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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요람' 지중해, 동양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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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요람' 지중해, 동양에도 있다!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노리치의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지중해, 문명의 요람

지중해는 "문명의 요람"이다. 하버드 대학의 세계적인 신약 역사학자인 헐미트 퀘스터는 지중해를 "기독교의 요람(the cradle of Christianity)"이라고 부르면서, 기독교가 단지 어떤 특정한 지역의 종족 종교로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그리스-로마의 거대한 문명권과 만나면서 세계 종교의 위상을 얻어가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관찰과 해석은 지중해에서 태어난 모든 문화, 종교 또는 문명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지역적 경계선을 넘어 세계적 차원의 문명으로 변화, 발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집트 문명도 그렇고, 그리스 문명도 그러했으며 로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르만과 비잔틴 그리고 이슬람도 모두 이 지중해의 역사와 만나면서 그 출신과 뿌리의 한계를 넘는 문명권을 이뤄나갔다.

지중해 문명권에 대한 탁월한 학문적 성취에서 우리는 페르낭 브로델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지중해의 기억>(강주헌 옮김, 한길사 펴냄)은 특히 고대 문명권의 탄생과 그 성장에 대해 압축된 묘사와 해설을 정리해내고 있다. 그리고 유럽 근대사의 거대한 격동이 전개되는 16세기의 지중해를 다룬 <필립 2세 시대의 지중해의 세계와 지중해(The Mediterranean and the Mediterranean world in the age of Phillip Ⅱ)>는 지중해 문명사 연구에 어떤 수준의 지식이 축적될 수 있는지 기가 질리도록 보여준다.

지중해를 보면, 고대 문명의 자서전을 쓸 수 있다. 또한 오늘의 유럽과 세계 판도를 읽어낼 수 있다. 지중해는 그런 관점에서 로마가 카르타고와 그리스를 제패한 이후 "우리들의 바다(Mare nostrum)"라고 했지만,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세계의 바다가 되었다. 물론 이후 그 주도권은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거치게 되지만, 지중해는 여전히 다채로운 역사의 무대다. 그리고 그 무대는 어떤 파도가 몰아쳐도 지워지지 않는 인류의 고대사적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The Middle Sea/A History of the Mediterranean)>(이순호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은 이러한 지중해의 역사를 쉽게 읽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이 책에 담겨져 있는 역사 지식의 풍부함은 독자를 만족시켜줄 것이며, 세계사 전체를 구성하는 중대한 축 하나를 최대한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그 역시 이 책의 첫 장에서 지중해는 "기적"이며, "문화의 요람"이라고 부른다. 명확한 문자 기록이 없는 선사 시대를 다루는 일은 그의 적성에 잘 맞지 않는다고 전제한 노리치는 이집트 고대 문명의 생성이 이루어지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제1차 세계 대전에 이르는 5000년의 역사를 그의 연구대상으로 삼고, 원서 기준으로 600쪽(한국어 판은 1, 2권 합쳐 1000쪽 이상이다!)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 시기를 담아냈다.

비잔틴 역사의 대가 노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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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상>(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 이순호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뿌리와이파리
비잔틴 역사의 대가이기도 한 노리치는 비잔틴과 오랜 역사적 관계를 맺어온 베네치아 보호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영국 BBC 방송에서 역사 다큐 제작과 관련한 작업도 해온 그는 바로 그러한 경력에 걸맞게 역사를 대중적으로 설명하고 전달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그래서 그의 책은 흥미진진하고 쉽게 읽힌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역사 지식과 정보를 종횡무진으로 꿰어 시대의 흐름을 짚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페르낭 브로델의 책이 기본적인 역사 지식이 훈련되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에, 노리치의 경우는 바로 그 기본적인 역사 지식을 공급하면서 그와 동시에 만일 기회가 된다면 브로델의 책을 힘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전단계의 준비 작업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한국 출판계에서 세계사 관련 서적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노리치의 책은 기본 필독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고대 문명사, 로마 제국의 붕괴와 중세 유럽사, 비잔틴과 이슬람의 역사, 십자군의 원정과 대서양 시대의 개막,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 정책과 지배, 오스만 터키의 해체, 유럽의 전쟁과 평화에 이르는 긴 역사를 노리치는 거침없이 풀고 있다. 이와 같은 능숙한 역사 지식 다루기는 오늘날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능력이자, 절실하게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노리치의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문명사를 이해하고 그것을 정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와 노력이 요구되는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이러한 지식의 축적은 그 사회가 그간 쌓아온 학문적 역량과 역사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이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독자 집단의 존재로서 가능해진다. 우리나라의 문명사적 성취나 축적이 아직은 미약한 상태로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점들이 결여된 탓이 아닌가 한다.

노리치의 책에서 우리는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 역사학자인 앙리 피렌느의 영향도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앙리 피렌느 역시 지중해 문명사의 연구를 통해 유럽의 고대와 중세의 경계선을 파헤친 바 있으며, 그로써 유럽의 역사와 이슬람의 역사를 서구적 관점이 아닌 두 개의 대등한 문명권의 공존과 대치, 충돌과 교류, 그리고 합류의 의미를 치밀하고 명확하게 서술해냈기 때문이다. 그의 <마호메트와 샤를마뉴>(강일휴 옮김, 삼천리 펴냄> 같은 책을 노리치의 책과 함께 읽어본다면 소득이 꽤 괜찮을 것이다.

문명의 합류 지점 또는 문명의 무덤?

지중해 동부의 그리스적 세계와 서부의 라틴적 세계 그리고 비잔틴과 이슬람의 역사를 관통하는 대목에서 유스티니아누스를 거론한 노리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후대인들에게 그리스어보다는 라틴어를 더욱 능숙하게 구사한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는 두 언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 세계에 로마 제국을 이식한 지 2세기 만에 로마의 그리스화가 거의 완료 단계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로마는 아우구스투스가 연 제정 초부터 라틴 문명과 그리스 문명을 차별 없이 수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면서 우리는 로마가 그리스와 라틴적 세계로 분할되고, 이후 이슬람이 비잔틴 제국과 이웃하여 그리스 문명을 번역, 소화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문명권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라틴적 로마 문명권의 후계자가 된 게르만의 유럽은 이슬람이 번역한 비잔틴의 그리스 문명을 다시 가져와 자신들의 르네상스에 활용하게 되는 것을 또한 보게 된다. 지중해는 지중해의 패권 내지 주도권을 누가 갖든 그야말로 문명의 요람으로 지속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중해를 둘러싸고 일어난 전쟁으로 지중해는 노리치가 언급하듯이 요람이 아니라 "무덤(grave)"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무덤을 딛고 지중해는 평화를 갈구하는 열망을 담아내는 바다로 다시 태어나 오늘의 역사에 이르고 있다.

동아시아 지중해 문명사를 쓴다면?

노리치는 이렇게 다채롭고 역동적인 문명의 역사가 펼쳐졌던 지중해가 오늘날에는 "놀이터(playground)"처럼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지중해는 이제 관광 지역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지나간 역사를 관람하는 방식이지 더는 새로운 문명을 창출하는 현장은 아니라는 탄식이 된다. 지중해의 문명은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과거를 관찰하는 박물관에서 그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전쟁이 끝나고 피가 흐르는 바다가 더는 아니게 된 다행스러운 상황을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문명의 요람"이라는 지중해의 역사적 본질을 복원하는 노력이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토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중해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도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다. "문명의 발전"이란 뛰어난 선구적 세계사학자 윌리엄 맥닐이 말했듯이 잘 빌려 쓰는 쪽에게 주어지는 행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사실 지중해가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이 서로 이어지고 있는 바다의 문명사가 바로 동아시아 지중해의 역사다. 그러나 이 동아시아 지중해 문명사는 아직도 흔쾌히 정리되고 있지 못하다. "문명"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아직 유아적 단계이기 때문이다.

냉전과 남북 분단 그리고 지난 역사에서 동아시아가 서로 대치하고 적이 되었던 과거를 정리하는 일 못지않게 바로 이 동아시아 지중해 문명사에 대한 이해를 견고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거꾸로 그것은 현재의 숙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도 적지 않은 저력이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행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차츰 역사 기행, 문명 기행, 테마 기행으로 방향을 잡아나가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천 년의 문명사를 즐겨 읽는 사회로 성장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우리 역사의 반만 년을 내세우는 시간에 인류 문명 5000년의 기록을 탐독하는 열정이 생긴다면, 동아시아의 지중해도 문명의 새로운 요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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