트>(정재승 지음, 어크로스 펴냄). ⓒ어크로스 |
나는 발끈해서 생각나는 대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에 대한 이런저런 변호를 했지만 그 자체가 허망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실 나는 이 책을 정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편집위원들 중 몇 사람은 이 책을 이미 정독했다고 하니 더 이상 내가 무작정 우길 수가 없었다. 결국 원래 생각대로 내가 서평 에세이를 쓰겠다고 선언했다.
책장을 뒤져보니 군데군데 접혀 있는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2판 3쇄본(2003년 11월 13일 발행)이 보였다. 새로 나온 책과 비교해보니 그림과 사진이 좀 바뀌었고 편집이 좀 더 세련돼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내용은 그대로였다. 대신 45쪽에 이르는 '10년 늦은 커튼콜'이 새롭게 등장했다. 처음 욕심은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어보면서 비교해 보려는 것이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보였다.
마음과는 달리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고통 속에서 읽었다. 마침 눈에 다래끼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며칠 방치해 두었더니 너무 커져 버려서 결국은 안과에 가서 마취를 하고 째는 시술을 받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눈이 불편하니 책을 읽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이번에는 정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설렁설렁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과에 가는 날도 책을 들고 가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책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시술 후에 지혈을 위해서 눈에 붙였던 거즈를 제거해주고 맡겨두었던 내 안경과 책을 돌려주면서 간호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정말' 싫어요." 여전히 조금은 발끈해 있던 나는 이것이야말로 정재승과의 '단독 인터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면서 마음속으로 혼자 우기다가 피식 웃고야 말았다.
안과에 다녀오고 나서도 며칠이 더 지나서야 이 책 읽기를 마칠 수 있었다. 눈이 아파서 하루에 읽을 수 있는 양이 제한되기도 했지만 꼼꼼하게 정독하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독을 하고 보니 내 목소리로 할 말이 좀 생겼다.
정재승은 "도대체 세상은 얼마나 복잡한 것일까? 우리는 결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는 걸까?" 하는 의문에 대한 물리학적 담론을 소개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복잡한 사회 현상의 이면에 감춰진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쓰였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경제, 사회, 문화, 음악, 미술, 교통,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회 현상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카오스와 프랙털, 지프의 법칙, 1/f 등 몇 개의 개념만으로 그 모든 현상들이 그럴듯하게 설명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물음을 던지는지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길 원한다."
정재승은 다른 대부분의 물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전형적인 '카오스 시스템'으로 생각하고 그의 전공인 복잡계 물리학의 창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카오스 시스템이란 복잡하고 무작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몇 개의 간단한 비선형 방정식으로 기술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하는데 초기 조건에 너무 민감하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는 아직은 부족하지만 사회적인 현상 역시 카오스적인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과학적인 접근이 우리가 사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정재승은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통해서 이런 자신의 바람을 어느 정도 이룩한 것 같다. 그가 지휘한 '복잡한 세상에 대한 과학자들의 길고 긴 연주'는 끝났지만 그의 바람대로 '콘서트가 끝난 후에도 그들의 연주를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이 책이 교사들이 추천하는 권장 도서 목록에 오르고 MBC에서 방송된 책 관련 프로그램에서 이 책을 선정하는 바람에 판매에 날개를 달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책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과 생명력이 없었다면 10년의 세월을 버텨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가 10년의 세월을 버텨내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핵심 요소가 숨어 있는 것 같다. 탄탄한 콘텐츠와 독특하고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폴록의 제스처에 주목했지만, 그의 그림에서 들리는 '자연의 리듬'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당시로서는 최신의 과학적 정보를 중심으로 물리학자들의 세상 보기의 새로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물리학자들의 새로운 시도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적절한 비판을 가하면서 물리학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 눈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지를 역설하기도 했다.
"복잡계 경제학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제 현상의 패턴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복잡계 경제학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고 격변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는, 그래서 아무것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경제학'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무수히 많은 패턴으로 자체 조직화하면서 진화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하는 일을 어떻게 감히 '과학'이라 부를 수 있느냐고 경제학자들은 되묻는다.
그렇다면 다윈이 100만 년 후에 인간이 어떻게 진화할지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학문이 과학이 아니란 말인가? 천문학자들이 별의 생성을 예측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의 연구가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무언가 예측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학의 본질은 자연의 근본적인 원리를 드러나게 해주는 '설명'에 있다. 물리학자들은 주류 경제학을 부정하고 뒤엎으려 하지만, 그들의 연구는 우리에게 더욱 풍성한 경제학을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이 <네이처>의 요약 판이라는 세간의 비판은 좀 과장된 면이 있다. 그는 <네이처>뿐만 아니라 여러 서적과 논문, 그리고 인터넷 매체로부터 다양한 자료를 취하면서 탄탄한 콘텐츠를 마음껏 활용하는 글쓰기를 선보인 것은 사실이다. 이전의 글쓰기와는 달리 그 출처를 명확하게 밝힌 것도 크게 살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주목할 점은 그가 흩어져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모두 삼켜서 소화시킨 뒤 치밀한 네트워킹 과정을 거친 후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토해냈다는데 있다. 그러기에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에 나오는 에피소드 하나하나와 그에 대한 복잡계 물리학적 해석이 진성성과 설렘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 것이다. 정재승 식 과학 글쓰기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단순한 과학 지식만을 전달하는 계몽주의적인 책이 아니냐는 우려도 기우인 것 같다. 정재승은 이 점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적고 있다.
"과학의 탈을 쓰고 우리 앞에 찾아온 이야기는 그럴듯해 보여서 쉽게 우리 근처에 머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 지식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더 나아가서 사회 현상에 대한 물리학적 해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혀놓고 있다. 이미 인문학적인 성찰이 녹아있는 것이다. 과학의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그 세상의 바탕이 되는 과학이 어떻게 우리들의 삶과 밀접하게 얽혀있는지를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은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혹한가를 말해주는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을 무리하게 요구했는가를 지적하는 법칙이었던 것이다."
"이 세상은 명확한 법칙으로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로 가득하며, 따라서 우연적인 사건을 기술하는 확률과 통계에 익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확률적으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재수나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거나, 확률에 관한 오해가 살인자를 세상으로 내보내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레토의 법칙은 경제적 불평등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자 인간의 숙명인 양 주장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시스템의 동역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파레토의 법칙'이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아니라 시스템을 재정립하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이렌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이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파레토의 법칙이 성립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고, 어떻게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연구하는 일이다. 인간의 법칙은 변할 수 있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버텨온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의 비결은 위에서 이야기했던 평범한 요소들이 카오스적으로 네트워킹 되면서 증폭했는데 마침 대중들이 정재승의 글쓰기에 공감한 것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회를 보았던 정재승과 소설가 김탁환의 좌담회에서 김탁환이 한 말이 생각난다. "과학자 정재승의 합리적인 사고의 논리 속에는 작은 떨림이 있다." 이 책의 명쾌하고 합리적인 이야기 속에 숨은 그 작은 떨림에 우리 모두가 설레게 되었던 것 같다.
개정 증보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 좀 불만이었다. 그런데 책을 정독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는 그 자체로 여전히 세련된 아름다운 소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을 전후한 시절의 이야기를 잘 담아놓은 흩어버리기 아까운 바구니 같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대중적인 성공 때문에 오히려 그 완성된 아름다움의 가치가 숨져져 있던 예쁜 소품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그래서일까 정재승도 최신의 과학적 성과를 보완하거나 내용을 대폭 개정하는 대신 45쪽에 이르는 '10년 늦은 커튼콜 : 세상의 모든 경계엔 꽃이 핀다'를 들고 나왔다. 지난 10년 동안 복잡계 물리학이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으로 확대되면서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후일담처럼 소개하고 있다.
'10년 늦은 커튼콜'에서는 지난 10년 동안의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의 눈부신 성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정재승 자신의 흥미로운 복권 실험 에피소드도 재치 있게 기록되어 있다. "입자들로 가득 찬 물리학자들의 머릿속에 비로소 '인간들'이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하면서 물리학자들의 반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과학에 대한 확신'을 경계하면서 '과학에 대한 믿음의 종말'에 대한 성찰도 담고 있다. 하지만 역시 커튼콜은 커튼콜인 것 같다. 역설적으로 10년 전에 썼던 본문의 감흥을 재현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작은 발끈함에 대한 설명 때문에 글이 다소 길어지고 이 글이 그 발끈함에 대한 자위나 투덜거림이 된 측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겐 더 큰 소득이 있었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10주년 개정 증보판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 10주년이라는 숫자 그 자체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숨겨져 있던 완성된 소품으로서의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10주년 개정 증보판의 출간을 계기로 재발견한 것이야말로 내겐 크나큰 행운인 것이다. 이 책을 그 자체로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발끈함도 없어졌다.
정재승의 말을 빌어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의 열 살 생일을 축하하고 앞으로의 10년을 기대해 본다. 지금은 이것이 최선인 것 같다.
"과학 콘서트, 척박한 우리 과학 지성계에서 지난 10년을 잘 버텨와 주어 고맙다. 더 깊이 있는 과학, 더 성숙한 통찰력으로 2021년의 너를 기다리마. 생일 축하한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동안 세상에 등장할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알고 있는 것들을 융합하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인간 사회에 대한 유쾌한 통찰력을 제공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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