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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금을 포스코·삼성의 주주 배당금으로 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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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금을 포스코·삼성의 주주 배당금으로 쓴다고?

[초록發光]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정부

피자 한 판을 배달시켰다. 그 중 덩치가 크고 돈도 많은 사람이 7조각을 먹었다. 왜소하고 빈곤한 사람이 3조각을 먹었다. 하지만 피자 가게 점원은 더치페이라며 7조각을 먹은 이에겐 2000원을, 2조각을 먹은 이에겐 7000원을 요구했다. 그러고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셈법이라며 방긋 웃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온실 기체를 둘러싼 추악한 거래

이 세상에 상식이란 게 아직도 남아 있다면 이 셈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폭력이 태연자약 벌어지고 있다면 당신은 어떡하시겠는가? 게다가 당신이 2조각을 먹고 6000원을 내야할 처지의 사람이라면? 당신은 앞으로 포스코, 삼성, LG, 현대자동차 주주들을 대신해 세금을 내고, 곤란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가 지난 6월 30일에 산업·가정/상업·수송 등 각 분야의 온실 기체 감축 목표를 수립해 발표하였다. 온실 기체 감축은 에너지 가격, 물가 상승 등 다양한 경제·사회적 요인에 민감하게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다.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온실 기체의 90퍼센트 가량은 에너지 분야, 즉 연료 연소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중요한 작업에 사회적 원칙과 상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2억4300만 톤의 온실 기체를 줄일 계획인데, 이중 기업이 책임지는 양은 18.2퍼센트인 8700만 톤에 불과하다. 반면에 일반 시민들이 담당하는 가정/상업 부문의 감축 비중은 26.9퍼센트이고, 수송 쪽은 35.3퍼센트에 이른다. 우리나라 온실 기체의 60~70퍼센트 가량이 기업에서 배출하고 있고, 가정/상업의 배출량은 11.5퍼센트, 수송 17.2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원인과 책임이 완벽하게 뒤바꿔졌다.

에너지 사용량 증가율은 더욱 기가 막힌다. 가정/상업 부문의 에너지 사용량이 62퍼센트 가량 증가한 지난 20년 동안 기업들의 에너지 사용량은 190퍼센트 이상 증가해 3배 남짓한 차이를 보였다. 더 많은 온실 기체를 배출하는 산업계가 증가 속도 역시 훨씬 빨랐던 것이다. 정부 역시 2020년경 가정/상업 부문과 수송 부문의 온실 기체 배출량이 2007년 대비 각각 22.2퍼센트, 29.7퍼센트 증가하는 반면, 산업 부문의 배출량은 44.9퍼센트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 목표대로라면 2020년경에 일반 시민들은 에너지 사용량을 줄였지만, 기업은 오히려 지금보다 증가한다는 의미다.

기업을 위해 책임은 시민들이 나눠 가져라?

정부는 이에 대해 감축이 쉽지 않은 기업의 상황과 사회적으로 최소 비용을 지출하는 최적점을 찾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분명 기업들이 주주들에게 돌아갈 이익을 줄이지 않기 위해 감축 여력이 없다고 엄살을 피웠을 테고, 정부는 국격과 국부 상승이라는 미명 하에 기업들과 이해관계를 맞췄을 테다.

정부가 기업에게 특혜를 주고 있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전기 가격의 경우 현재 산업용 평균 가격은 일반 가정용 가격의 70퍼센트대에 머물러 있다. 돈 많은 기업에겐 싸게 주고, 공공 요금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시민들에게는 비싸게 팔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내는 전기 요금이나 세금으로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을 보조해주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전기 요금을 상향 조정하기 위해 전기 요금 로드맵을 수립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업과 정부의 밀월관계를 보면 불평등 격차가 얼마나 해소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theresilientearth.com

산업계의 표리부동, "지구 온난화는 우리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건 어처구니없는 분담 안을 제안하는 피자 배달부가 아니라 2000원도 못 내겠다고 몽니를 부리는 산업계다. 산업계는 정부가 계획을 발표하던 6월 30일의 공청회를 사실상 보이콧했다. 그간 산업계를 대변한다고 자임해왔던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경영자총협회 등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불참하고, 뜬금없이 산업계 전체 배출량의 2.8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제지 업계에서 유일하게 참석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산업계가 이번 감축 목표 안에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하니 그 연장선상이 아닐까 싶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철면피도 이런 철면피가 없다. 정부안도 기업이 책임져야 할 감축량을 일반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수준인데, 이마저도 기업의 어려움을 이해해주지 않은 것이라니 도무지 할 말이 없다. TV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을 출연시켜 우리를 광고 모델로 쓰지 말아달라는 처연한 이미지 광고를 늘어놓고, 막상 어떻게 책임을 나눌 것인지 논의하는 자리에는 당당히 불참해버리는 산업계를 대체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심지어 지난 2009년 경제 단체들은 본격적인 온실 기체 감축이 시작되면 "총량 규제로 인한 신증설 제한, 원가 상승 등의 이유로 규제가 없는 개발도상국으로의 공장 이전"이 불가피하다며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협박성 문서까지 공식 제출한 바 있다. 애초에 기업에겐 상식을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일까?

산업 경쟁력 차원의 고려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이제 귓등으로도 듣고 싶지 않다. 그런 변명으로 점철되어 있던 긴 시간, 경제 구조는 재벌 중심으로 재편돼 왔고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런 반상식적인 기업들이 더 강력해진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정부와 재계가 사이가 안 좋다는 최근의 소식들을 접하며, 사회적 정의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현 정부를 응원하고 있는 내 모습은 더 끔찍하다.

부문별 온실 기체 감축 목표는 앞으로 각 사회 주체들이 지구 온난화에 따른 파국을 막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임을 져야하는지를 살펴보고 방향을 정하는 시그널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 계획이 과연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수준인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들은 적절한지, 또 책임 분담은 적절하게 됐고 사회적 약자들은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현재 정부의 계획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정부가 제시한 분담안은 7월 초 열리는 경제장관정책조정회의에서 최종 확정된다. 우리는 억울한가? 분노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저항하자.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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