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달 동안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는 승부 조작 파문이 한마디로 점입가경, 일파만파다. 양파 까듯 계속 나오는데 이 양파는 까면 깔수록 더 큰 게 나온다.
지난 1일 대한축구협회가 승부 조작에 관련된 선수 10명을 축구계에서 영원히 퇴출하는 것을 끝으로 축구계 승부 조작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듯 했다. 그런데 연봉이 3억 원이라는 염동균이 자수 후 구속됐고 전 국가 대표 최성국, 급기야 현 대표 팀 주전 수비수이자 올림픽 팀 주장인 홍정호까지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막이 오른 것이다.
최성국은 승부 조작 관여를 시인했지만 돈은 안 받았다고 주장했고 홍정호는 승부 조작 제안을 거절했다는데 사실은 돈까지 받았다가 나중에 돌려줬다고 한다. 대표 팀의 윤빛가람까지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승부 조작의 몸통으로 지목됐던 최성현이 지난 주 구속되자 또 다른 10여 명이 무더기로 승부 조작을 자진 신고했다고 한다. 최성현은 부산, 대전, 성남 등 K리그 4개 구단의 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국내는 물론 중국의 조직 폭력배와도 손을 잡고 승부 조작에 가담할 선수들을 포섭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현 국가 대표 5명이 승부 조작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전 국가 대표였던 김동현, 염동균은 구속됐고, 현 국가 대표 홍정호와 이상덕은 검찰에 소환됐으며 자수한 최성국은 불구속 상태다. 국가 대표 출신인 또 다른 선수의 소환 임박 소문도 들린다.
사실 선수의 자살이라는 비극까지 몰고 왔던 이번 파문은 직업 조건이 열악한 시민 구단 선수들과 앞길 막막한 비주전 선수들의 문제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억대 연봉 선수, 스타급 선수, 국가 대표 선수까지 승부 조작에 관련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스포츠계는 연예계와는 달라서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대부분 사실이라고 보면 된다. 얼마 전 문화체육부 차관 박선규가 최악의 경우 리그 중단까지 고려할 것이라고 했는데 K리그는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구단은 폭탄 떠넘기고, 연맹은 꼬리 자르고
K리그 승부 조작 파문이 일자 한국프로축구연맹과 K리그 구단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마치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처럼.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호들갑이었다. 축구인들은 승부 조작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쉬쉬 하며 모른 척 넘어갔을 뿐이다.
구속된 염동균이 그랬다. "리그 전반적으로 비슷한 상황이 폭넓게 퍼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터라 특별한 거부감 없이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상당수 구단은 승부 조작에 연루된 선수들 리스트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선수를 모른 척 하고 트레이드하기도 했다. 선수를 자르든지 이를 알려서 병폐를 고치든지 해야 하는데 자기가 손해 보기 싫어 한 마디로 '쌩' 까고 다른 구단에 폭탄을 넘긴 것이다. 그런 선수들이 다른 팀에 가서 둥지 틀고 새끼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K리그는 '도박판'이 되어 갔다.
이번 사태를 대하는 연맹과 구단의 자세나 결정은 대단히 잘못 됐다. 승부 조작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했던 사람들이야말로 찾아내서 문책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선수 색출'에만 열을 올렸다. 선수들을 어르고 협박하고 각서 받으면서 이번 사태를 '선수들의 문제'로 몰아갔다.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 구단과 연맹, 그리고 대한축구협회와 축구인들 모두의 공동 책임이다. 선수들만 희생시키며 꼬리자르기에 나서는 구단과 연맹, 협회의 모습에서 나는 뻔뻔스러움과 파렴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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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조작이 일상화 된 축구계
이번 문제의 본질은 '승부 조작'이다. 그런데 축구계가 이번에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승부 조작이 아니다. 그들이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선수들이 도박에 참여해 돈을 주고받았다는 것이지 승부 조작 자체는 아니라는 거다.
사실 축구인에게 승부 조작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왜? 축구하면 다들 하는 거니까. 어렸을 때부터 한 거니까. 축구하면서 승부 조작을 배우게 된다. 감독님이 시키면 한다.
2010년 9월 광양제철고는 포철공고와의 경기에서 1대0으로 앞서다 경기 9분을 남기고 무려 5골을 그야말로 '폭풍 실점'했다. 양 팀 감독은 심판이 그라운드로 들어오라는 종용에도 불구하고 늦게 입장해 경기 시작을 7분이나 지연시켰다. 이유가 있었다. 다른 팀 경기 결과를 문자메시지로 전달받고는 포철공고의 결선 진출을 위해 무더기 골을 먹은 것이다.
그 경기 직후 탈락한 금호고 선수와 광양제철고 선수가 주고받았다는 문자 메시지는 이렇다.
"짜고 했냐."
"벌써 입소문 났네. ㅋㅋ"
그렇다. 이 아이들에게 승부 조작은 감출 일이 아니다. 웃을 일이다.
어릴 때부터 승부 조작을 배운 선수들은 나이가 들면 감독 몰래 승부 조작을 하기도 한다. 1998년 차범근의 승부 조작 폭로의 내용 중 하나도 그런 것이었다. 이렇듯 승부 조작이 선수 생활의 일부인 축구계가 지금 저 호들갑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선수들만 희생시키는 지금의 상황에 동의하기 힘든 것이다.
축구인 중 승부 조작을 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승부 조작의 개념에는 예를 들어 8강이나 4강에서 강팀을 피하기 위해 져주기 하는 것 같은, 그러니까 더 나은 결과를 위해 감독 스스로 내리는 판단 같은 것은 포함하지 않는다. 그런 것까지 승부 조작이라 할 생각 없다. 그건 그냥 불성실한 경기 태도라 해도 될 것이다.
축구계의 승부 조작은 감독과 감독 사이의 관계에 의해, 즉 그들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그게 불가능할 경우엔 심판을 통하면 된다. 2010년 구속된 모 대학 축구부 감독은 심판 10명과 심지어 축구협회 경기위원에게 17차례에 걸쳐 모두 2300만 원의 돈을 줬다. 심판을 매수한 9경기에서 모두 이겼을 뿐 아니라 무려 3개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대표 팀 감독을 했던 축구인과 함께 모 고교 팀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만나고 나서 그 축구인은 "저 친구 참 열심히 해" 하며 그 고교 감독을 좋게 평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열심히 한다는 게 선수 발굴하고 지도하는 데 열심이라는 게 아니라 사실은 심판 열심히 만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씨가 뿌려지면 열매가 생기는 법. 그 학교 출신 선수가 이번 승부 조작 파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선수들은 도덕이나 윤리 수준이 낮은 게 아니라 아예 그게 뭔지를 모른다. 어릴 때부터 수업도 전폐하고 축구만 하며 격리된 상태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적정 수준의 판단력이 처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보통 아이들처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고 감독들의 승부 조작이나 심판 매수를 엄단해야 하는 것이다.
K리그를 중단하라
축구계의 오랜 승부 조작 관행은 뿌리 뽑아야 한다. 자정 능력을 상실한 축구계이기에 외부 충격이 필요하던 차였다. 그리고 제대로 뿌리 뽑고 싶으면 리그 중단해라. 이번에 그냥 선 수 몇 잘라내고 넘어가면 승부 조작의 싹은 남는다. 그것도 무수한 싹들이.
축구협회는 이번에 승부 조작과 결별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끼고 살 것인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선수 색출로 끝나면 끼고 살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책임은 제발 어른이 져라. 세상물정 모르는 선수들만 몰아붙이지 말고. 연맹과 구단 잘못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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