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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보다 100만 배 무거운, 우주 최고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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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보다 100만 배 무거운, 우주 최고의 수수께끼!

[이명현의 '사이홀릭'] 우종학의 <블랙홀 교향곡>

우종학이 지은 <블랙홀 교향곡>(동녘사이언스 펴냄)은 100점 만점에 98점짜리 책이다. 책에 점수를 부여하는 행위가 얼마나 유치하고 부질없는 짓인지 잘 안다. 하지만 나머지 2점, 즉 2퍼센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마땅히 다른 방법을 모르겠어서 그냥 숫자놀음을 해보기로 했다.

<블랙홀 교향곡>은 '열혈 천문학자 우종학의 맛있는 블랙홀 이야기'라는 긴 부제를 달고 있다. 우종학, 그는 '열혈 천문학자'가 맞다. <학생과학> 마니아였고 과학 백과사전 전집을 권하면서 인생에 영향을 미친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박사 학위 논문의 방향을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새로운 지도 교수와 만났고 블랙홀에 매혹되었고 블랙홀 전문가가 되었다. 그런 그가 일반인들을 위해서 블랙홀에 대한 책을 썼다.

▲ <블랙홀 교향곡>(우종학 지음, 동녘사이언스 펴냄). ⓒ동녘사이언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블랙홀에 대해서 궁금한 아이, 학생, 어른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블랙홀이라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겠지만,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책은 드물다. 특히 태양보다 100만 배 이상 무거운 거대 블랙홀은 지난 10년간 천문학계에서 매우 흥미롭고 주요한 주제로 떠오른 반면, 인터넷이나 서점에는 이런 내용을 반영한 글이나 번역서, 저작들이 거의 없다. 이 책은 블랙홀에 대해 과학자들이 발견한 새로운 내용들, 그리고 실제로 내 연구에 밑거름이 되는 따끈따끈한 내용까지도 담고 있다. 그것들을 잘 요리해서 대중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교양 과학 수준이 높아졌으면 하는 오랜 바람도 있다. 교양 과학의 수준 향상을 위해 내가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


이 글을 쓰다 말고 방금 도착한 이메일을 열어보니 우종학이 이끄는 서울대 거대블랙홀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장 천문학자가 직접 쓴 책이 여전히 드문 현실에서 <블랙홀 교향곡>은 정말 반가운 존재다. 더구나 블랙홀 연구자가 쓴 블랙홀 책이니 말이다. 천문학자가 쓴 천문학 책에 대한 나의 강한 편견과 짝사랑을 섞어서 이 책의 존재 자체만으로 우선 90점을 주고 싶다.

"퀘이사의 전파나 제트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벌써 20년도 넘은 숙제랍니다. 다른 특성들은 매우 비슷한데 어떤 퀘이사는 전파를 강하게 내고 어떤 것은 전파를 매우 약하게 내는 것은 참 이상하지요. 어떤 학자들은 블랙홀의 질량이 큰 퀘이사들이 전파를 낸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전파를 내는 퀘이사나 전파를 내지 않는 퀘이사나 블랙홀의 질량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몇 가지 후보가 될 만한 답이 있습니다. 가령, 블랙홀의 회전 속도나 블랙홀이 물질들을 잡아먹는 속도가 관련된다는 주장들이 있지요. 하지만 아직 명확하게 검증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과학자가 되어서 풀어야 할 숙제를 벌써 얻은 셈이네요."

이런 이야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종학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문장이다. 나의 좁은 편견이 사라지도록 이런 문장이 넘쳐나는 천문학자들이 쓴 천문학 책이 마구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우종학은 <블랙홀 교향곡>의 내용 중에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역할은 "과학자 사회에서 이미 알려지고 새로운 과학을 위한 기반이 되는 내용들을 대중들에게 전하는 것뿐이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맛있는 블랙홀 이야기"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를 먹고 자란 음식 재료는 다 준비되어 있는 셈이며, 필자는 음식 재료를 골라 쇼핑을 하고 대중들이 먹을 수 있는 깔끔한 요리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과학자 입장에서 음식 재료를 이해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반면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맛난 요리를 만드는 일은 과학을 하면서 보낸 10여 년의 세월로도 부족했다. 요리하는 일, 즉 대중을 위한 글쓰기는 새로 배워야 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이 작업을 통해 깨달았다. 음식 재료를 만드는 일 만큼이나 요리 자체도 어려운 일이다."

맛있는 요리를 내놓기 위해서 다채로운 메뉴를 준비했다. <블랙홀 교향곡>은 우종학의 분신일 것 같은 연일대학교 '한별 박사'가 그의 고마운 선생님 이해경의 화신일 것 같은 '조혜경 선생님'이 이끄는 과학반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형식을 빌었다. 과학반 학생들은 그의 어린 시절의 추억일 것이고 연일대학교는 그가 공부했던 연세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 대한 애정의 표시일 것이다.

별 아저씨 한별 박사의 강의 내용 중간 중간에 보충 설명을 넣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학생들이 이메일로 질문한 내용에 답하는 형식으로 블랙홀에 대한 일반인들의 구체적인 궁금증에 즉각적인 답을 주려고도 시도하고 있다. 친절하게 블랙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보충 설명도 모아서 내놓고 있다. 화자의 어투가 때로는 '다'로 끝나다가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서 '입니다'로 변하기도 한다.

다양한 메뉴로 먹음직스럽게 잘 차려진 한정식 같은 느낌이다. 맛있었다. 그의 바람대로 '맛있는 블랙홀 이야기'가 담긴 요리 한 상이었다. 이 반찬도 맛있었고 저 반찬도 맛깔스러웠다. 그런데 이 요리에 나머지 10점을 모두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뭔가가 좀 아쉽다. 그래서 일단 10점 중 8점을 적어놓기로 한다.

몇 해 전에 전라북도 김제에 간 적이 있었다. 작은 시골 초등학교에 교장 선생님으로 계신 어느 아마추어 천문학자 한 분과 인터뷰를 하는 자리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김제 벽골제 근처를 산책하고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어느 허름한 시골집이었다. 간판에는 상호도 없이 그냥 '붕어찜'이라고만 써져있었다. 주문도 따로 받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겨우 두 자리 얻어서 앉았는데 좁아서 좀 불편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요리가 나왔는데 달랑 밥 한공기와 찐 붕어 한 마리 그리고 작은 접시에 담긴 김치 몇 조각이 전부였다.

넉넉하고 수북하게 담긴 하얀 쌀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하얀 쌀밥의 순수한 그 맛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밥만 몇 숟가락 떠서 오물조물 씹어 먹었다. 오래도록 그 맛과 느낌을 간직하고 싶었다. 작은 접시에 담아서 내놓은 붕어찜은 작은 붕어 한 마리 위에 어설프게 뿌려진 고춧가루와 파 몇 덩어리가 전부였다. 살점을 한 점 뜯어서 입안에 넣었다. 양념이 살짝 밴 껍질의 맛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부드러운 속살의 맛이 풍겨져 왔다. 반찬으로 나온 김치에는 손길도 가지 않았다. 차린 것은 단촐 했지만 맛은 넘치고 풍부했다. 내 생애 최고의 식탁 중 하나였다.

때로는 형식과 내용의 다양함이 무색해지도록 단순한 것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재료가 싱싱하고 좋고 요리사가 내공이 있다면 쌀밥 한 공기만으로도 최고의 요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제평야에서 수확한 쌀로 지은 밥 한 공기처럼 말이다.

<블랙홀 교향곡>을 집어 들면서 내가 우종학에게 기대하고 바랐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의 말대로 최고의 재료들이 있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천문학자가 있었다. 요리사는 다양하고 맛깔 나는 한 상을 차렸고 나는 정말 맛있는 식사를 했다. 그런데 유행이 지난 어느 광고 문구에서처럼 2퍼센트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우종학의 내공을 보여주기에는 형식의 다양함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이 책의 다양한 구성은 어느 정도 읽는 재미를 주었지만 다소 산만해져서 정작 저자의 내공을 맛볼 기회를 방해했다. 그냥 단순하게 이야기를 이끌었어도 좋았다. 요리사의 고집으로 쌀밥 한 공기와 붕어 한 마리만 내놓았으면 더 맛있는 성찬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료도 싱싱하고 요리사도 무림의 고수인데 장식이 많은 요리로 만들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말이다. 내가 오래 전부터 아는 우종학은 그런 요리를 만들 자격과 능력이 있는 요리사다.

맛있는 요리를 먹었으니 덕담을 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아직 2%가 부족하니 이번에는 덕담 대신 애정 어린 딴죽을 좀 걸어 보겠다.

눈에 잡힌 오타가 몇 개 있다. 70쪽의 "중요한 공헌을 한두 사람의 과학자를"은 "중요한 공헌을 한 두 사람의 과학자들"로 고쳐야 할 것이다. 89쪽에 "아홉 개의 행성"이라고 한 것은 이제 "여덟 개의 행성"으로 적어야 한다. 193쪽에서 "개자리의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라고 적은 부분에서 "개자리"는 널리 통용되는 별자리 이름인 "큰개자리"로 적어야 할 것이다.

"이 내용은 우리가 나중에(7장) 공부할 겁니다." 또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여기서 간단히 살펴봅시다." 같은 문장이 여러 곳에 등장한다. 그냥 그 자리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넘어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용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고 그 설명을 더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장의 반복은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도록 책 내용의 구성에 더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맛있는 요리를 먹은 배부른 사람의 투정일지도 모르겠지만, 블랙홀에 대해서 더 맛깔 나는 요리를 해 줄 수 있는 그에게 '블랙홀 한 공기'만 담은 단순한 진수성찬을 내일의 메인 요리로 다시 주문하려고 한다. 그의 손맛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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